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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4-05 16:39
성리학도 좋았지만
 글쓴이 : 극작가
조회 : 656  

역시 양명학도 들어왔어야 함

하필이면 성리학 외의 것을

전부 사학으로 규정해버렸으니;;

조선 초기에는 명나라엔 이미

양명학이 유행했다고 아는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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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랑기안 14-04-05 16:44
   
근데 성리학도 지멋대로 변질시켜서 문제죠..
성리학 어디에도 사람들을 죄다 노비로 만들어버리고 수탈하고 대를이어 양반이 되고  양반은 수탈과 일도하지 안하고 백수로 살라고 한적도 없는데 말이죠
오히려 조선 건국자들은 성리학에서 유리한점만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권력에 방해가 되는건 받아들이지 않거나 곡해해서 해석했죠.
     
극작가 14-04-05 16:48
   
22222
     
jirall 14-04-05 16:48
   
개뿔도 모르면서 진짜 에휴..
          
바랑기안 14-04-05 16:53
   
어디 그럼 개뿔도 모르는 저에게 어디 고견좀 들려주세죠? 최소한 반박이나 하고나서 글을 싸지르시던가요, 닉값하려고 이러는겁니까?
개뿔도 모르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할까요? ㅉㅉ
               
눈물2남 14-04-05 16:56
   
근데님도딱히 인용이나 설명없이 주장만하네요
               
jirall 14-04-05 16:59
   
틀린게 졸라 많아서요. 첫째. 조선 양반들이 사람들을 죄다 노비로 만들어버리고 대를 이어 양반이 되고 수탈과 일도 안 하고 백수로 살라고 했다는 근거는?

둘째.성리학에서 유리한 저만 받아들이고 권력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안 받아들였다는 근거는?
셋째. 그들이 조선의 경제, 사회, 문화를 붕괴시켰다는 근거는?

양반에 대한 개론서로는 일본인 학자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을 추천하구요.

조선시대 양반들이 경제 사회 문화를 붕괴시켰다는 너무 포괄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손도 못 대겠는데 ㅋㅋㅋ 식근론자들의 19세기 붕괴론에서 결정적인 산림황폐화에 대해서는 이우연이 공유지의 비극으로 설명한게 그나마 님같은 일뽕들에게 유용할 듯 하지만 이런 각론에 대해서는 별 관심도 없을 것 같고.

뭐라고 해야할지 가생이에서 일본 까고 역사관련해서 까지만 좀 진지하게 글 올리는 사람들이 없어서 말이죠.
                    
바랑기안 14-04-05 17:23
   
애초에 정도전부터가 토지개혁하자고 만인이 잘사는 나라 만든다고 해놓고 정작 개국공신이 되자 큰 장원과 노비제를 유지하고 수많은 노비를 두었습니다.
율곡이이와 이황 정약용 정약용 모두 노비제를 찬동했고 율곡이이같은 경우엔 선물로 노비 수백명을 내리기도 했죠
그리고 양반이 조선사회에 도데체 무슨 생산적인 활동을 햇다는거죠?
아무 노동도 하지않고 오로지 뜻있는 사람만 과거시험에 응시할뿐 나라에 세금을 냈습니까 아니면 무슨 사회과확을 발전시켰습니까 상업을 했습니까?
오로지 농자지천하지대본 아래 전부 천시했습니다. 성리학 자체가 불교나 도교와 같이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가장 현실적이고 속세적인 학문이란 모토로 고려말이후  국가적인 이념으로 자리잡았지만 양천제를 넘어 일천즉천 부모가 노비면 자식도 노비라는 이런 황당한 사상으로(중국일본은 이러한 제도가 사라졌고 또한 제한적이였으며 해당하는 사람 당대에 한에서 합니다. 이것도 엄연히 계약관계였고 급여도 있었습니다.) 조선은 점점 노비화가 됩니다. 나중엔 세금을 낼 상민이 30%였고 심할땐 20%까지 떨어집니다.
이러자 조선조정은 지나치게 많은 노비때문에 세수가 걷히지 않으니 납속책 공명첩을 팔아 당장은 재정을 충당하지만 이게 더큰 화가 되어 세금을 내지 않는 양반층이 늘어나버려 돈이 걷히지 않았죠.

또 나라가 가난하니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 녹봉을 정말 짜게주거나 주지 않게 되고 결국 암묵적으로 뇌물과 수탈을 눈감아주는 사회였습니다.
세금도 안내는 집단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세금을 내야할 상민들이 없으니 나라가 어찌 운영되겠습니까?
조선이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 성리학을 발전시켰다면 일본보다 더 빨리 근대화의 기회를 가지고 일찍 성공할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성리학이 불교와 도교를 밀어내고 나타나게된 가장 중요한 원인인 실용주의엔 눈감고 권력유지의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정작 사회발전을 도모하지 않았습니다. 못한게 아니에요
                         
jirall 14-04-05 17:53
   
그러니까 개설서라도 읽으라니까요. 사회과학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부터 이미 이해가 없다는 게 들어나는데 학문 뒤에 과학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은 빨라도 계몽주의가 휩쓸던 18세기 그 후 실증주의로 꼴깝떨며 아무대나 과학이라는 그럴듯한 단어 붙이는  19세기나 와서야 떠들어대는 것이고 그 전에는 조선에서도 경세론은 선비들의 기본적 덕목이었음. 드라마에서 나오는 양반 이미지가지고 말하는 게 뻔히 보임.

그리고 노비라는 단어의 현대적 의미로 조선을 투영해 보고 있다는 것도 흔한 조선까들의 버릇인데 조선 중후기까지 노비는 기본적으로 외거노비가 대부분이며 솔거노비라 해도 자신들의 가정을 꾸릴 수 있었고 생활을 위해 돈을 버는 것도 가능했음.

그리고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양반은 신분이 아님.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3대 내에는 몰락의 길을 걷는 게 흔함. 그나마 최근의 연구로 한영우 교수의 과거, 출세의 사다리를 보면 조선시대 과거급제자 중 40~50%는 평민임. 동시대 일본은? ㅋㅋ

세금? 애초에  조선은 민본이 나라의 근본정신이라 세금을 높게 걷지 않음. 최근 드라마 정도전에서 여말선초 양민들이 세금으로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도 그런말이 나옵니까. 그럼 일본처럼 기본 5할에 악랄하면 9할씩 걷을까요? 그래서 에도시대 그렇게 잇키가 터졌구나.

조선말기로 오며 분명 경직된 사상성이나 세금충당을 위한 무리수를 던지긴 하는데 그 전까지 잘 굴러가고 동시대 다른 국가와 비교해 양민들에게 충분히 혜택을 주던 나라였다는 것은 알지도 못하면서 더 안 좋은 것은 현대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조선을 평가한다는 것. 화폐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고 상업이나 세금등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 칼 폴라니가 그런 시장조정적 시각에 대해 한 마디 한 것이 있죠."인간을 맷돌에 갈아 산으로 부식시켜 모두 똑같이 만들어낸 것". 뭐 쓴 글을 보면 이런 것은 전혀 마음에 안 와닿을 듯 하지만.

이러니까 내가 일본 까는 것들이 기본적으로 우습다는 것. 전형적인 식민사관은 다 가지고 있으면서 일본 까는데 선봉장에 서는데 ㅋㅋㅋㅋ 그리고 더 하자면 식근론 까대는데 식근론 학자들도 기본적으로 저런 식으로 조선을 평가하지는 않음. 이영훈등도 식민사관을 비판하면서 나왔는데(물론 결론적으로 식민사관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게 문제) 외려 현재 인터넷의 조선까들이 악랄하면 훨씬 더 악랄하지.

그리고 근대화? 근대화가 뭔지는 아십니까? ㅋㅋ 학자들 사이에서도 근대화, 근대성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못 내리는 무슨 근대화 운운. 님이 말하는 근대화라는 것은 그냥 서구중심적 자본주의맹아론과 다를게 없는 상업의 발전, 자본의 축적과 임노동자의 증가 같은 것들인데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그 소수를 위한 자본축적과 국민국가를 위한 맷돌에 갈려들었는지는 전혀 생각 못 하고 그냥 나중에 발전된 국가에 살고 있다보니 아 ㅆㅂ 저것들은 과거에 왜 이렇게 못했을까 하는 투정에 불과한 것.
                         
바랑기안 14-04-05 18:42
   
누가 노비가 돈을 벌고말고의 문제입니까? 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으니 문제인 겁니다.
나라가 적절한 세금을거두고 지주들이 수탈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하는데 기득권층에 의해 그러한것들이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세수인구를 늘린다. 사대부와 그들이 부리던 노비들이 걸려서 반대되고 , 단순히 기존 세금을 높인다. 세금을 낼 상민이 전인구의 30%도 안되는데 그나마 지주수탈과 부역, 징포에 시달리는데 올리고싶어도 "현실적으로 올릴수가 없었던거죠"
애초부터 모든 계층이 일괄적으로 세금을 내게 만들었어야 하는겁니다.
정도전 부터가  아주조직적인 노비제와 사대부를 온갖 특권층으로 만드는데 아주 중요한 역활을 햇는데 이들 사대부 대부분이 나라에 무슨일을 햇습니까? 백성에게 무슨 좋은일을 시켜줬나요? 근대이전까진  국가의 GDP는 많은 인구와 부양할 식량과 땅만 있으면 자연스레 늘어나는구조인데 조선은 인구는 점점 늘어나는데 (폭감할때도있었지만) 세수는 조선 개국때보다도 더 힘든 상황이 되버리니 재정이 가난해지고 재정이 가난하면 녹봉이 줄어들고 녹봉이 줄어들면 당연히 지주와 사대부들은 수탈을합니다. 관직에 오르기까지의 노력과 자금을 회수하고 축재를 위해서죠
이런 악순환 때문에 국력이 쇠한겁니다.

한영우 교수의 저작에 이런부분이 있더군요
"~그리고 양반이라는 특권층이 권력과 부를 세습적으로 독점하고 평민과 노비를 지배했다는 통념과 달리 조선 초기만 해도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이 전체의 40~50%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다 16세기 후반 이후부터 양반의 벼슬 세습이 굳어지기 시작,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양반·중인·평민의 계층구조가 성립했다가 18세기 후반부터 신분상승 운동이 활발해져 양반 신분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보이십니까? 님이 근거로 내놓으신 저 에서 제가주장하는 양반의 세습이 굳어지기 시작한한다는 내용인 나오는군요 -_-;;. 애초에 저들은 권력층에 한번오른뒤 내려오지 않은겁니다. 말이 3대이지 그걸 받아들이는 양반 사대부는 없었고 지방같은 경우엔 관직에 오르던말든 평생 자식대대로 양반으로 지냈죠.
무위도식한 계층을 성리학은 전혀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불교 도교와 같은 전혀 비현실적인 것들을 혹세무민한다고 나타난 신식학문이 성리학인데 성리학이 아무리 신분질서를 중시했다고 하지만  일천즉천이라는 황당한 사상은 신진사대부들에 의해 조선에서 바뀐거지 들여올 때브터가 그런거 아니죠. 신진사대부들이 자신의 경제적이득을 위해 성리학 이론까지 서슴치 않고 저버렸고 결국 조선초 인구의 30%이던 노비가 17세기가 되면 인구의 60%가 넘어갑니다. 나라에 아무것도 생산해주지 못하는 노예계층이 60%나 된다는게 정상입니까? 차라리 그 노비들이 국가에 소속된 관노이거나 스스로가 땅을가꾸는 농노라면 모를까 국가의 재정을 악화시켜 국가와 사회전반의 몰락을 가져오게 됩니다.
                         
jirall 14-04-05 18:57
   
한영우 저작 읽어본적도 없으면서 웃기고 있네요. 어차피 가생이든 뭐든 논쟁을 통해 합의에 이른다는 순진한 생각같은 건 없지만 딱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가져오네.
그렇게 생각 하시든가요. 어차피 가생이에서 조선까들 중에 변한 사람은 한 명도 없으니까ㅋㅋ

다시 생각해도 웃기네. 한영우 저작의 기본적인 의미도 모르면서 양반은 세습되고 노비를 착취한 것들이라는 본인의 말이 맞다는 근거로 들고 오네. 20세기까지 영국 미국 일본등의 계급과 관직 세습이 어떤지는 아시구요? gdp는 또 왜 나와 그리고. ㅋ gdp가 뭔지는 그리고 언제 발명된 건지는 아십니까?
                         
바랑기안 14-04-05 19:06
   
누가 조선까입니까? 전 항상 조선에 관련해서 논쟁있으면 조선편들었습니다만?!
구 자게 글에 조선관련 논쟁있으면 제가 뭐라고 썻는지 댓글이나 읽어보시던가요.
저도 조선은 고려를 대체할 힘과 당위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려보다 조금더 진보되었을뿐 결국  정체되었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근거로한 저 에서 제 의견에 들어맞는 내용을 거론하는건  당연한거 아닙니까?  결국 그들도 토착화 되어 세습되고 뿌리가 박혀서 나타난 문제인데

그리고 GDP개념이 언제 생겨난게 중요한게 아니라 과거의 GDP계산 방식은 단순해서 식량생산으로 인구가 늘어나면 자연히 GDP가 늘어난다입니다. 근데 조선은 인구가 늘어나도 GDP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가 인구만큼 세수가 걷히지 않기 때문이라 주장한거구요. 말을 하면 제데로 들어먹어야지 뜬금없이 GDP가 언제 생겨난 개념이라고 나에게 되물으면 뭐 어쩌라구요?
즈베즈다 14-04-05 16:44
   
성리학이든 양명학이든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없었는지 그게 아쉽네요
아니 만들거나 개량한 건 의외로 많은데 뭔가 흐름이 이상한 쪽으로 가거나 흐지부지 된 게 많아서..
눈물2남 14-04-05 16:48
   
역사적사실에서 가정은 별로 좋지안죠 지금이야 결과론적으로 보면 양명학이 들어왔으면 좀더 빠른 발전이 가능했겠지만 그시대사람들은 양명학이냐 성리학이냐 하는 문제는 미래에 관한것이죠 따라서 뭐가 유익한지도 모르고요 ㅡ
도밍구 14-04-05 17:03
   
성리학과 양명학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명학을 막은 것이 있다면 성리학이 아니라 사람집단 일 뿐이겠죠. 성리학과 조선의 쇠락은 아무런 함의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jirall 14-04-05 17:08
   
ㅋㅋㅋ 아무튼 성리학에 대해 개뿔도 모르면서 함부로 재단하는 것부터 웃긴데 무슨 양명학임 ㅋㅋㅋㅋ 이런 사람들이 꼭 유교탈레반 어쩌구 저쩌구 떠들지. 솔직히 이 단어 쓰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게 그 사람 수준이라고 스스로 낙인 찍는거지.

유학에 대한 전체적인 개괄로는 도올이 강의한 것 유투브에 있으니 그거나 좀 보고 나서 이야기 했으면 함. 도올이 역사 전문가도 아니면서 나댄다고 졸라 까이지만 유학, 기독교, 불교에 대한 개괄강의들은 충분히 들을만 합니다.
rlaclrnt 14-04-05 17:12
   
유학관련 모든걸 싫어하고 혐오합니다.....
별기군 14-04-05 17:53
   
남녀차별부터 이미 아웃^^
성리학은 한국에 들어오면 안되는 학문이었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