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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8-25 19:59
고구려를 중국 역사로 인정하지 않았던 중국 여친
 글쓴이 : 달의영혼
조회 : 3,186  

중국 여친이 있었는데 
하루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너도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고 생각하냐?"
그러자 중국 여친은
"뭔 개소리야?고구려가 한국역사지 어떻게 중국 역사야?"
다시 제가 말했죠.
"중국인 한명이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이라고 하더라고."
그러가 중국 여친이 발끈하면서 대답했습니다.
"뭔 소리야? 중국이 조선족을 중국인으로 받아들인건 문화대혁명 이후인데"
제가 다시 물어봤죠
"그럼 고구려가 한국역사라는거지?"
여친의 대답
"한국 역사가 맞는데 지금은 북한이라는 ㅄ 괴뢰집단이 자리잡고 있어서 북한 역사인거지.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였던 평양이 한국땅은 아니잖아!"

응??북한역사??

뭐 당시 24살의 어린 나이였고 여친은 21살이었는데 그저 고구려가 중국역사가 아니라고 하는 것에 고마웠던 생각이 나네요. 지금이었다면 왜 북한 역사냐고 항의했을듯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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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ikhu 19-08-25 20:00
   
말리셨네요. 당한거임
     
달의영혼 19-08-25 20:02
   
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라...또라이이긴 했어도 똑똑했어요 ㅋㅋㅋ
본자아 19-08-25 20:01
   
맞는 말이쥬
민족의 역사는 맞아도 고구려 영토는 우리밖의 영토 문제라서
그려서 통일은 필수라는 거여유
     
굿잡스 19-08-25 20:07
   
??

역사 계승 의식은 단순히 영토 어쩌고로 이야기 되는게 아니군요.

그런식이면 지금 미국이 북미를 지배하고 있다고 인디언 역사가 미국 역사???


충주 고구려비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3885
          
본자아 19-08-25 20:11
   
통일의 당위성을 말하는거쥬
우리의 것이라고 말하려면 통일을 해야 되며
통일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자들에게 해야되는 당위성을 말하는거여유

만일 통일을 안 한 상태에서 짱개에다 고구려역사는 우리것이다 라고 하면
또 오랜 말다툼이나 진위 싸움만 이어져야 되니 분명히 하고 가야 하는거쥬
               
굿잡스 19-08-25 20:13
   
통일의 당위성은 같은 민족 같은 역사 계승 의식이기에 당연한 것이고

이건 유럽의 동서독의 통일등을 봐도 별 논란의 소지가 없는 문제군요.

(그걸 지금의 분단상황 어쩌고로 고구려가 우리 역사에서 애매하니 어쩌고는 논외 부분)
     
굿잡스 19-08-25 20:11
   
애초에

삼국사기등 고구려 역사를 자국 역사로 기술하고 편찬 계승한 나라는

한쨉쭝 중 우리나라 뿐이며

더구나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자체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대(삼)한을 합쳐 나온

명확한 역사적 계승의식을 확고하고 분명히 드러낸게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의 국호군요.
     
굿잡스 19-08-25 20:15
   
大周故冠軍大將軍行左豹韜衛翊府中郞將高府君墓誌銘幷序」君諱玄字貴主遼東三韓人也

대주(大周)의 고인(故人)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 행좌표도위(行左豹韜衛) 익부(翊府) 중랑장(中郞將) 고부군(高府君) 묘지명(墓誌銘) 및 서문(序文)
부군(府君)의 휘(諱)는 현(玄)이요 자(字)는 귀주(貴主)로서 요동(遼東) 삼한인(三韓人)이다. 

ㅡ고현묘지명(高玄墓誌銘) 

세종실록 45권, 세종 11년 7월 4일 무신 6번째기사 1429년 명 선덕(宣德) 4년   

예조에서 삼국 시조에게 제사지낼 것을 건의하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신라·고구려·백제의 시조(始祖)에 대해서는 이미 사당을 세웠으니, 청하건대 사전(祀典)에 기재(記載)하고 치제(致祭)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禮曹啓: "新羅、高句麗、百濟始祖, 今已立廟, 請載祀典致祭。" 從之。 



세종실록 51권, 세종 13년 1월 10일 을해 5번째기사 1431년 명 선덕(宣德) 6년   

호조에서 백제·고구려·신라 시조의 제전을 2결씩 급여하다 
   
호조에서 아뢰기를, 

"충청도의 백제(百濟) 시조(始祖)와, 경상도의 신라(新羅) 시조(始祖)와, 평안도의 고구려(高句麗) 시조(始祖)의 제전(祭田)을 각기 2결(結)씩 급여하시기를 청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戶曹啓: "忠淸道 百濟始祖, 慶尙道 新羅始祖, 平安道 高句麗始祖祭田, 請各給二結。" 從之。 


세조실록 22권, 세조 6년 10월 17일 기미 1번째기사 1460년 명 천순(天順) 4년   

영숭전·단군·고구려 시조·기자전에 나아가 제사를 행하다 
   
임금이 친히 영숭전(永崇殿)에 제사하고, 마침내 단군(檀君)·고구려 시조(高句麗始祖)·기자전(箕子殿)에 나아가 제사를 행하였다. 승지(承旨) 홍응(洪應)에게 묻기를, 
   
"고구려 시조가 누구인가?"하니, 홍은이 대답하기를, 
"고주몽(高朱蒙)입니다."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삼국(三國) 중에서 고구려가 막강하였다." 하였다. 


선조실록 39권, 선조 26년 6월 5일 무자 5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유 원외를 접견하고 관의 설치, 중국군의 주둔 등을 논의하다 


또 말하기를, 

"귀국은 고구려 때부터 강국이라 일컬어졌는데 근래에 와서 선비와 서민이 농사와 독서에만 치중한 탓으로 이와 같은 변란을 초래한 것입니다. 지금 천조는 귀국을 금구 무결(金甌無缺)한 국가로 삼으려고 하는데 귀국은 이를 알고 있습니까?" 
 하였다. 

又曰: "貴國自高句麗, 號稱强國, 邇來士民, 唯事耕田、讀書, 馴致此變。 今天朝使貴國爲金甌, 貴國知否? 


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9월 29일 양력 2번째기사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   

김재현 등 716명이 황제로 칭할 것을 연명으로 상소문을 올리다 


우리나라는 지역 경계가 중국과 잇닿아 있고 나라가 나누어지고 통합된 것이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세 나라는 각각 그 땅의 주인으로 다같이 왕의 칭호가 있었으며 심지어 송양(松讓), 가야(伽倻), 예맥(濊貊), 여진(女眞), 탐라(耽羅) 등의 작은 나라들도 각기 왕으로 불렀습니다. 고려 때 통합하여 다만 묘호(廟號)만 썼으며 본조(本朝)에서는 옛 관습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이것은 당(唐) 나라와 송(宋) 나라 이후 그 나라들이 멀리서 존호(尊號)를 견제하였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우리나라는 삼한(三韓)의 땅을 통합하여 영토는 사천리를 뻗어있고 인구는 2천만을 밑돌지 않으니 폐하의 신민(臣民)된 사람치고 누군들 우리 폐하가 지존(至尊)의 자리에 있기를 바라지 않겠으며 지존의 칭호를 받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옛 것을 인용하여 오늘에 증명하고 여정(輿情)을 참작하고 형세를 헤아려 보아도 실로 시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폐하는 여정(輿情)을 굽어 살피셔서 높은 칭호를 받아들여 만국에 공표하여 천하에 다시 새로운 관계를 세우신다면 종묘 사직(宗廟社稷)을 위하여 더없이 다행하고 신민에게 더없이 다행이겠습니다." 
   

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10월 13일 양력 2번째기사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   

국호를 대한으로 하고 임금을 황제로 칭한다고 선포하다 

반조문(頒詔文)에, 

"봉천 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001) 는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린다. 짐은 생각건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우리 태조(太祖)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국토 밖으로 영토를 더욱 넓혀 북쪽으로는 말갈(靺鞨)의 지경까지 이르러 상아, 가죽, 비단을 얻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탐라국(耽羅國)을 차지하여 귤, 유자, 해산물을 공납(貢納)으로 받게 되었다. 사천 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王業)을 세웠으니, 예악(禮樂)과 법도는 당요(唐堯)와 우순(虞舜)을 이어받았고 국토는 공고히 다져져 우리 자손들에게 만대토록 길이 전할 반석같은 터전을 남겨 주었다. 
   
짐이 덕이 없다 보니 어려운 시기를 만났으나 상제(上帝)가 돌봐주신 덕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안정되었으며 독립의 터전을 세우고 자주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 군사들과 장사꾼들이 한목소리로 대궐에 호소하면서 수십 차례나 상소를 올려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올리려고 하였는데, 짐이 누차 사양하다가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올해 9월 17일 백악산(白嶽山)의 남쪽에서 천지(天地)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 이해를 광무(光武) 원년(元年)으로 삼으며,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의 신위판(神位版)을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고쳐 썼다. 왕후(王后) 민씨(閔氏)를 황후(皇后)로 책봉하고 왕태자(王太子)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하였다. 이리하여 밝은 명을 높이 받들어 큰 의식을 비로소 거행하였다. 이에 역대의 고사(故事)를 상고하여 특별히 대사령(大赦令)을 행하노라.
Wombat 19-08-25 20:02
   
뭐 제3자 입장에서는 북한역사라고도 볼수있죠
운드르 19-08-25 20:06
   
현재로서는 틀렸다고 보기도 애매하고... 빨리 통일해야죠
     
ncser 19-08-25 20:39
   
고구려는 현재의 서울도 점령 했었으니 틀린 거죠. 그리고 역사에 있어서 땅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중요하죠. 남한 사람들도 고구려, 고려 핏줄을 이어온 건데요. 조선왕조 이성계도...
뽐뿌맨 19-08-25 20:09
   
뭐 그 정도면  상당히 바른 역사인식이네요.  문화대혁명 언급한 것으로 보아서 명확하게 알고 있구요.
북한역사는...큭.. 그건 뭐 시각의 차이일 뿐이라 할말 없습니다.
booms 19-08-25 20:12
   
흐음~
밤말들은쥐 19-08-25 20:19
   
애초에 한국인보고 가오리 빵즈라고 부르면서 고구려는 또 북한거라니 웃김.
류자키 19-08-25 20:28
   
삼국시대에도 한강지역을 깃점으로 끊임없이 영토분쟁을 하고 대한민국에도 고구려의 일부였던 지역이 있는데 단순히 영토가지고 통일이 필수이고 북한역사가 맞다라 반대로 말하면 민족 정체성도 없고 우리역사가 아니란 말인가요 이게 무슨 기가 찰 노릇인가요 중국인은 우기듯이 글타쳐도 우리사람은 그러지 맙시다요
크흐롬 19-08-25 20:34
   
당연히 북한역사지(그리고 우리가 북한을 먹으면 중국역사가 되는거고) 이렇게 괄호안의 말을 생략했을지도
그리고 평양성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죠
ncser 19-08-25 20:35
   
영문으로 사우스, 노스 코리아니까 아직도 남고려, 북고려인건데 고구려가 북한만의 역사일 수는 없겠죠.
이궁놀레라 19-08-25 20:57
   
우리나라 영어국명이 고려임~
누구도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사실은 부정못하는 역사적 사실임
아니야 19-08-25 21:16
   
고려 수도 개성도 북한에 있는데 그럼 고려도 북한 역사임?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