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선달 이지항이라는 사람이 일행과 함께 표류해서 홋카이도 북방의 제도에 살던 아이누를 만났던 기록이 있다. 표주록이라는 책을 남겼는데 이지항이 1696년(숙종 22) 4월 13일에 강원도 원주에 갈 목적으로 부산을 출발했다가 표류하여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에 도착,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1697년 3월 5일까지의 여정을 다룬 기록이다.
표류한 후 일본에서 겪은 약 11개월간의 경험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지은 몇 편의 시가 함께 동봉되어 있다.
여정은 크게 홋카이도 서해안에 처음 표류하여 그 지역의 아이누인들에게 물과 음식을 얻어먹다가 마쓰마에(松前)→에도(江戸)→오사카(大阪)→대마도→부산으로 이동하였다.
17세기 후반 당시 북해도 아이누인과 기타 일본 지역의 정치·문화·경제·군사 등의 내용을 외국인의 입장에서 상세히 수록하였기 때문에 현대 일본과 한국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정유재란 때 포로가 되어 일본에 갔다가 안남국(베트남)을 세 번이나 왕래한 조완벽이라는 사람에 대한 언급 등 일본 지역에서 활동한 한국인에 대한 내용도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높다.
일제강점기 당시, 홋카이도의 광산 등지로 강제노역에 끌려간 한국인들 중 일부가 광산에서 탈출하여 도망치다 아이누인 마을로 숨어들고, 현지 여성과의 사이에서 혼혈아를 낳은 사례가 약간 있다고 한다. 자신을 이런 이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2ch에 스레를 세운 적이 있다. 또한 글쓴이에 따르면 자신이 아는 모든 한국-아이누 혼혈인들은 자신들을 그냥 아이누 출신이라고 말한다고 밝혀 재일 한국인들과 아이누들 간의 상대적 대우 차이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근데 일본은 우리처럼 생각하면 안되는게 원령공주에도 나오지만 에미시라는 일족과 야마토정부와의 싸움은 고대부터 수백년동안 이루어졌습니다. 이 에미시라는 종족이 아이누라는 설도 있고 아이누가 아닌 설도 있죠.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체성도 지역별로 보면 홋카이도가 아니더라도 단시일에 만들어진게 아닙니다. 차이라면 홋카이도는 일본의 4대섬중 가장 늦게 개척이되고 원래 살던 사람들을 몰아냈거나 학살했다는 차이일뿐. 특히 간토지방 동쪽의 도호쿠 지역에 대한 개척은 홋카이도를 개척하는 과정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마치 중세독일이 동방식민운동으로 엘베강 동쪽과 발트해 지역에 대한 이민과 정복 그리고 개종을 동시에 한것처럼.이 과정도 사실상 학살과정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독일의 중세초중기까지의 영토는 지금의 엘베강 서쪽지역까지 였습니다. 그래서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영토문제를 정리하면서 엘베강 동쪽지역도 독일영토에서 제외하자고 나왔을 정도죠. 참고로 오늘날 독일을 만든 프로이센의 프로이센족은 실제로는 독일민족이 아니라 발트족으로 이 동방식민운동동안 튜튼기사단에게 정복당한 민족입니다. 그 과정도 거의 학살의 과정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