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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52·사법연수원 28기)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판결이 활용되는 건 피해야 한다"며 2012년과 지난해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정면 비판해 파문이 일고 있다. 현직 부장판사가 한일 무역전쟁의 근원으로 지목되는 이 판결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1일 김 부장판사는 전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징용배상 판결을 살펴보기'란 제목의 A4용지 26쪽 분량의 글을 통해 "대법원은 2012년 상고심에서 원칙을 무너뜨리는 해석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원고들의 억울한 사정이 풀어졌는지 모르겠으나 이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의 기본원리가 상당 부분 흔들리게 됐다"며 "(법원은) 감당하기 힘든 실수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또 "나라면 최초 1·2심 판결처럼 판단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일본을 두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법률, 법학의 일반적인 법리, 대법원과 각급 법원이 쌓아온 선례를 통해 보편적인 법의 잣대로 판단하면 그게 맞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부장판사가 이 글에서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한 것은 2012년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이다. 앞선 1·2심은 △일본 법원 판결의 기판력(확정된 판결에 대해 다시 재판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소송법적인 효력)에 저촉된다는 점 △국제노동기구(ILO) 조약에 근거해 국제법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 △구(舊)일본제철과 신(新)일본제철(신일철주금)을 같은 법인으로 볼 수 없다는 점 △원고들의 위자료 청구권이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점 등을 들어 피해자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모두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주심은 김능환 전 대법관(68·7기)이었다.
김 부장판사는 당시 판결에 대해 크게 △소멸시효 △법인격 법리 △일본 판결 기판력 등 세 가지 문제점을 제시했다. 그는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 모두 귀향한 1945년 12월부터 소송이 제기된 2005년까지만 보더라도 약 60년, 일본과 국교가 회복된 1965년을 기준으로 봐도 4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전제한 뒤 "이는 민법 제766조에서 정하는 불법행위의 소멸시효 기간인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의 소멸시효'를 훌쩍 넘어선 것"이라고 전했다. 김 부장판사는 "하지만 대법원은 신의성실에 반해 권리남용이 되기 때문에 (소멸시효 완성이)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법인격 문제에 대해선 "피해자들을 고용했던 구일본제철은 1950년 4월에 해산하면서 소멸됐고, 신일본제철은 피해자들을 고용했던 회사가 아닌 새롭게 태어난 법인"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이러한 장애를 넘기 위해 대법원은 공서양속(사회질서)이라는 규정을 사용했는데, 이러한 사례는 그동안의 경험에서 본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일본 판결의 기판력과 관련해선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판결이 선고되고 확정되면 기판력이라는 게 생겨 이를 어기려면 그만한 사정이 있어야 하는데, 대법원은 일본의 판결이 공서양속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결국 대법원은 신의성실이나 공서양속 위반 등과 같은 이례적인 원칙들로 쉽게 (피해자들의 법적 장애 요소를) 넘어버렸다"며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고통받았던 많은 국민들 중에서 피해자들과 같은 입장이었던 사람들뿐 아니라 이미 보상을 받았던 사람들도 그 형평성을 문제 삼아 다시 법적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부장판사는 글 말미에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의 한 판결문을 인용했다. 이 판결문에는 미국 법원은 전쟁포로수용소 피해자였던 미군 병사가 일본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하면서 "원고가 받아야 할 충분한 보상은 앞으로 올 평화와 교환됐다"고 판결했다는 내용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