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죄는 하나님 외에는 절대 씻을 수 없습니다
창세기 한번 읽어보세요.무지하면 부끄러움만 당할 뿐입니다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분을 믿지 않는것이 가장 큰 죄임을 기억하세요
진리가 아닌 불교.천주교 그 밖의 종교가 저주의 종교입니다.무지하면 저주로 가는 지름길이 될수 있습니다.
------------------------------------------------------------------------
이것이 독설이죠
내 보기엔 그대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그저 믿습니다 만 반복해서
정신승리하신
병자로 보이네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오직 내가 길이요 진리라.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시길 "죄에 대하여라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말씀합니다.
디모데 후서에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공부하라 라고 되었습니다.
말씀이라고 무조건 줏어들은대로 말하는것이 아니라 시대별로 적용되어져야 합니다.
구약의 교리를 무식하게 신약에 적용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진리는 모든것에 절대 기준이라는 말씀입니다.절대 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어떤 것이든지 진리를 대적하거나 반대가 되면 법의 기준이라는 진리가 저건 틀렸다 진리가 아니고 가짜다라고 기준점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님께서 인간이 지옥에 가지 않고 하나님께로 갈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으셨는데 믿으면 죄가 용서 된다고 하셨는데 인간 스스로 그걸 거부했기 때문에 믿지 않는죄가 크다는 것이지요.
진리라는 개념은 대충 맞는듯..
죄라는 개념은 밑에 다른 분들이 얘기 했듯이 상대적인 개념이죠
자타가 구분되면서 생기는..
하나님과 나라는 관계 속에서는 상대적인 관계가 그대로 존속됨으로
죄의 근원적 해결이라고 볼 수 없죠..
종교는 절대적 근원적 해결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상대적인 안식처는 결코 궁극의 안식처가 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대들의 종교체계가 얼마나 미완성이며 하급한지 모르는 것..
이것이 그대의 죄이며
이 죄는 영원히 그대를 구렁텅이에서 헤메게 할 것이요
나는 예수님이면 충분하다???
쯧쯧
세계 종교지도자들이 기독교를 포함해서
자신들의 기존 신앙생활에 미진함을 자각하고
불교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음을 알기나 할까..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고전1:18)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창세로부터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 또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들은 스스로 지혜 있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롬1:19~22)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지 아니하셨느냐?(고전1:20)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고전1:21)
그러나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니라.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것들은 영적으로 분별되느니라.(고전2:14)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요3:16~18)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 사람이 무엇을 주어 자기 혼을 대신하게 하겠느냐?(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막8:36)
그런데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들의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무효로 만들겠느냐?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롬3:3~4)
그들 속에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고후4:4)
또 그들을 속인 마귀가 불과 유황 호수에 곧 그 짐승과 거짓 대언자가 있는 곳에 던져져서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으리라.
또 내가 크고 흰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물러가고 그것들의 자리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계20:10~15)
죄는 불신자나 믿는 자나 죽을때까지 죄에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그래서 인간은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지요.죄덩어리 인간은 죄가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합니다.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쉽게 구원의 길을 마련해 놓으셨지요. 물론 믿음의 선택은 본인 자유입니다.
하지만 죄인이 그걸 거부함으로 지옥으로 가는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워 하시겠습니까
인간이 단체 생활에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범이 필요한데 그것을 종교나 사회체제의 형식등을 빌려 공표하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팔을 자르고, 살인은 복수로 응징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런 법들은 해당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적절히 합당한 처벌로 질서를 유지하게 되는데 필요합니다.
만약에 그런 행위(도둑질, 사기, 살인등)가 전혀 없다면 애초에 그러한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근거가 없었을 겁니다.
현재도 신종범죄가 생겨나면 그때그때 새로운 법 조항이 생겨나듯이...
그리고 사회구성원간 효률적인 질서 체계외의 법 비슷한 윤리라는 것이 있는데,
일상적 통념, 종교적 교리등이 있겠죠.
어른께 인사를 한다, 살생을 하지 않는다(인간이 아닌 동물), 11조를 낸다, xx을 하지 않는다....
뭐.. 이런건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상향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혼자 무인도에서 산다면 굳이 법이있을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만의 추구하는 이상적인 생존윤리를 (혼자서) 규정한다면 그것이 자신의 법이 될 수도 있겠죠.ㅋ
그러니... 죄를 지을 가능성이 크지않다는 생각입니다.
불교에는 12연기설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지로 인해서 무지한 행동을 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의식과 지식과 촉각과 인간의 육체의 기관과 고통과 쾌락과 성욕과 소유하고 싶은 소유욕 등을 통해서 번뇌하는 등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교 교리로 말하자면, 혼자 있어도 괴롭고, 외롭고, 배고프고, 성욕을 해소하지 못해서 슬프고, 이러한 번뇌를 참지 못하고 번뇌하면, 그것또한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결국 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인도에서 자신의 이러한 슬픔과 번뇌와 외로움과 배고픔과 벌레 등으로 인한 고통들과 싸워야 하며,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인간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죄는 행동의 죄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무명이라 하여 무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 사회가 규정한 법률 안에서의 죄가 아니라, 업에 대한 죄에서 해방을 뜻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또한, 인간의 법률에 의한 구원이 아닌 죄가 아닌 신의 입장에서의 구원과 죄를 뜻합니다.
이렇게 허접한 질문에도 어떻게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해석해서 논리정연하게 써서 이해되기 쉽게 쓰느냐 못쓰냐에 따라서 천재와 둔재의 차이가 발생되는 것입니다^^ 천재는 허접하게 글을 썼다고 해도 글쓴이의 의도를 빠르게 해석해서 쉽게 풀이하여 논리적으로 정리를 해서 전하는 것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그 능력을 입증받게 되는 것이지요 ㅎ
선업이든 악업이든 해탈하지 못하고 윤회를 하는 것은 업의 대가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구원받은게 아니란 점입니다. 님은 아직도 이해를 못합니까?? 부처는 인생을 고로 보왔습니다. 인생을 고통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는것이 깨달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을 쌓아서 다시 착하고 좋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불교의 교리는 인생은 고통이니 이 고통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며 구원입니다. 또다시 태어나고 죽음과 번뇌를 느끼고 살아가는 것이 결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병들거나, 배고프거나, 외롭거나, 슬프거나, 죽거나, 이 모든 것이 고통이라 생각했지요.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업으로 인해서 태어난 것이지요. 자신이 쌓은 공덕에 따라서 좋은 집안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동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업을 끊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윤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는 인생을 고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윤회의 끈을 끊어 해탈하여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이며 해탈하는 것입니다.
부처가 아내와 자식과 모든 것을 떠나, 성욕을 금하고, 무로 살아가는 이유는 인생을 고통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일명 부족의 부족장 아들로 태어났다고 해서 그가 행복하지 않았고 번뇌를 하고 병들거나 슬프거나 외롭거나 인생을 통해서 괴로움을 느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윤회를 끊어야 하는 것이 근본적 목표이며 구원 원리입니다. 기독교적으로 해석이 아니라, 종교학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전 죄가 사회적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회가 없는 곳에선 죄가 성립될 수 없을 거라고 봐요.
그러나 무인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서식하기 시작했다면 그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떨어진 사람이 지적 능력이 있고 사회에 대한 학습을 충분히 한 상태라면,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관념에 따라 스스로 죄를 규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경우, 원한다면 혼자서라도 죄를 지을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