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성: 조금 전에 우산혁명 언급하셨는데 이번에 이 시위가 직접 현장에서 체감하신 것이 그 정도가 어느 정도였어요?
◆ 이택광: 굉장히 많았어요. 예전에 우산혁명은 50만 명이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통합적으로 한 곳에 모이진 않았습니다. 곳곳에 흩어져서 Occupy, 쉽게 말하면 점거농성을 하는 분위기였죠. 그리고 주로 예술가들이 참여했어요. 예술가들, 학생들이 참여했고. 홍콩 내에서도 중산층 이상의 그런 어떤 참가자들이 주를 이뤘던 것이 우산혁명이죠.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는 일반 시민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그게 제가 현장에 가서 깜짝 놀랐던 게,
◇ 김호성: 흔히 말하면 우리 식으로 표현으로 하면 넥타이부대들?
◆ 이택광: 네, 회사원들도 많이 나왔고 교사, 기업인들도 심지어는 많이 참여했고요. 학생들은 당연히 동맹휴업을 하고 참여했고. 그날도 저희가 컨퍼런스 끝난 뒤에 마지막날이었는데 그날 그 둘째 날이었어요. 그때 다 참여하겠다고 간 거죠, 학생들이.
◇ 김호성: 저도 화면을 통해서 많이 봤습니다만 이 같은 시위의 모습들, 이런 것들이 홍콩에서도 우리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있을 거 아니에요.
◆ 이택광: 흥미로운 것은 제 지인이 홍콩에 있는데 그 지인들이 몇 년 전부터 계속 우리나라 영화 있잖아요, 택시운전사라든가 1987이라든가. 이런 영화들을 몰래 본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리고 잘 알려진 전태일평전이나 이런 것들도 읽습니다. 특히 중국 본토에서도 많이 읽지만. 그래서 그런 한국 민주화의 경험들을 교본으로 삼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고요. 실질적으로 우산혁명의 지도부를 담당헀던 학생들은 한국의 학생운동들을 교본으로 많이 삼았어요. 그래서 실제로 요구했던 것이 직선제를 요구했지 않습니까. 그게 그 당시 87년도에 한국이 내걸었던 슬로건이죠. 우리는 잘 모르고 있는데 그분들은 상당히 한국의 민주화운동 과정을 많이 연구해서 참조하고 있습니다.
https://radio.ytn.co.kr/program/?f=2&id=63132&s_mcd=0214&s_hcd=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