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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15 17:18
백제 왕사를 보면 신기한 점 하나
 글쓴이 : 워해머
조회 : 762  

백제는 동시대 고구려나 신라와 비교해서 왕들의 재위 기간이 유독 짧았는데 

반란으로 인해 살해당하거나 전투 중 사망한 왕들이 많기 때문. 

그 때문에 백제는 왕권이 불안정하고 피비린내 나는 것으로 가장 도드라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백제 국왕들의 평균 수명은 굉장히 긴 편. 

신라나 후대의 고려, 그리고 조선은 40대 초반에 죽은 왕들이 수두룩하지만

백제의 왕들은 60세를 넘긴 왕들이 많음. 

그뿐만 아니라 고구려도 60세 이상까지 산 왕들이 많이 보이는데 

장수왕은 98세까지 살았으며 교차검증까지 되므로 진짜 오래 살아서 장수왕. 

아마 고구려와 백제 모두 뿌리가 부여인 것을 생각하면 

부여계통의 왕가는 장수 유전자를 소유했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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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틱 20-12-15 17:20
   
살아 남아서 강한 거라능...
안알려줌 20-12-15 17:22
   
장수 유전자 보다

내부의 적 독살등이 많았을 듯

식습관이라든가
     
워해머 20-12-15 17:23
   
네. 그래서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백제는 왕권이 대체로 약했어요. 살해당한 왕들이 많았음.
포테이토칩 20-12-15 17:24
   
98세까지 나라 다스리면 노망같은 것도 올법한데...말년에는 권신 혹은 손자가 정사를 대리해서
보지 않았을까 싶죠
     
켈틱 20-12-15 17:26
   
그만큼 주변 정지작업으로 사람이 없었을텐데 말이죠.
도나201 20-12-15 17:52
   
정확히는 북부여.........

북부여.
부여  고조선

부여
여진, 말갈. 흑수말갈. 금 
(요나라는 북부여와 상관없는 선비족 파생)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신라 토착민흡수. 
(가야  역시 진한변한마한  이세지역을 통합한 지역부족국가체계로보기에는 조금어려움  고구려의 토착민 흡수 및 기타 토착국가로서 인정 관리로 신라 건군기가 겹칩. )

여기서 특이점은 바로 고구려에서 신라 자체건군 전에 기존 토착세력 일본으로 이주.
즉, 이부분 과  위의 삼한의 토착국가로서의 흡수 부분을 교묘히 조작한것이 임라 일본부.

백제는 여기서 애매한것이 
산둥지역.....및 발해만 지역이 원래 소서노의 경제기반 지역이였음.
그후 시간이 흘러서 이쪽 기반은 정벌이라는 광개토대왕의 ....이야기가 있는데.
실질적인 백제의 경제기반을 없애는 사건이였다고 보는게 정확함.
그후 한강 이남의 수도이전. 이 결행된것임.
기존 경제기반이 붕괴되면서 한강의 이주가 필연적인 사항이였음.

그후에 역사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대부분 광개토왕비로 인한 고대역사로 기록됨.
이부분은 중국역사서와 맞물려서 기존정설로 남게됨.


문제는 신라의 역사의 미스터리가 몇가지 있는데 이게 고려의 분서로 인해서 모든기록이 소실되었다라는 정설임.

그래서 삼국유사 삼국사기  두자료를 근거로 고대사를 이야기 하고 있음.
그러나 이두사서에 나온것은 고조선의 역사만을 취급해서 매우 애매한 역사적인 기록만 남김.

특히 부여로 파생된 북만주지역의 및 간도지역의 역사는 의외로 사장됨. 

이게 애매한것은 후에 고려시대의 후금의 생성은 같은 민족이라는 것으로 불가침선언을 함.
이건 뭐 신라의 왕손이니 뭐니 전설같은 이야기고 .
실제로는 북부여의 같은 조상이라는 역사적인 기반으로 한것 아닌가 하는 문제로 보여짐.

거기에 발해역시 흑수 말갈과의 조합이 성립될수 있었던것은
고구려이민자........및 일부 지배계층.  흑수말갈
즉, 기존 토착민이 고려지배계층을 받아 들일수 있었던 가장 큰이유는 바로 이 북부여의 자손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라는 설이 지배적임..
뭐 이건 현재 사학계의 이분성이 존재하는 말이지만,

어떻게 보면 고조선을 한정짓는 고대역사는 조금은 많이 애매한 이야기를 남김.

거기에 진나라를 기준을 나타난 동이족 
초한지에서의  기록에서 고조선사람 자방 장양의 진시황 암살실패
가 나오면서 고조선의 확실한 국가로서의 실체를 인정하게됨.

여기서 진나라가 고조선 변방지방을 침공해서 가족이 사살된것으로 암살가담.

하지만 북부여 및 부여의 실체가 애매한것이.

바로 유리왕의 어머니의 존재임.

바로 유리왕의 어머니의 존재가 북부여의 한개체의 영주의 딸이기 때문.

고구려가 유리왕이후에 백제로 분화......그후 신라지역에 군사파견 토착민을 걷어내고 신라건군...
그후 신라를 항상 고구려측에서는 군사적지원을 아끼지 않고서 지원해주고 있음.
그것을 바탕으로 주변 삼한지역을 흡수 점령  백제를 압박.

결국 백제의 중국의 남북부의 경제적해양기반이 북부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나타냄.

특히 제나라의 경제기반은 이후 급속히 저하되어서 후에 주변국에서 많은 시달림을 당하게됨.
한나라이후에 수당을 거치면서 제나라는 경제적인 기반을 잃어서
당나라에 결국흡수되게됨.

이모든 중국의기반은 수나라의 수로정책이 가장 큰원인이였음.
해양기반의 중국 남북부를 이어주던 제나라의 경제기반이
수나라의 수로정책으로 인해서 완전히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됨.   
그이후 제나라의 백제라인은 완전히 끊겼다라는 것이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