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역시 예상대로의 답변을 달아주시는군요..
조금은 다르게 설명해주실줄 알았는데.. 실망이 큽니다..;;
일단 가볍게 실수체크부터...
야훼라는 이름을 부르는게 불경스럽게 때문에 아도나이(주님)라는 이름으로 대체해서 부른건 알고 있습니다.
근데 아도나이 또는 주님이라니요?
아도나이가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 이름 설명할때도 나오잖아요..;; 뜻 설명까지 해주셔놓고..;;;
천재님이시니.. 몰라서 그런게 아니라 실수한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자..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야훼라는 이름이 없으면 그것을 부르는 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할까요?
이름을 부르는 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은
그 불리워지는 것이 분명히 이름이 있다는 것이겠죠?
그 이름을 여호수아의 부모님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식의 이름에 야훼든 아도나이든... 붙였을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래 나그네님이 친절하게 써주신 것처럼..
54세에 출애굽을 했다는 여호수아의 부모님이 어떻게 야훼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까요?
분명히 야훼는 모세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가르쳐줬는데?
천재님.. 천재님에게 조금 불경스러운 말일지 모르겠으나..
제 질문의 요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왜 남의 다리 긁으시는 답변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교회가라고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제대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ㅎ
느헤미야 12:7 살루와 아목과 힐기야와 여다야니 이상은 예수아 때에 제사장들과 그들의 형제의 지도자들이었느니라
에스라 10:18 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는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의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립과 그달랴라
‘여호수아(히브리어: יהושוע, Jehoshua)’가 ‘예슈아(히브리어: יושוע ,Jeshua)’로 그리고 이것이 헬라어로 이에수스‘Ίησους’이고 이것의 라틴어 표기로는 ‘예수스 Iesus’로 부릅니다. 그리고 I가 영어로는 J로 불려서 Jesus가 되었구요, 한국어로는 ‘예수’로 불리고 있습니다.
-
그러면 그리스도(Χριστός Christos)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메시아(מָשִׁיה)’를 헬라어 그리스도(Χριστός)로 쓴 것입니다.
메시아מָשִׁיהַ 는 단어는 예레미야 애가 42장 20절에 나오는데요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라고 말씀이 나옵니다.
'기름부으신 자’는 히브리어로 ‘메시아 מָשִׁיהַ 마쉬아흐 Mashiach’입니다.
70인역(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은 메시아(מָשִׁיהַ 마쉬아흐)를 헬라어 그리스도(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Christo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2. 번 답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십니다(출 3:6). 이제 자기 백성의 고통을 듣고 그들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더 이상 젊은 민족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가겠고 내 백성을 이끌어 이 호렙산에서 나를 경배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가 될 것이라’(출 3:1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모세는 뜻밖의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대담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묻습니다(출 3:13). 이름을 묻는다는 것은 그 정체성을 묻는다는 말이지요. 히브리적 개념에 이름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포함한 것이고, 그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세는 사실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화도 내지 않으시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놀라운 계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말씀하시다니요. 히브리어 4자로 된 하나님의 이름 야훼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우리 말로 번역된 ‘스스로 있는 자’는 피조물이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하던 분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반면 영어에서는 ‘I AM THAT I AM’으로 번역합니다. 영어에서 우리말로 옮기면 ‘나는 나다’ 정도가 적합할 것 같습니다.
‘나는 나’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그 뜻을 보다 잘 알기 위해서는 앞뒤 문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자신을 소개하시고 너와 동행하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아직도 주저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시는 말씀이 바로 ‘나는 나’라는 것입니다.
‘나는 나’라는 말씀은 자기를 규정하는 바가 곧 자기라는 선언입니다. 내가 내 입으로 ‘나는 이렇다, 나는 이렇게 할 것이다, 나는 이런 존재다’라고 선언하면 그것이 곧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떤 분이신가 하면 하나님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로 그 분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모세가 의심하는 것에 대해 아주 확실하게 대답해 주시는 셈이지요. 다시 말해 ‘나는 내가 말한 것을 반드시 이루게 하는 분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셈입니다.
다른 어떤 피조물도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은 창조주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이지 자기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생명의 길이를 맘대로 할 수도 없습니다. 지진, 홍수, 태풍과 같은 자연 재해를 맘대로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예, 아니오 할 수 있을 뿐입니다(마 5:33-37).
‘나는 나’라는 말씀에 하나님에 관한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허락하신 것만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태평양에서 떠올린 물 한 컵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분량이라면 그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그것을 잘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계시된 내용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나’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충분한 만큼의 계시가 주어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완전히 다 아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충분한 만큼입니다. 완전히 다 알아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지식이지 믿음이 아니지요. 그래서 계시는 ‘믿기에 충분한 만큼’ 주셨다고 봅니다.
‘나는 나’라는 말씀은 그 약속의 확실함을 보여줍니다. 말씀으로 스스로를 규정하시는 바가 곧 하나님 자신이니까 그 말씀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환경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뀌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신뢰할 만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습니다(딤후 2:13). 이 말씀은 스스로 계시하신 내용을 뒤집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은 견고한 터전입니다.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말씀에 기초하는 믿음은 말씀만큼이나 견고합니다.
3.번 답
여호수아는 약 16년의 가나안 정복전쟁과 땅 분배를 마치고 110세에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의 나이 110세에서 16년(가나안 정복 전쟁과 땅 분배기간)과 40년(광야생활)을 빼면, 출애굽할 때의 여호수아의 나이가 54세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기록은 이정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에 들어가있는 야훼란 이름은 출애굽 이후에 알려진 것인데,
어떻게 출애굽 이전에 태어난 사람이 여호수아란 이름을 가질 수 있느냐? 이것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나그네 님의 대답은 원래는 호세아(구원이란 뜻. 즉 야훼가 여기에는 없음)란 사람이 출애굽을 하고 나서 (아마도) 모세에 의해 여호수아란 이름으로 개명된 것이니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미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