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계약 후 세인트루이스에 온 게 이번이 처음으로 안다. 오승환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걸 직접 봤는데, 느낌이 어떤가.
(오)승환이 경기는 한국에서 다 챙겨 봤다. 여기 와서 좋은 건 현장의 반응을 직접 체감할 수 있다는 거다. 일본 한신 타이거스에서 뛸 땐 승환이가 연방 세이브에 성공해도 두 달간 관중 반응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여름부터 '오승환'을 연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건 TV론 체크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세인트루이스 홈구장에서 보니까 승환이가 어느 정도 자릴 잡은 상태여서 그런지, 팬들이 환호해주고 기립박수로 맞아주더라. 카디널스 가족석에 앉아 있을 땐 다른 선수들의 가족이 내게 찾아와 “오승환을 보내줘 고맙다”고 했다. “오승환과 같은 좋은 선수와 함께 뛸 수 있어 기쁘다”는 말도 들려줬다. 그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정말 좋더라(웃음).
오승환의 첫 세이브 순간(현지 기준 7월 2일)을 현장에서 봤다. 누구보다 긴장한 상태로 경기를 지켜봤는데.
승환이 경기를 보면서 떤 적이 없다. 실력을 알기 때문이다. 당연히 (위기를) 막을 것으로 생각했다.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세이브 성공을 앞둔 순간 손이 떨렸다. 승환이 실력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승환이가 마무리로 마운드에 올라가 있다는 것 자체가 벅찬 감동이었다. 세이브를 따낸 뒤 승환이를 만나자마자 “축하한다. 참 대단하다”고 말해줬다.
오승환 반응은 어땠나.
승환이는 담담하게 반응했다. "기분? 똑같다. 형이 있을 때 첫 세이브를 거둬 다행"이라고만 했다(웃음).
선수한테 그런 말을 들으면 에이전트로서 큰 보람을 느낄 거 같다.
그렇다. 선수가 잘했을 때 에이전트는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내가 직접 현장에서 경기를 보지 못해도 주변에서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려줘도 짜릿한 성취감을 느낀다. 반대로 승환이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면 내가 다 잘못한 느낌이 든다. ‘어제 승환이와 통화하지 말걸 그랬나', '입이 방정이었나' 그런 식으로 자책하곤 한다.
세인트루이스 계약과 메이저리그 첫 세이브 성공 가운데 어느 순간이 더 보람 있었나.
계약서에 사인한 순간은 사실 그리 기쁘지 않다. 한신이나 세인트루이스와 계약할 때 성취감 같은 건 없었다. 담담했다. 그냥 '오늘 하루 하던 일을 했구나', '하루가 끝났네' 그런 느낌이었다. 세인트루이스 계약 당시에도 승환이에게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말만 했고, 승환이도 '나중에 소주 한잔 하시죠‘ 한 게 끝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첫 세이브 성공 땐 달랐다. 감정이 벅찼다. 당연히 선수들이 잘 할 때가 더 기쁘고, 보람 있지 않겠나.
세인트루이스에서 여러 관계자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거로 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하다.
다들 '승환이가 잘해줘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팬들도 승환이가 이 팀의 마무리가 됐다는 것에 무척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맷 슬레이터 세인트루이스 스카우팅 디렉터도 "앞으로 오승환은 더 좋아질 것이다. 구단도 전부 승환이를 보며 놀라고 있다"고 칭찬했다. 덕분에 세인트루이스의 한국 선수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올 시즌을 끝내고 FA(자유계약선수)자격을 취득하는 KBO리그 선수가 누군지 무척 궁금해했다. 미국 야구 관계자들과 승환이 ‘이야기 반’, KBO리그 선수들 ‘이야기 반’식으로 대화를 나눴다고 보면 된다.
마이크 매서니 세인트루이스 감독과도 직접 만났다.
매서니 감독에게서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존 모젤리악 단장도 “지금 승환이가 사는 집은 내가 추천해준 집”이라면서 불편한 게 없는지 세심하게 챙겨줬다.
빅리그 진출 전 오승환 성공을 두고 반신반의하는 이가 꽤 많았다. 가뜩이나 당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때 어떤 생각으로 난국을 돌파했는지 궁금하다.
메이저리그에서 잘 될지 안 될지는 나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웃음). 다만 승환이가 그동안 해왔던 걸 보면서 확신 같은 건 있었다. 그래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해왔던 것’이라고 하면?
승환이는 야구에 있어선 자기 관리가 정말 철저한 선수다. 덕분에 한국, 일본에서 좋은 결과를 냈다. 또한 자신감도 대단하다. 개인적으로 운동선수가 갖춰야 할 덕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역시 자신감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100마일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가 있어도, 자신감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자기 관리’와 ‘마인드 콘트롤’에서 잘해낼 거라고 믿었다.
일본은 물론 미국 진출 때도 오승환의 구종 추가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구단 스카우트가 ‘구종 하나를 더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승환이의 장점은 떨어지는 공이 아닌 속구였다. 주무기인 속구와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고 국외 구단들이 관심을 보였던 거다. 주변에서 ‘속구와 슬라이더 투 피치로는 안 된다’라고 할 때도 우리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다 지난 일인데.
다 지난 일?
슬레이터 세인트루이스 스카우팅 디렉터가 승환이를 영입하려고 공을 많이 들였다. 승환이가 그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 있다. 그게 세인트루이스 구단을 감동시켰다.
그게 무엇이었나.
"나를 뽑은 걸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주겠다"였다. 나도 그 소릴 듣고 깜짝 놀랐다.
에이전트 입장에선 조금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듯싶다. 미국 현지에선 오승환을 포함한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을 가리켜 ‘가성비가 좋다’는 말을 하곤 한다. 에이전트에겐 조금 다른 의미로 들릴 것 같은데.
물론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게 우리 현실이다. KBO리그 출신의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이 진출한 지 초반이라, 한국 선수들의 시장 가격, 셀러리 수준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쿠바 선수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되레 난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은 시장 가격보다 좋은 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승환이도 포함된다. 시장 상황을 볼 때 적정 가격이다. 다만, 지금 선수들의 활약 덕분에 한국 선수들에 대한 기대와 몸값이 앞으로 충분히 높아지리라 본다.
"오승환, 야구장에서는 철저하게 다른 사람이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