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4&oid=055&aid=0000744724
8) WTO에서 한국이 유리할까?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 일본의 수출 규제를 추가 의제로 긴급 상정하고 규제 철회를 요청했습니다. 국내 언론들은 WTO가 우리의 손을 들어줄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물론 무조건 WTO 절차는 밟아야 합니다.)
일본 정부는 "유럽도 전략물자 무역에 있어 일본을 포함한 8개 국가에게만 포괄허가 우대를 해주고 있고 한국은 지금도 빠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WTO협정 내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21조에 따르면 '안전보장상' 필요하다고 인정된 무역 제한은 예외조치가 인정됩니다. 후쿠나가 유카 와세다대학 교수는 아사히신문 칼럼에서 "이번 조치는 WTO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 안전보장상 예외조치는 당사국의 재량을 대단히 폭넓게 인정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외무성 출신의 오가타 린다로 전 일본 중의원은 "지난 4월 WTO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과거 러시아가 안보상 이유를 들어 우크라이나에서 카자흐스탄 등으로 가는 화물 차량에 위성추적장치를 반드시 달도록 규제를 했다가 WTO 제소를 당했다. WTO는 지난 4월 러시아 측 손을 들어줬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오가타 전 의원은 "이는 우크라이나가 전쟁 상황이라는 점 등의 근거가 있었던 것으로 현재 한일 상황과는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한국도 국제통상법 연구를 깊이 하는 나라라며 WTO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쉽게 낙관도 비관도 해선 안 됩니다.
10)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의미
불매운동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일본이 괘씸하니 일본 제품을 사지 맙시다"라는 말은 반대로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 제품을 안 사도 좋아요"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다고 불매운동이 전혀 의미가 없는 건 아닙니다. 1975년 미국 제널드 포드 대통령은 히로히토 일왕을 미국으로 초대했습니다.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은 16만 명이 숨지고, 24만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당연히 반대 데모가 있었습니다. 포드 대통령과 히로히토 일왕을 함께 암살하려던 사람이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일부 미 국민들의 격앙된 반응 속에서도 미국 행정부는 일왕을 초대했습니다. 한때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으로 처벌하려고 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최고의 예우를 해줬습니다. 국민 감정을 넘어 냉철하게 미일 관계의 미래와 국익을 생각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런 미일 외교사를 생각할 때 이번 한일 갈등에서 미국이 한국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예측은 너무 안이하다고 생각합니다.)
불매운동이 우리 정부의 외교전에 힘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마저 같은 분위기에 휩쓸리면 안 됩니다. 정부는 '외교'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참에 새로운 10년, 20년의 한일 관계를 설계해야 합니다.
11) 여론조사의 나라, 일본
개인적으론 불매운동보다 일본 국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여론조사의 나라입니다. 내각제라서 총선에서 승리한 여당 총재가 곧바로 총리에 지명됩니다. 여론이 좋지 않으면 총리는 당 지지율이 더 떨어져 선거에 불리해지지 않도록 즉각 국회를 해산합니다. 그리고 당 지지율이 그나마 유리할 때 다시 선거를 치릅니다. 그래서 자민당은 끊임없이 자체 여론조사를 합니다.
1948-98년 사이 총선 직전 내각 지지율의 변화(NHK기준)입니다. 2000년대까지 통계기간을 늘려보면 총리가 교체되는 내각 지지율의 마지노선은 28.5%입니다. 이번 보복조치로 내각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인다면 아베 내각도 큰 부담을 느낄 겁니다.
우리 국민들이 일본 여론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일본 내 지각있는 국민들과 지식인들이 나서줘야 합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일본의 보통 시민들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보복조치 지나치다. 아베 총리 안 되겠네" 그런데, 국내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여론을 그 반대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부에서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금지 확대를 거론합니다. 절대 안 됩니다. 후쿠시마 현민들은 아무 죄도 없이 지진해일과 원전 파괴라는 엄청난 재난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동북 지역민들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감정은 안타까움 그 자체입니다. 국가간 분쟁으로 그 사람들에게 추가적 피해를 입히는 일은 아베 내각이 아닌 국민들을 적으로 돌리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