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지금처럼 극우화되기 이전인 2000년대 초반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엔 일본에도 먹고 살 길은 관광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죠.
지금은 일본에 혼자 가서 한글만 보고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글 안내 정보가 충실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일본은 외국인이 접근하기에 불가능할 정도로 외국어 안내에 인색한 나라였죠.
그것을 통째로 바꾼 사람이 여행박사*의 신창연 대표죠. (지금은 불신임 투표로 대표이사직을 다른 사람이 하고 있음.) 이 양반이 일본의 지방 관광청들을 움직인 겁니다. 일본도 지방 자치가 굉장히 발달해서 ... 돈 버는 일이라면 당시엔 여야를 가리지 않고 협조를 했죠. 처음엔 쿠슈 지역에만 적용되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컸던 겁니다. 그리해서 전국적으로 확대가 되게 된 거죠.
(여기에 재미를 본 일본 관광업계는 무비자를 위해 치열한 로비를 벌였습니다. 일본 관광청 담당 과장에게 직접 들었으니 ... 틀림없겠죠.)
우리나라도 지하철에 일본어와 중국어 안내가 추가 된 것이 채 1~2년이 안 되었습니다. 게다가 버스와 철도는 여전히 요원하죠. 이게 생각보다 관광객들을 끌어들여서 외화를 쓰게 하는 효과가 막대합니다. 이미 쿠슈에서도 검증된 사례죠.
우리나라 사람이면 일본에 대해 거부감을 가집니다. 따라서 일본어에 거부감을 가질 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그들의 주머니에서 외화를 뽑아낸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필요한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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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 :
개인적으로는 근현대사 역사학회에서는 장학금을 조성해서라도 일본과 미국에 유학을 보내 일본어/영어를 어려움없이 쓸 수 있는 인재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근현대사를 문헌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호사카 유지 교수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쓸만한 근현대사 자료들은 모두 일본어 아니면 영어니까요.(그래서 독도 연구의 가장 권위자가 오사카 유지 교수가 될 수 밖에 없는거죠.)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역사학회가 국정교과서 사태와 같은 수모를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 선생이 역사책을 쓰는 웃기는 짓을 당했던거죠.
* 2000년대 초반 여행박사는 일본만 하는 전문여행사였음. (글쓴이와 신창연 대표는 면식은 있지만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