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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5-06 11:53
한국이 힘을 받고 있는 이유가
 글쓴이 : 로디우딩
조회 : 6,051  


  선비정신 때문 아닐까요??
미국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고 보는데 캡틴 아메리카라고 ㅋ 
선비정신이랑 쌀국의 캡틴 아메리카도 따지고보면 피장파장의 같은노선을 타는 문화라고 봅니다 ㅋ

이게 무서운게 불의를 보면 어떻게든 뜯어고치는게 정의다 라는 개념이 사회정화에 정말 무서운 힘을 받고 결국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보거든요?

  이게 인류의 공통된 무의식적 욕구같은데 그것을 정신으로 계승한 국가는 많지 않다고 보고요.  
중국에도 과거 천안문 사태가 터졌는데 그때 성공했다면 지금 중국 진짜 무서워 졌을거라고 봅니다.  다행이도? 공산정권이 중국 발목을 잡고 있는 형태이고.  공산당 생존이 최우선이라(분명 분열에 대한 공포도 있을걸로 보고) 민주화되면 중국은 필연적으로 쪼개질 운명이죠.  100%입니다.  누가뭐래도.  

  일본에는 과정보다 승리를 우선으로 두는 문화가 뿌리 박혀 있습니다.  사무라이가 이런것인데 그래서 전통적으로 정의롭지 않다라고 하는 개념이 희박하죠.  과정이야 어떻든 승자가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정신때문에.  그게 정치력으로 일본의 쇄락시킨다고 보고 있고.  자민당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구 선진국도 보면은 과정과 정의에 집착하는 정신이 있다고 봅니다.  프랑스 독일이 대표적이라고 봅니다.  선비정신이 과정과 결과를 다 중요시하는 문화라고 봅니다.  너무 집착할때도 있죠 특히 과정에 ㄷㄷ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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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bat 19-05-06 11:55
   
선비는 무슨.. 그냥 민주주의지
우리는 나쁜건 나쁘다고 그리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주 평범한 국가입니다
     
로디우딩 19-05-06 11:56
   
민주주의랑 선비정신은 아주~ 다르다고 봅니다
          
Wombat 19-05-06 11:59
   
조선시대 선비정신은 그냥 북한의 주체사상 같다고 봅니다
뭐든지 어떤사상이 통치이념으로 바뀌면 본정신은 퇴색하는거죠
               
로디우딩 19-05-06 12:06
   
선비정신은 선에 대한 갈망이라고 봅니다. 
주체사상은 독재 정당화 하기 위한 사상이고
무엇이든 한쪽으로 매몰되면 안좋긴한데
주체사상 대입하는건 비약이죠
                    
Wombat 19-05-06 12:10
   
마치 먹사들이 천국 가야한다는 매일 회계하고 헌금하라는 같은주장엔 동의 할수가 없군요
개독먹사가 없었으면 그주장이 신빙성 있지만
                         
로디우딩 19-05-06 12:10
   
; 개독먹사는 극히 일부죠.  님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일부를 전체로 확대하는 수능에 나온 일반화의 오류 ㄷㄷ
70-80년대 한국 가난할때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엄청 도움 많이 줬습니다
제주 흑돼지 기독교 선교사 없었음 먹지도 못해요
                         
Wombat 19-05-06 12:14
   
말씀드렸듯이 주체사상도 좋은취지의 사상입니다
불교교리도 내세하고 아무 상관없는 완전한 이론이구요
하지만 그것들이 보여준 결과물은 전혀 아니올시다
                         
로디우딩 19-05-06 12:17
   
주체사상은 좋은 사상이 아닙니다.  그렇게 포장되게 만들었을뿐
결국은 김일성 신성화 하기 위한 재료에요-.- 그렇게 주체사상 속내용 파악이 안되십니까?;
자꾸 님은 님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겉가지로 물타기 하는데
선비정신에 대해서만 말하면 좋겠네요 ㅋ
                         
Wombat 19-05-06 12:26
   
절대로 굳이 계승할 가치를 못느끼는 사상을 붙들고 계시는거 보니깐 북한에 태어나셨으면 충성당원 감이시네요
전 선비사상도 참고는 합니다 하지만 뭐든지 소수의 집권세력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뭐 그들이 신들이라도 따라가고픈 생각 전혀 없고요
                         
로디우딩 19-05-06 12:28
   
알겠습니다
                    
크로나카 19-05-07 11:20
   
유교자체가 분배의 불균형을 극혐하는 사상입니다.
이러면 못살거 알고 있어도 분배의 불균형보다는 다같이 못사는게 낮다고 하는 학문
그리고 군주에 대한 예를 강조하니 주체사상이지 뭐임
                    
강운 19-05-07 22:30
   
글쎄요 선비 정신이 꼭 선에 대한 갈망인지는 의문이 드네요
아롱 19-05-06 11:58
   
저랑 비슷한 생각 하고 계시네요.

임금이 뭐라했던..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랑 다르면 상소부터 겁나게 죽어라 올리던 선비정신이
아주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한 중 일을 떠나 전세계적으로 국민전체가 정의에 목말라 있는 국민이 좀처럼 찾기 힘들지 않을까요
눈팅방팅 19-05-06 11:59
   
선비 정신이라는게 10선비라는 단어 때문에 평가절하되긴 했지만 사실 정말 좋은 뜻을 가지고 있죠. 공감되는 글이네요.
     
로디우딩 19-05-06 12:09
   
글쵸. 만약 중국이 천안문 사태 성공시키고 그 정신을 지금 계승해서
그때 천안문 사태 주동자들이 정치 일선에 섯다면 지금 중국은 정말 무서운 국가로
변모했을거라고 봅니다 ㄷㄷ
쉿뜨 19-05-06 12:00
   
선비정신이야 말로 정신승리 표상아니던가요?

유교가 당시 현실정치에 맞는 정치체계인건 인정합니다만, 대외 여건에 맞진 않았죠.

그래서 변화가 없었고 먹혔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죠.
     
CurtisLeMay 19-05-06 12:10
   
전쟁이 일어나 먹히면 그걸로 그냥 끝입니까
이기면 무슨 개짓거리도 용서된다는 원숭이 정신과 흡사하네요
.
평화를 사랑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지낸 우리 민족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갖게 된 건 맞는 말입니다.

광견병에 걸려 미쳐버린 원숭이가 총까지 들고 무방비의 인간을 총쏴서 죽였다고
원숭이가 인간보다 고등생물인가요.

국방과 안보, 군사력을 등한시해 미비했던 부분은 인정하나
전쟁에서 지고, 먹혔다고
우리 민족이 추구해왔던 모든 문화와 풍습이 잘못된 것이고 패배의 역사라는 식의 생각은
지양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민족의 문화와 유물,유적은 같은 시기 토기빚던 기자귀차고 다니며 죽창질하던
원숭이 토인촌과는 확연히 다른 문명국가였습니다.

근대 들어 조선이 국방에 힘쓰고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고 있었다면
우리 문화와 정신이 이리 부정당했을까요
          
쉿뜨 19-05-06 12:18
   
명나라 망하고 200년이 지나도 충과 효를 다했던 그들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면...

무엇을 잘못이라 말할수 있겠습니까?


조선의 문화를 좋아하고 조선 그자체로도 좋았다고 봅니다. 약간의 이분법적 사고가 없는것이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어쩔수 없죠. 그들이 우리 조상인것은 변하지 않고 나는 한국인이기에...


유교라는 허울뿐인 정치체계로 백성들을 종교와 계급제에 가두어 충과 효라는 사상적 토대로 변화의 갈망조차 박살내어 외세를 들이고 거기에서 나라를 팔아먹는데 적극적이었던 작자들도...

당신들이 말하던 선비였습니다.


물론 일부 선비들은 독립운동 하기도 했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겁니다.


나는 침략하는 야만이되라고 한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지켜야되는거 하나는 지켜야 되는거 아니었을까 하는거지요.

그 지켜야 했던것이 나라라는 겁니다. 가족이고요.
               
CurtisLeMay 19-05-06 12:55
   
친일파들까지 거론하며 선비정신이 썩었다는 근거로 묶어내는 식이라면,
한글을 창제하고, 세계최고의 기록서 조선왕조실록을 작성하고 팔만대장경판과 금속활자,
최초의 로켓 신기전 등 당대 최고의 문화와 기술을 선도했던 이들도 선비들임을 아셔야죠.

나라를 팔아먹었던 친일파도 깊게 보면 개인이 개인의 이익에 따라 한 행동일 뿐입니다.
모든 조선의 선비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그 친일파 몇몇때문에 전부 싸잡혀 비난받네요?

그리고 그에 맞서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독립을 위해 힘썼던 분도 선비의 후예입니다.
독립영웅들께선 선비정신에 입각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시고
개인의 이익이 아닌, 대의를 위해 행동했던 분들이시고요.

그런 우리 선조가 이룩했던, 옳고 그름을 판별해 그르다면
목숨으로 저항했던 정신을 그저 미친 원숭이들한테 '먹혔다' 고 폄하하며
전부 부정하는 모습이 맞는 겁니까

당연히 나라는 지켰어야죠. 식민지배 당한 것까지 제가 옹호하는 게 아닙니다.
잘못한 건 잘못한거죠. 근데 잘못한 것만 논하면 되지 전체의 모든 역사와 문화와 정신을
'먹혔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한줄로 평가내린게 문제라는 겁니다.

가정을 한 번 해보세요.
우리가 미친 원숭이 총질에 식민지배 안당하고 조선제국 그대로 이어지면서
후에 자연스럽게 왕정체제를 벗어나 민주주의를 영위하며
지금과 같은 문화대국으로 자리매김 했다면,

과연 '먹혔으니 변명의 여지 없는 정신'이라고, 송두리째 비난받고 부정될 정신이라고
얘기하고 있겠습니까
                    
쉿뜨 19-05-06 13:02
   
그럼 물어보죠. 선비정신 무슨 정신입니까?
                         
CurtisLeMay 19-05-06 13:17
   
선비 정신은 의리와 지조를 중요시한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떳떳한 도리인 의리를 지키고, 그 신념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는 지조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게 간직할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다. 인간이 무절제한 욕망이라는 짐승의 차원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인성론(人性論)을 발전시킨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선비 정신은 시대적 사명감과 책임 의식으로 대변되는 정신이다. 또한 선비 정신은 청렴과 청빈을 우선 가치로 삼으면서 일상 생활에서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은 정신이다. 선비는 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고, 역사 의식에서 시시비비(是是非非)의 춘추(春秋) 정신을 신봉했다. 그들은 ‘청(淸)’ 자를 선호하여 청의(淸議), 청백리(淸白吏), 청요직(淸要職), 청명(淸名), 청류(淸流) 등의 용어를 즐겨 썼다. 이러한 가치관은 지식인 사회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고 사회 저변에 확산되어 일반 백성도 ‘염치 없는 놈’이란 말을 최악의 욕으로 인식했고, 예의와 염치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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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는 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고, 역사 의식에서 시시비비(是是非非)의 춘추(春秋) 정신을 신봉했다.

독립영웅들과 수많은 의병들이 일어나 나라를 지켜온 근간입니다.

오늘 날 우리가 말하는 짐승만도 못한 놈.
인간답게 좀 살아라 하는 것도 선비 정신과 연관이 있습니다.
염치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방사능 원숭이 소굴보세요. 선비 정신 같은 철학 따윈 없으니
염치도 없고 맨 조작과 날조질로 숨기기에 급급하고
그저 무슨 짓을 하든 이기면 그만이란 식이죠

이기기 위해 과정도 무시하고 돈이나 퍼부어 이미지 세탁에 뒷돈 로비질이나 해대니
(로비없인) 진짜로 이길 수 있는 '실체'가 없는 겁니다.

저렇게 짐승같이 살아야겠습니까
그리고 잘 모르겠으면 남에게 묻지말고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세요.
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kuho 19-05-07 14:35
   
선비정신의 좋은 예의 하나로 안동의 독립운동가들을 들 수 있습니다.

[안동독립운동가 1000人의 정신을 배우는 안동독립운동기념관]
독립운동의 성지라 불리는 안동은 많은 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으며 독립운동의 전 노정의 최고위급 지도자들이 대거 일어났습니다. 당시 지배계층과 지식인들이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앞장서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보여준 모습은 당시 안동의 독립운동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형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안동에서 첫 근대 의병항생인 갑오의병이 일어났으며 1905년 을사늑약에 항의한 순절자가 60여 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 불릴 수 있게 된 것이겠지요.
안동독립운동가 1000인을 기리는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안동시 임하면 천천리 옛 협동학교 자리에 위치하며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조사·연구·보존·전시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고 교육하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독립기념관건물 옆으로 ‘나라를 위해 살다간 안동독립운동가1000인’ 을 기리기 위한 석벽이 세워져있습니다. 이 석벽 조형물은 높이 1.8m 길이 58m로, 독립운동사 51년(1894~1945)을 상징하는 51개의 오석에 독립운동유공자 포상을 받은 321명과 미포상자 701명 등 모두 1022명의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출신지역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하 생략)
출처: https://mpva.tistory.com/2168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굿잡스 19-05-07 17:17
   
587년 전 세종이 국민투표를 실시한 까닭은? 

https://blog.naver.com/nec1963/220959591555


세계최초의 민중? 서명운동, 조선시대 만인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17828&sca=&sfl=mb_id%2C1&stx=shrekandy&page=1������


명·왜엔 없는 선비의 공론정치 

같은 유교문화권이지만 성리학의 영향, 특히 공론(公論)의 강도는 조선·명·에도막부가 달랐다. 에도막부에선 5~6명의 로주(대신)가 비밀 회합으로 대소사를 결정했다. 공론은 없었다. 황제의 권한이 강했던 중국에선 공론이 사실상 허락되지 않았다. 조선만 공론을 지켜냈다 

http://news.joins.com/article/14101382��


대한제국  민중의 수준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1898년 열강의 이권 침탈에 대항하여 자주독립의 수호와 자유 민권의 신장을 위해 조직, 개최되었던 민중 대회. 


독립협회는 3월 10일 종로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국민의 힘으로 제정러시아의 침략 정책을 배제하고 자주 독립을 공고히 하기로 하였다. 독립협회가 개최한 3월 10일의 만민공동회에는 서울 시민의 약 17분의 1인 1만여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운집하여 러시아의 침략 정책을 규탄하였다. 

그런데 3월 12일 개최된 만민공동회는 독립협회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서울 남촌(南村)에 거주하는 평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수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만민공동회에서 자발적으로 등단한 연사들은 러시아와 모든 외국의 간섭을 배제, 자주 독립의 기초를 견고히 하자고 연설하였으며, 군중들이 일제히 손뼉을 치며 ‘가(可)’라고 환호하였다. 이것은 민중의 거대한 힘과 시민의 성장을 나타낸 것으로 정부 관료들 뿐만 아니라, 독립협회 회원들과 외국인들에게도 깊은 인상과 놀라움을 주었다. 



러시아측은 두 차례의 만민공동회의 결의와 각국의 반응을 고려하여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주한 러시아 공사에게 회답 전문을 보내어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의 철수를 훈령하였다. 대한제국 정부는 1898년 3월 19일 러시아의 재정 고문과 군사 교관을 정식으로 해고하였고, 뒤이어 한러은행도 철폐되었다.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는 12월 1일 황국협회와의 쟁투 때 죽은 신기료 장수 김덕구(金德九)의 만민장을 성대하게 개최하고 시위행렬을 벌였다. 이것은 만민공동회의 세력을 강화하고 시민의 지지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 만민공동회에는 전국 각지로부터 의연금이 쇄도하고, 평양에서도 만민공동회가 개최되었으며, 독립협회의 지회들이 전국 각지에서 연이어 설립되었다. 



의의와 평가 

비록 만민공동회운동은 실패하였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영향을 남겼다. 첫째, 1898년의 가장 위험한 시기에 한반도까지 진출한 제정러시아를 랴오둥반도로 후퇴시키고 국제 세력 균형을 형성하여 유지시켰다. 이 때 획득된 세력 균형이 1904년 2월 러일전쟁 발발 때까지 만 6년간 지속된 것이었다. 

둘째, 열강의 이권 침탈과 침략 간섭 정책을 물리침으로써 일시적이지만 한국의 자주독립을 굳건히 지키고 열강의 침략을 일단 저지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셋째, 수많은 애국적 인사들을 근대적으로 배양하였다. 이것은 두가지 면에서 특히 그러하였다. 

하나는 만민공동회운동에 참가하였던 청소년들을 그 뒤의 민족 운동의 지도자로 길러낸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주자학과 위정 척사 사상에 젖어 있던 낡은 애국적 인사들을 근대적 자주 민권 자강 사상을 가진 애국적 인사로 전환시킨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은식(朴殷植)·장지연(張志淵)·신채호(申采浩) 등과 같은 애국계몽운동가의 경우이다. 

넷째, 자유민권사상, 즉 민주주의사상을 시민들 사이에 보급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다섯째, 민중들 사이에서 민중에 의한 애국운동의 새로운 형태를 정립하였다. 여섯째, 그뒤의 민중에 의한 독립운동의 원동력을 양성 공급하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3·1운동인데, 우리는 한국근대사에서 그 최초의 원형을 만민공동회의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17594


쨉 강점기 전국적 3.1평화 운동이나 이승만 독재타도, 군부독재에 맞선 근현대 민주화운동등의 저력이 괜히 나온게 아니라고 보군요.

그리고 선비의 어원을 단순히 조선시대로 국한해서 보는데 고려와 이전 삼국 고조선시대로
까지 소급될 수 있는 정신으로 아래 댓글 참조하시길.
담배맛사탕 19-05-06 12:05
   
ㅡ.ㅡ
Attender 19-05-06 12:06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 그리고 재능의 DNA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아, 앞으로도 더 발전할거구요

선비정신은 그 무수하게 수 많은 줄기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죠 ㅎㅎㅎㅎㅎ
돌아온장고 19-05-06 12:13
   
원래 풀먹고 살앗던 민족이라서 남에것에 관심이 없음
퀄리티 19-05-06 12:15
   
선비타령 자꾸 하면
여성부 난리칩니다
모래니 19-05-06 12:19
   
그러면, 북한은 다른 민족인가요?
핫핫 19-05-06 12:19
   
실리를 챙기는게 미래를 위해선 최고라고 봐요.
기사도 정신(허세) 쪽은 겉으로 보면 멋있을 수도 있는데 실속이 없는(발전에는 큰 도움이 안됨)...

오늘의 적이라도 필요하면 손 잡아야 하고 필요하면 끌어들이기도 하는 쪽이
(2차 대전 끝나고 미국 소련이 독일 기술자들 전범으로 처리 안하고 데리고 가서 대우해주고 기술 발전시킴. 최근까지 나치에 협력했다고 재판하고 잡아가는 것과는 딴판으로 신분세탁해 준..)
늘 승리자가 되더라구요.
     
로디우딩 19-05-06 12:22
   
실리도 챙겨야되는 선비정신 문제가 이거 아닐지
대의도 봐야하는데 100개 잘해도 1가지가 조끔이라도 어그러지면 괴로워하는 선비정신 ㄷㄷ
과정까지 순도높게 깨끗해야한다는 집착병에 걸린게 선비정신의 최대 문제 아닐지
오라 19-05-06 12:30
   
사람이라면
정의를 갈망하고
불의에 저항하는게 정상입니다.
특별한게 아니에요.
     
로디우딩 19-05-06 12:39
   
이게 인간이 성악설이냐 성선설이냐 같은 문제인데
선비정신이 뿌리깊게 박혀있고 실천한 나라는 소수에요
뿌리깊게 박혀있는 한국의 선비사상은 특별하다고 봅니다.
중동 아프리카
북미 미국 캐나다 제외
남미

미국 캐나다는 청교도라는 집단도 있죠
동유럽 정의를 갈망해도 한국만큼 선에 집착하는 민족도 없다고 봅니다.
북한은 공산당 독재 주체사상에 병들어 있고
그래서 정신에 뿌리박힌 사상이라는게 정말 무서운 것이구나 생각되네요
mymiky 19-05-06 12:32
   
(의병정신)이란 단어는 왜 없을까요? ㅋㅋ
     
쉿뜨 19-05-06 12:37
   
차라리 이게 훨씬 멋지네요.

선비정신은 진짜... 어떤 나라가 과거 1%귀족이 현대 사회 정신의 근간이라고 자랑하고 다닌답니까;;

무려 공화국이 ㅋㅋㅋ
          
스코티쉬 19-05-06 13:56
   
기사도?? 사무라이 정신??

심지어 사무라이 정신은 기사도 뽕맞고 없던것까지 만들어가며 자랑하고 다닌건데요?
Sulpen 19-05-06 12:59
   
선비정신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진 않지만

유학이 가진 개개인으로써의 선함과 성실성이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유학도 어느 이념과 마찬가지로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성리학으로 극단적으로 기울면서 변화도 없이 오랜기간 정체했었지요.

그러다가 민주주의와 결합되면서 민간에 스며들어있던 정의라고 해야하나 선함이라고 해야하나... 여튼 이런 집단성이 힘을 받는듯합니다. 단순히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넘어 정보화시대로 오면서 정보가 개개인에게까지 모두 전달되는 시기에 와서는 한번 더 힘을 받게 된듯하지요. 정의로움이 가진 장점이 극대화되는 시기처럼 보입니다.
해충퇴치 19-05-06 13:28
   
선비정신이 뭐냐면 나라가 망해서 의병부대 대장이 됐는데 공격일 전날 부모님 돌아가셔서 상 치르러 고향에 돌아가야 하는 정신입니다.

농담아니고요 선비정신은 국가보다 가문, 가문보다 제 한몸을 우선시 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순서가 괜히 그 순서가 아니죠.
     
CurtisLeMay 19-05-06 13:35
   
나라가 망했을때 의병부대 대장이 되는 정신은 쉬운 정신인가요?
그리고 공격일 전날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상 치르러 갔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까 아님 뇌피셜입니까
          
해충퇴치 19-05-06 13:42
   
13도 창의군 총대장 이인영 유명한데 모르시나봐요?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다 배울텐데요...
               
CurtisLeMay 19-05-06 15:47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100% 사실인양 그대로 믿고 살기엔
우리가 너무 많은 정보와 자료들을 접하며 살고 있네요.

이인영의 낙향에 대한 다른 시각(침공 소식을 미리접한 일본군의 기습으로 결사대가 패퇴하자 부친상 핑계대고 낙향)이 분명 존재합니다.

우리가 고등학생이 아니잖습니까
지금 여기서 고등학교 교과서 논하자고 이러고 있는게 아닐텐데요.

1.13도 창의군 총대장이 되기 10년전, 이인영은 이미 거병했었으나
  일본군의 무력차이를 인정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의병 해체 후 고향 문경으로 내려가 운둔생활함
  (이미 전력차이를 실감)
2. 허위의 결사대 300이 서울 침공 선발 진격했으나 이때 이미 정보를 접한 일본군은
  수천 명의 보병과 기마병으로 망우리 일대 군사요충지를 선점하고 기다리고 있었음.
3.결사대원이 앞장서 필사적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열악한 화승총으로는
  압도적 화력의 일본군을 못당해냄. 후퇴명령
4.설상가상으로 각도 의병진들이 기일 내 도착하지 않아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됨.

이런 상황에서 유교적 이유로 부친상'만'을 챙기겠다고 낙향했다는 게
절대적인 사실인양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게 우리 성인들의 자세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인영이 부모상 챙기려고 했었든, 그걸 핑계로 살고자 도망갔든(이인영 이후로 총대장을 맡은 허위는 처형됨)어찌됐든, 그건 우리가 이인영이 아니고 왈가왈부의 가능성이 크니
이정도로 하고 팩트만 얘기하자면,

허위가 이끄는 선발 결사대 300이 먼저 침공(공격)을 했습니다. 그 후 미리 정보 접한 일본군이 기다리고 있었고 위에 열거한 일들이 벌어진거지요.
그래서 퇴치님이 얘기한 '공격일 전날 부모상 때문에만 고향갔다'는 말은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이미 결사대로 한 번 간봤다가 패퇴당하자 낙향(부친상이든 뭐든)했다가 팩틉니다.
이상한 소리 퍼트리고 다니지 마세요.
                    
해충퇴치 19-05-06 18:35
   
님 주장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는데 만약에 사실이면 선비이기 이전에 그냥 인간쓰레기인데요?

총대장이 간봤다가 안될것 같으니 부모님 상 핑계대고 혼자 튄다? 그리고 부하들은 일본군에게 잡혀 죽고요? 그게 님이 생각하는 선비정신인가요? 원균이 감탄하겠네요?

이상한 소리는 님이 하는거 아닌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부모님상때문에 낙향했다는게 1억만배는 더 나은것 같은데요?
                         
푸른마나 19-05-07 00:38
   
해충퇴치님은 자신의 생각이 정의라 생각하시는 위험한분이네요.. 사람들이 보통 어떤 결정을 할때 여러가지 갈래중 하나를 결정하죠.. 거기에 선비정신이 들어갈수도 있고 몸보신을 원해서일수도 있고 겁이나서일수도 있죠...즉 역사에서 어떤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을때 대체적으로 왜 그 행동을 했냐? 는 확실하지가 않죠.. 보통은 역사적인 자료가지고 행동을 예상하기도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 따라 과거의 사상을 폄하하려고 하는 경우도 많죠. 현재 우리의 역사중 친일사관 가진 사람들이 초기 근대역사를 서술해서 아직도 여기저기에 친일사관이 들어간 대목이 많죠.. 그 유명한 고려장도 같은경우구요...
                         
CurtisLeMay 19-05-07 12:00
   
역시 댓글이 달렸네요. ㅋㅋ 혹시 아직 고등학생이세요?

유교적인 틀로(부모상) 선비정신을 비하하다 그게 막히니
개인의 안위를 생각해 퇴각한 부분을 선비정신으로 엮어 또 비하하네요.

뭐 그냥 조선시대 모든 개인들의 악행과 패륜들 전부 하나하나 열거해가며
'이런게 선비정신! 쓰레기야!!!!'이라고 하시죠 왜?

자신의 주장(선비정신은 쓰레기다)을 뒷받침 하기 위해
이것도 갖다 붙이고 저것도 갖다 붙이고.ㅋㅋ 아전인수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수많은 역사책들이 패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술적 열세와 중과부적에 따른 후퇴, 혹은 개인의 안위를 위해 나몰라라 하고 퇴각한 장수들도 많죠. 그런데 그런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 마다 그 사회의 대표적 사상과 철학을 결합시켜 그러므로 그 사상과 철학은 쓰레기다라고 하는 주장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요.

공자와 노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를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제나라의 환공은 말년에 역아, 수초, 개방을 특히 총애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 역아는 사람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환공의 말에 제 아들을 삶아 바친 인물. 
2. 수초는 환공을 잘 모시겠다며 스스로 거세해 환관이 되었고,
3. 개방은 환공의 곁을 비울 수 없다며 부모가 죽었는데도 가지 않았음.

공자와 노자가 살았던 시대라는 이유로,
이처럼 패륜적인 개인의 모든 행동들에 공자노자의 사상과 철학을 결합시켜,
인육 처먹는 환공은 인간쓰레기, 아들을 삶아 먹으라고 바친 역아도 쓰레기.
그러므로 공자와 노자의 사상도 쓰레기. 라는 식의 주장이 말이 됩니까

사람인 이상, 도전해보다 안되면 간을 보다가 튈 수도 있는 겁니다.
그건 개인의 판단이죠. 옹호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총대장으로서의 자격은 없는 사람으로,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부분은 비난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개인을 향한 비판과 비난이 되는거지, 선비정신을 향한 비난이 되면 안됩니다.

퇴치님 말대로 '공격 전 날, 부친상 지키러 고향감'이 사실이면
유교적 틀과 선비정신의 폐해에 대한 근거가 어느 정도 됐을겁니다.
하지만 그건 선비정신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낸 헛소리에 뇌피셜일 뿐이죠.
 
장수가 이길까질까 선발대보내
간보다가 안될거 같으면 안죽으려고 튄 경우는 인류사에 무수히 많은 기록이 있는데
그 행동이 왜 선비정신과 엮여 선비정신이 비하될 근거가 되는지 도통 이해가 안됩니다.

이만하고,
저는 퇴치님께서 제발 고등학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공부나 좀 더 하게.
     
Sulpen 19-05-07 00:45
   
개인의 가치관 문제일 수 있는 부분조차도 선비정신으로 매도하시는건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안창호 선생님조차도 독립운동을 하시던 와중에 자신의 평소발언을 지키기 위해 나가셨다가 체포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5년감 구금당하고 간경화등의 악화로 돌아가셨지요.

안창호 선생님의 지론이 '거짓말'이라면 아무리 가벼운것도 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가지신 분으로 가벼운 말이라도 어긴다면 그게 거짓말이 되기 때문에 말을 함부러 하지 않았지만 한다면 무조건 지키시려고 했던 분입니다.

이런것도 선비정신일까요? 가치관일까요?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하는 장군중에 한분인 이순신 장군님은 해충퇴치님이 말하는 선비정신의 궁극의 인물입니다. 충과 효와 절차를 중시하던 고지식하고 답답한 인물이지만 현대적인 관점으로 보더라도 흠하나 잡을곳이 없는 분이지요.
세임 19-05-07 03:17
   
조선을 망하게 한 그 선비정신?
예술을 천대하고 .... 사를 제외하고 ... 농공상 모두 개차반 취급했고.,...
농자천하지대본을 외쳤으면서 ... 정작 농민은 천민 취급하던 그 선비정신?

한마디로 갖다 붙일 게 없다는 말이죠.
     
가민수 19-05-07 13:45
   
조선이 일본에 망한건 개화가 늦은 탓이 크죠.
미국이 개항 요구할 때 조선이 이기는 바람에 개화가 엄청 늦어졌죠.
일본은 싸움에서 져서 일찌감치 개항하였고.
선비정신이랑 별 상관 없음.
분석 19-05-07 11:45
   
춤과 노래를 사랑하고 빨리빨리 속도전에 익숙한 민족이 시대상에 반영되며 티핑포인트가 터진것이라 봅니다.

2천년 이전의 산업화 시대에는 발전이 목표여서 공부잘하고 말잘듣는 사람들이 우대받았지만, 밀레니엄 시대로 진입하며 사람사는 세상으로 기준이 바뀌면 사람관계와 노는것 (창의력과 연계) 에 능숙한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으로 업그레이드.

세상이 하나로 묶이는 글로벌 시대에 정보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대한민국 (한글까지 장착. 문장 하나정도는 몇초만에 끝) 이 득을 보는건 당연하지요. 타국가에 비해서 정보의 교류 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지요.

이 모든것들을 보면 빠르게 세상의 판을 읽어내고 트랜드를 잡아가고 그 판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민족이 주목받을수밖에요.

일본이 몰락하는 이유는 단 하나라고 봄. 소심하고 공부만 잘하는 음흉한 민족이라서 20세 이전에는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하나도 안먹히는것임. 놀줄 모르니.


미국보다 랩을 먼저한 민족. 고전인 창이나 마당놀이를 보시라~ 레퍼들이 가득. ㅋㅋㅋ
그런거읍다 19-05-07 12:40
   
한국이 힘을 받는 이유는 시대상에 따라 다각적으로 여러방향에서 분석해야지 "선비정신"같은걸로 퉁칠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되고.
     
한쓰우와와 19-05-07 17:13
   
선비정신 하나만으로 그렇게 된건 당연히 아니죠.
다만 교육을 중시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게 있으면 죽음으로 항거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 역사에 도움이 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유가적 정치나 선비정신을 지금 그대로 적용하는 거야 당연히 말도 안되는거고요.
kuho 19-05-07 14:39
   
선비정신
sunnylee 19-05-07 15:06
   
ㅋㅋㅋ 만우절.. 디아블로 선비캐릭 이벤트도 아니고..
굿잡스 19-05-07 17:08
   
선비 정신 

인격적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세속적 이익보다 대의와 의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는 정신
https://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620153&supid=kku010497515


 '한국인이 수많은 외적(外敵)의 침입과 식민지배, 혼란을 이겨내고 오늘날 세계 일류국가를 넘볼 만큼 성장한 생존 능력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원로 국사학자 한영우 (72)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50년 가까이 조선시대를 비롯한 한국사를 연구하면서 늘 이런 의문을 품었다. 한 교수가 9일 펴낸 《한국선비지성사》(지식산업사)는 자신의 오래 묵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것 같다. 이 책에서 그는 고조선부터 현재까지 한국을 이끌어온 전통사상을 '선비정신'으로 풀어냈다.

한영우 교수는 "한국인의 문화적 DNA이자 전통적 공동체 정신이 선비정신, 선비문화"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선비'는 보통 이해하듯이 조선의 유학자만이 아니라, 한국사를 이끌어온 지성인을 가리킨다. 고대의 무교(巫敎)에서 출발한 '선비'는 고조선 때부터 내려온 고유언어로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선인(仙人) 또는 선인(先人)으로 기록됐을 뿐 선비와 선인은 같은 말이라는 것이다.《삼국사기》는 단군을 '선인'(仙人)이라 불렀는데, 단군이 우리 나라 최초의 선비인 셈이다.

 "16세기 천자문에 보면 '士'를 도사(道士)로 번역한 경우도 있어요. 고대의 '선비'가 도사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유(儒) 불(佛) 무(巫)가 통합된 실체가 선비입니다. 조선 유학자만 가지고 선비를 따지는데, 그러면 김유신이나 강감찬·서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한 교수는 "역사학이 변화와 발전에만 주목하다 보니, 역사의 연속성은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에도 정자(程子)와 주자(朱子)를 칭송한 성리학자 중에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사들이 많았던 것은 전통적 선비정신이 이어져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구려 선비와 신라 화랑의 전통을 계승한 공동체는 조선시대에도 '사장'(社長)과 '향도'(香徒)로 남아있었다. 사장은 한양 한복판에 염불소를 세우고, 승려와 비슷한 옷을 입고 거리를 춤추고 돌아다니면서 부녀자와 어린이들을 불러모았다. 향도는 종교단체를 겸하면서 장례를 비롯한 어려운 일을 서로 도와주는 공동체였다.

한영우 교수는 선비정신의 핵심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과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 사상을 꼽았다. '인간을 골고루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은 유학과 결합하면서 국가 운영에서 공익(公益) 정신으로 진화했으며, 민심을 존중하는 민본(民本)사상과 애민(愛民)사상으로 뿌리를 내렸다. "하늘과 땅·사람이 하나이고, 우주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천지인합일 사상은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서구의 근대 자연관을 극복하고 상생(相生)을 도모할 수 있는 세계관입니다." 한 교수는 한국 사회의 지나친 이념 대립도 통합과 소통을 강조하는 선비정신으로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비문화라면 무언가 고루하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변화에 저항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요즘 같은 세계화시대엔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 교수는 이런 지적에 고개를 저었다.

 "선비문화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외래문화를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지혜가 바탕이지요. 개화기의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 대한제국의 '구본신참'(舊本新參)은 물론, 안재홍의 신민족주의도 전통적 선비사상과 서양 정치사상을 융합시킴으로써 근대국가 건설을 꾀한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 후 제 것을 우습게 알고 남의 것만 받아들인 결과, 전통문화 브랜드가 후진국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http://kdec.re.kr/board/bbs_viewbody.php?code=bbs_edu_pds&page=2&number=376&keyfield=&key=

그렇다는군요. ㅋ

그리고 요즘의 카톡릭등도 중세시절 마녀사냥등 지난 시절 보면 참 웃긴 논리들 많군요. 그걸 시대에 따라 재조명 계속해서 현대화 해오면서 받아들여졌던 것이고 우리가 흔히 아는 선비라는 어원도 단순히 조선시대의 문적 성향이 강한 선비만이 아니라 이전 고려시대에는 좀더 문무 겸비의 의미로 삼국시대에는 전란의 시대상에 따라 더욱 강한 전사적 개념으로 더 앞선
고조선은 신권과 왕정이 합쳐진 시대에는 좀더 종교적 성향의 의미등.

21세기 이런 우리의 선비 정신 역시
온고지신 새롭게 해석, 현대화해서 버릴건 버리고 좋은건 취해서 거듭난다면 전혀 나쁠게 없다고 보군요.
강운 19-05-07 22:32
   
전 교육이라고 보는데요
삼국시대부터 교육을 했으니까요
여러 학문과 사상 이념이 거쳐간 곳이 또 한국이죠
과거 일을 기억(쇄국정책)하여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융화 하려는것도
대한민국 국민의 특징이고요
레떼느님 19-05-07 23:42
   
지금 페미 같은거에도 도륙 당하는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