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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28 19:33
왕건 고려의 결정적 문제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567  

고대 강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우선 사서를 원문으로 독해할 능력과 근기(성실성과 투지)가 있어야 하며
합리적 판단력과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한 개인이 갖추어야 할 선제 조건이고

어느 한 시대 특정 쟁점을 다루고자 해도
적어도 전한 대부터 나온 수십여 개의 사서를
꿰뚫고 있어야 하고
고고물질문화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서북한 평양은
궁예 때에 이 지역 호족이던 금용이 투항해 오면서
처음 후고구려 영역이 됩니다

그런데 이 평양이 서북한 평양인지도 정밀히 따져야 합니다
왜냐 하면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 땅이 아닌 신라 땅 안에서도 평양은 몇 곳에 나타나는 까닭입니다

평양이 우리말로 '난벌/난들'로서 너른 땅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쓰였던 까닭입니다

신라는 고구려 평양 지역을 영역화한 적이 없습니다
이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고구려본기, 지리지 등을 면밀히 보면 다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금용이 투항해 올 당시를 보면
후고구려의 북쪽에서 신라 북쪽에 이르는 지역의 여러 호족들이 후고구려에 투항하여 오는 상황이었으므로
현 서북한 평양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후
고려가 현 서북한 평양 지역을 다시 개발한 것은
왕건에 의해서입니다

당시 서북한 평양은 황폐화돼 있었고
왕건에 의해 도시 개발이 시행돼
그 후 몇 대에 걸쳐서
성곽을 짓고, 궁실을 짓고
주민들을 이주시켜 채웁니다

이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왕건 그 다음 대였나 이름을 까먹었는데
아무튼 그 왕이 죽자 백성들이 기뻐할 정도였습니다

이러면서
서북한 평양에 '서경'이라는 칭호가 붙여지고
그 후 다시 '호경'이라는 칭호가 붙여져 존숭됩니다

서경과 호경이라는 명칭은
주나라의 고사에서 비롯한 것으로
평양이 서쪽에 있어서 붙인 게 아닙니다

이렇게 왕건이 대내외에
현 서북한 평양을 고구려 평양으로 선전하면서
모든 게 꼬여버립니다

1) 오대의 여러 나라 지식인들이 현 서북한 평양을 고구려 평양으로 인식하면서

2) 이것이 위만조선의 낙랑군, 왕검성 등으로 연결되고

3) 이것이 진서(당 태종)와 태강 지리지의, 낙랑에 갈석이 있다, 진장성이 낙랑에서 시작된다 ㅡ 하는 것과 결부돼서, 또한 통전의 장성이 요수를 끊고 고구려 땅으로 들어가는데 그 유적이 남아있다 한 두우의 기술과 결부되면서 송나라의 지리도, 거란국지의 지도 등 송나라 때부터 나온 지도에 만리장성을 현 서북한 압록강이나 그 남쪽까지 표시하기 시작합니다

4) 그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이름은 들어보셨을 후한서 군국지, 구당서 지리지, 신당서 지리지 등은 모두 송나라 때에 편찬된 것으로 여기에 낙랑군이 낙양, 또는 장안에서 5천 리 운운하는 기술이 들어가게 됩니다

5) 그리고 압록강이 현 서북한 압록강으로 인식이 굳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 모든 내용은 제가 직접 연구하여
지난 수년 동안 동아게에서 수차례 얘기해왔던 것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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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속으로 20-12-28 19:40
   
역사를 추적하려면 어원이나 말뜻도 상당히 중요하네요.
님이 어원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감방친구 20-12-28 19:41
   
네, 그렇습니다
또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순수문학을 했던 데에도
말에 대한 애착이 더한 듯 합니다
감방친구 20-12-28 19:46
   
※ 지리정보 중심 편찬 순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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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총요 (10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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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주 (128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