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명 처럼 사대의 대상급도 아니었는걸요. 그런 세력이 있을 뿐이죠. 사대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현대에는 없지만 굳이 그 대상을 얘기하자면야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이었죠. 일본은 그 옆에 딸려있는 다소 우리보다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주변국 같은 개념이었던 정도로 봅니다. 그래서 전 부족 통일을 완성하기 이전의 청 입장에서 본 조선이나, 아니면 그당 일본이 보는 조선이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동북아 만년 2위 나라...였는데 어느덧 자기들이 떠 쎄진거죠. 적어도 군사력만 놓고 볼때는요. 토왜를 대세로 볼 수도 없고, 또 토왜가 아무리 빨아준다고 해도 일본이 명 같은 지위를 갖지는 못했죠.
한가지 임진왜란 당시에 대한 군량미 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명나라가 군량미가 모자라 조선 민간인들을 많이 약탈했죠
조선의 민간인들은 왜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에 비유했습니다
그 정도로 명군의 약턀이 심했던것은 갑작스런 참전 결정 때문이기도 했고
보급선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역사를 들여다 볼 때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오늘날의 눈높이에서 과거를 바라보는거죠
조선이나 명나라나 오늘날 같은 시스템이나 유통망을 가진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참전이 결정되자 이여송등은 군량미를 사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도매 시장이 있던 것도 아니고 비축미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모자라는 것은 현지조달한다고 은자를 가지고 왓죠
명나라는 은본위제 국가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명군이 철수할 때
조선에 요구한것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은본위제 실시라는 겁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큰 시장이나 유통시스템이 없다 거의 물물교환수준이다
우리(명)가 민간을 약탈한 이유는 맹목적인 물질욕에 의한 약턀이 아니라
은을 가지고 있어도 쌀을 살 수 없었던 조선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일제가 조선은 화폐 유통도 없던 나라라고 날조하는 사유가 되기도 합니다
(쌀은 자급자족도가 높았고 조선은 명군참전에 의한 갑잡스런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큰 시장이 없었던게 진짜 이유죠)
그런데 그런 이유만 있었던건 아니죠
태안쪽 뱃길을 통해 명의 군량미가 들어왔는데 태반이 모래가 섞여 있었고
거기다가 장마철이라 쌀이 물에 불어 썪어가자 조선측 관리가 인수를거부합니다
그러자 명측 인도자가 조선 인수자의 곤장을 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