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성장점 최저 궁핍시대에 영유아 살해같은 패륜적 마비키등(늙은 부모는 산에 내다버리는 왜구장등)이 유행한게 아니군요(전국시대 메이지시대에도
아프리카 콩고 마냥 자국민 인신매매 노예 수출로 서구 무기 수입질하던 막장 미개 정치 사회상.성노예 전범 범죄가 쨉에서 그냥 나온게 아닌 미개 쨉 종특 문화)
열도는 우리나라 할때 나라시대부터 근세 에도시대에도 여전히
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하던 계층은 우리와 다른 극상류 위정자와 대상인 정도에 국한된 매우 얕은 계층이 특징
(조선은 후기로 오면 이미 신분제 와해에 중인같은 중상 계층으로 증대하지만 에도시대는 도리어 사농공상의 신분제가 더 고착화)
에도의 대다수 평민들과 하급 무사의 의복등도 제한 쥐어짜던게 에도막부인데
이런 요인은 극소수 최상층의 사치도 문제였지만 왜의 면직 생산기술이 낙후되다보니 비단과 면포는 서토나 조선의 수입에 의지. 왜의 평민들은 조선에선 그리 비싸지 않던 의복 소유에도 엄격히 제한(오늘날 청바지가 선진국에선 캐주얼 흔한 바지이지만 후진국 평민에겐 부담스러운 옷마냥)
마비키 まびき [間引き]
1930년대 홋카이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아이의 목을 눌러 살해하는 '마비키'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일용할 양식을 축내는 새 식구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장, 자장, 잘자거라 자지 않으면 강에 버린다 자장, 자장, 잘자거라 자지 않으면 묻어 버린다'
화려한 채색만 있고 모양이 조잡하면 팔립니까? 한국 도자기 특유의 균형 잡힌 형태에 화려한 채색까지 더 해져야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지 고려나 조선의 서민들이 쓰던 밥그릇까지 숭상하던 좆본에서 채색만 화려하게 한 도자기 만들었다고 그게 먹히나요? 그리고 조선 도공들이 화려한 채색을 못해서 안 한 게 아니었죠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은은한 푸른빛이 도는 민무늬 백자를 숭상하던 조선에서 만들 수 있어도 굳이 만들지 않았던 것 뿐이죠 나중에는 조선에서도 청화백자가 유행하고요 유행만 17c 이후였던 것 뿐이지 청화백자는 임진왜란보다 한참 전인 세조 시기부터 만들기 시작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