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새 잡담게시판으로 가기
(구)잡담게시판 [1] [2] [3] [4] [5] [6]
HOME > 커뮤니티 > 잡담 게시판
 
작성일 : 13-04-30 02:48
김건모를 깔보지 마셈
 글쓴이 : 허각기동대
조회 : 703  

한류의 시초를 설명하겠습니다.
 
한류의 시초는 1992년 엠비씨에서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주말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이 개방화 되면서 중국에 있는 조선족 지역의 불법 비디오 대여점에
 
수입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무렵 사랑이 뭐길래와 함께 인기를 끌었던 가요 컨텐츠가 80년대 가요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정도였는데
 
김건모 노래가 흡수되면서 급격히 그 지역 인기판도가 뒤바뀌게 되지요.
 
이 노래는 1993년경에 나온 노랜데 지금도 기억나는것은 우리와 축구 평가전 하러온 카메론 대표팀이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경기전 이노래가 나오자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매우 흥겨워 했다는 거에요.
 
 
김건모가 대단하네 어쩌고 하지만 이런 디테일한  얘기 하는 사람 제가 본적이 없습니다. 인터넷이고 오프
 
고. .캬아...ㅋㅋㅋㅋㅋㅋ 이건 그때 봤어야만 아는 얘기니..
 
이럴때 들어봅니다.  김건모의 어떤 기다림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ondaganda 13-04-30 02:51
   
음....김건모를 깔본적은 있어도 노래는 깔본적 없음....
로이스 13-04-30 02:54
   
나가수로 피본 가수 top5중 한명이라 생각
허각기동대 13-04-30 02:54
   
캬아... 댓글만 봐도 역시 김건모 史에서 근현대사는 피바다군여.. 흐미...
아마란쓰 13-04-30 03:03
   
한류의 시초는 김연자, 조용필의 일본 상륙 아닌가요??
1980년대 초에 이미 일본 열도를 흔들었는데..
김연자는 한국인임에도 일본 엔카 대상도 여러번 탓고
조용필의 앨범은 일본 판매량만 통합 500만장이 넘죠
     
허각기동대 13-04-30 03:07
   
사실 따지고 들면 30년대 최승희도 있고 50년대 역도산도 있져..80년대 코리아나와

키메라도 있구요.... 수량을 따지자면 그렇게 밀리는 민족이 아닙니다. 

일본이나 구미에서 잠시 반짝했던 흐름을 말하는게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큰 이름을 갖고

있던 작은 나라가 세계와 아시아를 논하게된 직접적인 계기를 언급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로인해서 오늘날의 모든것이 불거졌노라..할만한.
은구슬 13-04-30 03:05
   
김건모 재즈인가 음악전공하지 않았나요? 그런걸로 알고 있는데., 음색이 넘 좋음
     
허각기동대 13-04-30 03:08
   
네..서울예전에서 드물게 교수도 흠칫했다는..그런 학생이죠.. 소울하나로만 보면 사실 한국 덮고두 남을거에요..
신상털림 13-04-30 03:27
   
김건모가 미국 LA였나... 공연했는데 음 안 올라가고... 무대서 누워자빠져서 담배폈던 기억이 나는군요 -0-;;
     
허각기동대 13-04-30 03:30
   
누구에게나 흑역사는 존재하는가요. 이것에 관한 굳건한 소스가 있길 바랍니다. 이거 본인의 개인 의지에 따라서는  고소감일수도 있거든요. 혹시나 하여 묻게됩니다.
          
신상털림 13-04-30 03:31
   
동영상도 있었지요 근데 수년전이라... 십년 넘었을지도...뭐 워낙 예전일이라 잊혀졌을지도...
               
허각기동대 13-04-30 03:33
   
뭐 저랑은 하등 관계없는 일임을 여기에 재삼 확인해 둡니다. 있었다면 당사자도 말 안할것이요 없었다 해도..기실 이런 사이트에서 누가 보겠습니까 만..
                    
신상털림 13-04-30 03:43
   
뭐 워낙 오래전 일이라... 대충 기억나는게... 목이 맛이 갔는데

자기도 노래 부르다 안되니까 승질나서 누워서 노래부르다 누워서 담배피고 -_-;;

그 때부터 갠적으로 노래는 좋다 생각해도 사람은 별로 호감이 안가네요
끄으랏차 13-04-30 03:45
   
무대에서 담배 핀 사건은 유명한데.
위에 분 말씀처럼 음도 안올라가고 태만한 공연을 하려고 핀건 아닙니다.
그냥 그 자체도 무대에서 물 마시는거 마냥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해서 정작 관객들은 별 문제를 삼지 않았는데
공연후에 언론이 문제를 삼죠.
우리나라 정서에 무대에서 담배를 펴도 되냐 이런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글쓴분에게도 말씀 드리자면
김건모가 한류의 시초라고 보는건 좀 아닌거 같습니다.
그로 인해서 오늘날의 모든것이 불거졌노라 할만한 해외에서의 성공은 없었던걸로 압니다.

그리고 조용필 얘기가 나오는건 조용필은 정확히 척도가 있거든요
일본에서의 음반판매량이 있고 일본 골든디스크 수상이 있죠.

그 정도로는 한류의 시초라고 말하기 어렵다 라고 한다면
김건모도 아닌거고요. 해외에서는 거기에도 미치지 못했었으니까요.
그 사이의 연결고리도 애매하고 말입니다.
     
허각기동대 13-04-30 03:54
   
김건모가 한류의 시초라고 얘기한적 없습니다. 본문 다시 읽어보세요. 시초가 있음으로 해서 관심이 확장되고 김건모류의 노래가 흡수되면서 더욱 커지는데 일조했다는 거지요.

조용필을 한류의 척도로 삼을거면 그 이전의 역사도 충분하게 많다는걸 전썰한바 있고..

단발적인 연예인 개인의 인기가 아니라 흐름으로 만드는데 역점을 두고 바라봐야 한다는게

제 의견입니다.
          
끄으랏차 13-04-30 04:04
   
그 이전 역사로 드신 예는 좀 범주를 지나치게 애매하게 가시는거 같은데요
단지 한국계 라는걸로 까지 범주를 넓히시면 ㅋㅋ

그렇게 따지면 김건모 노래가 조선족 휩쓸었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정작 한국계인 최건이 중국은 80년대에 평정했었죠.
서구언론에서 불러준 별명이 중국의 엘비스 프레슬리입니다.
해적판이 하도 많아 정확히 음반집계가 안되던 당시 중국에서
추정 음반판매량이 3천만장인 기록적인 사람이죠.

한류라고 말하려 한다면 적어도
대한민국의 상징성, 대한민국의 상품을 가지고 활동한 기준으로 따져야하는거 아니겠습니까
최승희씨는 시대 자체가 대한민국의 상징성이 성립될수 없던 시대고.
역도산은 대한민국의 상품을 가지고 한게 아닙니다.
               
허각기동대 13-04-30 04:23
   
최건의 당 다이너스티 음반은 저도 90년대 초반께 자주 드나들던 돈암동의

영상물 틀어주는 빠에서 들었던바 있습니다.

진짜 빡친김에 당시 신문기사까지 뽑아와서 할수도 있는데.

이쯤에서 그만두죠 뭐. 시덥지 않은 소리고 서로간에. 암튼 제가 한 얘기가 대충은 맞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