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오해하시는게
서양문물을 배격하고 후진국으로 남으려했던게 아니라
선진문물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천주교 같이 종교적인걸 배격한겁니다
되려 일본보다 선진문물을 더 빨리 받아 들인것도 있고
조선 나름대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구족을 멸할 안동김씨가 워낙 조선을 망가트렸고
민비 집안이 결정타를 날려 나라를 지키는 군대 수준이 엉망이었습니다
군대만 좀더 강력하고 시간이 좀더 주어졌으면
일본에게 맥없이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김대건 신부 전부터 정조 때 이미 정약용 등 천주교신자들의 신해박해 등이 있었고 재판 당시 김대건 신부는 훌륭한 언변과 논리로 금부에서조차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할 정도였는 데 왠 헛소립니까? 천주교 박해는 제사 문제와 성리학적 질서 위배 등 가치관과 기득권 수호 등 여러가지가 얽혀 생긴 사건이지 프랑스 등과의 정치적 이유는 훨씬 뒤에가 생깁니다
우선 일본이 쇄국정책을 포기하게 강제로 개항하게 된 계기가 페리제독의 흑선사건(?)인데, 이게 1853년이었어요. 그후 막부군과 천황군의 전투에서 막부군 장군이 아무 이유 없이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대패..-_- 거기서 승기를 잡기 시작해 막부군이 패배하고 명치유신이 일어나는데, 이게 1868년입니다.
조선도 처음부터 쇄국이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병인양요, 신미양요에 이은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일어나면서 1971년에 쇄국정치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바로 2년 후 고종의 나이가 찼다는 이유로 최익현등의 상소로 흥선대원군이 권좌에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2년 후 운요호 사건이 터지죠. 페리 제독에 의한 강제개항과 20년 차이...
거기다가 명치유신과 비슷한 역사적 사건을 꼽으라면 갑신정변이 될텐데요. 이것도 근 20년 차이 납니다.
이런 거 다 생각 안하고 일본과 같은 시기에 같은 길을 걸었다고 쳐도, 과거 일제처럼 식민지 건설할 여력이 없었어요. 일본이야 한반도를 거점 삼아서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잡으며 제국주의 시대의 문을 열었지만, 우리는 그럴 토대가 없었거든요. 옆나라 일본이야 점령해봤자 더 이상 진출할 곳도 없고, 땅도 척박하고, 중국도 이미 서구문물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상태여서 뜬금없이 맞붙긴 힘든 상대고, 러시아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요.
신문물을 일찍 받아들였다면 식민시대나 분단은 없었을 것 같지만, 만주 수복은 현실성이 없어 보입니다.
이미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왜란 이후로 국력의 태반을 소모하고 이후에 두 차례의 호란까지 겪은 뒤로는 국력 자체를 상실하다시피 했죠. 여기에 영정조시절 겨우겨우 남은 국력을 긁어모으다시피해서 연명하던 터에 이후에 세도정치라는 존재가 조선의 호흡기 자체를 떼어버렸습니다. 대원군의 쇄국정치를 논하기에 앞서 이미 그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산업화와 제국주의로 무장한 세계 각국의 열강들 앞에서 이미 한없이 미약한 존재였을뿐이죠
왜 무작정 개항만 하면, 잘 살꺼란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넹-.-
하와이는 개항하고도, 미국에 잡혀먹었는데;;
19세기 개항하는게 일본처럼 대박이 날지, 아닐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거고
역사엔 이프란 없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데지마를 통해 네델란드 문화라도 받았지만.당시 조선? 개항하면 만주까지 우리꺼라고 하는 상상력은 높게 평가하지만,, 실현가능성은 없죠. 솔직히..-.-
흥선대원군하면 쇄국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대원군은 사실 굉장히깨어있고 앞선 사람이었습니다. 일례로 대원군의 부인마저 천주교신자였었지요. 대원군은 국제정세에도 밝아 당시 러시아의 남하와 일본의 개항을 보며 자주국방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입니다. 당시 병인양요 신미양요때 프랑스와 미국의 함대를 박살냈을 정도였으니까요.
대원군 집권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대였습니다. 프랑스가 엄청 강하던 시대였죠. 해서 대원군은 프랑스 신부를 통해 나폴레옹과 접촉. 선진 무기와 문물을 받아들이려 하다가 실패하죠. 그래서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병인양요가 일어난데다 오페르트가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원군의 묘를 도굴하면서 쇄국으로 돌아섰던 겁니다. 어쩔수 없는.. 거스를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었던 거지요ㅠㅠ
쇄국도 한때고 사실 조선말 광무개혁등 이미 개화사상은 널리 진행된 상태였는데 일본이 뒷통수를 처버린거임. 갑신정변때도 갑오개혁때도 일본은 매번 개화파들을 청과 러시아를 명분으로 도와주는 척만했지. 결국 뒤에서 조종만 하고 조선을 호시탐탐 노렸음. 이후 을사늑약 정미 7조약 등으로 외교권 군사권 사법권 차례차례 박탈 한 것.. 애초에 주변 강대국들은 쇄국정책을 떠나서 조선의 독립적인 개화를 원하지 않았죠.
중국이나 우리나 역사깊어서 신문물 수용은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워낙 근본이 없어서 신문물 얼른 수용했죠.
임진왜란때도 일본한테 엄청 털려놓고도 국방력이 그모양 인것은.. 전반적으로 우리가 전쟁이나 신문물따위에 관심이 없는.. 전투민족이 아닌 여린 감성을 가진 문화민족이라는 종특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중국과 일본 혹은.. 세계 여러국가가 경제력으로 우리를 먹으려고 안한다면.. 우리는 지금도 그저 자연과 어울려서 술이나 마시고 놀며.. 문화적인 일을 하고싶은 ..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저 대목은 논란이 많은 대목이죠. 우린 전투민족이 아닌 선비국가.. 한번도 남의땅을 침략하지않은 순수한 민족..
이게 다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임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역사와 기개를 반도에 묶어놓으려한 일제의 의도지요.
사실 파고들어가면 우린 고조선 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발해까지 어마무시하게 많은 전쟁을 하던 나라였습니다. 중국 산동반도 만주 요동지방 숱하게 쳐들어가고 점령했었지요. 고려시대는 그야말로 전쟁의 역사입니다. 거란 3차 여진 2차 침입에서부터 몽고 7차침입 무려 40년간 대항하고, 공민왕 때는 쌍성총관부 무력탈환하고 요동공격해서 요양지방 점령했었지요. 조선시대에 또한 태조가 정도전과 북벌을 계획하고 인조때 서인이 주전론주장하고 효종때 북벌계획등.
저도 그런 것이 식민사관으로 비난 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활한 영토를 누빈 것과 상관없이..우리가 우리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종특이 무엇인지..
저는 여린 감성과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문화민족이라 생각합니다. 이걸 인정한다고 해서 과거에 우리가 누볐던 광활한 영토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