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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09 12:57
내각조사실 설치경위 및 초기활동안 내각조사실 사항(1952년)
 글쓴이 : 블랙맘마
조회 : 601  


내각정보조사실에 대한 기본 자료로써 내각조사실 창설 경위에 관한 공식 문서입니다

70년대 일본에서 나온 책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번역하였으며 편찬자에 따르면 원 출처는 국가지방경찰 본부 문서로 내각조사실 창설 직후 내부보고용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이며 작성자는 조사실 창설에 관여한 경찰 간부 중 한 명으로 추정되어집니다

*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제가 원 문서에 보충으로 붙인 내용들입니다

<내각관방조사실의 설치경위> 23p(국가지방경찰본부)

1. 소화 27년 3월 4?일, 국경본부 무라이(村井 順) 경비과장은 총리관저를 방문 관방장관도 배석한 가운데 치안 문제 대공홍보 관련 사안에 대한 사안을 총리(*당시 수상은 요시다 시게루) 에게 보고(具申)하였고 총리는 특히 대공선전 문제에 대해서는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서 여기에 대한 계획과 실행을 조속히 진행시킬 것을 지시하였다 .무라이는 당시 정부 정보기관이 국경(*국가지방경찰 -신 경찰법 시행 이전의 국가경찰 기관. 현재 경찰청의 전신 ) . 자경(*자치체 경찰) , 외무성 ,특심국 (*특별심사국 -현재 공안조사청 전신) 에 분산되어 여기에 대한 통합 조정이 부재되었던 점을 무척 유감으로 생각했고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내각정보실 혹은 조사실을 설치할 안을 결정, 그 개략적 구상을 쿠도工藤 경시에게 지시하여 이를 작성케 하였다 . 그래서 소화27년 3월 10일 완성된 것이 제1안이었다 무라이는 다시 이 안을 검토하여 이를 다시 요약하고 체계적으로 개정할 것을 工藤 경시에게 지시하여 소화 27년 3월 12일 제2안 <내각조사실 설치에 아우르는 운영요령(內閣調査室設置竝に運營要領> 3부가 작성되었고 , 무라이는 이를 관방장관에게 올려보냈다 총리는 대공선전 에 특히 관심을 보여 3월 ?일 개최된 치안관계각료간담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특별히 여기에 대하여 발언하였다. 제2안은 최초의 출발로써는 구상이 크게 보인다라는 데서 이를 수정하여 제3안이 작성되었고 여기에는< 내각조사실 창설에 관한 조치>가 별지로 첨부되었다.
이 계획을 알아차린 외무성은 다급히 별첨한 바-*불행히도 별첨본은 여기에 없습니다-와 같이 <내각정보국 설치계획서>를 작성 1억 5천만엔에 이르는 경비의 예산을 내각에 올렸고 또 한 치안관계각료간담회에서 의 총리의 발언에 자극받은 특심국은 <파괴활동의 실태를 국민에 주지시키는 방책에 대하여>를 작성 했으며 (국경의 ) 사이토 장관은 무라이 과장에게 대공홍보선전에 관한 계획을 만들 것을 하명하였고, 무라이 과장은 조사실 설치계획의 경위를 진술하는 것과 더불어 3월 22일 工藤 경시에게 정부가 행하는 대공선전과, 경찰이 행하는 홍보선전에 대한 계획을 입안할 것을 명령했다. 3월 23일 와병중인 工藤 경시를 대신하여 三技 경시정 와다(和田) 경시에게 이에 대한 지시가 내려졌고 , 3월24일 오후 1시경 삼기 와다 工藤는 안을 들고 무라이과장 자택을 방문, 그 요지를 설명하였으며 무라이 과장은 당일 장관을 방문하여 <정부의 대공홍보선전활동강화에 대하여>라는 제목이 붙은 간결한 안으로 이를 정리하니 이 것이 제4안이 되었다 

(사이토) 장관은 이 안을 들고 3월 26일의 치안관계각료간담회에 출석하였고 관방장관도 배석한 이 자리에서 특심국의 안과 기타 안들이 제출되었지만 결국 국경의 안에 따라 진행하기로 하여 내각조사실의 설치가 결정되게 되었다. 내각관방은 관방장관의 지시를 받아 관방의 조직변경에 착수하였고 , 또 한 무라이 과장과 인사상 문제로 의견이 맞지 않았던 사이토 장관은 무라이과장의 조사실장 전출에 대하여 소극적이었지만 그 외에 적임자가 없었으므로, 관방장관에게서 초대 조사실장을 무라이 과장으로 한다는 신청이 국경장관에게 오자 국경에도 자리를 두어 겸임케 한다는 형식으로 국경장관도 이를 승인하게 되었고 장관은 이 인사에 대비하여 국경의 경비부 재편성에 착수할 것을 지시했다

내각관방조사실의 설치는 4월 ?일 관보에 등재되어 4월 10일 실장의 임명사령이 교부되었고 같은 3월 국경경비부의 재편성도 결정되어 이에 수반한 인사이동의 발령이 나서 무라이 실장은 국경 경비부 부부장에 임명되었다

이미 이러한 점들을 에상한 무라이는 실의 인선에 착수하여 외무 법무 통산 노동 안본(*경제안정본부 ) 등에서 파견자의 인선을 교섭하였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조사실장의 임명을 신문에서 본 각계의 반향은 컸으며 실장에 격려를 보내고 협력을 신청하는 이들도 많아 실장은 외부 민간인 의 협력자를 선정하는 데 대해서도 <세부계획>을 짜서 교섭에 나섰다 (세부계획에 대해서는 아래 부분 참고) 사무실의 교섭이 진행되면서 국경에서 파견된 직원의 수속도 관방 인사과에서 진행되어 4월 삼기 쿠도工藤 등의 겸임이 발령나서 정식의 활동을 개시하게 되었다 

실장의 임명에수반하여 그해 봄의 춘투를 중심으로 한 제네럴 스트라이크의 대책에 대하여 정부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정보제공을 촉구받아 10일 11일 12일의 삼일간에 걸쳐 노동공세정보를 제3보까지를 관방장관 부장관 비서관에 올렸다

정부의 대공홍보에 대해서는 별첨의 방침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긱 성청으로부터 출향예정자

법무성(특심국3과장) (도쿄지검)
외무 
안본 


아래 내용은 내각조사실 창설 경위에서 언급된 활동 세부계획의 일부로써 특히 정보 조사 활동의 방식과 여기에 관련된 외부 협력자. 단체 들이 명기되어 있으며 내조의 협력자 외부 자원 의존형 정보 수집의 연원을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협력자들을 언급하면서 본문에는 성만 기록되어 있고 정확한 신원은 나와 있지 않으며 *로 이름과 경력을 언급한 일부인물들은 제 추정에 따른 것이니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정보수집을 위한 제공작> 

1. 위탁조사자 

大野(정치) , 矢部(정치), 岩淵(정치) ,山浦(정치)

*마에다前田(소련) *야베矢部(소련) *도이土井(소련) 高谷(소련) 

*야마자키山崎(중국) 上村 (중국) 森 (중국) 

古田 (조선) 森田(조선) 近藤(조선) 

佐野 (일공-일본 공산당) 藤原(일공)


2. 연락을 취하는 외국기관

(I) 미국=CIA CIC OSI ONI , 그외 정보기관, 미국신문관계

(ro)중국=국민당정부대표단 대만직속기관 제3세력 그외 Buyers-등

(ha) 생략

(ni) 그외= 영국, 프랑스, 필리핀 , 오스트레일리아 , 뉴질랜드, 공관원 등 (단 이 분야에 있어
서는 접촉상 특별히 주의를 요한다)

3. 연락을 취하는 민간기관

일본신문 관계 (생략)

민간연구기관

(1) 일공, 노동관계= 신설일, 극동통신(藤原) 노동통신사( 德永) 노동사회연구소(三田村)

(2) 소련 관계= 소련문제연구소(安島) 소비에트 프레스(倉橋)

(3) 국제 관계= 대륙문제연구소(*도이土居) 세계민주연구소(佐野) 

(4) 중국 관계= 신설(모리)

(5) 생략

(6) 경제 관계= 경제시대사(長船) 신설일(연구중)

(7) 정치 관계=정계정보(三宅)

(8) 전략=신설 (天川)

8. 상시 연락을 유지하고 견해를 듣는 전문가

정치= 岩淵 阿部, 矢部 緖方, 前田, 城戶, 尾高

경제= 石川 永野 前中 橋本 中山 大野 稻葉 帆足, 都留 東세

문화=安島 俵頭 山岡

전략 - *노무라野村 , 小林, *토미오카 富岡. *마에다 前田 . *와타나베 渡辺 , 及用, *츠지辻, *핫토리服部 , 義山. *아마가와 天川 . *오카무라 岡村

소련

중국

조선

*(여기에 나오는 이들은 각각 다음을 가리키는 걸로 추정됨. 정확하지 않음 오류 가능성 다분)

마에다前田 -마에다 미노루 前田稔 전 해군 중장. 해군 군령부 3부(정보) 부장 해남도 특무부장 주 소련 대사관 무관역임. 전 후 제2복원국장. 내각조사실 창설 당시 별반으로 참여, 대소 정보 분석에 종사. 후 내각조사실 고문

야베矢部 -야베 矢部忠太 전 육군 대좌 전 소련 주재 일본 무관 역임

도이土居 -도이 아키오 土居明夫 전 육군 중장. 참모본부 러시아 과장 작전과장 13군 참모장 등 역임 대소 전문가로 전후 대룩문제 연구소 설립 이사장. 소련 중국 내부 동향 군사 정세 분석에 종사

야마자키山崎=야마자키 山崎重三郞 전 육군 중좌 참모본부 중국과 참모. 전 후 GHQ 지리과 책임자.

노무라野村 =노무라 키치사부로 野村吉三朗 전 해군 대장. 진주만 공격 당시 주미 대사. 전 후 노무라 기관 창설. 해군 재건의 흑막

토미오카富岡 -토미오카 사다토시 富岡定俊 전 해군 소장. 해군 군령부 1부장 전 후 제2복원성 사실조사부장. 사료연구회 설립 구 해군 재건에 일익 담당

츠지辻-츠지 마사노부辻政信 전 육군 중좌. 전 대본영 작전 참모 "작전의 신" 님

핫토리服部 -핫토리 다쿠시로 服部卓四郞 전 육군 중좌. 전 참모본부/대본영 작전과장. 전 후 GHQ 역사과 주임 계획자, 제1복원국 자료정리부장, 사실조사부장. GHQ 후원 하에 핫토리 그룹을 조직. 전 후 재군비 획책의 중심인물

오카무라 岡村 -오카무라 야스지 岡村寧次 전 육군 대장. 중국 파견군 총사령관. 중일 전쟁 이후 전범재판에 회부되었으나 무죄 판결 그후 귀국후 대만 국부군 의 비밀 군사 고문단인 백단을 창설하여 지도

야마가와 天川 - 아마가와 이사무? 天川勇- 군사연구가. 전 전해군대학 강사. 노무라 기관과 연계. 전후 항공자위대 창설에 관여. 신미츠비시 중공업 고문

와타나베渡辺 - 와타나베 渡辺 銕藏 군사연구가 와타나베 연구소 소장 ( 전후 구 군인 세력들의 집산지로 핫토리, 타츠미 라인과 별도의 재군비 계획 작성)

< 단 이들 중 前田와 矢部는 소련 관계 뿐 아니라 정치 관계에도 언급되고 있다는 게 의아함. 일단 성만 명시되고 이름이 없으므로 다른 인물들인 가능성이 높지만 소련 관계에서와 같이 前田와 矢部라는 이름이 정치 관계에서도 나란히 언급되고 있다는 게 동일인이 아닐 까 하는 의문의 여지가 있음. )

4.정보수집 의뢰자 (*협력자?)

제1부 10인( 일공, 조선인, 치안관계)

제2부 5인 ( 소련 중공등 국제관계)

제3부 5인 ( 기타)

5. 해외파견원

장래의 문제로써 연구를 진행한다


6.연락을 취하는 관공청

법무부= 특심국 검찰국 최고검 동경지검

경찰=국가지방경찰 동경 경시청 등 자치체경찰

경찰예비대= 조사부

해상보안청= 경비구난부

외무성=각 국, 출입청관리국

노동성=노정국

경제안정본부

통산성

농림성

문부성

국철

후생성

전통성

7. 연락원을 획득 혹은 투입하는 제 단체 (내부 협력자 확보 혹은 침투 대상 단체)

노동조합= 국철, 총평, 산별, 전체, 전산, 전금속, 탄노, 사철총련, 전공공노, 그외

영화 그외 흥행(연구 중)

출판 ,잡지(연구 중)

청년단체 (연구중 )

소방단 (연구중)

여성단체(연구중)


또 한 이러한 민간협력자 이용은 내조창설 직후 작성된 "내각조사실창설 사무및 당면의 중점" 52년 4월

이라는 메모에서도 언급되는 데 여기에 따르면 

민간정보활동의 원조와 활용이라는 항목에 

"특히 고도 우수한 정보활동가를 직접 조사에 임하여 지도하고 원조하며 수시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는다"라는 내용이 있어 민간 협력자 활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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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정보조사실 창설 시안

*제1안 구성( 27, 3, 10)

내각정보실설치법
내각정보실사무분장표
내각정보실 각반의 임무와 주요연락선
내각정보실직원배치표 제1 , 2, 3차
내각정보실예산개요
내각정보실운영요령
내각정보실설치운용상주의를 기울인 제점


2안 <내각조사실 설치에 아우르는 운영요령(內閣調査室設置竝に運營要領>

1안을 요약 체계적으로 정리 개정  ( 이 단계에서 정보실- 조사실로 변경)

................. 

조사반 5개

조사1반 사회주의국가 중심 해외정보

임무 국가방위에 관한 시책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 종합 조정한다. 특히 소 중 조선 동남아 지역의 정보에 중점을 지향하고 국내에 있어서는 구 군인의 동향에 관한 정보를 포함시켜 담당한다.

연락선
경찰예비대 해상보안청 점령군 기타

조사 2반 일본공산당 중심 치안관계 정보 

임무 국내치안에 관한 시책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 종합 조정한다. 특히 일공 조선인 중국인 일반우익에 관한 정보에
중점을 둔다

연락선 국경(황궁경찰) 자경 검찰청 특심국 해상보안청 점령군 기타.


3반 경제 사회정보
4반-재일외국인 관련 정보
5반- 출판 보도 일반문화관련 정보

........................................


4안 <정부의 대공홍보활동 강화에 대하여 政府の 對共弘報活動强化について> (최종채택안)

본문서인 정부의 대공홍보..외에도 별첨 자료인 계몽선전요령 , 경찰의 대공선전 안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 그 중 먼저 대공홍보활동..을 올립니다 모 책에서 전문이 실려 있는 걸 하나하나 쳐서 번역기 돌려서 대략 문맥상 끼워맞춘 것거라 번역이 어색한 점이 많고 경우에 따라 지어내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문서 내용을 그대로 옮겼지만 한자로 된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로 고치고 a e i o 등은 알파벳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정부의 대공홍보활동 강화에 대하여 政府の 對共弘報活動强化について


1 내각조사실의 설치

제반의 정보를 수집 종합 정리하고 그외에 국민에 대하여 홍보선전의 통일적기획을 행하기 위하여 내각에 조사실을 설치한다

2. 홍보선전방침

1.조사실의 활동의 당면의 중점목표를 공산당과 그 동조세력 의 기도 선전 운동의 실체를 국민 앞에 폭로하는 데 둔다

2. 홍보선전에 있어서 언론 출판에 대한 통제의 재현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게 정부는 이에 임해서는 데 있어서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민간의 단체와 개인의 활동을 추진한다

3. 구체적방침

1. 정보활동
(i) 조사실은 관계성청과 민간이 수집한 정보를 제공받아 이를 종합조정을 기획한다

(ro)이를 위해 조사실에 관게성청과의 연락반을 두어 각청으로터 정보수집에 편의한다

(ha)필요에 따라 관게기관의 연락회의를 개최, 정보의 종합조정을 수행한다

2.홍보활동
(i) 각관계청의 홍보활동과 연락을 맡은 대공계몽선전의 통일적 운용을 기획추진한다

(ro)적당한 민간의 단체 개인을 선정하여 그와의 연락 , 대공계몽선전의 원조지도를 수행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을 수행한다

팜플렛 작성배포
강연회의 개최
영화, 연극의 흥행
신문 방송의 편집

4,조직

1.대공계몽선전의 전문가및 사무직원 실장 이하 약 15명 을 조사실에 둔다
2.조사실에 정보반 홍보반의 두 개 반을 둔다. 정보반은 정보의 수집종합조정, 각청과의 연락에 충당하고 홍보반은 계몽선전의 기획 각청들 민간과의 연락에 충당한다.
3.조사실의 직원은 실이 법제화될 때까지는 관계성청에서의 파견에 의해 구성한다

5.기타 

조사실은 정부의 치안관계간담회의 사무국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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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된 내각조사실의 창설 주요 목적으로 명기된 내각조사실의 대공 선선 홍보 활동안입니다

별첨. <계몽선전요령>

제1 목적

특정의 목적을 띤 국제적 배경을 등에 업고 국민을 기만하고, 무지와 욕심을 이용하여 공산혁명의 노선에 국민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공산당의 기도 운동 선전을 파쇄하고 더불어 국제 국내제문제에 관하여 올바른 이해를 국민에게 부여하여 국민의 건전한 판단력을 기르고 건전한 국민문화의 발전을 촉진하는 정부의 시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함이다

제2 방침 
전시중의 전쟁수행을 위한 언론출판등의 통제와 정보국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보도는 종전을 맞아 국민의 분노와 불신을 사서 그 괴로운 반응은 국민각층 중에 깊숙히 뿌리내려 정보보도 지도에 반대로 하는 것이 자기보전의 길이 된다고 확신하는 국민이 상당수라는 것이 현황이다. 정부가 계몽선전을 함에 있어서는 이런 현황을 전제로써 충분하게 이해검토하고 과거의 실패를 다시 살리지 않고록 고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가 행하는 계몽선전에 있어 독재통제의 국가와 자유민주의 국가는 그 방도가 서로 다르다 야당의 존재 그것을 부인하고 출판 학문 문예에 이르기까지 이데올로기에 의해 통제되는 국가는 국외로부터의 자유로운 정보유입을 감시절절하고 국외에 대하여 국민의 눈을 가리고 보도출판의 실권을 장악하고 권력유지의 기초로 삼는다
이에 대해 자유국가에 있어서는 언론 출판 학문 문예의 자유가 허가되고 내외에 대해 국민의 눈을 열어 공개하는 가운데 개인의 판단력과 이성을 형성하여 이해와 자주적결단에 의하여 의지와 행동을 결정한다 전자는 무지와 공포심을 악용하는 방도인 것으로 정부의 계몽선전도 외부와의 찬단에 성공하는 한에서 쉽게 이루어지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게 되서 국민이 비교할 만한 재료가 없어 다르게 생각하는 길을 알지 못하는 일종의 광신상태에 이르게까지 된다. 그러나 일단 폐쇄되었던 외부에 직접 접하게 될 때에는 비판과 저항력을 지니지 못한 체 혼란과 붕괴의 길로 들어서는 약점이 있다 
후자에 있어서는 허가된 언론출판등의 자유의 명목으로 특정의 목적을 지닌 집단이 조직적으로 자기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온갖 위장을 수반하여 파괴적이고 유해한 선전보도를 행하고 개인의 욕심과 공표심을 악용하여 국민의 건전한 판단과 의지를 오도케할 여지를 둔다. 이것은 국민생활이 불안정하고 지적수준이 낮은 사회에 있어서 특히 효과를 발휘하기 쉽다 따라서 이런 파괴선전에 대항하는 건전한 계몽선전이 파괴선전을 합리적으로 압도할 필요가 있다. 자유사회에서 언론보도의 민간기관은 파괴분자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더라도 시대의 풍조에 따러서라든지 혹은 영리추구를 위주로 하여 상황을 진지하게 성찰하지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직접 혹은 간접으로 정부와의 연락이 있어 정부시책에 기조적으로 일치하는 보도기관이 주가 되어 시대? 현재?의 주류가 될 필요가 있다. 또한 계몽선전의 요결은 정부의 직접적 보도는 가능한한 줄이고 정부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국민이 매략을 느끼는 영향력있는 민간의 인물들을 시켜 발언하게 하게 저술을 쓰게 하게 하는 것이 된다.

제3 계몽선전 실시상의 원칙

오른쪽의 원칙을 지키면 효과가 크고 원칙에서 벗어나면 효과가 적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가 생긴다. (원래 문서에는 오른 쪽에 이사항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편집상 문제땜에 아래 장으로 있습니다)

1. 진실의 원칙
진실은 최후의 승리자이다. 이것은 문명자유사회의 원칙이다 서전상의 약간의 과장 취재취급상에 있어서 다소의 고려는 있다 하더라도 늘 진실을 일관되게 말하는 것 그것이 신뢰와 권의를 얻는 최후의 기초가 된다 다행히 정부는 국제 국내 문제에 있어서 진실을 알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입장에 있다

2.적절의 원칙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각 보도기관은 중요도에 따라 시기를 다르게 취급한다 .먼저 제압하는 것이 효과가 크다 다른 관념이 이미 들어간 후에 이를 시정하려고 하는 선전은 노고도 많고 효과가 희박하다 또 하나의 문제에 대하여 갑론을박하는 혼전된 때에는 그 각각의 논거를 비판하여 결론을 제시하는 등 가장 적절하게 시기에 적절한 내용을 제시한다.

3.대상적합의 원칙 

국민각층전반을 향하는 것, 지적수준에 따라 구분한 국민층에게로 향해는 것, 직업상의 계층에 따른 국민층에게로 행하는 것, 여러 대상에 따라 내용과 방법이 적합하지 않으면 안된다.

4.. 평이쾌적의 원칙
사람은 보통 이익에 지식욕에 쾌적하고 즐거운 것에 매력을 느낀다 게몽선전을 받는 국민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희생시켜 들인다면 목적은 달성되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린다 계획을 하는자는 노력과 고심을 무겁게 들인해도 받아들이는 이는 평이하게 즐거움을 느끼는 가운데 이해할수 있는 고안을 제출한다

5. 반복일관의 원칙 
사람의 사상관념은 습숙에 의해 형성된 하나의 테마를 온갖 각도에서 반복일관하여 취급하고 , 표어적으로 간이화된 아름다운 언어가 생활정서에까지 스며들때 국민감정 국민정신이 형성되어 동요를 막을 수 있게 된다.

제4 계몽선전의 구체적 방책

구체적방책에는 적극적 방책 소극적방책이 있지만 소극적방책은 최소한도로 하고 적극적방책을 주로 추친한다

1.소극적방책

(i)국민사상 국가치안상 용납하기 어려운 유해한 언론출판등에 대해서 최소한도의 제한단속방도를 강구한다. 즉 입법조치에 의한 것지만 헌법과도 관계되어 입법화가 곤란하고 필요가 있더라도, 국민여론이 거기까지 나아가면 앞으로가 위태롭다는 데 대한(그 조치) 의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긴급시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종류의 대책이 필요하다

(ro)입법적권한행사에 의하지 않는 것이 이른바 소극적 선전공작이다. 공작원과 공작비에 의해 혹은 혁명세력에 대한 국민의 저항의식에 의해 유해한 선전(언론 출판 연극등 )의 영향을 가능한한 좁은 범위에 머룰러 있게 하는 방법이다

예시
(1)유해한 선전조직의 자금면을 제한한다. 자금조달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회사에 대해 융자를 중지토록 한다
(2)연극등의 공연을 놓고 다투는 우수하고 값싼( 원조에 의하여) 연극등을 행하여 관객을 흡수한다. 혹은 입장권을 공작으로 매점한다
(3)시장에서 유해 출판물을 예지하여 매점한다
(4)당이 붙이는 비합적소동적 삐라를 제거하는 공작원을 조직한다

적극적방책

국민정신은 개인의정신에 있고 개인의 사상감정의 형ㄱ성은 그 생활체험과 그 동안 주로 눈과귀로써 들어온 관념과 여기에 수반하는 정서에 의해 이루어진다. 계몽선전이 개인의 사상감정에 영햐을 끼치는 것도 눈과 귀로부터이다. 눈에 들어오는것은 문악 색채 형제이고 귀에 들어오는 요소는 소리이다., 그 것들은 보통 의미를 지니고 그 요소는 인간의 정서에 영향력을 지닌다. 출판된 ㅁ누서 그려진 그림은 고정되어 있더라도 해버린 말은 한번으로 소멸된다. 여러가지 특색을 발휘하도록 고안되지 ㅇ낳으면 안된다

실시되기 시작하는 구체적방책은 다음과 같다

(1)해설 팜플렛의 인쇄배포 (일반대상,공무원 ,경여자, 농민, 상공시민, 노동자대상 등)
(2)우수한 연구사의연구보조출판원조 
(3)계통적비판서의 인쇄발행 .......(유식층)
(4)강연회
(5)방송- 정부의 시간을 들여 해설자와 특약문을 재료로 방송
(6)신문공작-협력자의 취재활동에 협력하는 편집사의 고려를 요구한다
(7)영화공작-슬라이드 선전과 교묘하게 폭로하는 영화제작

제5 게몽선전의 조직

1. 중심의 종합기획은 내각조사실 문화보도반이 담당하지만 이 조사실의 명칭은 가능한한 표면에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써 하고, 그 명칭으로 팜플렛등을 출판할 경우도 있지만, 각 행정청의 이름으로 내놓는 것이 적절한 경우는 그에 따라 하게 하고 혹은 민간의 개인 이나 단체의 명칭으로 활동하는 것이 효과적인 겨우는 그와 같이 하게 하여 조사실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써 전체의 연락과 기획운용 계몽선전의 효과에 대한 검토를 담당케 한다.

2.민간의 권위자는 정부의 배경에 의하지 않아도 실력을 갖춘 인물로서 협력에 응하는 이를 선정한다. 이 민간협력자와 조사실과의 관게는 각자의 인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임명하고 정기적으로 회합하는 그런 기세를 취하는 것을 피하고 한 사람의 협력자는 다른 협력자를 알지못하는 그런 상황이 되고 여러명의 협력이 필요할 때는 조사실이 중개역을 맡아 소개연락을 한다. 민간협력자는 동시에 그 분야에 있어 정보제공자를 겸하게 된다 

3.계몽선전은 자체에 직결되는 현지조사반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지조사반은 내부의 직원에 그 임무를 부여하거나 민간에 위탁하여 전문적으로 이를 수행하도록 하기도 한다 그 주 임무는 여러 가지문제에 대하여 국민각층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다거나 오해하고 있다면 오해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가 정부의 계몽선전의 효과가 어느정도인지 같은 걸 실지로 조사하여 보고 하게 된다.

4. 조사실에서 종합기획하여 인쇄발행하는 출판물등이 적격하게 대상 각층에 탄착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외곽단체 로서 한 기관을 설치하여 각 도부현의 지부에 대표자를 둔다-수정하여 블록 대표-연구서클 대표의 전국조직을 만든다. 이 것은 개인과 개인간에 이어진 연을 기초로서 추천위탁한다. 각자의 단위는 이런 출판물의 내용양식에 대하여 의견과 반향을 보고한다. 또 지방연구회의 중심이 되는 연구서클을 추진한다 이런 조직이 결과적으로는 정치적목적의 역할을 하게 되더라도 정치목적달성수단으로써는 하지않는 것, 혹은 그와 같이 인선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제6 조사실문화보도반과 각 청과의 관계

1. 조사실문화보도반은 
(i)여러문제에 관하여 유해한 선전의 조사 오해의 원인의 조사 필요한 기획을 행하고 때로 자체적으로 필요한 원고를 작성하는 것은 주로 민간권위자 조사실의 다른 혹은 다른 청에게 작성케 한다. 
(ro)외곽단체를 통한 출판물의 배부와 그 반응을 모아서 검토한다
(ha)민간인의 선정과 연락 각 민간보도기관과의 연락을 맡는다
2.행정관청은 
(i)소관문제에 대하여 국민으로부터 진정 요구등의 내용을 조사실에 연락하고 소관사무수행상의 애로사항과 그 타개책을 보고한다
(ro)조사실 문화보도반의 기획에 따른 필요한 계몽선전의 기초재료를 작성하여 배포망에 대해 필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제7 경비

오른 쪽의 안을 본격적으로 실시하려면 상당액수의 경비가 필요하다. 사업에 의한 수입을 거둬들이는 것도 있지만 원조적보조적 비용 자료구입비 출판물 에 있어서 무료배부같은 거이 다수이고 또 배포를 저격하게 하는 데 필요한 인건비 사무비 통신비도 필요하게된다 불꽃놀이 화약같이 한번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그런 식으로 되지 않으려면 상당한 결의와 경비의 충분한 조달에 의해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조사실창설 직후 부족한 인원 빈약한 조직 - 확대 강화 노력 시도. 정보기관으로써의 향방 모색

52년  12월 무렵 신정보기관 구상 ( 오가타 관방장관 주도) 내조와는 별도로 신정보기관 내각에 설치 장래에 통합(미국의 원조 희구. 당시 미국의 내각조사실 자금지원 원조 )
정치적 민감성 여론 반대 우려  내각조사실을 확충하는 형태로 신정보기관 구상  1953년 1월 결정

당시 신 정보기구 추진 관계 몇 개안 ( 무라이 안 요시다 안 오가타 안 모 대형 통신사 안(전 동맹통신 사장 길야이지조 작성) 

* 내조 제안 구상(무라이 안)

<일미정보연락기관에 대하여 (52.6.50)>에서 언급

미국 측 의장-존슨 소령 일본측-무라이 수차례 회동에서 일본정보연락위원회의 조직 운용에 대한 구체적 검토

여기에 언급된 데 따르면 국경 경비부 경찰예비대 경비국 해상보안청 경비구난부 외무성국제협력국 특심국 조사부
등 공안관계 부서를 모아, 미국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여 CIA형 정보기관 구축 시도(중앙정보국?)

52년 10월 내각조사실 문서에도 유사한 구상 언급

< 일본방위위원회 > 조직 구상

일본방위 위원회
총리대신 

중앙정보국 ( 가칭 ) 설치

일본정보 연락위원회 -주일미군정보연락위원회

일본정보보안위원회- 주일미군정보보안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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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다른 문서 <국가보안기밀조직 설치안>에서 국가보안기밀위원회 , 태평양보안기밀위원회 조직 언급
국가보안기밀조직- 미 상원 비미활동조사위원회 모델 사실상 비일활동조사위원회 로 기능- 해당 제안이 요시다 안과 관련?

* 요시다 수상의 비일조사위원회 관계 발언 

비일조사위원회 구상은 상당히 초기부터 내태 (내조 설립 이전부터)

1949년 2월 GHQ 경제고문 조지프 닷지 방일 당시 이 비일활동위원회에 대한 의향 표명

일본에도 비밀조사위원회를 만들고 싶다

1949년 3월 28일 요시다  GHQ ( 당시 점령군 사령부 ) G-2(정보참모부)부장 윌로비 서안서

"일본의 공산주의자의 파괴적 행동을 폭로하고, 그들의 극악한 전략과 전술에 관하여 국민을 계발(계발)함에 의해 , 공산주의자의 악과 싸우는 수단으로써 나는 오랫동안 미 의회의 비미활동위원회를 모델로 한 비일활동위원회를 설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숙고해왔다 . 이러한 위원회를 미국에서와 같이 의회에 설치하는 것은 국회내에 공산당의원이 있어 그 노력을 방해할 우려가 있으니 총리부에 부속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이 위원회 설치는 긴급사항이며 이에 대한 귀하의 조언이나 지원이 필요불가결하다.수일 안에 만날 필요가 있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秘密のファイル 下 p.136>

요시다는 의회나 여타 세력의 간섭이나 견제를 피하기 위하여 이 기구를 총리부 직속으로 둘 걸 심각하게 고려하고 여기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지시. (신 정보기관 창설 안에 관계?- 국가보안기밀조직 )
결국 별도의 기구를 신설하는 대신 이 사상검증 심사 기능을 법무부 특별심사국에 부여하여 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결정.  레드 헌팅 강화 요시다 파방법 제안에 직접 제시 (전후 내무성 조사국으로 발족 군구주의자 구 군인 세력 삼시 단속 목적 48.2 법무청 특심국 49년 법무부 특심국 1952년 7월 파방법 통과 공안조사청 개편) P.137

비일조사활동위원회 기능의 국가기밀보안조직이 특심국 공조 전환안 혹은 별도의 기관 신설안? (해당 제안 시기 조사 필요. 만약 공조청 창설 이후라면 공조 와는 별도로 비일활동위원회인 국가기밀보안조직 염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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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안

세계 각지의 방송을 수신 분석하는 정보기관 창설 주장 . 내외정세조사회로 발족

53년 .11 무라이 실각 ( 달러 밀반출 스캔들 문제 관계. 교토부 경찰대장으로 좌천) 배경에 sis 장난 개입?

+조사실 창설 당시 미국과의 미묘한 관계 (미국의 협력 지원 . 그러나 창설 이전 협의에서 "비밀공작조직이 아닌 정보 분석 수집 기관이라면 좋다" 고 조언 전달 -전 CIA 일본과(처?)장 칼튼 스위프트 증언

무라이에 대한 미국의 경계 태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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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연계된 , 혹은 지원하는 에이전트 공작 지속

요시다 해당 공작 전개 및 일본의 대중 첩보 기지 제공 제안 (기존 지속 활동들의 관계는?)

1952년 5월 21일 당시 로버트 머피 미국대사와 식사를 같이 하면서 요시다는 

일본은 중국의 (중국에 대한 ) 제5열로써 역할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라는 발언을 하여 일본을 무대로 한 대중 첩보공작활동을 시사. 

요시다의 이러한 구상은 이미 1951년 12월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에게 보낸 비밀메모에서 나타난 바 요시다는 이 메모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밝혀 

"면제품 등의 값싼 상품을 판매하는 상인을 에이전트로 사용하여 대만이나 동남아 경유로 중국에 들여보낸다 라는 공작을 제안.

요시다는 52년 5~6월 전시 내각 정보국 총재를 지냈던 오가타 다케도라 ( 52 10 관방장관. 후에 부총리 역임. 내각조사실 확대 발전 및 전후 일본 정보기관 강화에 힘씀)을 특사로 보내 동남아시아와 대만 을 순방케 하였는 데 미국대사와의 회담에서 이 파견이 전에 제시한 대중 정보 공작과 관계 있으며 특히 장게석과 면담하여 여기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는 걸 언급하고 일본에는 중국대륙에 가치있는 접촉 상대를 지닌자가 많다고 발언하므로써 해당 정보공작에 있어 구 군 정보관계자 특무기관원 우익 세력을 활용할 것이라는 걸 시사

일본을 대중 공작의 거점으로 파견> ( ghq 시대부터 에이전트 운용 활동. 내조의 협력자로 연계되어 활동 계속)

1954년 11월 방미시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이 기구의 창설을 제의한 걸로 나와 있습니다 그 제안 내용을 보면 영국 미국 일본이 합동으로 자유세계의 국제정보선전기구 를 설립하여 본부는 싱가로르에 두어 싱가포르 주재 영국 고등 판무관을 책임자로 하며 코민포름에 대항하는 국제대공정보선전 활동을 전개안 제시

아이젠아워와의 회담 중 여기에 대한 발언을 옮기자면

" 일본정부에서는 ,중국 소련 대책에 경험이 있는 이들이나 공산주의 전략 전술을 숙지하고 있는 이들을 스탭으로 붙여 , 우수한 고관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 P 142

이 제안은 미국 측의 관심을 끌어 국무성에서 검토되었으나 당시 성립된 동남아시아 조약기구 ( SEATO) 협약에 저촉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인하여 무산 되었습니다

한편 영국 측에서는 이 제안에 대해 프랑스까지 포함시켜 4개국이 합동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정보협의체를 도쿄에 두자라는 역제안

이 제안이 실현되었을 경우 당시 미국의 psb 영국의 ird에 상응하는 정보 선전 기구 창설 필요

정보 기관 개편의 한 단초 ( 해당 관련 아이디어 및 과거 제시 안들과 관계 여부)

미국은 전후혼란기를 틈탄 소비에트 의 선전 공세, 좌익 세력의 대두에 맞서 대소대공 선전 심리 공작을 주요한 대외정책의 요소로 보았고 이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심리 비밀 공작 체제와 기구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공작을 실제적으로는 실행하는 것은 CIA를 비롯한 정보기관 USIA(공보처 ) 외교 공관 각종 언론 문화 관련 단체들이었고 이러한 계획을 검토 승인 하고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조정 지시하는 PSB (PSychologiacal Strategy Board 심리전략위원회) 같은 조정 기구가 설치되었습니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SIS가 선전 정보 공작을 담당했고 여기에 외무성의 IRD(정보조사부)도 선전 역정보 공작의 한 축을 담당하였으며 대외 정책 적 차원에서 외무성을 중심으로 한 정책 기획 부문에서 이러한 활동을 조정 통제하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국제적 선전 심리 기구에 참가하여 이러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당연힌 일본에도 이들에 상응하는 대공 선전 심리 공작 체계를 국가적 차원에사 정비할 필요가 있는 바 이는 일본 내의 정보 보안 기관의 개편을 전제로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러한 확대 개편의 필요성이 당시 제시되엇던 내각조사실 확대 , 중앙집권적 정보기관의 창설과 같은 정보 기관 개편 안들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그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 지 그리고 당시 일본 상황에서 그러한 종류의 중앙정보기구가 창설되는 것이 가능하였을 것인지 또 한 그러한 기구의 창설이 국내적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불러올 지 같은 사안들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필요

내각조사실과 심리전 조직 관계 

53년 당시 잭슨 각서 ( 당시 대통령 보좌관. 심리전략 위원회 주재)

일본에 있어서 본격적인 정보기관 창설 건의 

심리전 기능의 확대 강화 강조 

내각조사실 발전 방향 모색에 영향.( 신 정보기관 구상안과 연계) - 당시 요시다의 국제 선전 기구 안과 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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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내각조사실 상황 

내각총리대신관방조사실에 관한 사항

소화 28년 4월 Case NO 196 

1.조사실의 사명과 설치 경과
종전시 정보국이 폐지된 이후 정부에 정보기관이 없어서 복잡미묘한 점령 하의 내외제사안의 처리에 대해 극도로 곤란함을 겪었으나 강화조약의 발효를 앞 두고 금후 예상되는 내외중요국책의 기초가 되는 정보를 정부를 관계성청과 협력하여 수집하고 , 아울러 국제심리전에 대처하는 고도선전홍보의 기능을 하기 위하여 서둘러 내각직속의 정보기관을 설치 하게 되어 특별히 이에 대한 예산이나 인원도 배정되지 않은 체 작년 (주 1952년) 4월 9일 차로 내각관방의 조직규정을 개정하여 조사실이 설치되어, 실장 이하 직원은 관계성청의 협력에 의해 겸무상근으로 하는 것으로 하게 되어 새로 발족하게 되었다.

발족의 초기에 있어서는 초미의 치안문제를 중심으로 한 정보의 수집 종합과 관계기관의 연락조정에 주력을 기울였으나 , 그 후 광범위한 방위 문제 경제 문제 경제 문제 홍보 문제 문화 문제에 있어서도 그 조사기능의 확충을 도모하고 있다.

또 치안 관계각료간담회의 사무국으로써, 더불어 일미정보연락의 사실상 일본 측 사무국으로써의 기능을 한다

2. 조사실의 업무분장과 직원명부
생략

3. 예산
생략

4. 현재까지의 주요 실시사무

(1) 치안관계각료간담회

조사실장이 간사가 되어 격주 1회 회의를 개최하고 현재까지의 주요협의사항은 다음과 같다

경찰법의 개정에 관한 건
조선인종합대책수립에 관한 건
보안대 출동지침 결정에 관한 건
관계기관의 정보활동의 강화에 관한 건
보안대를 도심에 옮기는 건
기타

(2) 치안관계각청연락회의
총파업 이나 기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수시로 관계기관 담당자를 소집하여 정보의 교환처리방침의 결정을 행하며 그 중요 사항은 다음과 같다

소화27년의 메이 데이 사건
소화27년의 총파업 대책
외국인 등록 교체 조치
소화 27년의 추계노동공세대책
재일조선인 대책

(3) 미일 정보연락위원회원
조사실장은 일본 측 사무국장으로써 회의에 출석하여 또 상시연락을 담당케 하고 현재까지의 주요연락사항은 다음과 같다 

각 성청의 비밀보지에 관한 기준요강안의 작성실시추진에 관한 건

(4) 정보활동

① 일반의 정보에 대하서는 관게기관에 의한 정보를 제공받아 그것을 정리하여 보고를 작성한다
②아래의 사항에 대해서는 조사실 독자의 조사를 행한다 ( 원문은 세로쓰기라서 오른 쪽이라고 되어 있지만 여기선 표기 관계상 아래 쪽으로 수정했습니다 )

*소련 중국에 관한 신문 해외방송 출판물 등의 조사
*경제관계의 특수조사및 종합판단


(5) 홍보선전활동
현재 여기에 대한 예산이 전혀 성립되지 않았기 떄문에 본격적인 활동의 전개는 불가능했지만 기존의 일부 민간출판사 등을 이용하여 거기에 대한 내부지도 기사제공 등의 활동을 실시하였다
그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화통신사
일본주보
독립청년신문
대륙문제연구소
동대학생잡지 시대

등이 있고 또 조사실이 자체적으로 낸 선전간행물은 다음과 같다

독립일본의 비극
2개의 평화
세계의 웃음거리(笑話) 설마 유머나 설화 모음집은 아니곘죠? 아마 공산 국가의 현실을 빗대는 이야기일 거로 생각되는 데..
중공잔류자의 서간집
제15회재개국회에 있어서 국무대신 연설집
미소양국의 기본정책
일본공산당의 문화 활동의 실태와 해부
침묵의 자유도 없다 (해방중국의 이상과 현실)

금 후 28년도의 예산성립이 결정됨과 동시에 전면적인 본 사무 및 정부시책에 관한 여론지도사무를 확대할 방침이다

(6) 중요시사문제의 조사검토

국책의 기초가 되는 내외중요문제에 있어서

1. 장기에 걸친 기초적 문제
2. 현행 문제
로 크게 구분하여 , 중요한 것을 누락하지 않고 또 선정에 있어서도 착오를 범하지 않는 가운데 , 적은 진용으로 능륙적으로 구체적으로 종합적판단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 각 반의 연락연구회를 매회 개최하여 각 반에서 조사한 사항등에 대한 검토를 행한다

또 총리 대신의 지시에 따라 매주 내외정세 여러 사건의 동향을 모아 <지난주의 움직임>으로써 보고한다

5. 중요현안사항

(1) 기구확충의 예산

행정정리가 한 편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기에 감히 조사실을 신설했다는 관계로 각 성청겸임자로 당명의 긴급문제를 처리하는 데 충당케 했으나 격화 일로의 현하의 내외 정세에 대처하여 정부의 정보선전사무에 있어 완벽을 기하기 위해는 가급적이면 빨리 중앙정보기관으로써의 기능을 확대 강화 하는 것이 필요하고, 관게성청도 이를 강하게 요망하고 있으며, 다행히 31명의 정원도 확보되어 이를 중심으로써 본격적활동을 행하기 위해 28년도 예산을 요구할 예정으로써 종래 실시하던 조사활동 외에 28년도에 실시를 기다리는 사항은 다음과 가타

(2) 중앙자료실의 정비

조사실에 중앙자료실을 설치 관민각방면의 정보 자료를 수집 이를 과학적으로 정리 분류하여 정부전반의 입자에서 종합분석하여 정부에 보고하고 또 각 성청에 필요한 정보자료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한다.

예산소요견적 약 2천만엔

(3) 외국방송 수신기관의 설치'

외국 특히 소련 및 중공등의 해외방송,통신방송을 완전히 수신케 하여 보고시키며 당실 (내각조사실)에서 조사 분석을 행하기 위하여 외국방송 수신기관을 설치한다

예산소요견적 약 5천만엔

(4) 통신정보기관의 설치'

'외국,특히 소련 및 중국등의 암호전신을 방수:해독하는 특수기관을 설치하여 중요한 정보를 포착하도록 한다. 본 기관은 이미 조사실,보안청,국경,외무성,공안조사청의 연락협의회에서 양해되었으며 본경비로써 조사실에서 3천만을 보안청에서는 4억엔을 28년도 (소화 28년 :1953년) 예산에 필요경비를 계상한다고 첨부하였으나 예산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안청과 조사실의 기정예산 범위 내서 소규모에서부터 활동을 개시하도록 하고 본격적 업무을 실시 하게 되는 것은 28년도 예산당초요구액이 성립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예산소요견적 약 3천만엔

(5) 중공사정의 조사

중공사정의 조사는 극히 긴요한 사항으로 , 이번 귀국일본인의 견문체험을 집록하는 조사는 절호의 기회이고 , 조사실은 본년도 중점사항의 하나로써 이 것을 추구하여 이미 그 준비와 예비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본조사를 현 게획에 의해 완결하기에는 당초요구예산 이외에 약 3천100만엔의 예산과 10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예비조사는 기정예산으로 충당되나 나아가서 본예산의 성립을 요망한다 본조사는 소위 사상조사가 아니며 귀환교섭단체중에서 일적(일본적십자사)을 제외한 두 단체의 방해가 예상되므로 명목은 민간단체의 이름으로 행하는것이 된다.
예산소요견전액 약 3천100만엔

6. 기타
그외 중요사항에 대해서는 구두로써 보고한다

1957년 내각조사실 개편 내각총리대신관방에서 내각관방으로 변경 ( 이 당시 역할 및 규모 변화 확대 여부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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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프다 13-01-09 14:33
   
혐한 활동은 방숭이들의 국책사업이라는 결정적 증거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