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2분경 청와대 옆 궁정동의 중앙정보부 밀실. 박정희 대통령은 소위 '안가(安家)'로 불리는 이곳 만찬장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을 맞고 맥없이 쓰러졌다. 이로써 18년 5개월 10일 동안의 1인 군사독재와 유신체제가 막을 내렸다.
김재규는 대통령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에게 각각 2발씩 쏘아 두 사람을 절명시켰다. 그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며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훗날 법정에서 증언했다.
이듬해 5월 24일, 그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10·26 거사를 실행한 부하들과 함께 사형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당시는 광주학살이 한창 자행되고 있을 때였다.
![박정희 대통령 저격 상황을 현장검증하는 김재규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10/20/yonhap/20201020105655937njpp.jpg)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 사건과 김재규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여전히 크게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김재규를 '박 대통령 시해범(弑害犯)' 또는 '반역자'라 부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독재자를 처단한 의인(義人)'이라 부른다.
이에 대해 저자는 "군사독재에 저항한 민주화 투쟁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막상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한 주역에 대해선 평가를 '건너뛰었다'"며 "이는 '국가원수 살해'라는 도덕적 감성주의와 함께 유신세력과 족벌언론의 세뇌 탓"이라고 주장한다.
독립운동사와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인 저자는 단순히 '10·26사건'이 아니라 '김재규'라는 인물과 그의 생애에 초점을 맞춰 폭넓고 깊이 있게 기술해나간다. 삶 전체를 조명하면서 권력의 과정에서 그가 저지른 과오와 더불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력도 하나하나 추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김재규는 유신쿠데타를 대한민국의 기본가치를 뒤엎은 반역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이승만 대통령이 짓밟은 민주공화제를 4·19 혁명으로 바로잡았는데, 박정희가 5·16 쿠데타에 이어 유신쿠데타로 주권재민과 삼권분립의 기본가치조차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김재규는 '애국심이 집권욕에 못 미치고' 있는 박정희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쳐 박정희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계획을 세웠으나 모두 실패로 끝난다.
![법정에서 진술하는 김재규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10/20/yonhap/20201020105656026zjgr.jpg)
마지막으로 김재규의 최후 일성을 들어보자. "3심 재판에서는 졌지만 4심인 역사의 법정에서는 이길 것"이라는 말을 남긴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목숨을 구하는 데 급급해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요번에 희생이라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한, 민주주의라고 하는 나무의 거름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때문에 나는 지금 이 시간이 된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고 또 보람으로 생각하고 또 매우 즐겁습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영원한 발전과 10·26 민주회복 혁명, 이 정신이 영원히 빛날 것을 저는 믿고 또 빌면서 갑니다.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
두레. 304쪽. 1만8천원.
![](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10/20/yonhap/20201020105656093rbyu.jpg)
https://news.v.daum.net/v/20201020105655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