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가장 열세이던 41~42년때의 소련군 전차 항공기 생산량은 독일보다 두배이상 우위였습니다. 소련의 문제는 고등장교의 부족이였지, 자원이나 공업력의 문제가 아니였죠.
2차대전 직전까지만해도 소련의 GDP와 공업능력은 미국에 이은 세계2위였습니다.
그리고 아래 썼듯이 이미 미국의 지원은 이미 전쟁말기때 카프카스지역이 해방되면서 거기에 대량의 물자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부터지, 개전초부터 지원한게 아닙니다.
세계대전 최대전투인 모스크바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 대회전 모두 연합군이 참전하기전에 소련이 승리해서 이미 몰아내고 있었는데요?
미국의 소련의 대부분이 독일군을 카프카스 흑해에서 몰아내면서 본격적으로 지원됬습니다.
미국의 장비지원이 시작된 때는 이미 전쟁은 소련이 이긴후였습니다. 독일군의 집단군은 스탈린그라드와 쿠르스크 전투이후 벨라루스전선군과 우크라이나전선군에 완전히 괴멸되었고 차후 가해질 바그라티온 공세때는 이미 독일군은 가용가능한 병력이 남지 않은 상황이였습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미국의 지원 이전에 이미 독일은 소련에게 돌이킬수없는 대패를 당해 패퇴하고있던 상황입니다. 소련이 이겼기 때문에 흑해와 우크라니나 주요도시와 항구를 회복했고 그곳에서 대량의 물자가 들어왔는데요. 미리 지원을 해줘서 싸운게 아니라 소련은 자국방어는 스스로 해냈고 독일원정을 준비할때 미국의 지원이 도움이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