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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서 태어나 순천서 자란 미국 사람
인요한 교수는 구한말인 1895년 호남지역 최초의 선교사로 발을 디딘 미국인 유진 벨(1868~1925)의 4대손이다. 인 교수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튼(1891~1960·대전 한남대 설립자)이 벨의 사위가 되면서 벨-린튼 가문은 4대에 걸쳐 115년째 한국 땅에서 교육과 선교,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항일 운동에도 나섰다. 1995년 후손들은 벨의 한국 선교 100년을 맞아 ‘유진벨 재단’을 설립했다. 인 교수의 형인 인세반 이사장과 인 교수는 북한 주민들의 결핵 퇴치 등 의료 지원을 위해 20여 차례나 방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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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떻게 참전하셨는지.
“한국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미국에서 해군 장교로 활동하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때 참전했습니다. 전쟁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으셨지만 ‘민주주의와 자유는 피와 땀, 생명을 바쳐서 얻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아이구, 우리 아버지 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하시네. 귀찮아 죽겄네’라고 속으로 생각했죠.”
인 휴 목사는 전쟁이 끝난 뒤 54년 한국에서 예편했다. 곧바로 선교와 교육 활동으로 선대의 뜻을 이은 것이다. “아버지는 농촌 선교를 하면서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전라도 땅은 몹시 궁핍했는데, 아무리 어려워도 이쪽 논 주인이 옆 논의 곡식을 넘보지 않더라는 겁니다. ‘이 나라 국민들의 마음엔 5000년 역사를 흐르는 도덕이 있다’고 하셨죠.”
6·25 뒤 선친이 유산 1만 달러 한국 투자
그런 믿음으로 인휴 목사는 1962년 윌리엄 린튼이 남긴 유산 1만 달러를 미국인 친구 칼 밀러(민병갈·최초의 귀화 미국인)에게 맡기고 한국에 투자하도록 했다. 당시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 자본은 찾기 어려웠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성경 말씀 그대로죠. 한국의 미래를 믿은 겁니다. 미국의 작은 교회를 찾아 다니며 한국에 대한 지원을 호소할 때도 ‘한국은 희망이 있는 나라다. 도덕이 살아있고, 근면하다. 미신만 털어버리면 된다’고 호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