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사에 사용하는 제기는 상등품을 사용한다는 가정을 해봅시다.
그리고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그렇다면 왕실에서는 어떠한 재료로 만든것을 제기로 사용했을까요?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청동?
아니면 가장 최신 첨단 제품인 세라믹~~~~ (도자기)
여기서 임진왜란때 벌어진 사건을 따져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양을 수복하고 종묘에 제사를 지내려 해보니까 제기들이 몽땅 없어진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형편없는 것을 제기로 쓰게 되서 울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없어진 제기가 왕실용으로 만든 (그것도 종묘에서 제례용으로 쓰려고만든) 청화백자 입니다.
이 시점에서 볼때 최고급품은 당연하게도 백자 (고려시대는 청자)였다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다음으로 안성맞춤으로 유명한 안성유기가 공납물품이라서 왕실용이었다... 라는건 왕실에서나 쓴다는 것이 아니라 왕실에도 납품이 되는 최고의 제품이다. 라는 이야기 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영국왕실 납품되는 브랜드인 블루뭐시기인지 뭔지 그런...
어찌되었던 임란으로 도공들도 끌려가고 당장 쓸수있는건 없고 해서 대체용으로 유기가 쓰였을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왕실부터 대체품을 쓰고 있는 형편에 신하들이 그보다 좋은걸 쓸 수 있을리도 없고 있다고 하여도 대놓고 쓰기에는...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고급품을 쓰지 못하는 계층에서는 유기등을 제사용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지요.
어릴적 짚풀과 진흙을 이용해서 제사용 놋그릇들을 딲던것이 기억나네요.
그러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증조할머니의 수저세트 (일제시대때 어떻게 빼앗기지 않은건 모르겠음)
더불어서 다큐에서 나왔던 것인데 과거 한국의 금속공예 기술이 뛰어나서 수저와 젓가락 그리고 밥그릇등의 보급율이 높았다. 라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참고로 유기는 기계학적으로 방짜유기를 못만든다고 합니다. (방짜유기는 두들겨서 만드는 유기)
주물로만 가능한건데 한국에서는 두들겨서 만드는것은 서양에서는 원래 불가능하다고 알려져있었다고 합니다. 그걸 한국에서는 대장간에서 두들겨서 만들어서 방짜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