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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뉴스] "절박해서 안되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야구는 '실패의 스포츠'다. 타자는 잘 쳐도 타율 3할이다. 7할은 실패다. 7할이나 실패해도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특히 타자는 투수보다 더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한다. 처음 만나는 투수라면 더 그렇다. 처음으로 상대하는 투수에게 유독 약한 선수와 팀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낯가림이 심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물론 첫 경험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타자가 없진 않다. 이대호(34·시애틀 매리너스)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이대호가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순항하는 이유도 뛰어난 적응력과 순발력 덕분이다. 이대호는 6월 20일(한국시간) 기준 타율 2할8푼9리, 10홈런, 27타점을 기록 중이다. 출전 기회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적이다. 대부분이 처음 보는 투수임에도 그는 뛰어난 대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그랬다. 한국프로야구 데뷔 시즌인 2001년에도 8타수 4안타, 출전기회가 많아진 그 다음 시즌엔 타율 2할7푼8리 8홈런 32타점을 기록했다. 일본 오릭스 버팔로스로 이적한 2012년 첫 해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타율 2할8푼6리 24홈런 91타점으로 연착륙했다. 낯가림이 크게 없는 타자였다.
그가 국가대항전에 강한 것도 이러한 유연함과 적응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야구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확률적으로 어려운 싸움에서 잘 이겨나가고 있는 이대호. 그에게 처음 만난 투수와 상대하는 노하우, 공략법을 물어봤다.
아무래도 첫 맞대결은 타자가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싸움이다. 대부분이 처음 상대하는 투수인데 잘 치고 있다. 따로 비결이 있는지 궁금하다.
절박하면 다 된다. 절박해서 안되는 게 어디 있겠는가. 이거 못 치면 죽는다고 생각하면 다 되더라. 3할을 쳐야 인정받는 게 야구다. 7할의 실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타자의 숙명이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처음 만난 투수에 대한 낯가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나.
없는 게 어딨나. 다만 핑계로 들릴 수 있으니까. 처음 보는 투수라 못 친다고 말 할 순 없지 않나. 처음 보는 투수는 당연히 나도 치기 쉽지 않다. 처음 봐도 잘 치는 볼이 있고, 계속 봐도 못치는 볼이 있다. 타이밍 차이, 타자들의 경우엔 컨디션 차이도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누가 나와도 못친다(웃음).
그래도 한국과 일본에서도 데뷔 시즌 기록이 나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첫 시즌도 좋고.
일본에선 첫 해가 조금 어렵다. 아무래도 양대리그니까 만나는 투수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만난 투수만 계속 만나는 경우가 많아 적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경기 전, 동영상을 자주 본다. 처음 상대하는 투수들 분석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많이 보진 않는다. 뭘 던지는지 알고 치는 것과 모르고 치는 건 확실히 다르다. 결정구가 뭔지, 전체적인 구종이 무엇인지만 파악하는 정도다. 또 초구를 뭘 많이 던지는지, 가장 자신있어 하는 공, 삼진 잡는 공, 풀카운트에서 던지는 공이 뭔지 살펴본다. 그게 제일 자신있어 하는 공이니까. 그런데 경기 전 사전분석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전혀'?
영상으로 보는 것과 타석에서 실제로 보는 공은 또 다르다. 거기다 영상을 계속 보면 머리만 복잡해진다. 많이 보면 많이 볼수록 생각만 많아지고. 영상을 본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다. 타석에 나가면 그걸 생각할 시간이 없다. 타이밍 맞히기도 쉽지 않은 데다 100마일짜리 공은 눈 깜빡하면 들어온다. 단순한 게 좋은 거다(웃음).
오늘도 처음 보는 투수, 프라이스를 상대로 첫 타석부터 안타를 때렸다.
역시 좋은 투수더라. '2스트라이크 이후 실투가 오면 놓치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속구가 높았던 것 같다. 확실히 컨트롤이 좋았다. 변화구도 끝에서 조금씩 변하고, 타격 타이밍이 맞는 것 같았는데 땅볼이 됐다.
후배들이 이대호에게 조언을 구한다고 상상하자. "형님. 처음 만나는 투수 볼은 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하고 물어본다 치자. 어떤 조언을 하겠는가.
야구는 어차피 공 보고 공 치기다. 속구와 변화구, 그것 말고 또 뭘 더 던지겠나.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면 그냥 치는 거다. 짧은 시간에 뭘 생각하고 계산하겠나. 원투에 치는 거다. 공이 뚝 떨어지면 할 수 없고(웃음). 가장 좋은 방법은, 단순한 거다.
투수와 첫 만남은 기선제압의 의미에서라도 잘 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처음 보는 투수한테 홈런을 치면 다음 타석에 들어갔을 때 그 투수에 대해선 확실히 자신감이 생긴다. 투수는 반대겠지만.
국가대항전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절박하기 때문인가.
당연하다. 책임감이 큰 자리다. '못 치면 욕 먹는다, 죽는다' 생각하면 집중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프리미어 12' 결승전 마지막 타석은 내 인생 통틀어 최고로 집중한 타석이었던 것 같다. 베이징 올림픽 때보다 더 집중했다(웃음).
늘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이대호다. 항상 절박한 마음이었나.
남들이 보면 내가 절박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난 늘 절박했고 지금도 절박하다. 매일 게임에 나가면 때론 지치고 편하게 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 같은 경우엔 지금 못치면 다음에 기회가 언제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간절할 수밖에 없다.
야구를 대하는 태도가 늘 진지하다. 그래서 더 찬스에서 강한 집중력을 발휘하는 게 아닌가 싶다.
승부처에서 강하다는 표현보다 여유가 있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대표팀 멤버로 뛰고, 큰 경기도 많이 하고, 10년 넘게 중심타순에서 활약하면서 부담스러운 상황을 많이 겪었다. 덕분에 이제는 부담스러운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연륜이 됐다고 본다(웃음)
박은별 기자(
star8420@mbc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