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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19 10:21
아래 게시글에 몽골 얘기가 나와 떠오르는 김에.....
 글쓴이 : 촐라롱콘
조회 : 501  

많은 분들이 의외로 잘 모르는 것 같은 병자호란 당시 몽골계들의 활약상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화약병기가 냉병기를 대체해가는 17세기 무렵


또한 비록 몽골-원나라 시기의 전성기에 비하면 축소되고 쇠퇴해가는 몽골족들의 위상이기는 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병자호란에서도 몽골족들의 전투력 만큼은 어느정도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병자호란에 참전한 청나라군 전체병력 가운데 몽골계들의 비중을 살펴보자면


여진족 인근지역에 분포하여 청나라 이전 후금 시기에 복속되어 팔기에 소속된 내번몽골족이 수 천명 규모였으며...


병자호란 발발하기 불과 몇 년 전에 청나라에게 뒤늦게 복속된 외번몽골족이 1만 2천 가량으로


얼추잡아도 몽골계들이 병자호란에 동원된 청나라군 총병력 대략 5만여 명 가운데 1/3 가량의 병력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세부적인 전투에서도 몽골족들의 활약을 보자면....첫번째 부원수 신경원이 방어하던 영변 철옹산성 전투에서.....


신경원이 수성전에서는 청나라군의 공세를 며칠동안 잘 막아냈지만


청나라군이 물러난 이후, 이들을 추격하겠다고 신경원 이하 기보병 1,000명 가량이 출성하였다가


인근에 매복중이던 몽골군 수 백명에게 대부분의 병력이 전멸하거나 패주 분산되고, 신경원은 포로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강화도가 함락되고 남한산성에서 농성중이던 인조가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의사를 전해오던 시기에


이전과 같은 철통같은 남한산성 포위작전의 필요성이 경감된 분위기속에서....청태종은 포위병력 가운데


외번몽골부족 출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략 4,000명 가량을 차출하여 경기북부와 강원도,


함경도를 경유하여 두만강을 건너 혹시 존재할지도 모를 동해여진의 잔류 부족민들을 복속시키고


인축을 포획하라는 임무를 내리게 됩니다.



이들이 청태종의 명을 받고 북상하다가 김화-철원일대에서 조우한 부대가 때마침 남하하던


평안감사 홍명구와 평안병사 유림이 이끌던 평안도출신의 5천 병력이었습니다.


홍명구와 유림은 분산해서 포진하다가 홍명구의 2,000병력은 홍명구 이하 대부분의 병력이 전사하였고


유림의 병력은 홍명구군을 전멸시키고 곧바로 들이닥친 몽골계 청나라군의 1차공세를 막아낸 뒤 


야음을 틈타 청나라군 몰래 전장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김화전투라 하여 병자호란에서 승리했던 전투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하지만....


정작 몽골계 청나라군들에게 큰 타격은 입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서의 표현대로 김화전투에서 몽골계 청나라군 수 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이후에 이들이 강원도북부-함경도-간도지역에 이르기까지 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김화전투가 벌어지던 시기만 해도 병자호란의 막바지였는데.... 이들 몽골계 청나라군들은 이후 강원도 북부에서


분탕질을 치며 북상하다가 강원도-함경도 경계 즈음인 철령-안변 일대에서.... 전쟁이 끝나 함경도로


복귀하던 남병사 서우신이 이끄는 7천명 가량의 함경도군과 조우하여 교전을 벌이게 됩니다.  


철령전투에서는 함경도군이 몽골계 청나라군에게 다소의 타격을 가했지만.....


이들을 추격하다가 안변 일대에서 몽골계 청나라군의 매복에 걸려 전체 병력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3~4천명의 병사들이 전사하고 나머지는 패주분산하게 됩니다.



철령-안변 전투가 벌어지던 시기는 이미 인조가 청태종에게 항복한 이후 시기였지만


북상하던 이들 몽골계 청나라군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계속적으로 약탈-살상행위를


계속했던 것입니다. 결국 함경감사 민성휘가 몽골계 청나라군 진영을 방문하여 전쟁이 종식되었음을


확인하고서야 몽골계들의 약탈-살상-교전행위는 중지되고 적어도 함흥 이북의 함경도지역을 북상하는


동안에는 별다른 만행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이들 몽골계들은 두만강을 건너 동해여진의 잔여세력들이 남아있다고 추정되는 간도지역을 수색한 뒤에


해산하여 몽골계들은 내몽골 일대의 그들 고향으로... 소수의 만주족 팔기군들은 심양으로 복귀하여


청태종에게 복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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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좋아 20-12-19 10:35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유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중국 변경으로 이주시켜서, 전쟁에 총알받이로 쓰였을것 같아서, 가슴아프네요..
     
촐라롱콘 20-12-19 10:40
   
특히 발해멸망이후 거란으로 끌려간 발해유민들과 고려에 귀순한 발해유민들의 후손들이

고려-거란 전쟁에서 고려와 거란 양쪽 모두의 최선봉부대 또는 최일선 방어를 담당했으니

발해인들 입장에서는 본의아니게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이한 셈입니다.....!!!
          
여름좋아 20-12-19 10:44
   
안타깝네요.. 세계사유투브를 듣다보니,그런경우가 많더라구요..
               
네팔렘 20-12-19 11:25
   
도올선생 강의를 유투브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일본군을 상대로 함께 싸웠던 독립군들도
6.25당시 남북으로 갈리여서 서로 총 뿌리를 겨누고 싸워다는 처참한 사실이 있었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