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새 잡담게시판으로 가기
(구)잡담게시판 [1] [2] [3] [4] [5] [6]
HOME > 커뮤니티 > 잡담 게시판
 
작성일 : 20-06-22 15:11
오카나와전투가끝나고 일본군에 학살된 주민들 증언
 글쓴이 : 삼촌왔따
조회 : 1,983  

1945년 6월 21일 새벽 이토만시 마에이헤이에서는 미군의 맹공격으로 도망갈 곳을 잃은 일본군이 주민들의 호를 빼앗으려다 주민 십여 명을 일본도로 학살했다고 합니다.2개의 호가 있었다. (208쪽)

주민 2명(사촌끼리)의 증언:

상황이 이상해 밖으로 나갔다.그러자 어머니들이 있는 호에 일본인 3명이 수류탄을 던져 연기가 자욱했다.호에서 사람을 쫓아낼 생각이었겠지.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조용해졌으므로, 호안의 사람은 죽었다, 라고 3명의 일본병은 생각한 것 같다.세 사람은 우리 호수로 왔다.미군이 그 자리에 와 있다.우리를 호에 넣으라고 한다.밖에 있던 우리도 호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들은 수류탄을 호 안에 던져 넣었다.이마를 다치니까 뒤집혀서 거기 있는 우엉을 쓰고 죽은 척했어.

"삼촌...하고 동생...은 일본군에게 끌려가 근처에 앉아 일본도에 베였습니다."

"셋째 누나와 그 두 아이는 옆의…할삼방의 호수에 있었다.일본 병사의 목소리에 하루 씨의 어머니가 대답을 하고 얼굴을 내밀자 갑자기 목이 잘렸다.목이 언니에게 날아온 것 같다.누나는 어둠 속에서 뭔가 동글동글한 것이 아닌가 싶어 밖으로 나왔는데 몸에 피를 뒤집어썼다.하루씨의 동생 3명도 일본군에게 칼부림당했다.”(208-209쪽)

《오키나와 84일의 싸움》(사카키바라 쇼지/신초샤판) 208, 208-209페이지에서》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결국 정의는이기고 언플은 언플로 망하리라...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아발란세 20-06-22 15:15
   
왜 제주 4.3 사건과 겹쳐보이는지 모르게슴..
스테판 20-06-22 15:22
   
왜구들은 저당시 오키나와도 자국민이었을텐데  민간인들을 저렇게 잔혹하게 죽인거 보면...악마 샛퀴들
     
깁스2 20-06-22 15:38
   
북해도의 아이누족과 마찬가지로
자국민으로 안봤습니다
한반도 유구국 북해도는
쪽본의 식민지 2등신민이었죠
     
라조육 20-06-22 15:45
   
동중국해 남단의 류큐 제도를 영토로 하여 왕정 체제를 꾸렸던 국가. 조선왕조실록에는 유구국(琉球國)으로 기재되어 있다. 현재는 일본의 오키나와 현으로 합병돼 있으나 여전히 그 일대를 류큐라고 부른다. 짧게 류큐국이라고도 한다.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기도 하고, 조선에도 종종 조공을 바치거나 표류한 어민들을 송환하는 등 동아시아 세계의 비중 있는 조연 역할을 맡고 있었다. 최대 영토는 현재 가고시마 현에 소속된 아마미 군도까지 포함됐었다. 하지만 이후 사쓰마 번이 류큐 왕국을 침공, 결국 류큐 왕국이 아마미 군도의 지배권을 내주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마미 군도 문서를 참고할 것. 2차대전 직후 미군은 류큐를 일본에서 떼어내고 미국이 통치하는 지역으로 만들었는데, 오키나와 현과 아마미 군도는 물론이고 한 번도 류큐의 지배에 들어간 적이 없는 도카라 열도까지 류큐에 포함시켰다가 1950년대 초에 도카라 열도와 아마미 군도를 차례로 일본에 반환했다. 그래서 미국이 세운 류큐 정부의 관할 범위는 오키나와 현으로 축소되었고, 이후 1972년에 오키나와 현도 일본에 반환된다. 수도는 슈리(首里)였는데, 미국 통치기 이후 오키나와 현의 수도인 나하의 일부가 되었다. 왕궁은 슈리성이다.

한국의 탐라국과 비교할 수 있지만, 지리적으로 제주도에 비해 본토에 훨씬 멀리 떨어져 있고, 제주도의 경우보다 훨씬 늦게 본토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독자성이 더 강하다. 그리고 탐라국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조선 초기에 완전히 중앙정부의 지배 하에 들어왔고, 그 이전부터도 이미 국권이 사실상 넘어간 자치지역 수준으로 남은 데 반해 류큐 왕국의 일본 흡수는 근대 일제에 의한 합병이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분리주의 운동이 잔존하고 있다. 또, 오키나와 현민들 사이에 분리주의를 지지하든 않든 여부를 떠나 일본 '본토' 주민들과 자신들을 다른 존재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https://namu.wiki/w/%EB%A5%98%ED%81%90%20%EC%99%95%EA%B5%AD
자그네브 20-06-22 15:45
   
저런꼴을 당하고도 1972년 오키나와 주둔 미국 군정이 끝났을때
일본으로 다시 통합된게 저는 오키나와사람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
나라의 주인이 바뀌는 그 순간,
진짜 하늘이 준 두번다시 없을 절호의 독립 기회를 그냥 날려먹은....
70년대 일본이 쭉쭉~ 잘나가 보이니까 그냥 들러붙었다가
별 지원도 안해주고 일본서 제일 낙후된 지역이 되니까 불만인건지...
실례일것 같지만 토종의 오키자와 사람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벽돌 20-06-22 16:01
   
10여년전 현지 가이드가 해준말을 더듬어보면..
당시 오키나와의 선택지는 딱 둘밖에 없었답니다
중국에 먹히느냐 일본에 기어들어가느냐
독립한다고 해도 누구도 지켜줄수도 없고 지킬만한 힘도 경제력도 없고 자급자족도 안되는 식량사정으로 어떻게든 남에게 기델수밖엔 없는 상황이었다고함
북한처럼되느냐 그나마 한참 잘나가던 시대의 일본이 주는 콩고물이라도 받아먹느냐..
크릉 20-06-22 16:29
   
우리도 3.1 운동때 여학생을 일본도로

배었다고 함

독립운동가중에 몇은 이걸보고 독립운동 시작했다고
ssak 20-06-22 18:02
   
오키나와는 독립 운동도 안하고.  일본이 패망했을 때도 독립 원한다고 안함.  어차피 쪽바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