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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20 10:13
6.25전쟁초기 백선엽에 관한 김홍일장군의 증언
 글쓴이 : 성길사한
조회 : 1,236  

오성장군 김홍일과 백선엽
paulsado추천 0 조회 848 리플 7글번호 202006080043573166 | 2020-06-08 14:14 IP 211.199.*.2

 김홍일 장군은 수도방어작전을 성공해서 우리 한국에 유엔군이 들어올 수 있는 시간을 버신 분이죠
그런데, 더 유명한 것은 별이 다섯개라는 것입니다.( 장+침대도 아니신데요.)
중국군에서 2개 한국군에서 3개로 도합 별이 다섯개죠.
윤봉길의 폭탄을 만드신 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김홍일 장군이 625 당시 그래도 인정한 지휘관중 하나가 백선엽입니다.
나름 노장이 보더라도 능력?은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백선엽에게 더 실망하기도 했고요.

625가 발발한 후 김홍일 장군이 직접 전선으로 달려가서 정찰을 합니다.
보니가 모두 오합지졸 다 당하고 있더라는....
그런데, 유독 백선엽이 지휘하는 1사단만 선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적의 전력과 병력을 생각하면 엄청난 전과이죠.

물론, 당시 1사단이 한국 최고의 전력화된 부대이기는 했습니다.
일단, 차량이 공급된 부대였으니까요.
지금의 기준으로 한다면 기계화보병사단 느낌이었습니다.

문제는 백선엽 장군이 인접 부대의 상황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는
진짜 상황과 달랐으니까요.

국방부의 지시는 정말 황당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요.
왜 다른 사단들은 다 반격에 성공해서 북진하고 있는데
1사단만 거기서 뜸을 들이고 있냐는 황당한 질책이었죠.

이 상황에서 노장의 면모가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혼비백산의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판단을 김홍일 장군은 해내더군요.
김홍일 장군이 백선엽대령(제 기억으로는 아직 별 달기전으로 압니다.)에게
철수를 정중하게 권유합니다.

하지만, 백선엽은 위의 명령을 따라야한다는 이유로 정중히 김홍일 장군의 권유를 거절합니다.
(또한 백선엽과 함께 있었던 미고문관도 김홍일장군과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김홍일 장군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당시 1사단이 그 병력과 전력을 고스란히 가지고 철수할 수 있었다면 그 후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김홍일 장군은 그래도 백선엽을 높이 사더군요.
(그래도 판단을 실수한 것에 대하여는 엄청난 실망)
또한, 그의 부하들도요.1사단이 철수할 때 모두 다 총을 들고 온 것은 외국장군들도 놀랐다고 합니다.

강을 건너면서 총을 정말 애인처럼 소중하게 들고 넘어오는 모습에 감동을 했다는....
철수하면서도 군인으로서의 본분은 다했다는 것이죠.


전쟁발발일의 1사단 상황
paulsado추천 2 조회 994 리플 5글번호 202007130045024107 | 2020-07-13 15:23 IP 211.199.*.2

백선엽이 술 먹고 사단 지휘를 하지 않아서1사단이 풍지박산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글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씁니다. 제가 전사를 통해서 확인했던 내용을 요약해서 씁니다.
(소위때 취미생활이 도서관에서 전사 읽기다보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6.25 발발한 날 우리는 제대로 준비가 되 있지 않았습니다.그래서 모든 전선에서 다 밀리게 되지요.

그런데, 유독 잘 싸운 두 부대가 있는데 바로 서부전선에서는 1사단이고, 동부전선에서는 6사단입니다.예전에 어떤 분이 1사단과 6사단을 비교하기에 이런 댓글을 달았는데요.

저는 1사단에 표를 던지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래도 1사단이 잘 싸운 면이 있지만 원래 1사단은 공부 잘하는 애가 좋은 성적 나온 것이고 6사단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애가 전교 1등한 느낌이라고요.원래 1사단은 우리 나라 최고의 사단이었습니다.그나마 차량으로 병력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부대였습니다.기동성이 뛰어난 부대죠.

왜냐하면, 당시 개성을 중심으로 북한과 잦은 충돌이 있었고 위치도 한반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입니다.하여튼, 전쟁 발발일 김홍일 장군이 전선 상황을 알아보기 위하여 노구의 몸을 이끌고 전선 시찰을 갑니다.

상황은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풍지박산 되서 전 전선이 일시에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그런데, 당시 백선엽(제 기억으로는 대령)이 지휘하고 있는 1사단에 가보니 놀랍게도 현상유지를 하고 있더랍니다.

전차를 비롯한 최신 장비를 갖추고 월등하게 많은 병력을 갖춘 적에 대항하여 밀리지 않고 싸우고 있었던 것이죠.순간 김홍일은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요.당시 김홍일장군의 회고록을 보면 백선엽이 잘 싸우고 있었지만 경험의 부족함을 조금 아쉬어합니다.

그 부분이 철수 결정입니다.김홍일 장군은 바로 철수할 것을 조언하죠.그러나, 백선엽은 김홍일 장군의 조언을 정중하게 거절합니다.(김홍일 장군도 백선엽의 결정이 이해는 간다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아쉽다고요.)

왜냐하면, 첫 번째, 이런 전쟁은 어떤 군인도 경험하지 못했으니까요.유일하게 자기(김홍일)만 빼고요.두 번째는 자기(김홍일)보다 더 권위 있는 조언과 지시는 그 반대편에 있었다는 것입니다.김홍일 장군은 당시 백선엽이 처한 정보가 세가지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공식 지휘계통으로 내려오는 내용입니다.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왜 1사단은 현상유지를 하고 있느냐? 다른 부대들은 반격을 하고 오히려 북진하고 있는데....이런 말도 안되는 명령이 내려오고 있었다는...

다음은 미군사고문단의 자문이었습니다.미군사고문단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전면적 남침을 인정 못하겠다는 것입니다.솔직히 말하면 미군사고문단도 당시 실력이 떨어지는 듯....

다음 정보는 바로 김홍일 장군의 정보였는데요.문제는 이것이 진짜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백선엽이 큰 실수를 하죠.만약, 백선엽을 욕할려면 이 부분인데...김홍일조차도 아쉽다고 말하지 비난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김홍일은 당시 한 물 간 선배 장군이었기 때문입니다.그래도 조언을 들었다면 달랐을텐데....

하지만, 한쪽은 명령이고 또 한쪽은 가장 공신력 있는 미군의 정보였습니다.이에 반해서 김홍일은 한 물간 선배의 조언이었고요. ㅠㅠ 사실, 김홍일 장군은 이때 백선엽 장군의 결정을 계속 안타까워합니다.더불어, 당시 백선엽에게 말도 안되는 명령을 계속 내렸던 상부를 대고 욕하고요.하여튼, 김홍일 장군은 백선엽이 누구보다도 잘 싸웠다고 평가합니다.더불어, 백선엽의 부하들은 더 칭찬을 했습니다.

지금의 행주산성 근처쪽으로 1사단 병력이 도하를 해 왔다고 합니다.그런데, 그 병사들이 모두 다 총을 가지고 왔더랍니다.김홍일과 함께 있었던 미군도 "서프라이즈"라고 하더랍니다.김홍일은 눈물을 흘리고요.

김홍일이 아는 한 어떤 나라의 군대도 저렇게 밀리는 상황에서 총을 지키며 끝까지 군인의 신분을 지키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죠.그러면서, 1사단 병력들의 충성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합니다.

물론, 그 1사단 병력들이 한강 방어작전의 큰 축을 담당했고요.그러면서도 김홍일 장군은 계속 아쉬어합니다.(이 짧은 글에 제가 아쉬어했다는 글을 많이 썼는데요.정말 김홍일 장군의 회고록이 그렇습니다. 1사단에 대한 아쉬움을 시간 날때마다 말씀하십니다.

 1사단이 조금만 더 빨리 철수 해서 그 전력을 고스란히 한강방어작전에 썼다면 엄청난 역사를 일으켰을 것이라고 김홍일 장군은 보았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백선엽을 권총 들도 앞장 서서 달렸던 유학산에서의 모습만 기억하는데요.전쟁 발발일의 그도 누구보다 잘 싸웠던 군인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백선엽 장군에 대한 조작글들을 보며
paulsado추천 1 조회 395 리플 2글번호 202007130045028826 | 2020-07-13 17:55 IP 211.199.*.2
오늘 백선엽 이야기가 나와서 1사단 당시 상황을 조금 글로 썼는데요.쓰고 나서 검색해보니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저는 김종오 장군의 팬입니다. 왜냐하면, 장교후보생때 김종오장군 회고록을 읽었기에... 첫사랑 비슷하게요.
(똑같은 이유로 월남전은 서경석 장군을 좋아하죠. 흔히 말하는 밀덕인데...저는 무기등보다는 전사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

하지만, 김종오 장군의 업적을 백선엽 장군을 까기 위해서 쓰는 것에 조금은 화가 나네요.백선엽 장군을 까는 주 내용은 전쟁 초기의 지휘인데요.

6사단과 달리 1사단은 졸렬한 싸움을 한 것으로 묘사하고 술에 취해서 백선엽이 사단 지휘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있지도 않은 사실들을 진짜인 것처럼 썼네요.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를 모두 노골적인 가짜 이야기들입니다.   

일단, 장군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 입장에서 틀려질 수 있으니 그것은중립으로 보고 당시 전사를 보면 해답이 나옵니다.전사에서 개인적 의견이 개입될 수 없는 각 요일별 전투에 대한 상황들을 보시면 됩니다.제발 전사를 조금이라도 읽고서 써주시기 바랍니다.그냥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말 믿지 마시고요.전사를 읽으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백선엽과 1사단은 눈물 겹도록 잘 싸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김홍일 회고록도 꼭 읽어보십시오.김홍일 장군은 위험을 무릎쓰고 직접 백선엽이 지휘하는 사단지휘부까지 찾아가 목격한 유일한 사람입니다.백선엽의 최초 지휘에 대하여 어쩌면 가장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분이 바로 김홍일 장군입니다.또한, 당시 노땅이라 은근히 왕따 당하기는 했어도 실전감각은 최고였던 장군이셨고요.그 김홍일 장군이 백선엽의 625발발 직후의 지휘에 대하여는 최고의 평가를 했습니다.

요전에도 언급했듯이 백선엽의 가장 큰 실수는국방부의 명령을 따른 것이고 군사고문단의 자문을 들은 것이라고 김홍일은 이야기합니다.
1사단은 이기고 있지만 이렇게 있으면 결국은 포위되니(우리는 현 전선 유지하는데 아군이 철수하면 자연스럽게 포위되죠. 그리고, 1사단이 정말 그렇게 되었고요.) 철수하라는 김홍일 장군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죠.(하지만, 그랬다면 명령 불복종으로 처벌 받았겠죠.)

p.s. 김홍일 장군 회고록은 70년대 나와서 지금은 중고로 5만원 이상 주어야 하더군요.

혹 보실 분은 함석헌 선생님의 씨알의 소리를 도서관에서 찾으면 거기에 연재된 글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한국축구를 사랑하는 중년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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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트럼프 20-07-20 10:20
   
엠팍 베충이 글만 골라서 퍼왔네
성길사한 20-07-20 10:22
   
6.25는 맥아더뺴곤 나오지도 않음 우리나라 장군들 이름은...
초창기 지연전으로 시간을 번 김홍일, 춘천에서 북한군을 요격한 김종오, 다부동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백선엽, 인천상륙작전에 함께한 손원일, 흥남철수작전을 이끌어낸 김백일, 강원도 용문산에서 1개 사단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을 격파한 장도영(파로호 지명이 이때 생김) 등등 많은데 말이죠. 국사책은 전면적으로 한번 갈아엎을 필요가 있음.
이름귀찮아 20-07-20 10:38
   
부러운 인생 기회주의자로 본인 생각만 하고 살다가 줄 잘잡아서 출세하고

떵떵거리고 살다가 후손들 대대손손 먹고사는데 걱정없는 재산 물려주고 죽고나니

이렇게 빨아주는 사람도 있고 부러운 인생임
기억지기 20-07-20 13:24
   
개전초기 김홍일 장군이 백선엽에게 철수를 요청한건 의정부에서 입니다

실제로 개전초기 밀리면서 일찌감치 방어선을 의정부에 마련합니다 백선엽 장군도 전날 파티 참석후

6월 25일 낮에 의정부 에서 1사단과 합류 합니다
기억지기 20-07-20 13:30
   
백선엽장군의 1사단이 낙동강 전선에서 전훈은 인정할만 하겠지만 개전초기 북진했다는 얼척없는 소린 좀 안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