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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6-28 23:27
조선시대 노비는 상황이 복잡함.
 글쓴이 : 대간
조회 : 1,125  

그거 연구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함.

단면만 보고 왜곡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일제강점기 때 왜놈들과 토왜들이 일면만 보고 왜곡했던

자료가 너무 많이 돌아다니고 거기다 극단적인 면을 부각한

소설, 드라나마 영화가 많아서 그런 점도 있고...

뭐... 신분제 자체가 악이니 당연한 결과이긴 하지만...

조선의 노예제가 특이하긴 특이함. 시대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주인보다 재산이 많은 노비도 존재했었다니.


조선의 노비제도에는 특기할 점이 여럿이다. 노비라 해도 그들의 처지는 천차만별이었다. 극단적인 경우였지만 16세기의 노비 중에는 박인수(朴仁壽·1521~1592)라는 꽤 유명한 학자도 있었다. 또 많은 재산을 소유한 노비도 존재했다.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조선시대 노비의 역사인데, 그 가운데 서너 가지만 간단히 언급해본다. 

첫째, 세력 있는 주인(양반)의 적극적인 비호하에 시골에서는 노비의 살림살이가 평민보다 나은 경우도 있었다. 각지에서 개간과 간척 사업이 활발하던 시절의 풍경이었다. 1478년(성종9) 왕실종친인 주계부정(朱溪副正) 이심원(李深源·1454~1504)이 임금에게 올린 글에서 ‘칭념(稱念)’의 폐단을 고발했다. 요컨대 서울의 고관들이 임지로 떠나는 지방관을 찾아가 술과 고기를 대접하며 그 고을에 거주하는 자신들의 노비를 살펴봐달라고 부탁하는 풍습이 성행했다(‘성종실록’, 성종9년 4월8일). 서울의 세력가들이 지방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노비들이 농장을 쉽게 확장하고 그 경영도 효율적으로 하기를 꾀했던 것이다. 


둘째, 농장을 주인 대신 경영하던 노비 중에는 이따금 큰 부자도 나왔다. 1485년의 실록을 읽어보면, 당시 충청도 진천에 심한 흉년이 들었다. 그때 어느 양반의 남자 종 ‘임복’은 곡식을 2000석이나 세금으로 바쳤다. 그의 선행에 조정의 칭찬이 쏟아졌다(‘성종실록’, 성종16년 7월 24일). 2000석이나 되는 곡식을 한꺼번에 내놓을 정도였다면 임복의 농토는 수천 석에 달했을 것이다.

셋째, 임복과 같이 부유한 이도 노비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목을 끈다.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 따르면 16~50세 노비는 매매가격이 저화(楮貨) 4000장이요, 15세 이하 및 50세 이상 노약자는 3000장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렇다면 부유한 노비는 자신과 가족의 신분을 해방시킬만한 재산, 곧 ‘속량(贖良)’의 능력이 충분했다. 그러나 주인들은 굳이 그들에게 자유를 주려고 하지 않았다. 

부유한 노비를 그대로 소유하는 것이 주인에게 더 큰 이익을 안겨주었다. 주인 집안에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잘사는 노비들은 특별 찬조금이나 값비싼 선물을 바쳤다. 심지어는 ‘기상(記上)’이라는 것도 있었다. 노비가 자신의 재산을 주인에게 헌납하면서 기록을 작성한다 해서 그렇게 불렀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총선 숭리!!!! 이제부터 토왜척결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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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라호빗 20-06-28 23:30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이 지금까지 영향을 강력하게 미치는 게 짜증나네요.
그걸 근거 삼아 자학질이나 하고 있으니 쩝
오를레아 20-06-28 23:30
   
노비가 세금을 내지않았으니 탈세목적으로 노비명의로 한게 아닐까
쌈바클럽 20-06-28 23:30
   
노비가 큰돈 벌었다고 알아서 큰 세금을 바치는걸 보면 진짜 크게될 사람이네요. 저 사람 면천됐겠죠? 제가 왕이었으면 명예직이라도 하나 내려 관직 주고 양반으로 삼았을것도 같은데..
     
섬나라호빗 20-06-28 23:35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5185962&memberNo=1464463
여기 임복 관련 내용입니다. 임복은 면천되고 그 다음 면천해달라고 나선 또다른 노비 "가동"은 거부당했다네요.
          
쌈바클럽 20-06-28 23:39
   
링크 감사해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하늘그늘 20-06-29 00:43
   
노비는 사유재산입니다
왕이라고 해서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었어요
강인lee 20-06-28 23:32
   
조선시대 노비조차 쪽바리들 보다 인권 더좋고 잘살았다는거
그리워라 20-06-28 23:52
   
노비출신중 가장 부자는 이명박 아님?
     
쌈바클럽 20-06-28 23:54
   
돈은 주인이 더 많잖아요. 재산만 보면 이명박이 성공한 기업인이긴 하죠.
     
칼까마귀 20-06-29 00:08
   
명박이는 쪽x리죠
국산아몬드 20-06-28 23:56
   
노비는 세금을 내지 않으니 수천석 부자라면 노비에서 해방되고 싶어하지 않을 듯
게다가 주인이라고 노비를 마음대로 할수 없는 사회니
노비가 주인과 잘 쇼부치면 양민보다 살기 좋았을 듯 합니다

노비는 병역의무,납세의무, 부역의무도 없습니다
어찌보면 노비가 양민보다 더 살기 좋았을 수도 있었겠죠

조선시대에는  노비되는것에 대한 거부감이 덜했을 듯 합니다
그러니 한때 40%나 되었겠죠

국가로서는 무지막지한 손실이니 정조때는 거의 없다시피 한거죠
     
대간 20-06-28 23:59
   
아이... 븅신...

그거 대구지역 한정 조사라잖아. 그 것도 호수라 인구는 아니고.

양반 한 호하고 양민 한 호하고 노비 한 호하고 사람 수가 같것냐, 버러지야.

버러지 새끼가 짜증나게 아는 척은.
          
가생퍽 20-06-29 00:41
   
.
     
하늘그늘 20-06-29 00:47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린지
노비는 엄연히 주인이 있고, 당연히 평민이 내는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주인한테 바치는 거죠
그리고 약간의 틈만 있어도 모든 재산을 주인이 뺐을 수 있었습니다
부민고소금지법까지 있어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고소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어요
그러니까 지방 같은 경우는 사또한테 돈 좀 찔러주면 노비 따위는 그냥 처 죽여도 아무도 뭐라고 못한다는 뜻입니다
기간틱 20-06-29 01:44
   
의미야 담기 마련이지만  어쨓든  노비 신분이라고 해서  정해진 룰은 없었음.
우리 민족의 기본 개념에서 봐야지 짱께,왜구 눈깔로 보면 다 왜곡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