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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27 04:59
금나라 시조 함보는 성이 없었다고 봐야 해요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040  

우리 측 단편 기록에 김함보라 적고 있지만
저들 측 여러 기록에서는 성이 없어요
우리 측과 저들 측 거의 모든 기록에서
성 없이 이름만 적고 있는데
함보, 감포, 긍포, 금준 등 다양합니다
즉 어떤 말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죠

훗날 4개의 완안부가 갖추어지고
이 완안부를 중심으로 금나라가 건국의 전조가 조성 되면서
그 때에 이르러 점차 부족명인 완안을 성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완안씨, 한자로 하면 왕씨로서
당시 남조라 할 고려의 왕성과 동일한 것은
이상한 우연이라 하겠습니다

어찌됐든
김함보, 또는 김함보로 대표성을 띠는 어떤 소수집단이
후삼국 시대 즈음에 고려 땅을 떠나 현 하얼빈 아청구 지역으로 이주한 것은 사실로 판단됩니다

금나라 당대의 견문기, 사서 등이 모두 그렇게 적고 있어서 달리 볼 여지가 없습니다

이를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는 중국 측이나 일본 측의 고질적인 분리주의 사관 기조를 따르는 쪽에 있을 뿐입니다

금나라 이후 수백 년이 지난 후 여말선초에 출현하는 여진족은 원나라 망하면서 풀려나 성격화한 것입니다

현 북류 송화강 서북쪽에서 사평시 일대에 걸쳐 있던 여진족이 해서여진,

하얼빈 지역에서 목단강 경로를 타고 남진하여 현 목단강 동경성 영고탑을 중심으로 두만강 남쪽까지 활동하며 뭉쳐있다가 점차 길림 서남쪽, 동가강 북쪽 지역으로 옮겨간 것이 건주여진

이 건주여진이 주체가 된 것이 후금, 훗날 청나라로서
이들 성이 애신인 까닭은 금을 숭상한 까닭으로 신라 국성 김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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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 20-12-27 05:13
   
가생이 뇌섹남
워해머 20-12-27 05:20
   
저도 함보가 엄연히 사서에 등장하는 인물이라 이 사람의 존재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기록을 부풀려서 후의 청나라 애신각라씨 황실을 신라의 김씨와 연결 짓는 건 웃기는 짓이라고 봅니다. 하나, 금나라 때 여진족들도 그렇고 청나라의 만주족들도 자꾸 우리를 언급하던 거 보면 확실히 고대부터 오랜 기간 우리와 같은 집안 식구로 살았다는 걸 저들이 인지했던 건 분명하다고 봅니다.
     
맙소사 20-12-27 06:04
   
완안 애신각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 황제 영화 보면 청의 마지막 황제가 중국 공산당에 잡혀서 호명될 때 김 아무개라고 불립니다
외국인 감독(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이 만든 작품에 아무런 관계 없는 사람이 청의 황제 푸이를 김 아무개라고 했거든요. 이 영화 원작은 푸이의 자서전을 참고한거요
          
감방친구 20-12-27 06:34
   
완안 애신각라라는 말은 없습니다
완안은 금을 세운 완안부의 족명이자 황족의 성씨로서 한자로 왕입니다
애신은 후금을 세운 건주여진의 족명이자 황족의 성씨로 한자로는 금(김)입니다
도나201 20-12-27 05:21
   
참고하자면.

몽고침입당시......즉, 고려 몽고침입당시 이미 금나라정벌때 .

동북아에서 고려, 송,  금 이렇게는 몽고에 매우 대항하던 국가였고 그에 대해서 매우 격렬히 저항하던 국가였습니다/

실제로 국력도 괜잖은상황이였고,
하지만 제일 먼저 금나라가 침공당하고 거의 학살수준으로 금나라왕조를 멸하였습니다.
이때 금나라의 모든 왕조 및 문화유산은 전부 소멸수준에 이르렸습니다.

물론 고려 에 삼국문화의 유산도 소멸한것도 사실입니다.

그로인해서 분리주의가 힘을 받게 된것이죠.

그렇다고 후금의 건국에 전혀 영향을 끼친 당위성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다만 고구려의 북방진출에 영향을 받아서 고려가 국명이 되었듯이

후금 역시 금나라라는 지역적인 왕조의 영향을 받아서 후금으로 국명이되었고 후에 청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당시에는 후금의 명칭이라는 것은 조선에게 하대받는듯한 인상이 강하고 .
고려 패망시킨후 건국된 조선이라는 명칭은 고조선을 이어받은 국명이라서

사실상 금나라에 대한 무게감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국제적인 위상이 한몫했다라는 것입니다.

즉, 조선이라는 국명자체가 고조선의 선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명나라 역시 한족국가라는 정통성을 내세우기 시작하면서

금나라라는 이미지는 일종의 파생국가로 위상을 삼아서  조금은 변방국의 이미지를 상쇄하고자 청으로 국명을 바뀌게 됩니다.

근데 후금.......이게 국명으로 지정되었다라는 사실은 지역적 파생국가라는 것은 확실히 다른이민족의 한 국가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이미 알려져온 사실인데.

웬지 만주국 이라는 가상왕조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부분이 엄청나게 ...왜곡되었습니다.
결국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의 순조였조.....ㅡ..ㅡ
seharu77777 20-12-27 05:59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근데 납득 안되는 부분이 우리측 사서에 김씨로 나왔지만 저들에게는 성씨가 안 보여 성이 없다 혹은 아니다 라는 결론???이 이상하구요. 우리 측 사서는 그럼 과장 혹은 허구로 보시는지요. 아님 중국사서에 비중을 두시는 건지요?  그 어떤 사서도 100퍼센트는 없다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계는 거기서 창씨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백제계 혈통이 아닌 것은 아니지요. 즉 김씨가 넘어가서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면서 창씨개명할 가능성은 접어둔채 사서에 없다고 연관성이 없다 단정하시는지요?

 어느 지역으로 가서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다 생각해 봅시다 새로운 성을 창씨하고 1대가 되는게 당연할 수도 있는 것 아닌지요?

고주몽은 주몽 혹은 추모라 불리웠고 해씨에서 고씨로 지역 정치기반을 위해 바꾸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요?

마지막으로 중화혁명 후 아이신쥬르가 왜 왕씨가 아닌 김씨로 성을 바꾸었지요?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왕씨로 바꾸는게 더 연관성이 높아 보입니다. 김씨로 개명한 다른 이유가 있는지요?

저는 이상한 애신각라의 의미는 허구라 보고 사실적으로 고려에서 넘어간 고려인 혈통의 황실 그리고 발해여진동본일가처럼 동일지역 기반으로 역사적 동질성을 유지했다 보는데요~
     
감방친구 20-12-27 06:32
   
건주ㆍ해서 등의 후금 여진과 완안의 금 여진은 계보 직결성을 이렇다 말할 수 없습니다

금나라 중심부는 해릉왕 이후로 연경, 즉 현 북경이었고 그 황족들과 지배층 대부분이 여기에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몽골이 침략한 후로 그 지배족속은 파멸되었습니다

애신각라라는 것은 아이신줘러, 즉 금씨, 또는 금겨레라는 것으로
부족명칭이며

몽골의 황금씨족을 본 딴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들 역시 금을 숭상했고 그 본적지가 현 하얼빈 아청구 아시허 일대, 즉 아술화/안출호/아이신 = 금, 였던 까닭에 있습니다

이 지역은 요나라 당시부터 금 산출지였습니다

물론 신라 김씨 왕실 역시 금을 숭상했고 여기서 족명, 즉 성을 땄다 생각됩니다

청이 망하고 중화민국이 들어서며
애신씨를 금씨, 즉 김씨로 바꾼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