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이슈 게시판
 
작성일 : 15-04-02 10:17
기독교 근본 이념이 사랑이란 분이 있어서 써봅니다.
 글쓴이 : 쇼펜하우어
조회 : 1,256  

쓰다보니 두서없게 내용이 깁니다. 전 무신론자임을 밝히고 들어갑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하느님 등의 명칭은 야훼로 통일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독교의 교리는 사랑이 포함된다 볼 수는 있습니다만
결국 그건 주요 교리인 믿음(즉 구원)을 포장하기 위한 부수적인 교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단 십계명을 자세히 살펴보면, 놀랍게도 그 열 가지 중에서 
살인, 절도, 거짓 증언만이 타인에 대한 비윤리적 대우를 금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대부분은 안식일 준수, 우상숭배 금지, 다른 신을 섬기지 말 것, 
주님의 이름을 헛되이 하지 말 것 등과 같이 종교 의식과 믿음에 관한 방식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논리를 보면 재밌습니다.

기독교는 사회를 만성질병에 걸리게 하고 나서, 그것의 치유책으로 기독교를 제시하는 식입니다.

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야훼와의 약속을 어기게 되어 (불복종)
그 자손에게까지 이어진 죄라는 원죄라는 틀을 씌웁니다.
그리고 그 원죄를 벗고 구원을 받으려면 기독교를 믿어야한다고 말합니다.

광고주들은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기독교와 똑같은 심리 전술을 활용합니다.
(1) 당신에게는 문제가 있으므로
(2)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리 상품이 필요하고
(3) 다른 경쟁 상품들은 당신을 실망시킬 뿐입니다.

당연히 기독교의 교리는 믿음이 주가 됩니다.

예수의 실재 존재 여부를 떠나 예수가 몇 구절 사랑을 설파하긴 했습니다만
후에 사도 바울이 유대교 율법을 거부하고 예수를 구원자로 삼아 만든게 기독교의 시초입니다.

그런 바울의 일반적인 말은 '사죄'였습니다.
구원을 얻는건 야훼의 눈에 들어 죄가 사해지는 것이라며
그는 사죄는 결코 선한 행위에 의해서 획득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실로 자기들이 쌓은 선한 행위가 야훼의 애호를 받게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만한 자들이며
그러한 자들은 자기들의 내적 본성의 타락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은총의 필요를 마음 깊이 느끼지 못할만큼 교만한 것이라 말했습니다.

바울은 사죄는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온다며
신앙이란 지성의 활동이라기 보다는 의지의 활동이요,
야훼의 성령의 힘과 인도를 주저없이 무조건 신뢰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거쳐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마르틴 루터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카톨릭에선 그래도 이성을 도구로 신학의 근거를 세우는 철학을 꾸준히 이어왔지만
프로테스탄트 개신교는 더욱 믿음에 치우쳐집니다. (서양 사상사 대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루터와 그 이후 신교 지도자들의 견지에서 보면
이성을 신뢰함은 인간의 외람됨을 나타내는 증거라며 배척해왔으며,
원죄의 남은 흔적이라며 멸시하였습니다.

신교는 맹신주의로의 경향이 강해지고 이성을 멸시해왔는데
신교의 종교개혁은 여러가지 중요성을 가지지만 정상적인 운동은 아니었다고 평가됩니다.

그런 맹신주의로 인해 신교에서는 카톨릭에서 보여줬던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 토마스 아퀴나스, 다른 스콜라 철학자 수준의 신학자가 나온 일이 전혀 없습니다.

교회에 가거나 TV를 보며 목사와 전도사 들을 한번 지켜보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전지전능한 신께서 진짜 저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들을 선택해서 대변인으로 삼았을까?"

바이블은 실제로 "하나님은 사랑이다"(요한1서)라고 말합니다.
또한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고린도전서)고 말하고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너희들의 주인인 나는 시기하는 하나님이다"(출애굽기)라고 합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는 수억명의 비기독교인들을 지옥에 빠뜨려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처녀는 너희들이 차지할 몫으로'살려두지만,
점령당한 약속의 땅에 있던 아무런 죄도 없는 남자들과 여인들과 사내아이들을
몰살하라(민수기)는 명령은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바이블에서 사랑을 언급하는 챕터는 지극히 적습니다.
마태복음 몇줄, 고린도전서 몇줄, 요한 복음 몇줄 등등 
다 합쳐야 그 두꺼운 바이블에서 몇페이지도 안됩니다.

하지만 협박 명령하며 저주와 살인으로 신앙을 강조하는 내용은 대부분을 이룹니다.

목사들이 교회에서 언급하는 내용이 항상 거기서 거기인게
바이블에서 신도들에게 좋은 말로 포장해서 읽어줄만한 내용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전도서, 마태복음, 고린도전서, 잠언 ..

전도서와 잠언은 사람에게 교훈을 주는 내용으로 많이 언급합니다. 
(확대해석, 유추해석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입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을 예로 자식을 죽일 의지를 가질만큼 믿음을 강조하고 싶을때 언급합니다.

기독교는 유일신교로 타 종교를 배척하는게 기본 교리입니다.
맹목적인 믿음이 주요, 사랑은 그 이후의 교리로 포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자기대로 교리를 왜곡하고 합리화하여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천박하고 모순된 교리에 대한 인지부조화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검증도 불가능한 원죄를 들어 지옥불 협박으로 시작한 종교기에
그 어떤 부수적인 교리로 포장하려 해봐야 그 천박함이 전부 가려지진 않습니다.

굳이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세뇌당한 내용을 옳다고 말하기 위해
자신의 지식과 의지 등을 합리화 수단으로 쓰는건 좋지 않습니다.
그냥 벗어버리는게 최선입니다.

-------------------------------뱀다리------------------------------------------

추가로 쓰자면 종교는 증명할 수 없습니다. 
과학처럼 여러사람에 의해 검증되는게 아닌 계시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오컴의 면도날' 원리를 들어보죠.
"검증할 수 없는 가설들을 경험된 사실들을 설명하는 데 충분한 근거로 삼아서는 안된다."

온갖 야훼에 대한 논증이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있어보이지만
모두 다 비판적으로 검토되지 않은 가정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죠.

우리는 세계를 관찰하지만 세계가 한 필연적 존재에 의존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는 없고,
혹은 세계가 한 필연적 존재에 의존한다 할지라도 이 존재가 야훼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으며,
설사 이 존재가 야훼라 할지라도 그 신이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계시에 의하여, 야훼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만 가지고 따진다면 야훼는 무관심할 수도 있고 적의를 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계시에 의하여, 야훼가 인간들에 대한 그의 은총의 통로로서 교회를 세웠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이성만 가지고 따진다면 야훼는 다른 구원의 기관을 세웠을 수도 있고, 
또 전혀 그런 것을 세우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계시에 의하여, 야훼가 인간 예수에게서 성육(成肉)하였음을 압니다.
그러나 이성만 가지고 따진다면 야훼는 당나귀나 돌에게 성육했을 수도 있고
전혀 성육한 일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중세 스콜라 철학이 몰락한 계기가 된 스코투스와 오컴의 논증입니다.
열성적인 카톨릭 성직자들에 의한 오래된 논증입니다.
계시는 이성의 짝이 될 수 없습니다. 계시는 단지 믿음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안녕하세요. 첨 뵙겠습니다.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Ciel 15-04-02 10:31
   
사이비종교나 원시종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종교에 있어 사랑은 기본일텐데
그걸 자신들의 근본 이념이라고 얘기하면 그것만큼 우스운 것도 없죠.
종교간 우위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긴 하지만 그래도 굳이 논하고 싶다면
사랑은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는 기본인 것이고 그것 외에 다른 차별되는 점을
가지고 논쟁해야한다고 봅니다.
초콜릿건빵 15-04-02 10:39
   
성경으로 시작했으니 성경을 전제로 얘기해 봅시다.
그럼 예수가 인간의 죄를 모두 지고 죽은 것도 그 나름대로 구원받기 위한 것일까요?

예수는 어떤 믿음에서 인간의 죄를 진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그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는 것이지요.
     
캘러미티혼 15-04-02 10:55
   
교회 오래다니다 떄려쳤지만 그 부분이 항상 이해가 안갔었죠.

신의 아들이 내려와 인간 대신 죽어서 그 죄를 사하였다는데..
전혀 개연성이 없어요.

첫째로, 본문의 말처럼 모든 사람에게 원죄라는게 과연 있느냐.
둘째로, 원죄의 처벌이 현생에서의 죽음이냐.
셋째로, 죽음이 처벌이라면 그 처벌을 남이 대신받을 수 있느냐.

태어나는 것이 죄라는 것이라는 설정부터 억지라고 봅니다.
더구나 신의 아들이 내려와 대신 죽음으로써 인간의 죄를 사하였다는데,
남의 죄에 대한 처벌을 대신 받는다는 개념 자체도 말도 안되고.
대신 받는다니 그 죽음이라는 처벌인 죄 지은 자에 대한 형별인데
그 형벌이 현생에서의 죽음이라는 것도 말이 안되죠.
뭐 악인은 죽으면 지옥에 가서 영겁고통을 받는다는데 예수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초콜릿건빵 15-04-02 11:02
   
진다는 말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네요.
죄를 지었다는 말이 아니라 죄를 등에 지다는 말이에요.

원죄니 뭐니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오로지 나보다 다른 사람을 위한 삶
즉 인간한테 버림받은 인간과 고통을 함께 했다는 거지요.
               
캘러미티혼 15-04-02 11:06
   
제 말이 그 뜻입니다.
모든 인간의 죄를 지고 죽었다는 말 자체가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그 형벌을 받았고
그 형벌이 바로 죽음이라는 의미잖아요.
그 부분, 그 설명 자체가 오류라는 거지요.
바바바 15-04-02 10:40
   
짝짝짝
쿨맨 15-04-02 10:43
   
그런 사랑의 종교를 믿은 사람들이 사람을 제일 많이 죽였다죠
지나가다쩜 15-04-02 10:46
   
짝짝짝짝짝!(박수)
많이 배웠고 많이 생각해볼 거리를 얻었습니다.
초콜릿건빵 15-04-02 10:47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와 소록도의 두 수녀와 같이 인간의 한계를 넘은 이들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나요?
이것은 종교적으로밖에 증명되지 않아요.
     
캘러미티혼 15-04-02 10:58
   
그건 한 종교의 소속으로서 그러한 행동을 한 것 뿐이지
그런 분들의 행동이 그 분들이 속한 종교 전체를 대변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분들이 특정 종교 소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죠.

단지 그 분들이 그런 행동을 했는데 그 분들이 가진 종교가 천주교 였을 뿐이에요.
비율적으로 정확한 통계를 당장 내릴 순 없지만
불교에서도 기독교에서도 천주교에서도 심지어 무교에서도 윗 분들과 같은 정신으로
주변과 사회에 봉사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단지 그 비율이 다를 뿐이지요.
          
초콜릿건빵 15-04-02 11:02
   
그리서 마지막에 종교라고 했어요.
               
캘러미티혼 15-04-02 11:04
   
종교적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초콜릿건빵 15-04-02 11:13
   
평생을 나를 버리고 다른 이를 위한 삶이 어떤 의지가 없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캘러미티혼 15-04-02 11:27
   
그 의지는 적어도 신을 맹목적으로 믿는 믿음에서는 유지가 될 수 없죠.
그 의지라는 것에 종교가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믿음과 실천은 다릅니다.

나를 버린다고 하셨는데 봉사나 희생은 남을 통하여 나를 바로 세우는 일이에요.
평생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어야 하는 겁니다.
남이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결국 남을 이용해서 나라는 존재를 바로 세우는 한 방편이지요.
그중에서 가장 선한 방법이구요.
종교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인간본위의 여러가지 본성측면에서 설명하는게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을 하시는 분들이 종교는 한가지가 아니거든요.
                         
초콜릿건빵 15-04-02 11:43
   
신을 맹목적으로 믿는다. 그럼 맹목적으로 믿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종교에서 신은 나약해져 가는 자신의 의지를 신을 생각하면서 그 의지를 잊지 않는 거에요.
신을 믿음으로 내가 그와 같아지고 그 뜻이 봉사와 희생 즉 사랑으로 나오는 겁니다.
                         
캘러미티혼 15-04-02 12:21
   
그러니까, 그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 종교가 이용되는 것 뿐이지 종교가 그 행위에 대한 주가 될 수가 없다는거에요.
신을 맹목적으로 믿는다는건 방향성이 신에게로만 고정된 믿음이에요.
실천이 뒤따를리가 없는 겁니다.
남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종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요.
왜냐하면 천주교인이나 기독교인처럼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기부와 봉사를 하거든요.
종교가 봉사하는 행위를 조장하고 격려한다고 해서 끝나는게 아니라는 거죠.
실제적으로 그런 의지를 가지고 실천하는 것은 종교가 아닌 사람이며
그런 의지를 다지는데 종교가 도움을 주는 것뿐이에요.
그걸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종교가 없어도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청춘별곡 15-04-02 10:54
   
당연히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무한관용의 인본주의적인 사랑은 아닙니다. 진리에 기반한 사랑입니다.
     
Ciel 15-04-02 11:00
   
그 진리란게 지극히 편향적이니 문제죠.
타 종교인이나 무신론자가 보기엔 진리에 기반한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우습게 보입니다.
더군다나 무엇이 되었든 사랑에 조건이나 전제가 개입되면 그게 사랑인가요.
인본주의적 사랑이니, 진리에 기반한 사랑이니 하는 식으로 말장난하면 곤란하죠.
     
캘러미티혼 15-04-02 11:04
   
보편적 진리라는건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에요
사람은 호흡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먹으면 살찐다.
굶으면 배고프다.
항상 시간은 흘러간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교리는 지속적으로 변하고
수정되고 개정되고 일관되지 못하죠.
그리고 기독교에서의 사랑은 무한관용의 사랑이 맞습니다. 아가페적인 사랑 이란말이 그뜻이에요.
          
초콜릿건빵 15-04-02 11:16
   
그게 목사가 자기 이익에 따라 세뇌플 시키기 때문이에요.
               
캘러미티혼 15-04-02 11:31
   
그게 문제죠.
세뇌를 당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선
의심하고 증명하는 것이 기본이 됩니다.
적어도 기독교의 교리는 단순하게 기복을 위해서 다닐만한 게 아니에요.
근데 아무 생각없이 기복을 위해서 교회에 가서 남이 하는 말에 휘둘리는게 문제입니다.
적어도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고 참오해서 자신만의 종교관을 세우는게 필요하다고 봐요.
                    
청춘별곡 15-04-02 11:34
   
님은 이제까지 배운 모든 지식에 대해서 일일히 의심하고 확증해서 받아들이셨나요?!

님 스스로의 판단은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님 자신이 모든 사물과 이치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정의할수 있는 존재로 여기시는지?!
                         
캘러미티혼 15-04-02 11:40
   
항상 남이 주장하는 바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고 검증해야 하는게 정석입니다.
하지만 모든 행위나 사소한 것에 그렇게 할 수가 없죠. 현실적으로.
여력이 있다면 하겠습니다마는..
그런 걸 모든 사람이 모든 지식에 대하여 증명할 수가 없으니 그런 과정을 간편화 하기 위해서 실생활에서는 무슨 인증(ex ks마크), 자격증, 통계적 증명, 수학적 증명 등등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종교같은, 가치관을 설정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깊게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콜릿건빵 15-04-02 11:49
   
먹사처럼 비유적으로 자격증......뭐니 하면서 설득하려고 하네요.
자신을 의심해 먹사한테 검증받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먹사가 교인들을 노예로 만드는 방법 중에 하니지요.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내가 신을 믿음으로 신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지를요.
내 자신과 타협하고 있지 않는지를요.
                         
캘러미티혼 15-04-02 11:53
   
믿음 소망 사랑 중, 왜 사랑이 최고입니까?
왜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하는지 아십니까?
믿음은 어떻게 쌓을 수 있습니까?
믿음이 약한지 강한지 판단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믿음과 사랑은 어떠한 관련성이 있습니까?
건빵님은 위 질문들에 대하여 답을 하실 수 있는지요.
                         
캘러미티혼 15-04-02 11:59
   
더하여 자신 스스로에 대하여 고민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 답은 자신 스스로 내려야지 남이 결정하는 것은 "절대로" 안됩니다.
제가 언제 자신을 의심하고 목사에게 검증받는다고 했나요?
목사는 그럴 권리도 없고 그러면 안됩니다.
          
청춘별곡 15-04-02 11:21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변한다면 이단이 되거나 사람의 인위적인 입김이 작용한거죠.
               
캘러미티혼 15-04-02 11:34
   
그 핵심적인 교리를 무시하고 경전의 일부만 자신의 입맛에 맞춰서 전파하는 것이 현재 기독교의 문제점입니다.
핵심적인 교리에 따라 행동한다면 요즘 대한민국의 기독교같은 문제가 발생할 이유가 없습니다.
                    
청춘별곡 15-04-02 11:35
   
교리를 오용하거나 왜곡하는자들에게나 가서 따지세요..
                         
캘러미티혼 15-04-02 11:44
   
저에게 왜 공격적으로 말씀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더하여 왜 자신에 생각을 피력하고 토론할 수 있는 게시판에서
그런 사람들에게 가서 따지라는 개연성도 없는 말은 도대체 왜 하는지
더더욱 알 수가 없네요.

무엇때문에 기분이 나빠졌는지 설명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 사람들에게 가서 따져야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에 대하여 말씀해주시구요.
버프홀릭 15-04-02 11:03
   
기독교의 작금의 문제점은 과거 나눔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믿음의 활동으로 간다는것에
문제점이 더 많아지는듯합니다. 기독교만 믿으라 강요하고 타 종교 배척하고, 이슬람에까지 가서
기독교 전파할려고 하고 ,, 그들이 사랑을 전하러 간것은 아니고 , 포교의 원칙하에 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이 기독교가 사랑이라 하였는데 , 사랑이 사라진건 교회의 이념이 나눔 사랑보다 믿음이
먼저 인지는 모르겠으나 , 그 이유는 눈에 보듯 훤해 보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에서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한 말씀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랑도 아닌 소망도 아닌
믿음 제일주의 일거 같네요,
믿음이 강한 사람은 교회 헌금도 많이 내고 십일조도 많이 내기 때문이죠,
그래서 , 교회 안에서도 십일조로 믿음을 척도 한다고나 할까요???  많이 내는 사람이 우수교인이 되고  따로 기도로써도 올려지고, 이런 믿음을 강제하는 교회의 행동들이 교회의 부를
축적하고 목사의 탐욕을 키우고, 새롭고 크고 멋진 성전을 새로 짓는것이 교인들의 공통된
목표가 생겨버리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십일조를 없애자는 소수의 목사님들이 생기게
된것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십일조가  원래 돈으로 내는것이 목적이 아닐진데 여튼 우리나라에만
머가 들여오면 새로 해석되고 우리나라 기복신앙하고 섞여서 이상하게 다 바뀝니다..
사랑을 강제하면 돈이 빠져나가지만 믿음을 강조하면 교회에 돈이 들어오는 이상한 구조에 빠져
믿음을 선택한 현실의 교회들을 보면 안타깝게 생각이 드네요
헬로가생 15-04-02 12:23
   
좋은 글 감사합니다.
엄청난 지식과 지혜의 글을 이해할 수 없는 기독교인의 댓글에 웃음만 나오는군요.
역시 돼지에겐 진주를 던지지 말아야...
철부지 15-04-02 12:35
   
종교적 입장은 존중합니다 다만 한가지 철학 오컴을 예로 들었는데 하가지 테클이 아니고 곁가지로 이야기하고 자합니다.

쇼펜하우어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매일 시간이 날때마다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허무주의자이고 온세계는 고통이고, 다 허무하다 했죠 성욕도 살아가고자 하는 하나의 의지라 봐야겠죠 사랑이라는 것은 생존하고자 하는 의지 아이를 낳고 키우고 하는것들 로 설명했죠 이것이 다 허무하다고했죠 그러나 쇼펜하우 본인은 그런 철학적 논조를 가지고서도 전혀 삶을 허무하다 생각지 않았나 봅니다 헤겔이 이성을 논할때 하인을 겁탈해서 아들을 낳게 하고 쇼펜하우어는 말년에 그 허무하다는 사랑때문에 고심하고 비밀연애하고 ...니체는 초인을 이야기하면 인간은 성장의 과정의 단계이다 하면서 본인은 정작 초인의 시각으로 인간을 보고 뇌매독으로 걸려죽고.....

'오컴의 논증' 잘보았습니다 그 글귀가 어디서 유명한지 알아요? 영미철학계에서 유명하죠 특히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대륙관념론자와 논쟁할때 회심의 무기로 사용하는 용어죠, 그 언어가 비단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 용어이기때문에 말이 많죠, 오컴의 논증은 면도날 처럼 날카로운데 모든 것을 무지막지하게 예리하게 자른다고 해서 유명하지만 인간이라는 게 형이상학적이고 심리적이고 인간은 하나의 자기 창을 갖고있어 똑같은 곳에서 들어온들 제 각기 다른방향으로 나가는 하나의 논리적으로 설명할수없는 단자론적 존재이고 인간이란 존재는 자기정립적 존재, 자아라는 것은 타자와 공유할수없는 것이고 그 자아는 자기안에서 외부의 물질적세계와 상호침투하고 그 안에서 경험으로 바탕으로하는 관념이 싹트고 관념이라는거 자체가 생길려면 경험이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대륙관념론과 유물론사이에서 관념론을 무시한채 실증주의자만을 주창한 오컴의 면도날 논증을 추앙하는 학자가 없죠, 지금 이 시대에 말입니다 오컴의 면도날 보았을때 충격을 먹었죠 예리하다고 그러나 예리한 만큼 설명될수 없는것 까지 포함해서 자르기 때문에 권가?개운치가 않더군요.
철부지 15-04-02 12:45
   
쇼펜하우어 - 님의 글 전체맥락을 보았을때 신학적 입장을 나타내신거 같은데 그런 논조라면 굳이 이곳에서 나타낼 필요가 없요 왜냐하면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용어가 종교에만 국한되지 않는 용어이기 때문에 님만의 신학적 세계관으로 설명하는 거에요 다른 사람은 다른 세계를 논하겠죠 여러사람은 다 각기 다르게생각 하죠 그것을 가지고 자기 신학적 세계관을 폭넓게 나열하고 본인의 생각이 옳다'는 것만냥 교조적입장을 취하는거 같아보여요 신학을 공부하신거 같은데 일단 신학자들의 책을 보면 제각기 다 다르죠.

그리고 이곳의 논쟁은 "개신교 신학적입장과 사랑이라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텍스트의 안에서의 입장과 신의 존재 유무의 논증 오컴의 면노날은 옳았던 것인가?"의 토론이이 아니죠? 눈이 있으면 자세히 보세요 다른분들 논쟁을 다 보고서 논하심이 옳은 것이라 생각됩니다.그게아니고 본인의 종교적 심상에로 우러나오는 이야기다 하면 그렇다 인정하구요.
아트모아 15-04-02 15:48
   
수준높은 발제글과 그 발제글에 버금가는 댓글이 있는 곳에 자칭 천재란놈과 떨거지들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순이 15-04-02 18:01
   
간만에 영양가 있는 글과 댓글을 보았네요.
잘 배우고 갑니다.
타스 15-04-02 19:5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부산댁순정 15-04-02 23:18
   
우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궁금증이 싹 씻기는 느낌이 드는 시원한 글이네요.
카프 15-04-03 08:09
   
좋은 글이네요. 종교전쟁 이래 최고의..
읽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