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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07 00:06
[MLB] [구라다] 버들류(柳)의 느긋한 커브 소름끼치는 의연함의 경지
 글쓴이 : 러키가이
조회 : 2,011  



[야구는 구라다] 버들 류(柳)의 느긋한 커브, 소름끼치는 의연함의 경지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온통 파란색이다. 수건들이 물결친다. 왕국의 로고가 새겨진 깃발이 스탠드 이곳저곳을 질주한다. 그 길을 따라 엄청난 함성이 터져나왔다.

현지 시간으로 목요일 오후. 1000 빈 스컬리 애비뉴(Vin Scully Ave. 다저 스타디움 주소)가 부글거리고 있었다. 곧 비등점에 도달할 것 같은 열기가 자욱했다. 축제는 이제 곧 시작을 앞두고 있다.

흥겨움과 긴장감. 팽팽함 사이로 묘한 기류가 흐른다. 뭔가 기분 나쁜 쎄~함이다.

어제(한국시간 5일) 아침이었다. <LA타임스>가 특집 섹션을 발행했다. 다저스의 10월 개막을 기념하는 에디션이었다. 그 동네에서, 이 매체의 영향력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커버 페이지는 클레이튼 커쇼의 모습이 통단으로 장식했다. 시큰둥한 표정이다. 그리고 3번째 페이지. 99번 투수의 사진이 실렸다. 1차전 선발 투수에 관한 내용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제목은 'ALL CROSSED UP'이었다. 착한 마음으로 번역하면 '(상대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의외의 기용이다' 쯤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구라다>는 그렇게 선하지 못하다. 자꾸 삐딱하게 보인다. '우리 모두 뒤통수 맞았다.' 뭐 그런 소리로 들린다.

내용도 좀 그렇다. 기사는 대강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만약 워커 뷸러였다면 그렇게 이해하겠다. 이제 성화 봉송의 주자가 (세대교체로) 바뀌는구나. 그런데 Ryu는 뭔가. 이건 전혀 다른 메시지를 주고 있다.' 마치 명분도, 의미도 잘 모르겠다는 식이다.

내놓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의 눈은 한 남자를 좇고 있다. 선발로 나갈 99번? 아니다. '물 먹은' 22번이다.

그는 그제, 그러니까 개막 하루 전에 기자들과 숨바꼭질했다. 선발 로테이션이 발표되던 날이었다. 감독이나 코치, 주요 선수들이 대부분 미디어에 오픈되는 날이었다. 그런데 유독 그의 모습만 찾을 수 없었다. 의도적이었다.

그러나 어제는 어쩔 수 없었다. 기자들을 피할 길이 없었다. 간단한 청문회(?)가 열렸다.


- 2차전이라는 통보를 받고 이유를 물어봤는가?

▲ 물어봤다.

- 무슨 얘기를 들었나?

▲ 자세한 건 말하고 싶지 않다.

- 동의했나?

▲ 동의하고 말고 할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까칠한 정도는 아니었다. 충분히 정제됐고, 대스타다운 품격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달갑지 않은 문답임은 분명해보였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멘트에서 당시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커쇼에게 우리의 생각을 전달했다. 확실히 그는 1차전 선발로 나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설명을 들은 뒤 2차전을 준비하겠다고 수긍했다."


영광스럽지만, 한편으로 불편했던 캐스팅

영광스러움은 분명했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또 하나 얻는 자리였다. 게다가 상대가 누군가. 전혀 다른 레벨, 신계와 인간계를 넘나드는 경이로운 존재다. 그를 제치고 오디션에서 선택받았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 맞다.

하지만 그만큼 불편함도 컸다. 사방이 따가운 시선이었다. 현지 미디어와 팬들 사이에는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감히 우리의 미노타우로스(사람 몸에 소의 머리를 한 그리스 신화의 괴물ㆍ커쇼의 별명)를'.

그럴 법도 하다. 대역치고는 조금 그렇지 않나. 수술로 2년을 날렸다. 그나마 복귀 시즌에도 90일 이상을 DL에서 보냈다. 후반기 잠시 반짝했을 뿐이다. 뭘 믿고 그런 캐스팅을 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올 법하다.

이슈는 부담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다. 가뜩이나 막중한 역할 아닌가. 져야 할 백팩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전력투구만이 떠오르는 비상한 각오

감정을 이입해보자. 그런 상황이라면 어떨까.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다. 생사를 건 일전이 펼쳐진다. '진격 앞으로.' 추상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등 뒤로는 비명과 고함이 아수라장이다. 오로지 살기(殺氣) 하나로만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다. 오직 전력투구 밖에 없다. 시즌 때처럼 이닝수, 투구수 감안할 개재도 아니다.

"책임감 갖고 1회부터 준비하겠다. 처음부터 내려올 때까지 전력투구 할 것이다. 최소한의 실점과 팀이 이길 수 있는 방향을 만들겠다." 하루 전 기자회견 때 밝힌 각오였다.

왜 아니겠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도 버텨낼까말까다.

그런데…그런데 말이다.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이뤄졌다.

정확하게 오후 5시 38분(현지시간)이었다. 플레이볼이 됐다. 1회 초 선두 타자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가 타석에 들어섰다. 팽팽한 긴장감이 다저 스타디움에 부글거리던 순간이었다. 거침없는 와인드 업에서 출발한 초구는 모두를 얼어붙게 했다. 겨우 75마일(120㎞)짜리 느릿한 커브였다.

투수의 첫번째 공은 특별하다. 오늘 경기의 의미가 담긴다. 타자에게, 상대 편에게, 우리 야수들에게, 심지어는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포함됐다. 강렬한 자신감, 기백, 필승의 의지. 이런 것들을 한껏 실어서 뿌린다.

때문에 강력함을 듬뿍 담은 빠른 볼이 자연스럽다. 제1구부터 유인구나, 변화구는 승부사의 길이 아니라고 믿는다. 특히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경우는 더하다. 일단 힘으로 제압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요리조리 피하는 건 그쪽 생리에 맞지 않는다. 쫄보라는 비웃음을 살 지도 모른다.

그런데 99번 투수는 달랐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심드렁한 커브 하나를 멀찌감치 떨어트렸다. 21살짜리 아쿠나는 우두커니 바라만 봤다. 구심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스트라이크였다.

타자는 타석에서 빠져나간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이다. '어랏? 이건 또 뭐지?.' 계산에 없던 일이 생긴 것이다. 타이밍은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2루 팝 플라이 아웃.)

브라이언 스니트커 애틀랜타 감독은 경기후 이렇게 얘기했다. "Ryu는 굉장한 체인지업을 던졌다. 우리 타자들은 별로 삼진을 많이 당하지 않는 편인데, 빠른 직구와 체인지업에 밸런스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맞는 말이다. 99번 투수의 주무기가 체인지업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그러나 한가지 보태야 할 사실이 있다. 여기에 달달한 맛을 보태준 조미료가 있다. 바로 커브다.

그는 이날 104개 중에 17개의 커브를 던졌다. 구사율로 보면 주요 구종 중에서는 가장 낮다. 하지만 지극히 효율적이었다. 루킹 스트라이크를 7개나 얻어낸 것이다. 최다였다. 그만큼 상대의 생각을 벗어난 공이라는 뜻이다.

자료 = 베이스볼 서번트

정리하면 이런 얘기다. 카운트가 불리해지면 안된다. 안전한 스트라이크를 던질 구종이 필요하다. 어제는 바로 그게 커브였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걸로 인해 완급 조절의 효과까지 누릴 수 있었다. 직구-커터-체인지업은 모두 엇비슷한 타이밍으로 공략할 수 있다. 빠른 볼로 나가다가도 한 템포 늦추면 체인지업도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커브는 완전히 다르다. 처음부터 노리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어렵다. 그렇다고 구사율이 16% 밖에 안되는 공에 초점을 맞출 수도 없는 일이다.


빈 스컬리 옹이 남긴 멘트

사실 커브는 시즌 중에도 잘 써먹는 레파토리다. 새로울 건 없다. 주목할 점은 타이밍이다.

엄청나게 중요한 게임, 말도 못하는 숨가쁜 상황들이었다. 무량의 부담감이 짓누르고 있었다. 오로지 강력한 힘과 쾌조의 스피드만이 생존의 길이라고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럴 때 그런 여유와 느긋함을 발휘한다는 건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보통의 심장과 평범한 멘탈로는 어림도 없다. 그렇게 정확하고, 안정적인 부드러움은 상대의 템포를 혼란에 빠트리기에 더 할 나위 없다.

                                                      사진 제공 = 게티 이미지

어제 백스톱 뒤편에는 여러 인사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아내와 가족들. 비지니스 파트너인 스캇 보라스, 전설의 샌디 쿠팩스, 어깨 수술을 맡았던 닐 엘라트라체 박사. 그리고 다저스의 목소리로 불리는 빈 스컬리 옹까지.

99번 투수가 2013년 첫 완봉승을 거뒀다. 에인절스를 2안타 무사사구로 막고 3-0으로 셧아웃시킨 것이다. 이 경기는 당시 현역이던 빈 스컬리 할아버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이런 멘트를 남겼다.

"류현진의 성인 류(柳)는 버드나무(willow tree)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는 이름처럼 아주 부드럽게 던지네요. 구부러지고 휘어지지만 절대로 꺾이지 않는 기상이 있습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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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키가이 18-10-0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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