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새 잡담게시판으로 가기
(구)잡담게시판 [1] [2] [3] [4] [5] [6]
HOME > 커뮤니티 > 잡담 게시판
 
작성일 : 20-03-24 14:35
베트남이 천년간 지도에서 사라졌었죠.
 글쓴이 : 러시안레드
조회 : 1,391  

진짜 기원전 100년쯤 부터 기원후 1000년 정도까지 몇년 단위르 빼면 그냥 계속 중국이었음. 

이게 무슨 아시아 특유의 서열관계나 조공무역 이딴게 아니고, 

그냥 지도에서 천년 넘게 사라졌었음.  

그래서 그런지 자존감은 낮은데 자존심은 어마어마하게 강해서 피곤하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written by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붉은깃발 20-03-24 14:37
   
그것보단 잘난 게 하나 없어서 그럴지도

우리도 예전에 몽골한테 거의 30년 간 국토가 털렸는데 지금 몽골한테 악감정 갖거나 뭐라 하는 거 없잖음
트라우마 20-03-24 14:38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이 높아서 그런거쥬
ramee 20-03-24 14:38
   
그래서 베트남의 자존심 빵쪼가리로 위안을.
booms 20-03-24 14:39
   
아무리 국뽕을 들어마셔도 현재 지들위치를 보면 무시할나라가 있고 아닌나라가 있는건데 그냥 뇌가 없는듯...ㅋㅋㅋ

베트남 뿐 아니고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이 과거에 자기들보다 못살았고 인구수도 적고 자원도 없이 저리 사는거 보니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한국정돈 별거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더만 ㅋㅋㅋㅋㅋㅋ
     
몽키헌터 20-03-24 14:42
   
동남아가
무시하는 요소 중에..

분단상황도 있죠.

만약 통일된 한국이었다면..
저렇게 나올까요 ??
          
booms 20-03-24 14:45
   
나올껄요 통일은 중요하지 않아요.

한국은 열강에 의해 식민지 당한 국가, 자원이 없고, 인구수가 적다.
지들은 열강에 의해 식민지 당한 국가, 자원은 있고, 인구수도 많다.

그 기준을 비춰보면 통일의 유무는 의미없습니다 ㅋㅋ 북한에 자원이 있다지만 그래봐야 동남아에 비하면 적죠. 오히려 통일되면 이제 후진국된다고 좋아라할껄요 ㅋㅋ
     
굿잡스 20-03-24 14:51
   
지금이야 농지 개척이나 농업 기술의 발달로 동남아 2,3 모작 어쩌고지  과거 당시는 쌀 생산력도 동북아가 더 높고

인구수도 많으면서 이른 시기 중앙집권화로 병력의 차출 및 오늘날과 다르지 않게 무기 및 도시 인프라 제도 전반에서도 훨씬 우위.

고구려와 수제국 그리고 베트남 임읍국.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commu&wr_id=1553119&sca=&sfl=wr_subject%7C%7Cwr
     
당진사람 20-03-24 15:41
   
통일하면 태국보다 인구가많음 그때도 소국이라고 할련지 ㅋㅋ
모래니 20-03-24 14:50
   
베트남이 최근의 전쟁에선 중국 미국을 깨버려서-_-
그런점에서 자부심을 안가질래야 안가질 수가 없겠죠.
     
따식이 20-03-24 14:52
   
이건 인정 ㅋ

순서는 미국 중국 순

공산국가 끼리 싸울줄은 몰랐음 ㅋㅋ
     
굿잡스 20-03-24 14:54
   
베트남전을 미국과의 전투로 얻은 승리로 단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은 전쟁의 판도는 미국의 거의 물량과 화력에 의한 일방적 펀치 전황이였군요.


베트콩의 투쟁심도 작용했고 정치적으로 미국내의 반전 유도 여론전과 게릴라전을

바탕으로 지속적 피로감을 주는 등에 당시 오랜 프랑스 식민시절을 지낸 베트콩 일반 주민들

입장에서는 공산세력의 확장을 막고자 참전한 미국의 전쟁 참여가

일종의 또다른 점령군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현지 주민들의 민심을

제대로 얻지 못한 부분등 정치적 전략적 부분에서 문제를 드러낸 전쟁이였군요.


결국 미국내에서 반전 여론등으로 인해 미국은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전략적 전쟁에서는 물러날수 밖에 없었던게 당시 베트남전의 양상.
     
ramee 20-03-24 15:11
   
그레봤자 우리나라 군대한테 개쳐발렸었죠.
     
굿잡스 20-03-24 15:13
   
베트남전 구정 대공세.

1월 30일, 새벽의 폭죽놀이를 신호로 베트콩들은 공세를 시작했다. 이들은 사이공뿐만 아니라 남베트남 대부분의 도시(총 41개 지역)에 잠입해 있었기 때문에 남베트남 전역이 전쟁터가 되었다. 또한 미군과 한국군을 제외한 동맹군은 이때 기습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데다 당시 남베트남군 대부분이 설을 쇠러 가서 공백이 생겼기 때문에 크게 당황했고 전투는 매우 혼란스럽게 벌어졌다.



그러나 약속된 북베트남군의 지원이 없었고, 베트콩들은 자신들이 도시에서 전투를 벌이면 남베트남 도시 내부에서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으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미군은 프랑스군과 달리 화력지원과 보급도 매우 잘 받는 상태였다. 베트콩의 공세는 2~3일만에 대부분 미군에게 진압되었다. 하지만 수도 사이공은 2주, 중부지방의 주요도시인 후에 에서는 한달 가까이 베트콩의 게릴라전에 의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이 기간 동안 정부 기능은 사실상 마비되었다. 특히 후에 시내는 상황이 매우 안 좋아서, 원래 외국군대는 간섭군이란 지적을 피하기 위해 도시 방어는 남베트남군이 맡도록 되어 있던 원칙까지 어겨가면서 미 해병대도 투입되어 섬멸전을 벌여야 했다.



그 동안 한국군은 베트콩의 공격을 사전 예측했기 때문에 돌파당한 진지는 한 군데도 없었고, 오히려 이들의 공격을 철저하게 방어해냈다.



본래 작전 내용은 베트콩이 남베트남에서 사건을 벌이면 동시에 북베트남도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베트콩이 먼저 나선 후에도 북베트남군의 행동은 늦어졌고, 결국 대대적으로 준비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감으로 인해 남베트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베트콩의 조직은 거의 괴멸되는 상황이 펼쳐졌다. 베트콩은 이런 공세에서 대대적인 물자와 인력을 투입하였는데 공세가 실패로 돌아갔으니 괴멸될 수 밖에 없었다.



전과 측면에서는 후에 시와 케산을 제외하고서는 대부분의 공격이 실패했고, 후에도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대대적인 탈환작전 끝에 재탈환당하고 케산 포위전은 미군의 대규모 공습과 공중보급 및 핵 협박으로 실패하는 등 실질적인 성과는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치고 빠지기 식의 비대칭전 전술을 포기하고 야전에서 공세를 감행하는 것은 미군의 장기인 대규모 화력투사 앞에 전력을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간부진의 전멸 및 군수물자의 손실 등 남베트남 내 베트콩 조직의 피해는 심각해서, 나중에 공개된 북베트남군 내부 문서에 따르면 향후 수년 간 베트콩은 독립적인 작전 수행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이후 베트콩 조직 내 주도권은 남쪽 출신자가 아니라 북쪽에서 파견된 이들이 가지게 된다.



이 전투는 전술적으로 보았을 때 명백한 베트콩과 북베트남의 패배였다.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전사자 5,100여 명을 포함해 도합 20,000명의 사상자를 낸 반면, 베트콩들은 병력의 절반 가량인 45,000명의 전사자를 냈고 특히 전투 경험이 많은 간부급의 피해가 커 조직이 사실상 궤멸되었다. 반면 미군과 남베트남 주둔군에는 큰 피해도 주지 못했고 도시를 장악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elience92&logNo=221666330870&proxyReferer=https%3A%2F%2Fm.search.daum.net%2Fsearch%3Fw%3Dtot%26nil_mtopsearch%3Dbtn%26DA%3DYZR%26q%3D%25EA%25B5%25AC%25EC%25A0%2595%25EB%258C%2580%25EA%25B3%25B5%25EC%2584%25B8


한마디로 이 북베트콩은 남베트콩을 이용 토사구팽식으로 이들은 무모하게 덤비다 쳐발리면서 괴멸.

그러나 북베트콩 입장에선 향후 트러블이 될 대상을 제거하는 동시에 미국내 반전여론의 정치적 이슈로 몰고갈 수 있게된 개이득을 얻게 되고

미국은 결국 전투에서는 이기고도 물러나자 전력 공백 상태의 남베트콩을 북이 손쉽게 꿀꺽. 이후 북베트콩의 잔인한 인권 침해등으로 남베트남민들의 대대적 보트피플(약 100만명) 대탈출 러쉬.
굿잡스 20-03-24 15:43
   
근현대  

1884년~ 1945년까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복속된게 베트남 왕조(제법 상당한 기간)  

남월(최초의 베트남 봉건국가)  

100여년 안되어 전한시기에 멸망 복속된 후  5대 10국시대(10세기)까지  

서토의 교주라는 행정 명칭으로 복속.


베트콩은 동남아에서 시기별 힘 좀 써던 세월도 있었지만
동북아와는 과거나 지금도 같이 놀 레벨과는 거리가

먼~~역사이자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