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측 단편 기록에 김함보라 적고 있지만
저들 측 여러 기록에서는 성이 없어요
우리 측과 저들 측 거의 모든 기록에서
성 없이 이름만 적고 있는데
함보, 감포, 긍포, 금준 등 다양합니다
즉 어떤 말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죠
훗날 4개의 완안부가 갖추어지고
이 완안부를 중심으로 금나라가 건국의 전조가 조성 되면서
그 때에 이르러 점차 부족명인 완안을 성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완안씨, 한자로 하면 왕씨로서
당시 남조라 할 고려의 왕성과 동일한 것은
이상한 우연이라 하겠습니다
어찌됐든
김함보, 또는 김함보로 대표성을 띠는 어떤 소수집단이
후삼국 시대 즈음에 고려 땅을 떠나 현 하얼빈 아청구 지역으로 이주한 것은 사실로 판단됩니다
금나라 당대의 견문기, 사서 등이 모두 그렇게 적고 있어서 달리 볼 여지가 없습니다
이를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는 중국 측이나 일본 측의 고질적인 분리주의 사관 기조를 따르는 쪽에 있을 뿐입니다
금나라 이후 수백 년이 지난 후 여말선초에 출현하는 여진족은 원나라 망하면서 풀려나 성격화한 것입니다
현 북류 송화강 서북쪽에서 사평시 일대에 걸쳐 있던 여진족이 해서여진,
하얼빈 지역에서 목단강 경로를 타고 남진하여 현 목단강 동경성 영고탑을 중심으로 두만강 남쪽까지 활동하며 뭉쳐있다가 점차 길림 서남쪽, 동가강 북쪽 지역으로 옮겨간 것이 건주여진
이 건주여진이 주체가 된 것이 후금, 훗날 청나라로서
이들 성이 애신인 까닭은 금을 숭상한 까닭으로 신라 국성 김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