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 입성 후 두 번째 불펜피칭을 가진 류현진. 40개의 공을 던지며 빠른볼,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모두 구사했다. 투구시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사진=이영미)>
LG 트윈스 선수단의 전지훈련지인 애리조나 캐멀백랜치. LA다저스 마이너리그 훈련장에 캠프를 차린 LG 선수들은 일찌감치 합류해 개인 훈련 중인 류현진과 자주 교차하게 된다. 2월 9일(한국시간)도 트윈스 투수들의 불펜 피칭이 마무리되자 류현진이 통역(올시즌 류현진은 새로운 통역, 브라이언 리와 함께 한다. 브라이언 리는 오승환 통역인 구기환 씨와 대학 선후배 사이)과 함께 나타났고, 캐치볼을 한 다음 예정된 불펜피칭을 시작했다.
이 날은 한국에서 온 KBO 소속 심판들도 LG 투수들의 불펜피칭에 투입돼 판정 연습을 한 터라 류현진도 자연스럽게 KBO 심판을 세워놓고 하는 불펜피칭을 경험했다(모든 심판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류현진의 피칭을 지켜봤다).
이미 오키나와에서 개인 훈련을 하는 동안 네 차례의 불펜피칭을 소화했다는 류현진은 애리조나 입성 후 두 번째 불펜피칭을 갖는 상황이었다. 투구수는 모두 40개. 처음엔 바깥쪽과 몸쪽을 오가는 속구를 각각 10개 씩, 20개를 던졌고,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던지며 구위를 시험했다. 속구는 원하는 방향으로 기가 막히게 들어간 반면 변화구를 구사할 때는 다소 타이밍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류현진의 불펜피칭 현장에는 LG 투수들도 관심있게 지켜봤는데 김대현, 최성훈은 불펜피칭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류현진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훈련을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려던 봉중근은 류현진한테 다가가 “편하게 던지라”고 격려해주는 등 아끼는 동생의 재기를 응원했다.
봉중근은 류현진의 피칭을 지켜본 후 “어깨나 팔꿈치 통증을 못 느껴서 그런지 투구폼이 더 와일드해졌다”면서 “투수는 어깨가 아프면 나도 모르게 위축되기 마련인데 현진이 한테선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어깨가 아프면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나도 모르게 움츠려 든다. 현진이가 롱토스할 때와 마운드에서 공 던지는 모습을 보면 투구폼이 커졌다는 걸 눈치 챌 수 있다. 그만큼 어깨나 팔꿈치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과 일본에서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했다고 하더라. 그 덕분에 지금 건강한 몸으로 공을 던지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속구 던질 때 보면 마치 윽박지르는 듯 자신감 있게 피칭하지 않나. 일찍 준비한 만큼 좋은 몸 상태를 보이고 있어 정말 다행이다.”
<사진 위에서부터 봉중근, 김풍기 KBO 심판위원장, 그리고 LG 강상수 투수 코치이다.(사진=이영미)>
봉중근은 지난 2년 동안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던 류현진이 상당히 깊은 상처와 아픔을 느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현진이는 항상 최고의 선수였다. 한국에서도, 그리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첫 해, 둘째 해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런 투수였다. 그러다 부상과 수술로 팬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야구 외적인 일들로 비난을 받았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동기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에서 현진이는 반대의 상황에 처하며 쓰라림을 느껴야 했다. 무엇보다 잘 나갈 때 지원받았던 모든 스폰서가 다 끊겼다. 차, 호텔, 광고까지 모두! 한 마디로 이 세상이 얼마나 냉정한 곳인지, 운동선수에게 성적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제대로 느낀 것이다.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평소 속마음을 잘 꺼내놓지 않는 사람이 나한테까지 힘들다고 토로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난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시기에 그런 아픔을 느꼈고, 덕분에 자극을 받으면서 재기에 대해 강한 욕구를 가질 수 있게 돼서 말이다. 추운 겨울날 잠실야구장에서 캐치볼을 하고, 오키나와까지 건너가 개인훈련을 소화하고 돌아온 현진이를 보며 ‘아, 저 친구가 이를 악물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 오기 덕분에 지금 이렇게 던지고 있는 것 같다.”
봉중근은 류현진이 90% 이상의 전력 피칭을 하려면 적어도 다섯 번 정도는 더 불펜피칭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고, 지금 당장은 경기에 나갈 상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현진이가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고생이 많았지만 이 또한 좋은 인생 공부라고 생각하고 올시즌 멋지게 재기하는 류현진을 기대한다.”
류현진이 불펜피칭하는 뒤에서 다양한 조언을 건넸던 LG 강상수 코치는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처음 캐치볼 할 때는 조심스러워하는 듯 했지만 지금은 자신감을 갖고 피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몸쪽과 바깥쪽으로 빠른 볼을 던질 때 나오는 궤적으로 인해 어깨 쓰는데 차이가 나타나지만 바깥쪽 공이 완벽하게 들어가는 걸 보고 더 이상 어깨에 대해 부담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오늘처럼만 간다면 앞으로 갈수록 좋아질 것 같다. 오늘 변화구를 많이 던지지 않았음에도 공을 만지는 손의 감각은 정말 타고난 선수다. 지금은 변화구보다 속구가 제대로 들어가느냐가 중요한데 오늘은 그게 다 좋았다. 단, 변화구 던질 때 빠른볼 던질 때처럼 타이밍을 빨리 잡아야 한다고 조언해줬다.”
강 코치는 2년 여간 재활을 거듭한 류현진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어깨 수술한 선수들의 재기가 쉽지 않다고 하지만 손민한도 어깨 수술하고 다승왕에 올랐다. 앞으로 몸 관리만 잘한다면 기본 성적은 낼 것으로 보인다. 지금 갖고 있는 독한 마음을 잊지 말고 몸 관리를 잘해나가길 바란다.”
한편 지난 겨울동안 류현진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LG 김용일 트레이닝 코치는 “아직까진 류현진 특유의 유연성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3개월 전에 처음 만났을 때는 유연성과 근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현진이도 인정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동안 그 부분에 중점을 둬 훈련했고, 지금은 몸 상태를 많이 끌어올렸지만 완벽한 게 아니다. 한국에서 몸을 만드는 동안 어느 선수보다 강도 높게 훈련했다. 아마 야구하면서 가장 많은 훈련량을 소화했을 것이다. 외부에선 현진이가 훈련을 게을리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내가 지켜본 현진이는 자기가 해야 할 운동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해나갔다. 다저스 스프링캠프 합류를 앞두고 열심히 몸을 만들었는데 부디 시즌 개막 때까지 아픈 곳 없이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며 선발진에 합류했으면 좋겠다.”
불펜피칭을 마치고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김용일 코치와 대화를 나눴던 류현진. 애리조나 입성 후 두 번째 불펜피칭을 마친 소감에 대해 물었다. 류현진과의 짧은 인터뷰.
오늘 불펜피칭을 한 소감이 어떤가.
“편하게 던졌다. 처음 불펜피칭을 했을 때보다 강도를 올렸다. 첫 번째 불펜피칭 때는 투구수를 50개로 정하고 강도를 낮췄다면 오늘은 40개로 줄이는 대신 강도를 높였다. 공 던지는데 전혀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이전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개인 훈련을 했던 것과 비교한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인가.
“이것만큼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미국 진출 후 모든 시즌을 통틀어 지금의 몸 상태가 가장 좋다고. 이건 나만 느끼고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겨울에 고생했던 부분이 조금씩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다저스의 스프링캠프가 17일(한국시간) 시작된다. 정상적으로 팀 훈련에 합류하는 건가.
“구단에서 그와 관련된 연락이 왔기에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선수들 단체 훈련에서 제외하지 말고 똑같이 훈련하게 해달라고.”
그 이유는?
“스프링캠프 첫 훈련서부터 제외돼 따로 훈련하는 게 싫었다. 내가 ‘열외’란 단어를 싫어한다(웃음). 선수들과 함께 훈련받으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릴 것이다.”
2년 간 힘든 시간을 보내며 느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다 내가 못한 탓이다. 인생 공부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건강한 시즌을 보내기 위해 캠프 합류하기 전까지 보강 운동을 통해 몸 상태를 제대로 만들 계획이다.”
앞에서 봉중근이 언급한 대로 류현진은 지난 겨울이 매우 시렸다. 해외파 선수들에게 경쟁적으로 제공되는 호텔과 차량은 물론 그동안 인연을 맺은 광고들도 모두 사라졌다. 호텔 대신 운동하며 지낼 집을 렌트했고, 차량은 개인 승용차를 이용했다. 세상은 그에게 더 이상의 스타 대접을 하지 않았다. 그 아픈 경험들이 그를 더 성장시켰을지 모른다.
불펜피칭을 계획대로 잘 마쳤다고 해서 호들갑 떨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류현진 부활 운운하며 기대심리를 높이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류현진의 겨울이 그냥 무의미하게 흘러가진 않았다는 점이다. 마운드에서 건강한 류현진을 보는 것. 그것만 이뤄진다면야.
<불펜피칭 하루 전인 2월 8일(한국시간) 류현진은 훈련을 마치고 롯데 자이언츠 스프링캠프를 찾았다. 피오리아 스포츠콤플렉스에서 롯데 선수들과 해후한 류현진. 절친 황재균과 선배 이대호를 만나 정겨운 인사를 나눴다
http://sports.new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380&aid=0000000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