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파문 이후 마음의 병이 걸린 추신수. 체력은 멀쩡한데,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방망이가 무거워지고 있다. 하루 빨리 슬럼프를 탈출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그 길이 쉽게 열리지 않고 있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
오늘(6월4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2차전이 끝난 후 매니 악타 감독이 방으로 절 불렀습니다. 내일은 휴식 차원에서 게임을 쉬라는 얘길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팀이 연패에 빠진 상황에서 주전인 제가 득점 찬스 때마다 번번이 기회를 놓치니까 아무리 절 믿어주는 감독님이라고 해도 부담이 크실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제가 경기에 나서지 않으면, 또 다시 ‘음주파문 후유증’ 이런 내용의 기사들이 나오겠죠? 인터넷을 안 보고, 댓글을 읽지 않고 살다가, 가끔 들어가서 제 기사들이나 댓글을 보면 정말 할 말을 잃게 됩니다. 미국에 나온 기사들을 보고 쓴 한국의 기사들이 또 다시 재구성되면서 그 글들에 달린 입에 담지 못할 댓글들 까지…, 제가 공인이고, 한국을 대표해서 메이저리그를 뛰고 있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다는 것, 너무 잘 압니다. 더욱이 음주 운전은 어떤 변명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것이었죠.
하지만, 저도 사람이고, 아프고 쓰라린 마음에 자꾸 채찍을 가하시면, 자꾸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쏠립니다. 무조건 칭찬과 격려만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비난과 비판을 하시더라도, 굳이 막말을 해야만 되는 걸까요?
아내가 며칠 전에 이런 기사를 읽었다고 하네요. 한국의 어느 교수님께서 ‘아시안게임을 통해 군복무 면제 혜택을 받은 추신수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게 사회정의에 어긋나지 않아 보인인다’ 라고요. 물론 그 교수님께서는 군복무가산점제의 부활과 관련된 글을 쓰면서 ‘제대군인에게 혜택을 줄 것이 아니라 군복무를 이행하지 않은 모든 국민에게 이에 상응하는 부담, 곧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절 예로 드셨더라고요. 제가 만약 음주 운전으로 지탄을 받지 않았더라면 굳이 제 이름을 제목으로 거론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국제대회를 통해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사람이 저밖에 없는 건 아니니까요.
야구장을 찾는 팬들의 응원에 힘을 내고 있다는 추신수. 10년간 온갖 고생 다하며 올라온 자리가 지금 잠시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추신수는 포기하지 않고 달릴 것을 약속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
많이 힘드네요. 팀을 위해, 제 자신을 위해, 또 절 지켜보는 팬들을 위해, 하루하루 이 지긋지긋한 슬럼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전 자꾸 우스운 사람이 되는 것만 같습니다.
미국 선수들, 아니 여기서 뛰고 있는 외국 선수들은 야구를 잘하든, 못하든 여유가 넘칩니다. 저도 그들의 낙천적인 성격을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인 생각들은 쉽게 바뀌질 않네요. 제가 야구를 배울 때는 야구만 했습니다. 야구로 성공하고 싶었기 때문에 야구에 목숨을 걸어야 했었죠. 그래서 야구 외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야구를 하지 않는다면 사회에 나가서 할 일이 없습니다. 공부를 버리고 야구만 했기 때문입니다.
메이저리그의 선수들은 야구도 잘 하지만, 농구, 축구, 수영, 심지어 악기도 잘 다룹니다. 야구를 취미로 배웠지, 저처럼 목숨걸고 직업처럼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슬럼프를 겪을 땐 다른 취미 생활로 잠시 야구를 잊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 그게 잘 안 돼요. 아무리 야구를 잊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명상을 하고, 책을 읽으려 해도, 곧 야구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여기 선수들은 부모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 아내와 아이들만 신경 씁니다. 1000달러를 받든, 1만 달러를 받든, 야구를 즐기고 야구장을 나오면 잊어버립니다. 전 제가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많아요. 부모님의 노후도 신경 써야 하고, 동생, 친척들, 절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이 많습니다. 야구가 안 될 때,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면 온 몸에 힘이 쭉 빠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석에 들어설 때, 제 얼굴에서 복잡함이 느껴지는 지도 모릅니다. 얼굴이 복잡하고, 눈빛이 달라진 타자가 투수 입장에선 얼마나 만만하게 보일까요?
괴로운 마음에 무빈이에게 약한 소리했다가 제대로 조언을 들었다는 추신수. 지금 추신수한테 가족은 더할 나위 없는 '존재의 이유'들이다.(사진=베스트베이비 제공) |
오늘 퇴근 후 집에 들어서니 무빈이가 달려와선 제 품에 안기네요. 많이 속상했던 제가 무빈이한테 해선 안 될 말을 했습니다. “무빈아, 아빠 야구 그만할까?”했더니 무빈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지금은 방망이가 힘들지만, 대신에 아빠는 수비도 잘 하고 달리기도 잘 하잖아. 그리고 공이 가까이 왔을 때 쳐야지, 미리 방망이를 휘두르니까 스윙이 되는 거야.”
오늘은 리틀야구에서 뛰는 무빈이가 메이저리그인 저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클리블랜드에서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baseball&ctg=issue&mod=read&issue_id=537&issue_item_id=9299&office_id=380&article_id=0000000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