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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05 01:58
한·러 수교 30주년..고려인, 한국과 러시아의 가교가 되다
 글쓴이 : 러키가이
조회 : 2,717  


한·러 수교 30주년..고려인, 한국과 러시아의 가교가 되다


고려인 4세·5세, 선조들 '독립운동사' 익히며 자신감
총영사 "고려인, 한국과 2인3각 할 수 있는 존재"

[우수리스크=AP/뉴시스]KPF공동취재단 = 11월24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고려인 민족학교'에서 김발레리야(60) 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웃으며 답하고 있다. 고려인 3세인 김 교장은 고려인 민족학교를 "고려인 후손들의 두 번째 집"이라고 설명했다. 2019.12.3.

※편집자주=1990년 9월30일, 일제의 강요로 단절됐던 한·러 외교 관계가 85년 만에 정상화됐다. 2020년이면 양국 외교관계 수립 30주년을 맞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을 '한·러 상호 교류의 해'로 지정하고 양국의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교점에 스스로를 카레이츠, '고려인'이라 부르는 이들이 있다. 뉴시스는 11월13일부터 26일까지 러시아를 방문해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9 KPF 디플로마 [러시아전문가] 과정 참여 후 제작됐다.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뉴시스] 양소리 기자 = 러시아 극동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는 호랑이의 도시다. 고속도로에는 청동, 해안 산책로에는 황동, 버스정류장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호랑이 동상이 있다. 백두산 호랑이로 익숙한 바로 그 형상이다. 우리의 호랑이는 백두산에서 국경을 가르는 우수리 강을 건너 러시아 시베리아까지 넘나들었다. 한반도와 러시아는 호랑이의 역사를 공유한다.

러시아는 가깝다. 한반도와 국경이 닿아있다. 러시아로 넘나든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3차 동방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러시아 극동지역을 "러시아의 선조들이 개척했고 한국의 선조들이 찾아 함께 살아온 터전이다"고 정의했다.

이곳을 터전으로 삼은 한반도의 이방인들은 자신을 카레이츠, '고려인'이라 부른다.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의 저자인 원로 언론인 김호준은 "고려인은 조선왕조의 빈곤과 압제, 그리고 망국이 낳은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극동 연해주는 나라를 잃은 이들의 역사적 고향, 조국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됐다.

그곳에는 고려인이라고 부르는 후손들이 남아있다. 모국을 잊지 않은 채 자신의 이름을 '진주' '은아' '가은'이라고 소개하는 고려인 4세, 5세의 시대가 열렸다.

◇한글 배우는 고려인들…"민족학교는 우리의 두 번째 집"

지난 11월 24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고려인 민족학교'를 방문했다. 갑작스러운 눈 소식에도 2층 한국어 교실에서는 중년의 고려인들이 모여 한국어 말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고려인 민족학교는 방과후 학교와 같은 개념으로 운영된다.

김발레리야(60) 고려인 민족학교 교장이 이곳을 연 것은 지난 5월. '수요가 얼마나 될까' 고심 끝에 9월께 시작한 한국어 수업은 160여명의 신청자가 모이며 장사진을 이뤘다.

김 교장은 "(고려인 2세, 3세 중에는)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분도 많다. 바로 스탈린 시대였기 때문에. (한글을 알려줄) 학교가 다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1930년 소련은 탄압의 시대였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압제를 고려인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1937년 7월 중일 전쟁이 터지고 소련의 일본의 긴장은 고조됐다. 고려인들 사이에 일본 스파이가 있다는 보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고려인 사회를 일본 스파이의 온상으로 간주해 이들을 연해주에서 떨러진 곳으로 '격리'시키는 방안을 내놨다. 흔히 알려진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정책이다.

1937년 9월부터 12월까지, 고려인 약 18만명은 행선지도 모른 채 라즈돌리노예 기차역으로 모여야 했다. 추운 겨울, 창문도 없는 가축용 화물칸에서 이들은 한 달의 시간을 보냈다. 기차는 하루에 두 어번, 길면 2~3일에 한 번 인적이 드문 역에 정차했다. 먼 길에 병자는 늘었다. 열차가 잠시 정차하면 조용히 시체가 내던져졌다. 영유아의 사망이 특히 많았다. 지금도 고려인들 사이에서는 1930년대생을 찾기가 힘들다. 고려인 이주민들을 태운 열차는 이렇게 6000㎞를 달려 중앙 아시아에 도착했다.

[우수리스크=AP/뉴시스]KPF공동취재단 =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눈 쌓인 러시아 우수리스크 라즈돌리노예역의 모습. 1937년 고려인 약 18만명은 이곳에서 중앙아시아로 떠나는 강제 이주열차에 탑승했다. 2019.12.3.

고려인 3세인 김 교장은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서 성장했던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중앙아시아에서 살 때 어른들(고려인 1세)은 '원동' 이야기를 많이 했다. 원동이 연해주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우리에게 원동은 성서에 나오는 천국같은 존재였다. 그만큼 우리 할아버지들에게 그곳은 귀중한 땅이었다"고 김 교장은 말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민족주의 열풍이 불었다. 역내 소수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약 3만명의 고려인은 그들의 정신적 고향인 원동, 연해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긴 시절동안 고려인 다수가 말과 문화를 잃어버린 채였다.

김 교장은 "일단 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민족 정체성이 있다. 아이들이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했다"고 고려인 민족학교를 설립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민족학교는 '우리의 두 번째 집'이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역사 교육은 고려인 민족학교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다. '우리는 왜 러시아에서 살게 됐는가'를 묻는 어린 세대에게 바른 답을 하기 위해서다.

김 교장은 "고려인 아이들은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며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잘사는 한국과 못하는 북한을 보며 (고려인들 아이들에게) 항상 묻는다. 너희는 같은 민족인데 왜 그렇게 사냐" 그러나 역사를 모르는 아이들은 답할 도리가 없었다.

김 교장은 "아이들에게 이건 우리 민족의 문제가 아니고 큰 나라들의 정치의 문제라고 가르친다"며 "이렇게 교육을 하니 아이들의 콤플렉스가 많이 없어졌다. 애들이 달라졌다. 그때부터 (역사 문제를) 더 많이 알고 싶어한다"고 했다.

'나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이는 김 교장이 윗세대에게 던졌으나 답을 얻지 못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그의 역사 교육은 그래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김 교장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한테 항상 물어봤다. 우리는 왜 러시아에서 살게 됐냐고. 그러면 할아버니는 '왜 알려고 하냐' '몰라도 된다' '우리는 조국을 배신하고 왔다'고 말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민족의 배신자,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해 왔다고 회고했다.

이를 깨뜨린 게 2004년 러시아를 방문한 이부영 당시 민주당 소속 의원이었다. 김 교장은 "이 의원이 와서 '고려인들을 존경한다'고 말하며 연해주의 독립운동사를 처음으로 이야기했다"면서 "그 역사를 아이들에게 교육하기 시작했고 (이를 학습한) 학생들도 자신에게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게 됐다"며 웃어보였다.

남은 과제도 많다.

김 교장은 연해주에서 항일 독립 의병활동을 한 최재형, 이범윤 등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며 "아이들하고 같이 발굴, 연구할 예정이다"고 부연했다. 이 과정에서 고려인들의 역할 역시 명확하다. 김 교장은 현지에 대한 이해가 낮은 사학자들의 오류가 곳곳에서 발견된다며 "이제 정확한 역사를 저희들이 (함께)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뉴시스]KPF공동취재단 = 11월25일 오성환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롯데호텔에서 말하고 있다. 그는 "과거 한국은 고려인을 '도움을 줘야하는 이들'로 봤으나 이제 그런 단계는 지났다"며 "(고려인은) 우리와 함께 2인3각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2019.12.3.

◇"고려인, 우리와 2인3각 공조할 존재"

한민족의 영광과 회한이 배어있는 연해주와 행정수도 블라디보스토크는 이제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오성환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들어오는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했다"며 "올해 3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한국인 관광객들에 블라디보스토크도 웃음꽃이 폈다. 곳곳에는 한국어 간판이 눈에 띈다. 식당에서도 한국어 메뉴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고려인들을 일상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박상태 블라디보스토크 영사는 "여전히 고려인들은 임금 수준이 낮은 농업 등에 주로 종사한다. 우수리스크에 2만명이 살고 있다는데 막상 그곳에서도 길에서 고려인을 만나는 건 힘들다"며 "이게 현재 고려인들의 경제적 상황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상황이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왜 지금 고려인인가'. 앞서 언급한 언론인 김호준은 그의 저서에서 이같은 질문에 "이제 조국은 그들에게 '빚진 자의 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연해주는 국외 구국항행의 본거지였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홍범도, 최재형, 이상설 등 항일독립투사의 무대였다. 이들의 의병활동에 참가한 고려인은 연인원 10만명이 넘는다. 이들의 후손이 지금 러시아에 있다.

김 교장은 "10대 고려인 아이들도 주변 친구들이 무언가를 쉽게 포기할 때 '너는 고려인 아니야?' '왜 이렇게 인내심이 없어'라고 말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역 땅에서 태어난 새로운 생명들도 모국과 민족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오 총영사는 "연해주에 이같은 동포를 갖고 있는 국가는 우리 뿐이다. 중국도, 일본도 없다. 우리만이 그런 역사적인 존재, 피눈 나눈 동포가 있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를 맺은 지 30년이 된다. 오 총영사는 "과거 한국은 고려인을 '도움을 줘야하는 이들'로 봤으나 이제 그런 단계는 지났다"며 "(고려인은) 우리와 함께 2인3각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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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키가이 19-12-05 01:58
   
재미있는 19-12-05 02:43
   
재미교포 : 우리는 한국과 미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원하며 고국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재일교포 :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우호적인 관계를 원하며 고국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고려족 : 우리는 한국과 러시아(혹은 지금 조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원하며 고국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조선족 : 우리는 ㅈ도 없는 소국 한국의 등꼴을 쫙쫙 뽑아 먹어서 위대한 대국의 영광을 누릴 것이다아아아!!! 마오쩌뚱 만세! 뭐? 탱크맨? 안 보여! 안 들려!
유이바람 19-12-05 08:50
   
고려인들은 정체성은 확고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