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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29 23:15
[칭기스칸] 전문가 있나요?
 글쓴이 : 에르샤
조회 : 983  

아랫분이 칭기스칸이야기 꺼내길래 생각났습니다.
 
[칭기스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이 책은 칭기스칸 딸들 어쩌고 저쩌고 해서 안봤습니다.허접할거 같은 촉이 와서요.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이 책은 잭 웨더퍼드 가 쓴건데
볼만합니다.
 
근데 저 책도 전문적인 내용은 안나온듯.
 
제가 궁금한건 몽골군이 천하무적은 아니였고
몇번의 패배를 당했는데
그중에 가장 알고 싶은 사실은 몽골군이(2만명 정도로 알고 있음)
 아프리카로 진격하다가(1260년)
맘누크 왕국의 군대랑 지금의 팔레스타인에서 격돌했잖아요.
맘누크 왕국의 바이바르스 1세(살라딘보다 더 인기좋고,현지에선 평가가 이순신급이더군요)가 이끄는 군대. 그리고 이슬람의 전사들,
아프리카왕국의 용병들까지 합친 군대와 (북아프리카의 전사 투아레그족, 사하라 남쪽의 말리왕국의 말리케족 흑인전사들)
까지 합친 연합군에 몽골이 패하는데요.
아무리 찾아도 이 내용을 자세히 다룬 내용을 찾기가 힘드네요.
 
현아검사.jpg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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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lee 14-03-29 23:18
   
호오 밑에 사진은 누구신지..?
그애기는 저도 글쓰신정도만 알고 있어서....
     
에르샤 14-03-29 23:19
   
패왕색기 현아요 ㅎ
허각기동대 14-03-29 23:22
   
십자군원정 시기하고 겹치지 않나요. 십자군 원정을 다룬 글에 언급되어 있을것 같은데.
나와나 14-03-29 23:26
   
몽골이 패한 이유가 맘루크 기병들이 중앙아시아를 누비던 기마민족 출신이라 전투력에서 몽골에 크게 뒤지지 않았고 당시 몽골제국이 왕위계승전쟁으로 인해 훌라구의 몽골군 주력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라더군요..
     
에르샤 14-03-29 23:36
   
네 그래서 2만명밖에 안되는 수로 아인잘루트 전투에 참여했더군요.
젠덴 14-03-29 23:28
   
바투가.. 서유럽까지 점령해버렸으면
세계가 어떻게 됬을지.. 궁금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게이츠 14-03-29 23:29
   
십자군 원정은 유럽이랑.. 아랍이 싸우는 시기죠.. 저거랑 상관 없음..
mymiky 14-03-29 23:30
   
[칭기즈칸의 딸들-제국을 경영하다] 절대 허접한 책 아닙니다
읽어본 사람으로써, 권장해드립니다.
     
에르샤 14-03-29 23:34
   
칭기스칸의 아들,손자는 아는데 딸들이 제국을 경영하다라는 문구가 썩 와닿지 않았는데 의외로 권장도서인가보네요 ㄷㄷ
          
mymiky 14-03-29 23:41
   
유목민들은 유교영향을 안 받아서인지 모계가 중요시되고,
여자도 남자 못지않게 사회적인 업무가 있다고 해야하나?
칭기즈칸이 원정나갈땐, 그녀의 딸이 섭정도 하고 그러함.
칭기즈칸이 아들보다 딸들을 더 신뢰했다고 합니다.
물론, 역사에서 칭기즈칸 아들-손자들에 대한 내용은 많고, 딸들, 손녀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남지 않았는데, 그걸 잘 조명해서, 역사학자이기도 한 저자가 몽골에서 감사 훈장도 받고 그러했다고 함.
딸들은 주로 정략결혼으로 여기저기 결혼시켜 그나라 통치시키고..
거기에, 고려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나오기도 하고 그러해요.
도련님납쇼 14-03-29 23:31
   
프랑스가 몽골한테 같이 힘을 모아 합쳐서 아랍국가들 무찌르자고 했지만
칭기스칸이 그러기전에 나한테 먼저 무릎꿇고 날 위대하게 생각하라 라고 했다죠
에르샤 14-03-29 23:33
   
저기서 연합군이 패했으면 몽골군 일부가 북아프리카도 일시점령했다고 추측해봅니다.

그러니까 전투전 상황 - 전투과정 - 전투후 영향력 이런게 궁금하더군요.
sunnylee 14-03-29 23:34
   
호오... 감사..
원래 맘누크왕조의  맘누크가 노예(노예용병)을 뜻하죠.
중근동의 기마민출신(투르크,카프카스출신 타타르)이라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이들이 정권을 잡으후..
 나머지 애긴... 쓰신대로
(사가들 평가론 그당시 몽고의관심은 정복보단, 내부분활로(대칸의죽음후,계승문제)
내치쪽으로 선회해서란게 공통 의견)
sunnylee 14-03-29 23:38
   
위에쓰신 전투도 패했다고 보긴힘들죠.. 그냥 전략적 후퇴라 보시는게
몽골족 특징중에 하나가 전투에 패한것도 많지만 기마족 특성대로 전멸당한적은 없으니..
     
바랑기안 14-03-29 23:56
   
결코 아닙니다. 맘루크와의 전쟁은 몽골은 처음부터 끝가지 군사적으로 완벽한 패배였습니다.
아인잘루트 전투에서 몽골군은 맘루크기병대와의 기병전에서 압도적 패배를 당해 몽골은 더이상 이지역에서 팽창하지 못했습니다.
이후에 빡친 몽골이 무려 10만에 가까운 대군을 이끌고 이집트를 공격했죠
하지만 당시 당시 이집트도 지속족으로 군대를 훈련시켰고 전설적인 맘룩들의 전투력에 힘입어
다마스커스에서 전투에서 열세의 상황을 바꾸어 놓았고 수파르 초원에서 몽골군과 대결해 총공격을 펼쳐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패전으로 몽골은 시리아를 완전히 상실하였고 이집트는 이슬람과 기독교세계를 지킨 수호자라는 명성과 함게 더욱 융성하게 발전하였죠
          
에르샤 14-03-29 23:58
   
오호. 정보 감사합니다.
sunnylee 14-03-29 23:43
   
중앙아시아(북아프카니스탄)  지방 점령당시 생각 하면 상상은 가능
기마우회전>수비군 격파>공성전(주력투입)>반항이 심할수록(점령후 초토화)
몽골족이 지나간 지역의 인구는 상당히감소, 한동안 사람이 살기 힘들었다
(다큐에서 일부 나옴 : 오래돼서 제목 기억이..)..아마도 비슷하게 초토화 될뜻
     
에르샤 14-03-29 23:49
   
머 항복하면 살려주는데, 덤비면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강간하죠.
몽골군만 아니고, 서양놈들도 그랬음 ㅎㅎ그냥 그게 그당시 일반적인 인식.
[약탈] [전리품]
1527년 카를5세의 군대가 로마를 점령하고 약탈할때도 8일동안 다 죽이고 다 강간하고 다 뺏았죠. 지옥이 따로 없었음.
에르샤 14-03-30 00:02
   
그러고보니 제목을 잘못썼음 ㅎㅎ몽골군에 대한 궁금증인데 칭기스칸이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samsara 14-03-30 00:12
   
1260 년 전투는 몽골입장에선 대단하게 생각할만한 전투가 아니네요. 홀레구가 다마스커스 접수를 끝내고 이집트로 쳐들어 갈 준비를 하다가 몽케 사망 소식을 듣고 자기 휘하 최고 장수인 키트부카를 5천 병사와 남기고 타브리즈로 철수합니다. 그런 동시에 맘룩군주한테 평소하듯이 항복권유를 한건데요. 사신은 살해당하고 맘록은 대군을 이끌고 남아있던 몽골군을 정리하게 됩니다. 소수 군사로 맹렬히 저항하던 몽골군은 수적열세를 극복못하고 패하게되고 장군인 키트부카는 사형당합니다. 당시 킾차크 한국과의 전투에 신경을 쓰던 홀레구는 1265년 사망하게됩니다. 실제 큰 전투는 1281년 맘로크군과 몽골군간의 전면전인데요. 경험도 없고 판단력도 없는 왕의 아우를 대장으로 임명하여 맘로크를 치러갔다가 대패하게 되는데요. 당시 일한국 칸이었던 아바카는 전투패배의 책임이 있는 관리들을 엄벌하고 친정할 결심을 하는데요. 안타깝게 1282년 4월 사망합니다. 그 후 일한국 내부의 왕위 계승을 두고 계속된 내전이 종식된후 일한 카잔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내부결속을 다지게 됩니다. 1300년 1월 8일 다마스커스 를 놓고 몽골군과 맘로크군 사이에 대규모 전면전이 벌어지고 와디 알 하잔데르 회전에서 맘로크군은 대패하게됩니다.카잔은 맘로크의 패잔병을 추격하지않고 패르시아로 돌아가버림으로서 맘로크와의 전투가 계속되기를 바라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있는 내용을 올긴거라 정확한 자료인지는 모르겠네요.
     
바랑기안 14-03-30 03:02
   
1260년 전투라면 아인잘루트 1차 홈즈전투가 있는데 배경을 보니 아인잘루트전투를 말하는데 절대로 몽골군이 열세가 아니였습니다. 심지어 몽골군은 먼저 이집트를 공격하는 원정군 입장이였습니다. 님은 공수를 바꿔서 말하네요, 어쨌든 몽골군은 요르단 강까지 진군했고 몽골 팽창의 종지부를 알린 그유명한 아인잘루트에서 전투가 펼쳐집니다.
양측은 모두 2만 대 2만여명으로 추정하고 어느쪽도 숫적우위가 압도적이라 말할수 없는 상태에서 전투가 별쳐집니다. 정작 재미있는건 몽골군의 장기인 히트앤 런을 맘루크들이 써서 언덕까지 유인한뒤 포위하여 괴멸시킵니다. 그리고 이전투에서 맘루크들이 핸드캐논을 최초로 사용했기 때문에 최초의 화약무기로 사용된 전투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송나라의 화창이 먼저라는 의견이 새로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바랑기안 14-03-30 03:06
   
그리고 같은해 12월에 벌어진 1차 홈즈전투는 몽골이 다급히 시리아지방을 되찾기 위해 6000명을 동원해 알레포까지 점령하는덴 성공했지만 겨우 1500명의 맘루크에 의해 패배함으로서 1260년 전쟁은 그렇게 몽골의 참패로 끝나고맙니다.
          
samsara 14-03-30 03:22
   
다른 인터넷문서에 2개 정도의 만인대로 만명에서 2만명사이라고 돼있네요.다만 침략중이던 군대는 아니고 침략중이던 군대중 몽케사망 소식을 들은  훌라구가 대부분의 군대를 끌고 후퇴하고 남겨둔 군대인것은 확실하네요.전체적으론 몽골이 그 지역을 공격한건 맞지만 저 전투 당시엔 맘룩이 몽골군을 공격하는 입장이었던것도 맞네요. 기독교도들이 공격로를 열어줘서 몽골군을 공격했다고 되있네요.
               
바랑기안 14-03-30 03:40
   
정확히 말하자면 훌라구는 "전쟁준비를 했지만" 계승문제로 자리를 떠야하자 키트부카에게 대략 2만의 병력을 맏겼는데 아마 그게 훌라구의 맘루크 원정명령이였던건지 수비명령이였던건지는 잘모르겠지만 아무튼 훌라구는 하려고만 했지 정작 계승문제때문에 실행하지 못했고 실행한건 키투부카였습니다.
 공격해오는 몽골군을 기다렸다가 유인 후 포위섬멸한거죠, 키트부카가 시돈을 공격하여 파괴하는 바람에 기독교세력이 맘루크군에게 길을 빌려줬죠
     
바랑기안 14-03-30 03:35
   
그리고 1271년 잉글랜드의 왕자이자 십자군을 이끌고온 에드워드1세가 몽골(일 칸국) 지도자인 abaqa 칸에게 함께 맘루크왕조를 치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됩니다.
몽골군은 알레포 지역을 공격해 약탈했고 (다만 알레포 중심지역은 점령하지 못합니다) 이에 대응해 아인잘루트 전투의 주역인 바이바르스 술탄이 직접 요격에 나섰지만 몽골군은 약탈만 하고 돌아갑니다.
참고로 바이바르스는 아인잘루트 전투이후 곧장 십자군 세력과 전쟁을 벌여 1263년에 아크레, 아틸리스, 하이파, 사파트, 제파, 아쉬칼론, 카에사리아를 점령하고 아르메니아왕국을 공격해 안티오크 트리폴리를 고립시킨뒤 1268년 5월18일에 드디어 안티오크까지 점령합니다.
눈엣가시같던 기독교 세력을 대거 소탕한 그는 본격적으로 다시 몽골과의 싸움을 준비하죠
1277년 몽골에 협조적인 룸셀주크를 공격하죠
맘루크 기병은 1만여명 이였고 몽골군대는 대략 최대 30000정도로 추산합니다.
하지만 총병력 수 자체는 맘루크군이 더 많았습니다.
몽골군은 기세좋게 선제 돌격을 감행했지만 이전에 완벽한 전술로 몽골군을 무너뜨리고 풍부한 전투경험을 가진 바이바르스는 좌익을 맹렬히 공격하는 몽골군을 막아내며 직접 병력을 이끌고 몽골군 우익을 역으로 우회공격하여 또다시 포위당해  몽골군은 무너지고맙니다.
이전투는 비록 전술적인 움직임은 맘루크군이 좋았었지만 몽골군이 상상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해 굉장히 치열한 전투였고 비록승리했지만 바이바르스는 알라의 뜻이 아니였으면 졌을거라며 굉장히 힘든전투엿음을 표현했습니다.
     
바랑기안 14-03-30 03:59
   
이후 바이바르스가 죽고 1281년 abaqa는 동생 몽케 티무르에게 8만명의 원정군을 보내 다시한번 공격을 감행했고 맘루크쪽은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
이들은 홈즈지역에서 또다시 맞붙었고 qalawun이 직접이끄는 맘루크군에 의해 몽골군 중앙이 털리는 바람에 또다시 참패하고 맙니다. abaqa칸은 결국 맘루크와의 전쟁은 모두 실패한채 죽게되죠

그리고 이후에 1299년 와디알 카잔데르 전투에서 몽골군은 드디어 처음이자 마지막 결정적인 승리를 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회전에서 큰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마스커스의 완강한 저항에 도시를 점령하지 못했고 1300년 5월에  맘루크의 군대가 구원군을 보내자 다시 퇴각합니다.

이후 다시 시리아를 침공한 몽골군은 수파르 전투에서 동원 가능한 전병력과(대략 8만) 동맹군 아르메니아군을 포함에 10만에 가까운 대군을 이끌고 최후의 공격을 가하지만 또다시 맘루크에게 대패했고 이 충격으로 몽골은 맘루크왕국에 국력이 완전히 역전되어 두번다시 맘루크 왕조를 넘보지 못하게 되었고 술탄은 대대적인 승전 개선식을 통해 기나긴 전쟁의 승리와 종식을 알렸죠..
사실상 두 나라사이의 전쟁은 오랜시간 총력전 양상이였고 몽골이 결코 우세하지 못했습니다.
몽골은 제데로된 전투에선 단한번 와디알 카잔데르 전투에서 승리한게 전부이고 정작 그것도 승리를 제데로 이용하지 못하고 다마스커스를 함락하지 못하고 진군이 멈춰버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얻지못하고 실패했죠.
이후 수파르 초원에서 전투는 몽골의 팽창에 종식을 알리는 전투가 됩니다.
          
에르샤 14-03-30 09:56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몽골의 천적이 맘누크왕국이었군요.
얼음인형 14-03-30 01:59
   
뜬금없지만..
와 정말 파란색이 저렇게 섹시할 수가 있나

이전에 구가의 서에서 수지가 벚꽃검술이라며 입었던 옷 정말 예뻤는데 우와..
     
에르샤 14-03-30 09:57
   
산업화이전에는 파란색 내기가 진짜 어려웠죠. 그만큼 귀한 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