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이슈 게시판
 
작성일 : 14-04-03 13:50
쇄국정책 안했다면 만주는 우리영토겠죠.
 글쓴이 : 람다
조회 : 1,085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쇄국정책을 만약 안하고 일본처럼 개방/개혁을 한후

일본처럼 제국시대를 겪었다면... (변수가 많았을테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을때요.)

조선 -> 대한제국의 이氏왕이 아직도 있을테고.. (총리제)

2차대전에 우리가 연합국 또는 중립이었다면

분단도 없고 오히려 영토도 만주까지 확장되서 고구려옛영토를 회복했을거 같아요.

인구도 1억명일테고 지금 현재 1인당국민도득도 약 4만불이상 되지 않았을까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흠흠흠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붉은밤 14-04-03 13:52
   
글쎄요^^
전혀 무시할수는 없는 작성자님의 글이군요^^
북창 14-04-03 13:54
   
그렇게 역사를 가정하려 들면...한도 끝도 없죠 ㅋㅋ
그 뿐만 아니라...625 때 통일만 됐었더래도...인구 1억에 4만 달러 되었을 겁니다.
     
붉은밤 14-04-03 13:56
   
댓글도 무시할수가 없네요^^ ㅎㅎㅎㅎㅎ
젠덴 14-04-03 13:57
   
가끔 저도 그런생각을하지만 꼭 쇄국정책이 잘못이아니라 19세기 20세기초 조선은 정말
저주받았던거 같아요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만 번져갔던것같음 지금 대한민국 이정도까지온것도
대단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붉은밤 14-04-03 13:58
   
방가워요^^
          
젠덴 14-04-03 14:03
   
ㅋㅋ 붉은밤님 오랜만이네요 요새 잡게에서 서로 활동시간이 엇갈리는듯?
               
붉은밤 14-04-03 15:18
   
네 야구 보느라고.....ㅎㅎㅎㅎ
정의의사도 14-04-03 13:57
   
홍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오해하시는게
서양문물을 배격하고 후진국으로 남으려했던게 아니라
선진문물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천주교 같이 종교적인걸 배격한겁니다
되려 일본보다 선진문물을 더 빨리 받아 들인것도 있고
조선 나름대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구족을 멸할 안동김씨가 워낙 조선을 망가트렸고
민비 집안이 결정타를 날려 나라를 지키는 군대 수준이 엉망이었습니다
군대만 좀더 강력하고 시간이 좀더 주어졌으면
일본에게 맥없이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젠덴 14-04-03 14:03
   
동의합니다
     
Iniesta 14-04-03 14:47
   
흥선대원군은 천주교도 처음에 그리 박해하지 않았다가 러시아 남진 막으려고 프랑스와 동맹 제안 중 프랑스 천주교에서 뒷통수 친걸로 알고 있음. 그 이후 천주교도 박해.
          
정의의사도 14-04-03 14:55
   
김대건 신부 라는 이 개객끼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천주교를 국교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가
그게 뽀록나서 조선의 지식인들이 역시 금수나 믿는 종교다 해서 박해를 받은거죠
               
나와나 14-04-03 22:42
   
김대건 신부 전부터 정조 때 이미 정약용 등 천주교신자들의 신해박해 등이 있었고 재판 당시 김대건 신부는 훌륭한 언변과 논리로 금부에서조차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할 정도였는 데 왠 헛소립니까? 천주교 박해는 제사 문제와 성리학적 질서 위배 등 가치관과 기득권 수호 등 여러가지가 얽혀 생긴 사건이지 프랑스 등과의 정치적 이유는 훨씬 뒤에가 생깁니다
     
mymiky 14-04-03 14:48
   
흥선대원군이 단순무식 쇄국론자로 매도되는걸 보면 참 안타까워요-.-
그렇게 까일만한 분이 아닌데;;
명성황후는 뭔가 과대포장되고 있고, 흥선대원군은 평가절하되는 면이 많은듯..
드스꿀잼 14-04-03 14:04
   
솔찍히 그당시 소말리아 가나 수준으로 취급받던 조선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위치는 천지가 개벽할 수준의 위치입니다. 

우린 이미 충분히 행운아임.
     
나와나 14-04-03 22:44
   
이것이 바로 무지의 산물 ㅋㅋㅋ
일본도 없던 동양 최초 전차를 돌리던 우리 조상들이 한탄하실 듯 ㅋㅋ
망크타던 1910년대에도 만국평화회의에 초대될 정도였는 데 ㅋㅋ
싱끌레어 14-04-03 14:17
   
젠덴님 말마따나 당시 조선은 악운에 시달리고, 일본은 운빨이 따라줬습니다.-_-

우선 일본이 쇄국정책을 포기하게 강제로 개항하게 된 계기가 페리제독의 흑선사건(?)인데, 이게 1853년이었어요. 그후 막부군과 천황군의 전투에서 막부군 장군이 아무 이유 없이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대패..-_- 거기서 승기를 잡기 시작해 막부군이 패배하고 명치유신이 일어나는데, 이게 1868년입니다.

조선도 처음부터 쇄국이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병인양요, 신미양요에 이은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일어나면서 1971년에 쇄국정치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바로 2년 후 고종의 나이가 찼다는 이유로 최익현등의 상소로 흥선대원군이 권좌에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2년 후 운요호 사건이 터지죠. 페리 제독에 의한 강제개항과 20년 차이...
거기다가 명치유신과 비슷한 역사적 사건을 꼽으라면 갑신정변이 될텐데요. 이것도 근 20년 차이 납니다.

이런 거 다 생각 안하고 일본과 같은 시기에 같은 길을 걸었다고 쳐도, 과거 일제처럼 식민지 건설할 여력이 없었어요. 일본이야 한반도를 거점 삼아서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잡으며 제국주의 시대의 문을 열었지만, 우리는 그럴 토대가 없었거든요. 옆나라 일본이야 점령해봤자 더 이상 진출할 곳도 없고, 땅도 척박하고, 중국도 이미 서구문물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상태여서 뜬금없이 맞붙긴 힘든 상대고, 러시아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요.

신문물을 일찍 받아들였다면 식민시대나 분단은 없었을 것 같지만, 만주 수복은 현실성이 없어 보입니다.

조선의 불운은 쇄국정책보다 정조 사후의 세도정치가 더 치명적이었죠.
생마늘님 14-04-03 14:29
   
근데 제생각엔 감당하지 못할정도에 널은 땅은 오히려 독인거 같네여.....

.물론 지금 남한은 인구에 비해 좁긴 하지만....지역관리가 제대로 안되면 골치만 아프지 않을가요?.
버스터포지 14-04-03 14:35
   
이미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왜란 이후로 국력의 태반을 소모하고 이후에 두 차례의 호란까지 겪은 뒤로는 국력 자체를 상실하다시피 했죠. 여기에 영정조시절 겨우겨우 남은 국력을 긁어모으다시피해서 연명하던 터에 이후에 세도정치라는 존재가 조선의 호흡기 자체를 떼어버렸습니다. 대원군의 쇄국정치를 논하기에 앞서 이미 그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산업화와 제국주의로 무장한 세계 각국의 열강들 앞에서 이미 한없이 미약한 존재였을뿐이죠
믹네코이 14-04-03 14:38
   
우리나 남북으로 안갈라져서 이념전쟁 지역이 아니였으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껍니다....
mymiky 14-04-03 14:46
   
왜 무작정 개항만 하면, 잘 살꺼란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넹-.-
하와이는 개항하고도, 미국에 잡혀먹었는데;;
19세기 개항하는게 일본처럼 대박이 날지, 아닐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거고
역사엔 이프란 없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데지마를 통해 네델란드 문화라도 받았지만.당시 조선? 개항하면 만주까지 우리꺼라고 하는 상상력은 높게 평가하지만,, 실현가능성은 없죠. 솔직히..-.-
공무원 14-04-03 14:51
   
흥선대원군하면 쇄국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대원군은 사실 굉장히깨어있고 앞선 사람이었습니다. 일례로 대원군의 부인마저 천주교신자였었지요. 대원군은 국제정세에도 밝아 당시 러시아의 남하와 일본의 개항을 보며 자주국방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입니다. 당시 병인양요 신미양요때 프랑스와 미국의 함대를 박살냈을 정도였으니까요.

대원군 집권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대였습니다. 프랑스가 엄청 강하던 시대였죠. 해서 대원군은 프랑스 신부를 통해 나폴레옹과 접촉. 선진 무기와 문물을 받아들이려 하다가 실패하죠. 그래서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병인양요가 일어난데다 오페르트가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원군의 묘를 도굴하면서 쇄국으로 돌아섰던 겁니다. 어쩔수 없는.. 거스를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었던 거지요ㅠㅠ
     
Iniesta 14-04-03 14:59
   
병인양요는 박살이라고 하기엔 사실 조선이 훨씬 많은 피해를 가져왔죠. 프랑스측도 패배라곤 하지만.. ㅎㅎ
          
공무원 14-04-03 15:04
   
그도그렇지만 당시 프랑스군으로써는 그야말로 날벼락 아니었을까요 ;;;; 제가 전하고자 하는바는 당시 조선의 국방력이 우스울 정도는 아니었다 니 그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네요 ㅋㅋ
     
싱끌레어 14-04-03 15:05
   
신미양요는 미군의 사망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우리나라 수비군은 거의 궤멸...
의의가 있다면 수성에 성공하고 외침을 물리쳤다는 것에 둘 수 있지만, 박살냈다고 하기엔 좀..

'미군은 함상 함포사격으로 초지진을 완전 초토화시키고 점거하였다. 미군은 6월 11일에는 덕진진(德津鎭)을 무혈 점거하였다. 마지막으로 광성보(廣城堡) 작전을 수행하였다. 광성보에는 진무중군 어재연(魚在淵)이 이끄는 조선 수비병 600여 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미군은 수륙 양면포격을 한 시간 벌인 끝에 광성보를 함락하였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전사자 3명, 부상자 10명이었고, 조선군은 전사자 350명, 부상자 20명이었다. 미군은 광성보를 점거하고 수자기(帥字旗)를 탈환하고 성조기를 게양, 전승을 자축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나폴레옹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나폴레옹 1세는 흥선대원군의 출생과 함게 저 세상에 가셨습니다. 아마 흥선대원군과 시기를 같이 한 나폴에옹이라 하면 나폴레옹 3세가 아닐까 하네요.
          
공무원 14-04-03 15:18
   
그렇군요. 알아보니 나폴레옹 3세때가 대원군 집권과 일치하는군요. 제가 공부할때 나폴레옹이라고만 들어서 막연히 나폴레옹이 그 나폴레옹인줄 알았습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나와나 14-04-03 22:46
   
신미양요 때는 프랑스와 달리 더 레밍턴 소총 등 앞선무기로 무장한 정예병들로 구성되었었죠.. 또 강화도 요새들도프랑스군과의 전투로 많이 훼손되어있었고요..
Iniesta 14-04-03 14:55
   
쇄국도 한때고 사실 조선말 광무개혁등 이미 개화사상은 널리 진행된 상태였는데 일본이 뒷통수를 처버린거임. 갑신정변때도 갑오개혁때도 일본은 매번 개화파들을 청과 러시아를 명분으로 도와주는 척만했지. 결국 뒤에서 조종만 하고 조선을 호시탐탐 노렸음. 이후 을사늑약 정미 7조약 등으로 외교권 군사권 사법권 차례차례 박탈 한 것.. 애초에 주변 강대국들은 쇄국정책을 떠나서 조선의 독립적인 개화를 원하지 않았죠.
평창 14-04-03 15:03
   
중국이나 우리나 역사깊어서 신문물 수용은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워낙 근본이 없어서 신문물 얼른 수용했죠.
임진왜란때도 일본한테 엄청 털려놓고도 국방력이 그모양 인것은.. 전반적으로 우리가 전쟁이나 신문물따위에 관심이 없는.. 전투민족이 아닌 여린 감성을 가진 문화민족이라는 종특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중국과 일본  혹은.. 세계 여러국가가 경제력으로 우리를 먹으려고 안한다면.. 우리는 지금도 그저 자연과 어울려서 술이나 마시고 놀며.. 문화적인 일을 하고싶은 ..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일본처럼 남의 것을 훔치고 파괴하고 싶은 야만 민족들은 오늘도  내일도 전쟁을 꿈꾸겠죠.
     
공무원 14-04-03 15:12
   
전투민족이 아닌 여린감성을 가진 문화민족이라는 종특..

태클은 아니니 기분 상하지 않으셨음 하는 마음에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저 대목은 논란이 많은 대목이죠. 우린 전투민족이 아닌 선비국가.. 한번도 남의땅을 침략하지않은 순수한 민족..
이게 다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임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역사와 기개를 반도에 묶어놓으려한 일제의 의도지요.

사실 파고들어가면 우린 고조선 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발해까지 어마무시하게 많은 전쟁을 하던 나라였습니다. 중국 산동반도 만주 요동지방 숱하게 쳐들어가고 점령했었지요. 고려시대는 그야말로 전쟁의 역사입니다. 거란 3차 여진 2차 침입에서부터 몽고 7차침입 무려 40년간 대항하고, 공민왕 때는 쌍성총관부 무력탈환하고 요동공격해서 요양지방 점령했었지요. 조선시대에 또한 태조가 정도전과 북벌을 계획하고 인조때 서인이 주전론주장하고 효종때 북벌계획등.

여린감성을 가진 민족이라는둥의 식민사관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아닌듯 싶습니다
          
평창 14-04-03 15:20
   
저도 그런 것이 식민사관으로 비난 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활한 영토를 누빈 것과 상관없이..우리가 우리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종특이 무엇인지..
저는 여린 감성과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문화민족이라 생각합니다.  이걸 인정한다고 해서 과거에 우리가 누볐던 광활한 영토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무원 14-04-03 15:27
   
그렇군요. 오해가 조금 있었네요. 그렇다면 님의 글 중 전반적으로 우리가 (전쟁이나 신문물따위에 관심이 없는.. 전투민족이 아닌 여린 감성을 가진) 문화민족이라는

가로 안의 대목을 빼면 오해의 소지가 없어질것 같네요^^ 또한 종특이라는 단어는 민족성의 비하발언이니 순화해서 사용하는게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