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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이 국익을 최우선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적이건 동지건 영원하지 않다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다른 점도 많다. 지금은 제국주의의 시대가 아니다. 여전히 힘의 논리가 지배하긴 하지만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제평화를 지킬 목적의 국제기구도 존재한다. 당시는 한반도가 단일체였다. 분단이 되고 동족상잔까지 치른 현재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더 많고 그만큼 우리가 운신하기 어렵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틈타 정치권에서 삐져나오는 ‘친일파’나 ‘친일’ 딱지 붙이기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친일파의 실체가 과연 지금도 존재하는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해방둥이들이 벌써 74세가 됐다. 광복 당시 20세 성인이었던 이는 94세다. 평균수명으로 볼 때 생존해 있는 이들이 거의 없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이용해 치부하고 권력을 향유했던 인물들은 역사에서 퇴장한 지 오래다.
더구나 일본의 미흡한 반성을 대하면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 느끼는 데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진보-보수, 여야 구분도 없다. 일제 강점사에 같이 통곡하고, 일본의 우경화가 너도나도 눈엣가시 같다. 한·일전이 열리면 축구건 배구건 농구건 목이 터져라 응원한다. 일본에 관한 대처법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갈등과 협력 사이 목표 수위도 차이가 난다. 실용주의적 접근도 있고, 명분을 보다 중시하는 주장도 있다. 누가 더 옳다고 하기 어렵다. 상황에 따라 정답이 바뀔 수 있다. 그런데도 ‘친미’나 ‘친중’처럼 단순히 외교적 경향성을 의미하지 않고 ‘친북’처럼 강한 부정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친일’ 낙인을 찍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베트남을 보면 놀랍다. 1955년 시작된 남북 내전이 1964년부터 미군 등 외국군이 참전하는 국제전으로 비화됐다. 197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20년간 베트남 인구만 해도 96만~381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베트남은 1995년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처럼 해방 후 20년 만이었다. 양국 정상이 상대국을 방문하고, 경제는 물론 군사 부문의 교류도 하고 있다. 1964년부터 8년여 참전했던 한국과도 1992년 외교관계를 회복했다. 베트남인들도 과거의 아픔과 분노를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함몰되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위해 1986년부터 ‘도이머이(개혁·개방정책)’를 선택했다. 전후 초토화됐던 베트남은 2017년 국내총생산이 세계 46위로 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