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독도로까지 불똥이 튀면서 연일 가열되는 상황이다. 양국 사이 대화는 끊겨 있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일본은 왜 그럴까. 걱정과 함께 궁금증도 커지는 상황이다. 해법은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마땅하다. 일본 정부나 미디어를 통해 재해석되지 않은 진짜 일본인의 속내. 그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두 명의 청년 기자가 가벼운 백팩을 메고 일본에 갔다. 국민일보는 일본에 터를 잡은 한국인부터 한국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혹은 무관심한 일본인들을 두루 만나 일본에 대해, 또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에 대해 듣고 ‘백팩리포트’를 연재한다.
“일본 정부 장학금을 받고 있어 입장이 난처해요.” 일본 대학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대부분 이런 말로 거절했다. 수차례 거절 끝에 대학원생을 한 명 만날 수 있었다. 왜 인터뷰가 어려운지 유학생들의 입장을 설명해주겠다는 취지였다. 도쿄대 대학원생 A씨(25)를 지난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A씨에 따르면 한국 유학생들은 격해지는 한일 갈등으로 피해를 입을까 요즘 걱정이 크다. 한일 갈등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에는 두 나라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가도 학교 안에서만은 보호된다고 느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고 했다.
A씨는 대학원에 입학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A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은 일본 문부과학성 국비장학생이다. 이 장학제도는 일본 정부가 각국의 유학생을 선발해 학비·연구비·생활비를 지원해 일본 명문 국립대에서 교육을 받게 하는 제도다. A씨는 “2년마다 연장을 받아야 하는데 연장이 안 되면 쫓겨나는 상황이라 유학생들이 한일관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걸 조금씩 사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 유학생들은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A씨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공부를 하려고 온 건데 일본이 만약 지원을 끊겠다고 감정적으로 나오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니까 그게 무섭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에게 일본의 한국인 비자 발급 제한은 실제로 닥칠 수 있는 일이다. A씨는 “말만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사례도 들었다”며 “최근 8년째 일본 내 기업에서 멀쩡하게 일하다가 이번에 갑자기 비자가 취소됐다는 한국인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 사람이 이번 사태와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A씨는 “일상에서 일본인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인터넷에는 혐한 분위기가 심해 혼란스럽다”고 전했다. “일본 뉴스와 댓글을 보면 ‘이참에 한일 관계를 끊었다가 리셋하자’는 말이 많다”며 “그런 걸 보면 ‘왜 현실에선 아무도 얘기하지 않을까.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하는 건가. 일본 사람들의 속내는 이런 건가’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과 ‘우리 어디 가서 테러 당하는 거 아니냐’고 농담 삼아 얘기하기도 한다”며 “일본인들은 문제가 보이면 해결하기보다 눈앞에서 치우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인 대학원생들과는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거리에서 반한(反韓) 분위기를 느낄 때도 있다. 그는 “요즘 들어 지하철에서 (저랑 한국인 무리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심해진 것 같다”며 “반한 감정을 모르고 일본에 온 건 아니라 ‘내 할 일만 하다가 돌아가자’는 생각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국인 유학생들도 일본에서 나름대로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A씨는 “한국에서 그렇게 열심히 한다는데 여기에서 일본 물건을 사는 게 미안해서 우리들(한국인 대학원생들)끼리 ‘전범 기업 제품은 사지 말자’고 말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며 “그럼에도 일본이 생활터전이라 어쩔 수는 없는 부분도 많다. 우리가 어디까지 동참해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불매운동이 확산된 만큼 이번에는 일본이 잘못했다고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밀고 나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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