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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15 21:13
거란 40만명 VS 고려 3천명 / 133배 병력차를 이긴 양규 장군
 글쓴이 : 러키가이
조회 : 1,126  


거란 40만명 VS 고려 3천명 / 133배 병력차를 이긴 양규 장군






1010년(현종 1) 거란 제2차 침입 당시 거란의 성종(聖宗)이 40만 대군으로 직접 고려에 침입하였다.

같은 해 11월 거란군이 압록강을 건너 흥화진을 포위하고 고려의 항복을 종용하면서 전투는 11월 17일부터 23일까지 1주일 간 전개되었다.

흥화진에는 순검사(巡檢使) 양규(楊規)가 거란의 압박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전투를 지휘하여 적을 물리쳤다.

어쩔 수 없이 거란은 흥화진을 남겨둔 채 통주(通州) 방면으로 진격하여 삼수채에서 고려 삼군(三軍)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때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 강조(康兆)는 적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

거란은 강조의 서신을 만들어 흥화진의 항복을 재차 요구하였으나 양규는 이를 단연히 배격하였다.

거란 제2차 침입 때의 흥화진전투는 양규 등의 결사항전으로 흥화진이 고수됨으로써 거란군의 남하 병력을 분산시키고 그들의 후방을 교란하게 되어 고려군이 반격의 여건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거란 제3차 침입 당시 흥화진전투는 강감찬의 뛰어난 전술구사와 병력운용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귀주대첩의 전승을 거둘 수 있는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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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키가이 20-12-15 21:14
   
정말;;;캐도 캐도 나오는;;;이런 환장한 장군들이 나오는;;;대한민국이란~~~!!!
니에루 20-12-15 21:18
   
이런것들좀 시리즈물로 만들면 대박날텐데..
콜라코카 20-12-15 21:18
   
강조 이양반이 거란군이랑 대회전 했다가 고려 망할뻔....
러키가이 20-12-15 21:22
   
https://www.youtube.com/watch?v=zJIkxPsi2kg

영상 안보이시는 분들은 클릭
감방친구 20-12-15 21:23
   
그렇지 않아도 잡게에 양규 얘기 쓰고 싶었는데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당진사람 20-12-15 21:24
   
40만은 말이안됨 거란족이 인구가 100만은 될까나?
     
워해머 20-12-15 21:26
   
당연히 부풀려진 숫자입니다. 그걸 감안해도 양규는 대단한 인물이고요.
     
굿잡스 20-12-15 21:40
   
936년 거란 요는 인구 밀집 곡창지대인 연운 16주를 획득하게 되군요(발해인들이 대거 사치된 동경 일대(발해 서쪽)의 요동 반도도 주요 양대 곡창지대)
     
감방친구 20-12-15 21:41
   
사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20만이 실제 전투병력이고 나머지 20만은 예비병력(보충병력)이라 보고 있더군요

그리고 이미 저 당시 거란은 기존 거란 인구에 발해, 해, 습, 그리고 유주와 계주, 단주 등 하북 지역에서 끌고 간 인구까지 제법됐습니다
촐라롱콘 20-12-15 21:38
   
고려VS거란 전쟁에서는 다른 한편으로 발해유민들이 고려와 거란 양쪽 모두로부터 최선봉에 내세워져서

발해인들 입장에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되기도 했지요~~~
하늘나비야 20-12-15 21:43
   
대단하네요 진짜 무슨 알면 알수록 대단한 분들이 많았네요
굿잡스 20-12-15 21:50
   
연운 16주는 지금의 하북과 산시지역으로 태행산맥의 좌우에 위치.

이곳을 북방 유목 거란이 먹음으로써

요라는 유목제국은 호전적 전투력에 장기전으로 이끌 경제력과 인구도 획득하면서

이런 천연의 자연 치세의 방어벽도 허물어지게 되자 본격적 북방과 동방 이민족 세력에게

서토 하한족은 돌림빵으로 다시금 이리 저리 털리고 결국 최하층 사고 팔리는 노예로 전락하게 되군요.
굿잡스 20-12-15 21:54
   
이런 요 이후

반요 사상의 신라계 황제와 발해인 연합의 대금이

요,송을 무너뜨리고 아예 고구려계 장호가 북경에 중도 건설을 총지휘 도시 문명을 닦고 다시금 들어간 몽골의 쿠빌라이는

이런 서토 강북을 기반으로 물자를 통제 대칸에 오르면서 본격적 남송 정벌의 기반을 확고히 마련.


고려 양규와 그 휘하 부하들은

영화같은 실제판 스파르타 300을 찍었고

영화 스파르타 300은 구라판.
뱃살마왕 20-12-16 01:52
   
가슴이 벅차오르게 하고 자부심이 쩔게 만들어 주신 분입니다
마지막장면에서 화살비를 맞고 전사하실때 비장함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