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반도체와 소재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도 강조했다. 소재와 반도체가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다. 양 원장은 “일본이 세계
90%를 점유한다고 자랑하는 그 소재의 생산에도 반도체가 들어갈 것이다. 각국의 군수용품에도 반도체는 필수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반도체 기술패권이 강하다는 것은, 일본의 조치가 한국이 아닌 전 세계를 피해자로 만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해법으로는 정경 분리 원칙과 국제사회 공조를 강조했다. 그는 “강제노역은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은
과거”라며 “피해자가 엄연히 있는 문제를 경제 분야로 비화시키는 것은 (일본의)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했다. 그는 “반도체는
500개가 넘는 공정을 맡은 누구 하나가 자신의 잘못을 얘기하지 않으면 대거 불량품이 나오는 양심 산업”이라며 “이 산업에서
한국이 세계 최고가 돼 전 세계 공급을 담당하는데 (일본이) 비양심적 조치로 공급망을 붕괴시켜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에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풀되 경제는 협력적 경쟁 관계로 가자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했다.
양 원장은 이른바 ‘문재인 키즈’로 정치권에 영입되기 직전인 2016년 1월까지 삼성전자에서 플래시메모리 설계·감수 팀을
진두지휘했다. 고졸 사무 보조에서 반도체 개발 임원에 오른 신화의 주인공이다. 여기엔 입사 직후 정진한 일본어 실력이 한몫했다. 고
이병철 회장은 1988년에 일본 내 최고 반도체 전문가로 당시 NTT 전무였던 하마다 시게타가(95) 부부를 서울 올림픽에
초청했다. 하마다 박사는 이병철 회장이 ‘호암자전’에서 반도체 은인으로 여러 번 언급하는 인물로 이 회장과는 친형제처럼 지냈다.
고졸사원 양향자가 이때 하마다 박사 부부의 통역 안내를 맡았다. 이 인연이 31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간 하마다 박사와 주고받은
손편지만 1000통이 넘는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해서도 평가했다. 그는 “반도체 성장에는 세가지 환경이 필요하다. 장기간의 기술 축적,
대규모 시장, 기술 인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미국 IT기업이라는 거대 시장의 ‘하드웨어 파트너’가 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대규모 시장과 장기적 축적이라는 두가지가 없다”고 했다. 돈을 쏟아부어도 금세 쫓아갈 수 없는 게 반도체
기술이라는 의미다. 그는 “더구나 반도체는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 시장”이라며 “중국은 민간기업 아닌 정부
돈을 쏟아부으니 좀 더 버티겠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한국이 일본과 갈등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메모리에서 중국, 비메모리에서 대만이 엄청나게 유리한 상황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꼭 한마디 덧붙여달라고 했다. “5G를 선도하면서 반도체까지 쥔 우리나라에서 4차 산업혁명 가장 먼저
일어나지 않으면 땅을 칠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가 대기업을 악(惡)이 아닌, 기술 패권을 지닌 중요한 존재로 보는
시각으로 바뀌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내부에서 비난과 비판보다 힘을 모아 함께 위기에 대응하는
한편으로, 국가 인재를 키울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