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이 일본군을 잡아 마루타 실험을 했을리는 만무하고 종전일은 8월15일이나 대다수의 전장에선 쇼와의 직인이 찍힌 항복명령서를 전달받을때 까지 태평양과 동남아등지의 기지에서 9월까지 버티고 있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 호주등 영미권 연합군들은 전후처리를 신사적으로 했죠. 다만 우악스런 소련군의 동진이 있었던 우리쪽의 일본군들은 무기도 쳐버리고 전부 각자도생을 했던 사실도 있습니다. 미군의 수레바퀴작전이후 폴다운작전 직전까지 연합군과 싸웠던 지역의 일본군들은 대부분 최후의 반자이돌격이나 절벽에서 번지점프로 혹은 할복으로 대다수 사망한걸로 되어있습니다.
42년 언저리 까지는 똥구멍에 헛바람 들만도 했습니다. 제법 성과가 있었거든요. 동남아시아를 삼백년 떡주무르듯 주무른 영국 네덜란드를 단 한번의 해전과 단 한번의 공수작전으로 완전하게 몰아냈으니까요. 다만 그것은 유럽에서의 히틀러의 힘이 너무 강성했던게 주요한 원인이긴 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