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기독교에서는 근본적 명제에 대한 의심이 금지됩니다. 반면 과학에서는 오히려 합리적 증거만 있다면 그런 의심이 장려됩니다. 기독교에서도 의심이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사기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기독교에서 야훼나 예수가 존재한 적이 없는 것 아니냐, 예수와 야훼란 것이 다른 신화의 짜집기가 아니냐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즉, 기독교에서는 믿음을 위해 의심을 금지합니다. 신의 존재 여부를 의심하면서도 기독교 내부에서 높은 지위에 올라와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면 과학에서는 의심에 의심이 쌓여 믿음이 탄생합니다. 이렇게도 의심해보고 저렇게도 의심해본 다음에 믿음이 커지는 것입니다. 물론 라카토시의 이론에 의하면 과학자들도 자기 신념을 무조건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증 사례가 조금 나왔다고 해서 한번에 뒤집지 않아요. 광속을 능가하는 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신중하게 검토하여 더 많은 사례가 쌓인 후에 이론을 수정하거나 폐기합니다. 이는 오히려 과학 이론에 안정성을 제공해줍니다.

둘째, 기독교의 믿음에는 현실 검증이라는 절차가 없습니다. 그냥 성경에 써 있다는 이유로, 성직자가 하는 말이라는 이유로, 계시를 받았다는 이유로 믿습니다. 예수나 기타 기독교적 믿음들을 현실에서 검증해서 믿거나 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런 것이 없는데도 신념으로 믿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반면 과학에서는 현실 검증 즉 실험과 관찰이 필수적입니다.

셋째, 기독교인이 믿는 내용들에는 모순이 있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모순적 구절들이 있지만 기독교인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지적받으면 화를 내거나 “상징일 뿐이에요”, \"오래된 책이다 보니 수정되고 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인데 이것은 인간이 나쁜 거지 신이 그릇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넘어갑니다. 예컨대 이웃부족을 학살하라는 구절은 “나쁜 마음을 칼로 자르듯 없애라는 것을 뜻하는 상징”으로 해석하며, 구약 창세기에서 창조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앞에서는 이게 앞선다고 했다가 뒤에서는 그게 뒷 순서라고 적어놓은 것을 비유로 치부하거나 정신승리를 하는 식이지요. 반면 과학자들에게 있어 모순은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정 과학 이론이 인정받으려면 그 안에서 모순되는 부분이 없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넷째, 종교적 믿음은 완벽을 가정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이 완벽하지 않다고 하며 신도 완벽하지 않고 예수도 그저 인간일 뿐이었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면 기독교인들은 화를 냅니다. 그 믿음이 너무 강해 조금의 흠집이라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수죠. 반면 과학자들은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라고 해도 그의 이론이 완벽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믿는 순간 그는 사이비학자가 됩니다. 그들은 현실에서 검증된 만큼만 믿습니다.

“과학은 일종의 종교다”라는 명제에서 종교라는 개념은 남용되고 있어요. 

이것은 “과학과 종교는 둘 모두 믿음이 개입된다”라는 명제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개념을 남용하면 “과학은 일종의 사이비 과학이다”또는 “사이비 과학은 일종의 과학이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자도 사이비 과학자도 자신의 이론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표현하면 우리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의 구분을 잃게 됩니다.

편집증(망상증) 환자의 믿음도 믿음이고 정밀 과학의 믿음도 믿음입니다. 그리고 두 믿음 모두 일말의 진리를 내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학자는 편집증 환자다” 또는 “편집증 환자는 과학자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죠. 

이것은 어류와 포유류 모두에게 척추가 있다고 해서 “어류는 포유류다” 또는 “포유류는 어류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정확한 어법을 써서 “어류와 포유류는 척추동물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