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의 지금 흐름이 '성공적'이라고 표현한 미국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오승환은 이렇게 답했다. "성공이라기보단 아직은 '반짝'이라고 생각한다. '반짝'을 지속하고, 선수 경력이 끝났을 때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3월 17일(이하 한국시간) 메이저리그 복귀전(1이닝 무실점)을 끝낸 뒤 오승환에게 WBC 대회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세인트루이스는 야디어 몰리나, 카를로스 마르티네스 등 총 10명의 선수가 WBC에 출전하도록 배려했다. 팀 소속 선수들이 국제 대회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가장 먼저 소속 팀에 돌아온 오승환에게 취재진의 궁금증이 많았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오승환은 "모든 선수와 구단 관계자들이 나를 보고서 '웰컴 백(Welcome back)'이라고 인사해줬다"며 환하게 웃었다.
WBC 이야기가 시작되자 오승환은 가장 먼저 팀 성적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오승환은 "한국 마운드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참 좋았다. 그러나 팀 성적이 좋지 않아 너무 아쉬웠다"고 운을 뗐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대표팀 합류였다. 어렵게 합류한 만큼 오승환에겐 더 간절했던 대회였다. 오승환에게도 대표팀 합류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이 기다린다. 올 시즌 소속 팀에 집중해 좋은 성적을 내기도 부족했다. 그럼에도 오승환은 핑계 없이 대표팀에 합류했다. 태극마크가 주는 설렘과 책임감이 컸기 때문이다.
오승환은 한국 팬들 앞에, 그리고 한국 최초의 돔구장에 서는 그날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또 준비했던 대로 잘 던졌다. 오승환은 이번 대표팀에서 가장 화려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를 보고 대표팀 동료들이 "우리와 수준이 다른 공을 던진다"고 감탄했을 정도. 적장들도 오승환에 대한 칭찬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대표팀 발탁 논란이 불거졌을 때 오승환은 "'(논란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회에 참가하는 만큼 팬들께 칭찬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마운드에 선 건 비록 두 경기뿐이었지만, 비난을 칭찬으로 바꾸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승환은 그 누구보다 더 간절히 대표팀의 좋은 성적을 바랐다. 그런 만큼 대회를 일찍 마치고 돌아온 것에 대한 아쉬움도 더 진하게 남은 듯싶었다. 돌아와서도 제 몫을 다한 자신을 칭찬하고, 격려하기보단 대표팀 성적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털어놓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오승환은 "저번(2013년)에도, 이번 대회에서도 1라운드 탈락을 했지만, 한국 야구가 발전하는데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무엇이 아쉬웠는지에 대해선 자세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구의 잘못을 떠나, 무엇이 잘못됐다고 하기 전에 선수들 스스로가 다 잘 알 것으로 생각한다. 오히려 모든 부분에서 한국 야구가 많이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WBC 참가가 올 시즌 변명거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마이크 매서니 세인트루이스 감독은 오승환의 복귀를 반겼다. "솔직히 오승환이 일찍 복귀하게 돼 좋다"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오승환이 WBC에 가야만했던 이유를 마운드에서 보여줬다. 대회 출전을 위해 한국으로 떠날 때도 시즌 치를 준비가 잘 된 걸 알고 있었다. 다시 본 오승환 역시 준비가 잘 돼있다"고 칭찬했다.
오승환은 매서니 감독의 배려로 플로리다 도착 후, 이틀 동안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 오승환은 이틀 내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복귀 후 동료들의 반응은 더 뜨거웠다. 동료들은 WBC 대회에 참가한 한국 팀의 경기, 그리고 마운드에 선 오승환의 피칭을 지켜봤다. 한국전이 열리는 시간이 세인트루이스 선수들이 클럽하우스에서 머물던 시간과 맞아떨어진 덕분이었다. 오승환이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WBC에서도 뛰어난 피칭을 할 것이란 걸 선수들은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 정작 선수들이 놀랐던 장면은 따로 있었다.
"내가 마운드에 올라오면 팬들이 소릴 많이 지르고 엄청 응원한다고, 그게 인상적이었다고 하더라. 한국에선 밖에도 못 돌아다닐 것 같다고 하기에 '잘만 돌아다닌다'고 했다(웃음)."
오승환이 찍은 음료 광고도 선수들 사이에선 화제였다. 오승환이 복귀하던 날, 클럽하우스에 모인 선수들은 휴대폰을 가져와 오승환에게 음료 영상을 보여줬다.
"음료 광고에서 강아지가 얼굴을 핥는 장면이 있다. 그것 때문에 내가 한국에서 유명해진 것 아니냐고 하더라. 나도 정작 강아지가 옆에 있는 걸 오늘 처음 광고를 통해 봤다. 그냥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음료수가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다(웃음)."
세인트루이스 담당 기자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오승환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부쩍 높아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와 관련해 오승환은 "이번에 한국에 가서 보니 야구팬들이 카디널스 저지나 모자를 많이 쓰고 있었다"며 "소속팀 인기를 실감했다"고 답했다.
오승환의 지금 흐름이 '성공적'이라고 표현한 미국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선 "성공이라기보단 아직은 '반짝'이라고 생각한다. '반짝'을 지속하고, 선수 경력이 끝났을 때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겸손한 답변을 들려줬다.
WBC의 여운은 이제 뒤로하고 이젠 다시 소속 팀에 집중할 차례다.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WBC 참가가 올 시즌 자신의 핑계거리가 되지 않길 바라면서 오승환은 다시 한번 책임감을 강조했다.
"예년보다 조금 일찍 공을 던졌다. 시즌을 준비하는 덴 크게 상관이 없다. 나 혼자만 대회에 집중한 게 아니고, 이번 대회에 참가한 모든 메이저리거가 다 똑같은 입장이었다고 본다. 몸을 만드는 건 이제 내 몫이다. 100% 몸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회 참가했던 시간이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몸이 더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나빠질 건 없다고 생각한다. 팀에서도 충분히 휴식시간을 줬다. 선수는 핑계를 대면 안 된다. 컨디션은 조금씩 더 좋아질 것이다. 예년에 비해 공 스피드도 2, 3마일 더 나온다. 올 시즌 좋은 방향으로 잘 풀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