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 년 2 월 14 일 주일 미군 기지에 대한 비밀 보고서 "행정 협정은 미국이 점령 기간 동안 보유하고 있던 군사 활동을위한 (약어) 권한과 (약어) 권리 를 미국을 위해 보호하고있다. " → 점령 체제를 그대로 계속 (주일 미국 대사관에서 미 본국에보고)
이 보고서의 내용은 60 년 안보 이후에도 살아 있습니다. 60 년 안보 여론 봉쇄를 위해 겉으로는 점령 색을 희석 그 뒤에서 1959 년 12 월 3 일의 기지 권한 밀약을 맺게 그대로 유지되고있는 것입니다.
패전이후 백인의 세계지배 패권에 도전한 일본은 미국과 연합국에 의해 일본자체가 뒤바뀔 고대사를 아우르는 역사/경제/정재계 등이 그들 입맛대로 개조되었으며 21세기에 이른 현재도 일본은 연합국의 식민지였단 소리다.
이 사실을 널리 널리 일본인에게 퍼트리며 노골적인 미국비판에 나선게 니카가와다
행보를 보듯 나카가와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모든 매스컴, 국회, 정재계가 연합국에 지배당하며 국민성, 국가자체가 개조되는 암묵시되던 내정간섭, 대외공작을 적나라하게 공개.
그의 발언 하나하나는 큰 파문이 일어 일본국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니시카와의 행보는 그 누가봐도 메이지유신~쇼와시대의 일본을 위해 한 몸 불싸지르는 기개넘치던 일본인 그 자체였다
그런 니시카와에게 의문의 큰 사건이 터지는데
G7 국제회담에서 취한 상태로 참석한 역사에 남을 범례를 저지른 사건 이른바 몽롱사건이 터진거다
문제는
G7 기자회견 직전에 나카가와는 기자 5명과 와인 1병을 마셨었는데 나카가와가 마신 와인의 양은 몽롱한 상태에서 회견을 할 정도의 양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몽롱회견은 다른 누군가의 사주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는게 유력시된다
주범으로 주목되는 사람이 아래 3명.
(몽롱회견 직전 식사에 동석했던 인물들)
그들은 나카가와가 마신 와인에 약을 탔다고 하는데 에체젠야 토모코는 회견 전에 ’이번 회견에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재무성 관료인 玉木林太郎 (타마키 린타로) 국제금융국장은 나카가와 재무장관과 아자부 고등학교 동창생으로 재무성 장관으로 출세했다.
회견 중 오른쪽에 동석했고 회견 전 점심식사에도 동석해 같이 와인을 마셨던 재무성관료 藤原尚之(시노하라 나오유키) 재무관은 몽롱회견 직 후 의아스럽게도 IMF 전무부이사로 출세했다.
당시 술자리에 동석했던 요리우리신문 경제부 기자越前谷 知子(에치젠야 토모코)는 귀국 후 증발, 미국으로 전근 후 소식불명이 되었다.
이래나 저래나 그의 사인은 전후 행보와 켕기는점이 너무나도 구린내가 풍긴 의문사라 현재 일본엔 99% 미국의 사주로 암살당했음이 정론이다
일본인들은 정치에 관심없고 그런 무기력한 일본인으로 개조시킨게 연합국, 자이니치이니깐요 ^^; 궁금하시면 여러번 걸쳐 차후 작성해보겠습니다. 연합국을 등뒤로 한 자이니치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일본의 사공이라 불려도 무방. 일본역사 (고대사 위주) 날조도 일괄 자이니치 소행.
전 개인적으로 자이니치(재일교포)들이 악질이라 보는게 2세, 3세대 걸치며 백인들의 개가되어선 한국과 어느정도 척을 두는 선민의식이 매우 불쾌하더군요. 김구암살범 안두희도 자이니치와 일본 적십자 공작에 앞장섯죠
여러모로 일본은 일본인 입장에선 뿌리부터 썩엇다 볼 수 있죠. 우리 입장에서야.. 좋은?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