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장은 "일본군 위안부의 원류는 조선시대 기생제이며, 이 제도는 해방 이후 민간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 형태로 존속했다"며 "위생 상태, 건강 상태, 소득수준, 포주와 관계는 (광복 이후가) 일본군 위안부보다 훨씬 참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세종대 교수 이후 자신이 위안부 성노예설을 부정한 최초의 연구자라고 강조했다.
이 교장은 근대 한국 성장동력을 식민지 시기에서 찾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서는 "수탈의 체제적 원리와 구조적 양상을 총체로 보자는 취지였다"며 "일본 식민지 지배의 수탈성을 부정하거나 지배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목청을 높였다.
댓글보니 가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