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로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그 난민국으로
도움을 받았죠. 극빈곤층 국가로 다른 국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국경없는 의사회 이런분들을 욕을 하는것과 같습니다. 어느정도
인도적인 도움을 주는것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줄줄 세는 세금이죠
이 문제를 바로 잡으면 불우한 이웃이 많이 개선이 되겠죠. 어디선가는
그 돈을 착복하는 무리가 존재를 합니다. 그것과 난민을 동일시 시키것도
잘못된 아집일수도 있지않을까요.
6.25부터 도움을 받았잖나요. 전쟁 끝나고
미국의 원조와 여러 국가로 부터 원조와 도움을
받았잖나요. 난민을 도와주던 불우이웃을 도와주던
전 상관은 없습니다. 그것을 동일시 시키는게 잘못된
생각일수도 있다는 걸 이야기 한것입니다. 국경없는 의사회
활동도 하지 말아야죠 한국에서 병으로 신음하는 국민이
존재를 하는데요.
UN의 전신인 국제연맹도 그랬지만, 국제연맹은 구속력/군사력의 부재 때문에 2차 대전을 막지 못했습니다.
2차 대전을 교훈 삼아 UN은 UN군을 통해 개입했고, 그 최초 사례가 1950년 한국입니다.
원래 UN의 설립목적을 가장 잘 실천한 사례가 바로 한국, 쿠웨이트
입니다.
만약 UN이 1950년 한국, 1990년 쿠웨이트에 군대 보내 개입하지 않고서
단지 지금 서유럽이 하듯이 난민을 이민자처럼 받으라고 각국에 떠넘기기만 했으면
수백만 한국인 쿠웨이트인은 해외로 떠돌고, 본국에 남은 사람들은 비참하게 살았을 겁니다.
중동이든 아프리카든 내전이 벌어졌을 때 국제사회가 가장 해야 할 일은
1950년 한반도, 1990년 쿠웨이트에서 그랬듯
UN군을 보내 내전상황을 종료하는 것입니다.
언론에서 난민을 이민자처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사는 넘치지만
"어째서 UN이 내전에 개입하여, 난민이 발생하는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가"를 지적하는 기사는 나오지도 않고
2018년 12월에 예멘 난민이 끝난 사실이 포털 대문에 뜨지도 않는 건
언론이 실제로는 난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방증입니다.
난민이라... 뭐, 나에게 별 상관없는 쪽이라 많이 생각은 안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건...
이제 여자들 확실히 ㅈ될거라는거 정도?
불체자 늘어나면 치안 개판되는건 외국 사례 많으니 금방 알 수 있고.
치안 조무사 비율 증가와 맞물려 진짜 치안 ㅈ되겠죠. 남자도 불안해지긴 하겠지만, 글쎄요... 내가 만일 범죄자라면 잘못하면 역관광 당할지 모르는 남자 노릴바에 안전한 여자를 노리겠음. 게다가 남자들이 여자들을 과연 도와줄까요? 안 도와줄것같은데요. 워낙 싸질러놓은 똥이 많으니. ㄱㄱ을 당하던 길바닥에서 얼어뒈지던... 여자들이 원한 세상 아님? 그 많은 무고 미투로 세상 바꾼게 누구? 그것도 은인에게까지.
걸스 캔두 애니팡이래매? 이럴땐 남자도움 바라는건 아니겠지? 그리고 법을 이용해 남자들 조지듯이 ㅈㄹ 할 수 있을까요? 여성과 난민이라는 '약자'들끼리 싸움인데?
여하튼 확실한건 그때가 오면 여자들이 가장 먼저 ㅈ될거임. 밤에 밖으로 외출이나 할 수 있을까나? ㅂㅅ들, 손ㅅㅋ나 메갈이나 자기 손으로 자기 모가지 조르는건 종특이야.
진보진영이 그게 문제임. 기본을 망각한 과도한 오지랖성 이타주의들.
자기가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나르시즘에 사로잡힌 자들이 돌리는 행복회로의 산물임.
여성 인권 보호한답시고 남성 인권 무시하고,
범죄자 인권 보호한답시고 피해자 인권 무시하고,
학생 인권 보호한답시고 교사 인권 무시하고,
자기나라 독재자는 부관참시하고 이웃나라 독재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하면서 이해할려고 함.
이사람들은 자기 나르시즘을 충족시키는게 중요할뿐임.
이상과 현실이 어떻게 다른지 신경 안쓰고 자기 이론이 어디가 잘못됬는지 알지 못함.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머릿속에 새로운 지식이 안들어가는거임.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래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인거임.
진보진영에서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이 특히 그러함.
강성태의 다른 것들은 거의다 동의해왔는데 이건 별로 동의 못하겠네요.
난민과 자국인의 어려움은 선택으로 나뉘는게 아닙니다. 베타적이지 않고 둘다 할 수 있는거에요.
난민문제에 도움을 주면 자국민의 삶을 포기하는게 아니죠. 반대로 어려운 서민들 생각한다고 난민들 내팽게치는것도 아니구요.
아니 난민은 난민문제 나름 해결하면 되는거고 가난한 사람들 문제도 해결해야하는거죠.
왜 이거 아니면 저거로 생각합니까? 전부 케어안된다고 케어 안할겁니까?
제 댓에도 언급했듯이 두 문제는 서로 베타적인 결정이 아니라구요.
비용효율성, 효과성 다 따져도 두 문제는 결코 베타적이 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물론 둘다 제대로 안하면 욕처먹어야하는건 맞구요. 본문글이 현재 먹고살기 급한데 신경쓸 형편도 아니다는 개인적인 입장이고 저도 비슷합니다. 일하고 먹고살려면면 일하는데 신경쓰기바쁜데 난민뿐 아니라 왠만한 사회문제도 무신경하죠. 하지만 국가의 입장에서는 둘다 문제면 둘다 해결하려고 노력해야죠. 그런거 하라고 국회의원도 뽑고 대통령도 뽑는 대의민주주의아닙니까? 국민이 먹고사느라 바쁘니 일일이 신경못쓰는 것들 신경쓰라고.....
우리나라는 국내 어려운 분들을 비롯해서
북한에 있는 동포들이 있는데 그 숫자가 2천만
상황 변화에 따라 우리가 어떤 지원을 해야할지 미지수 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난민을요??
심지어 저 난민들은 대부분 중동 지역 사람들입니다.
비행기 타고 제3국을 거쳐서 올 정도면 난민이라 할 수 있을까요??
난민법상 제3국 경유 입국은 아예 신청이 안됩니다.
예멘인들 경우에는 무사증 이용해서 편도로 온걸 출입국에서 보내준건데..
이거 자체가 성립이 안됩니다. 정식 비자도 없이 편도 항공으로 온 사람을 막 들여보내주는 나라가 어디있죠?
지구상에 어느 나라가 그러고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사안에 따라 각각 다른데 자신을 진보니 보수니 하는 틀에 가둬주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이 때문에 전쟁까지도 나고 하는 거죠. 틀에 고착화 될수록
점점 더 종교화 되거든요. 자기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고 남은 틀리다고 보게 되니까요.
사람 죽이는데에도 서슴치 않았던 이념으로부터 우리는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난민이 아니라 이민이죠. 난민 핑계대고 가난한 자국을 버리고 선진국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이민에 까다롭습니다. 후진국에서
온 이들은 못배운 가난한 이들이고 질서 의식과 문화적인 소양 등의 선진적인 교양도
부족하죠. 선진국의 문화를 교란 시키고 국가발전을 저해하는지라 함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처음에 오면 노숙자나 다름없을테고요.
그렇다고 인류애가 있는데 그냥 버려둘 거냐? 하는 문제가 있을텐데요.
국가는 국가를 도와줘야지 타국의 특정한 개인들을 도와주는 건 마찬가지로 개인이
할 일이라고 봅니다. 선진국은 후진국을 발전시켜서 그 나라에서도 잘살 수 있도록 후원
해줘야하는 것이지 노동력 등의 이유로 후진국의 국민을 빼돌리는 건 후진국의 입장에서는
납치가 될 수도 있는 일이겠죠. 물론 국민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아메리카 드림, 코리아 드림
같은 꿈을 위한 도전일 수도 있겠지만요.
무분별한 이민은 선진국이나 후진국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진정한 전쟁 피난민이라면 가까운 옆나라 등에 머물러 있다가 전쟁이 끝나면
자국으로 돌아갈 것이지 중동에서 머나먼 한국까지 오는 건 피난이 아니라 이민을
목적으로 한다고 봐야겠죠.
특별한 경우의 극소수 정치범 등은 받아들여서 잠시 보호해주다가 마찬가지로
전쟁 등이 마무리 되거나 안정이 되면 또 돌려보내야 할테고요.
1. 정치적인 목적임.. 정치적인 세력화 애초에 난민 돕는게 목적이 아니라
그 난민 핑계를 대고 정치 세력화 할 목적인 것임..
유럽에도 이슬람 난민들이 민주주의 약점을 이용해서 각종 테러와 민주주의 방식의 투표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과 같음.. 그런 난민들의 표를 이용하려는 정치 세력들이 있음..
우리나라 인근이나 혹은, 우리나라의 개입으로 인해서 난민이 발생했다면 난민지원을 고려해볼 여지가 있겠지만, 저 멀리 유럽이 사고쳐서 발생된 난민까지 우리가 왜 받아줘야함. 사고치는 놈 따로 있고 해결하는 놈 따로 있나? 더구나 타민족과 융화되지 않는 무슬림 난민이라니 ㄷㄷ 더 생각할 가치도 없음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고 자화자찬 하는 거 서민들은 전혀 동감이나 실감을 못해요. 그런건 먹고 살만한 놈들이나 그러는 거죠. 최저임금에 불만인 기업들이나 난민에 관대하신 그 배우 정x성 같은 사람요. 그들이 난민을 찬성하는 이유는 기업에겐 임금을 줄일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정x성 같은 사람은 자신의 인지도를 올리는데 유용하기 때문이예요.
한국엔 아직도 굶어죽는 아이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가난한 가족들에게 저들은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저들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는 존재들이 전혀 아니거든요.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한국은 난민으로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은 역사를 갖고 있다. 6·25전쟁으로 600만명이 넘는 피란민이 발생했고, 이때 한국을 도왔던 나라 중에는 이라크, 스리랑카, 현재 내전으로 가장 많은 난민이 생기고 있는 시리아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을 찾은 시리아인 1300여명 중 난민으로 인정된 경우는 단 4명에 불과하다
선진국 출신이나 백인이 왔을 땐 위험하게 생각하지 않다가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출신, 피부색이 어두운 외국인에 대해선 범죄집단으로 낙인을 찍는다
신 공보관은 “유엔난민기구는 초반부터 제주도에 난민심사 인력 및 수용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출도제한은 좋지 않다고 조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난민들이 본토의 아랍인 커뮤니티 안으로 들어갔다면 도움을 받아 취업이 가능할 때까지 자력으로 생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9일 법무부는 난민대책을 발표하고 제주도 난민심사 인원을 기존 4명(통역 2명 포함)에서 6명이 추가된 10명으로 투입해 심사기간을 기존 8개월에서 2~3개월로 단축시키겠다고 밝혔다. 또한 전체적으로 난민 심사관을 증원해 난민심사 전문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무부는 “경제적 목적 또는 국내체류 방편으로 난민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난민법을 개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돌아가면 죽음뿐이다. 반군의 손에 죽거나, 굶어 죽거나. 그것도 아니면 보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자.살하거나. “총을 드는 것보단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며 목을 맨 청년도, 먹을 것이 없어 자녀 셋을 제 손으로 죽이고 자.살한 가장도 있었습니다.” 4년째 전쟁 중인 그곳에 삶이란 없다. 태어난 땅을 버리고 동쪽 끝 낯선 나라의 섬까지 흘러 온 건, 오직 살기 위해서다. 그렇게 예멘의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넜다. 그러나 어렵사리 도착한 제주는 따뜻한 보호처가 아니었다.
법무부의 단골 사유는 대체로 추상적이다. 예를 들면 ‘특별하게 중요한 정치적 활동을 주도하지 않았다’는 식이다. “도움을 요청한 난민 중에 오랜 독재국가에서 오신 분이 있었어요.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가 고문까지 당했는데, 석방된 후 이어지는 감시를 이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도망친 거였죠.” 이 난민 역시 주요 정치인이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결국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1ㆍ2차 불인정 소송에서 연이어 패소, 지금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난민협약에서 보호하는 ‘정치적 활동의 자유’가 언제부터 특정 정치인에게만 허락됐나요. 심지어 시민이 든 촛불로 혁명을 이뤄낸 이 나라에서 말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유가 충분한 사람들도 난민 신청을 꺼린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인정을 받는 경우는 극소수니까요. 게다가 본국 경찰로부터 체포를 당한 적이 있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선 정부에 서류를 요청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죠. 요구하는 증거들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이에요.” (김대권 대표) 난민 신청을 하러 갔다가 도리어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기도 한다. 저개발 국가 출신은 여권의 이름과 본명이 조금씩 다른데, 이런 경우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강제퇴거 대상자가 되는 것. “난민인정절차를 밝는 동안만큼은 한국에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야 하는데, 미등록체류상태에서 난민 신청을 한 분들에게는 임시체류 비자(G-1)조차 주지 않아 생계유지도 불가능해요.” 결국 고국에서도 타국에서도 끊임없이 배제당해야만 하는 운명인 셈이다.
가두고, 괴롭히고, 쫓아내고… 경계에 버려진 사람들
“몸부림치는 난민에게 서너 명의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달라붙어 두건을 씌우고 두 손을 포박했죠. 입에는 재갈을 물리고 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좌석에 억지로 몸을 밀어 넣었습니다. 저희 같은 인권 단체가 면회를 왔다고 속여 면회실로 가는 도중에 들이닥친 겁니다.” (김대권 대표) 지난 해 6월 외국인보호소에 3년 이상 장기 구금돼 있던 난민 신청자 5명은 본국으로 강제 송환됐다. 그중 몇몇은 난민 심사 재심청구를 위해 서류를 요청하던 중이었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감옥에 갇히거나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불법화된 야당 당원이었던 파키스탄인 A씨는 그렇게 강제 송환된 후 연락이 완전히 두절됐다. “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때였죠. 새 정부 인사가 들어오기 전에 외국인 보호소에 남아 있는 장기 구금자 수를 최대한 줄여야 된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가장 오래 있었던 난민들부터 강제 송환을 해버린 겁니다.” 놀랍게도 물리력을 동반한 강제송환은 현행법상 위법이 아니다.
자유롭게 변호사를 만날 수도, 본국의 상황에 대해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준비를 합니까.” 법무부 단계에서만 1년이 지체됐고, 재판을 거치면서는 2년이 훌쩍 날아갔다. 전문가의 조력 없이 법무부 직원과 나눈 대화 기록은 재판에서 번번이 불리한 증거가 됐다. “감옥에 가까운 보호소에서 3~4년씩 갇혀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빌미로 협박을 하는 거죠. 너도 결국 이렇게 될 거야. 그렇게 될 때까지 네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돌아가서 겪을 일이 두려워 한 달 가까이 단식투쟁을 했던 방글라데시인은 결국 회유에 굴복해 본국으로 돌아갔다. “제3국으로 가는 건 힘드냐고요? 엄청난 선의를 가진 공무원을 만나는 기적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하죠.”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은 사람들을 제3국이 받아줄 리 만무하다.
외국인보호소=교도소? 헌법 위의 출입국관리법
“외국인 구금이 얼마나 쉬운 줄 아세요? 재판 한번 없이 가둬버릴 수 있어요. 하루만 체류 기간 연장이 늦어져도, 미등록체류자이기만 하면 일단 외국인보호소에 구금하죠. 출입국관리법이 그래요. 본국으로 송환할 때까지 무기한으로요.”(김세진 변호사) 헌법에 보장된 인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내용임에도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이 조항에 대한 합헌 판결을 내렸다. 헌재가 판시한 합헌의 사유는 ‘언제든 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정을 하면 신체의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귀국이 곧 죽음인 난민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판결이었다. 변호사들은 말한다. 마치 헌법 위에 출입국관리법이 있는 것 같다고.
외국인보호소의 환경은 감옥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청주 외국인보호소는 여성 교도소를 개조한 시설이죠. 외국인 수용 목적으로 생긴 화성 외국인 보호소와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실도 별반 다를 것은 없어요.”(김대권 대표) 20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 건장한 성인이 스무 명 가량 들어간다. 쪽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한 줌이 바깥 세상이 있다는 걸 자각하는 유일한 통로. 운동시간은 하루에 20분씩 주 5회가 전부다. “환기, 채광이 안 되니 몸이 순식간에 상해요. 그런데 수백 명이 수용된 화성 보호소의 상주 의사는 공중보건의 포함해서 2명이에요. 군대 의무실에서 똑같은 약을 처방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여성분들은 생리대를 안 줘서 수건으로 대체하기까지 합니다.”
단속과정에서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어도 고발도 못한 채 본국으로 돌아간 사례도 있다. 보호소 내의 열악한 환경을 미처 견디지 못한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예요. 붙잡혀서 보호소로 끌려오는 도중에 온 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했죠. 반드시 증거를 남겨서 제대로 고발하고, 끝까지 처벌받게 하자고 함께 다짐했는데…” 결국 피해자는 보호소의 혹독한 환경을 참지 못해 고향인 중국으로 돌아갔다. “임금이 체불된 사람들도, 임대보증금을 떼인 사람들도 같은 이유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비행기에 몸을 싣기 일쑤입니다.” 영영 갇혀 있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단지 체류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 “다른 사람의 신체를 해하거나 재산을 빼앗은 것도 아닌데 ‘불법’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붙여요. UN에서도 체류 기한을 넘긴 난민이나 외국인들을 ‘불법 체류자’라고 지칭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어요.” UN 난민기구의 지침에 따르면 미등록 체류자, 서류미비자라고 써야 하지만, 대다수 언론에서는 ‘불법 체류자가 대낮에 거리를 활보한다’는 식의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우리도 한 때는 난민이었다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우리도 살기 힘든데, 난민을 받을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따지는 팍팍한 목소리엔 어떻게 답하겠느냐고.
“유엔난민기구는 ‘운크라’(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바로 한국전쟁의 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였죠. 이 뿐이었을까요? 일제강점기 상해에 임시정부를 꾸린 우리의 선조들도 일본의 박해를 피해 망명한 ‘정치 난민’이었죠.” 제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거라 여겨졌을 때, 대가 없는 선의가 간절했을 때, 우리는 누군가 내민 따스한 손을 잡았다. “되돌려 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게 아닐까요? ”(김세진 변호사)
“제주도의 한 인권 단체가 예멘 난민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걸 우연히 봤어요. 마침 올해가 제주 4ㆍ3사건 70주년이더라고요.” 1948년 당시, 만 명에 달하는 제주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넜다. 총구를 피해 정신없이 올라탄 배가 마침내 닿은 곳, 일본은 완벽한 타지였다. 예멘인들에게 제주도가 차갑고 낯선 땅인 것처럼. “아직도 재일동포 중엔 제주출신인 고씨 성들이 많다더라고요. 과연 남일일까요? 우리도 언제든, 어디에서든 또다시 이방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김대권 대표)
대부분의 난민신청자는 취업을 위한, 가짜난민 신청이 매우 많고 브로커들도 있습니다.
브로커들은 이들을 이용해 돈을 벌고, 변호사들은 난민인정을 못받은 이들에게
소송비용을 받아챙기죠. 그 소송비용은 국가에서 지원이 됩니다.
10여년동안 인도적체류란 명분으로 갱신해가며 머문 외국인도 있더군요.
그리고 우리나라는 사실상 섬에 가까운나라이고,
휴전중인 국가인데 이곳에서 와서 난민신청을 한다? 쉽게 납득하게 어렵네요.
황 변호사는 “작년에 나온 UN난민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난민 수용률이 전 세계 139위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이나 어떤 위상을 (감안하면 굉장히 낮은 순위)”라면서 “한국은 국내 난민뿐 아니라 외국에 있는 난민들을 지원하는 부분에서도 굉장히 좀 인색한 면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낮은 난민 인정 비율 문제에 더해 “(난민 수용) 절차 자체가 굉장히 잘못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이의신청 제도만 하더라도 (난민위원회) 위원들은 이의신청 한 사람들이 제출한 내용을 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요약하고 의견서를 첨부한 공무원들의 자료를 보고 하루에 몇 십 건씩을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난민위원회 구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그는 “위원들 자체도 다른 나라 같은 경우에는 다 전문가들인데 한국은 전문가는 한두 명에 불과하다”면서 “심지어는 국정원 방첩단장도 난민 이의신청절차에서 심사를 하는 굉장히 엽기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는 당시 조선인은 열등한 민족이라고 세뇌를 시켜왔고,
한국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역으로 순수하고, 강인한 단일민족의식으로 저항했습니다.
실제로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의 유전자는 매우 가깝고,
일본인들의 70%는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정도 외에는 한국은 늘 다민족 사회, 다민족 국가였습니다.
고구려와 백제, 발해, 부여는 다민족 국가
신라는 단군의 후손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고려시대 때 인구의 10%가 귀화인이었습니다.
↓
700년 전 고려시대, 한반도는 이미 다민족사회였다
귀화인 고려하는 사회, 고려시대를 돌아보면 한국사회의 실마리가 보인다
열 명 중 한명은 귀화인, 고려의 귀화인 역사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귀화인이 가장 많았던 시대는 고려시대다. 210만 명 정도의 고려 인구 중 적어도 10% 이상은 귀화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개인단위의 귀화와 국제결혼을 통한 귀화가 흔한 지금과 달리 고려시대에는 가족단위, 집단단위로 이주해오는 귀화인들이 많았다.
고려 초기에는 중국 한족의 귀화가 많았는데, 귀화인들은 대개 상인들의 배를 타고 온 지식인들이었다. 당나라 멸망 이후 혼란스런 중국보다는 고려에서 출세의 기회가 클 것이라 생각한 중국 지식인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귀화해 온 중국 지식인들 중 상당수가 관료로 발탁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고려에 과거제도를 도입한 후주 출신의 귀화인 쌍기다.
고려 중기에는 여진, 거란 등 북방계통 민족으로부터의 귀화가 많았다. 이들은 집단적으로 이주해왔으며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됐다. 발해 멸망 후에는 대규모의 발해 유민들이 고려로 유입되기도 했다. 고려는 발해에 대해 같은 족속이라는 친밀감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 발해의 일반 백성들은 말갈을 비롯해 다양한 민족으로 이뤄져 있었다.
고려 후기에는 아라비아, 일본, 동남아 등에서 다양한 민족들이 소규모로 유입됐다. 이들은 특별한 목적을 지닌 사람들은 아니었으며 우연히 고려를 찾았다 정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또 원나라가 후기 고려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만큼 원나라를 통해 고려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원나라가 패망한 후에는 고려에 와있던 원나라 관료 등이 그대로 눌러앉는 경우도 흔했다.
다문화사회 꽃피웠던 고려의 귀화 권장 정책
아주대학교 사학과 박옥걸 교수는 고려시대에 이처럼 다양한 귀화사례가 가능했던 것은 “고려가 개방적, 적극적, 진취적 태도로 문호를 열어두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려 이전에는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여건이 미비해 정보가 부족했고, 조선시대에는 정책 자체가 고려에 비해 폐쇄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고려는 동북아시아의 문화교류 중심지였고 국가 정책적으로 귀화인의 정착을 권장하고 있었다. 고려 정부는 귀화인들을 통해 새로운 제도, 문물, 기술 등을 수입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제도의 경우 중국 지식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으며, 북방 민족은 모직기술과 군사, 국방적인 면에서 도움을 줬다. 고려 정부는 이들에게 관직과 직급을 내리고 다양한 편의를 제공했다.
한민족은 단일민족? “천만의 말씀”
유전학·고고학 연구 결과 본토인, 북방계, 남방계 섞여 … 문헌에도 외래인 유입 사례 많아
우리 한민족은 어떨까.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로서 단일한 혈통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은 진실인가 허구인가. 허구 쪽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아마도 옳을 것이다. 한민족의 피에는 본토인, 북방계, 남방계가 섞여 있다는 연구 결과가 단적인 예다. 이 같은 결과는 유전학적 연구와 고고학적 유물을 통한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외에 문헌에 기록된 외래인(外來人) 유입 사례도 많이 있다. 여기서는 고고학적 유물과 문헌 자료를 중심으로 우리 민족에 유입된 외래인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고구려 건국 후 영토 확장 과정서 다른 핏줄 받아들여
고조선 유물을 검토해볼 때 건국 과정에 다른 지역 혈통이 많이 참여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짐승 무늬가 많은 북방식 청동기, 황하 유역의 혈통이 많이 썼던 세 발 달린 그릇 등이 그 예들이다. 이렇게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참여해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을 내세운 고조선이 건국했다. 그 후 고조선은 주변의 다른 부족을 흡수해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성장했다.
고조선이 와해되는 과정에서는 여기에 속했던 사람들이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이들은 얼마 후 한민족이라는 공동체로 다시 나타나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혈통들과 섞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몽은 고구려를 세운 뒤 ‘다물’ 이념으로 주변 나라들을 병합했다. 그 후 여러 왕들이 영토를 넓히고, 다른 핏줄을 받아들이면서 나라를 키워나갔다. 그러한 과정을 설명한 대표적인 것이 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광개토대왕비’다. 그 결과 고구려는 6, 7세기에 들어 동북아의 최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다.
백제 역시 주변의 많은 소국을 병합하면서 강국으로 기반을 다졌다. 그런데 신라와 가야에서는 고구려나 백제와는 다른 면이 나타난다. 고구려나 백제는 주변국을 병합하는 과정을 밟은 데 비해 신라는 외래인을 받아들인 사례가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민족사에 외래인이 도래한 것과 관련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가야의 허황후 이야기다. 가야의 첫 왕인 김수로왕의 부인이 멀리 인도에서 왔다는 기록이다. 이 기록은 ‘삼국유사’ 권4 탑상(塔像)편 금관성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조에 등장한다. 허황후는 멀리 서역의 아유타국에서 왔는데, 이를 수로왕이 맞이해 왕비로 삼고 가야를 다스렸다는 것이다.
신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신라 4대 왕인 석탈해에 관해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탈해는 본시 다파나국(多婆那國) 출생인데, 그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쪽 천리 되는 곳에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보면 당시 신라와 가야는 남방세력과 많은 해상 교류를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많다’는 의미는 양적인 표현을 넘어 정치권력화할 수 있을 정도의 교류라는 점이 중요하다.
고려는 북방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북방 지역의 발해 유민 등 다른 민족이 고려인으로 귀화했다.
서기 1300년경부터 동북아의 국제정세는 급변하기 시작했고, 이를 이용해 이성계는 원(元)의 지배를 받던 고려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했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북방세력인 여진족 사람 퉁두란을 끌어들였다. 조선 건국에 참여한 퉁두란은 그 후 이지란(李之蘭)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청해(靑海) 이씨의 시조가 됐다. 조선 건국에 참여한 여진족 사람은 이지란 외에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성군(聖君)으로 받드는 세종의 즉위식 때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회회교도들이 세종이 즉위하는 국가 대사에 참석한 것이다. 이들은 이슬람교의 성직자들로, 조선에 살고 있던 아랍인들이었다.
한민족이 단일한 혈통이 아니라는 역사적 사료는 이밖에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는 어디서 나오게 된 것일까. 필자는 우리 민족이 역경을 극복해오는 과정에서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단일민족을 내세운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 논리가 유용한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중국인들이 ‘용의 자손’임을 내세우며 중화민족을 강조할 때 큰 거부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외국인들은 우리의 ‘단일민족’ 주장에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한국을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우리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계화??? 허상만 쫓는 분이군요 님도.. 지금 미국/영국 안에서 고립주의을 이야기하는 판에.. 위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민족의 구성원이 다양할수록 그에 따르는 사회적 갈등도 복잡 다양해 집니다 그걸 지금 한국사회가 수용할 능력이 되는냐 이말 입니다..
그리고 메르켈도 이상만 보고 강행해서 사실상 정치적 생명이 끝났습니다
모든지 그사회가 받아들일수있는 한계치가 있고 지금 이논란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겠습니다.. 한국사회는 진지하게 다문화와 외국인/불법노동자/난민에 대한 담론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이말입니다. 옛날에 다문화였다던가 아니다였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그런 받아드릴 준비 이말 입니다. 이번 혼란은 저항이죠 일방적인 행위에 따른..
그리고 한가지 학설을 가지고 와서 그게 다문화/다인종였다고 이야기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몇백년 동안 그나라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화와 사회시스템을 무시하고 문화적 충돌을 전혀 고려없이 이상만 쫓는 행위라는 말입니다..지금은 중세가 아닙니다! 강압으로 수용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이말입니다...
(단일민족과 단일혈통은 구분합시다 오랜 세월 동안우리는 단일민족화 된 나라입니다. )
그리고 세계화을 위해서 다문화을 해야한다고 한다면 전 세계화을 반대하죠.. 다국적 기업들에게나 좋은 그런 골 떄리는 걸 내가 왜 수용을 해야되는지 원..
유럽의 이민에는 제국주의 부채의식과 기업노동력 결합된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피할수없는게 아니라 만들어 진겁니다 일부 권력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중국은 다문화 다인종 국가입니다 그중 세력이 강한게 한족이고 그들이 말하는 중화사상이구요,, 이스라엘 민족과 미국의 백호주의 또는 영국의 세력 중 앵글로색슨
유럽은 이런 수만은 종족의 집합체입니다 그들만 해도 이런 것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특히 왕가나 전통 귀족들은 더하죠.. 나라안에서도 배타적으로 인종을 차별하는 게 곳곳에 있고 하루에도 사건사고 있습니다.. 위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수많은 문제들이 나옵니다..
혹시나 해서 봤는데. 댓글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다민족과 다인종 국가일수록 인종과 문화로 인해서 갈등이 생긴다고..
독일/유럽이 이스라엘인 학살나 차별 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정치+영토의 이유로 차별하며 공격한 예가 많죠 내가 쓴 댓글은 난민에만 국한된게 아닙니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구성인 정치인들과 세력화가 되면 갈등으로 간다는 거죠 중국도 마찬가지(위구르와 티벳) 그사회가 차별이 없다고 해도 정치적이유나 갈등으로 인해서 분열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사건이 인종,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확대 파생될겁니다 백호주의가 호주만의 문제 아닙니다 제도권 밖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차별들.. 학살.(캐나다의 원주민을 학살.미국의 원주민은 학살한 예들..수많은 예)백호주의도 마찬가지로 백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다른 인종과의 생존투쟁일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위에서도 이야기하듯 선악으로 보지 말라는 거고...그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가 이질적 문화나 인종의 정치적 참여로 인해서 갈등이 증폭되고 세력화 됩니다, 한국만 해도 다문화 다인종이 특정지역에 밀집하고 세력화 되고 있습니다 그게 치안와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도 됬고 그걸 편견이라고 단순화 시키기엔 사안이 상당히 심각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오랜 세월 동안 한반도을 거점으로 해서 서로간에 전통적 가치와 생각이 유사한
인종들이 통합되여 민족화 됬습니다 통합중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사료가 없어 모르겠지만 갈등은 분명 존재했을겁니다... dna 유사성만해도 민족의 구성이 비슷한 구조도 흥미로는 거고 )
그리고 님이 가지고 온 한가지 학설.. 조선시대/고려/신라 예을 들며 이야기하는 것들도 절대 다수가 한민족이라 갈등이 최소화 된거 일수도 있고 일부의 유색인종이 있다고 해서 그걸 다문화 다인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상당히 무리가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중세에 살고 있지 않고 수많은 미디어나 언론들을 통해서 다문화 다인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을 알고 있으며 그게 우리사회에도 일어날수있는 문제을 담론화하는게 왜 편견이라고 치부하는 건...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인종과 민족의 구성원이 다양할수록 민족이 겹치는 나라와의 내정간섭 또한 생기기마련이죠
난민은 난민을 만든 놈들이 받는게 맞죠. 시리아 난민은 시리아 사태를 직접 벌인 미러유럽중동 국가들이 받아드리는 게 상식임. 이득은 지들끼리 나눠 먹고 난민과 피해 지원은 전세계가 나누자는 말을 감히 어디서 해? 시리아 난민 받아드리는 건 정치인 놈들이 미국과 유럽에 잘 보여서 자기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 세금 빼다 맘대로 쓰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