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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2-18 15:43
위대한 한족의 조공 실태 ㅋ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1,206  

전한
유방은 기원전 202년 재위 5년에 비로소 황제라 칭하고 노관을 연(燕)왕으로 봉한다. 그런데 기원전 201년 노관이 흉노에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유방은 흉노가 갓 탄생한 한나라에 큰 골칫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40만 명의 대군을 동원, 흉노의 시조인 묵특선우((冒頓單于, 기원전 209∼174)를 공격한다. 그러나 기원전 200년 유방은 백등산에서 일주일 동안이나 포위되었다가 가까스로 구출되는 등 온갖 수모를 겪고 난 뒤 흉노와 화친을 맺는다.

당시 흉노와 한이 맺은 화친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그에 의하면 한은 거의 흉노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첫째, 한의 공주를 흉노 선우에게 의무적으로 출가시킨다(이 관례는 문제(文帝, 기원전 179∼157) 때까지 계속되었다).

둘째, 한이 매년 술 비단 곡물을 포함한 일정량의 조공을 한다.

셋째, 한과 흉노가 형제맹약(兄弟盟約)을 맺어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넷째, 만리장성을 경계로 양국이 서로 상대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는다.



이 합의는 기원전 198년 가을, 중국 종실의 공주가 흉노에 도착함으로써 발효되었다. 특기할 사항은 양 조정(朝廷)에 왕위 변동이 있을 때마다 새로운 혼인으로 동맹을 갱신했다는 점이다. 또 중국이 흉노에 내는 조공 액수도 한과 흉노 사이의 역학 관계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는데, 대체로 한의 조공액은 매년 늘어났다. 기원전 192년부터 135년까지 적어도 아홉 차례에 걸쳐 한이 흉노에 대한 조공액을 인상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한이 흉노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을 흉노의 속국으로 만든 묵특선우는 흉노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우리 한민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당시 동호(東胡; ‘동쪽 오랑캐’를 의미하는 한자어. 고조선 외에 부여, 예맥, 진번, 임둔, 진국 등 다양한 국가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가 매우 강성하였는데, 동호는 흉노를 경멸하며 묵특의 천리마와 연지(흉노의 후비(后妃)의 칭호)를 요구했다. 부하들이 동호의 무례함을 나무라며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라고 하자 묵특은 ‘인접한 나라 사이에 어찌 말 한 마리와 여자를 아끼겠는가’라며 순순히 동호의 의견을 따랐다. 당시 두 나라 사이에는 1000여리의 황무지가 펼쳐 있었는데, 동호가 이를 갖겠다고 나섰다. 신하들은 버려진 땅이므로 주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묵특은 ‘땅은 나라의 근본이다’라며 동호를 습격하여 왕을 살해하고 백성과 가축을 노획했다.

패전한 동호를 대신하여 흉노는 유목기마민족의 패자로 떠올랐고, 묵특은 자신의 치세 동안 대대적인 정복활동을 벌여 아시아 초원에 있는 거의 모든 민족을 복속시켰다.

한족이 이른바 ‘흉노 공포증’에서 벗어난 것은 기원전 141년 한나라 무제(武帝)가 즉위하면서부터다. 괄괄한 성미의 무제는 고조 유방 이후 60 년간 지속된 굴욕적인 대(對)흉노 유화정책을 버리고 강경 대응에 나섰다. 무제는 기원전 129년부터 기원전 119년까지 10년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위청과 곽거병 등으로 하여금 기병대를 이끌고 흉노를 공격하게 했다.

10년간의 한·흉노 전쟁으로 한나라도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흉노의 피해는 더욱 컸다. 무제가 죽은 후 한나라와 흉노는 대략 300년에 걸쳐 공존하며 평화롭게 지낸다



후한

후한(後漢, 25-220)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25-57)는 중국 남부와 월남의 북부를 다시 정복했다. 기원전 209년에 묵특의 지휘아래 유목제국을 수립한지 250여년이 지난 AD 47년, 흉노제국에 내란이 일어나 몽골초원 전체가 산산조각이 났다. 덕분에 요서 초원지대의 오환(烏桓)과 선비(鮮卑)는 제일 먼저 흉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실호기, 후한 명제(明帝, 57-75)는 전한 무제를 본받아 흉노를 다시 한번 통제해 보려 했다.

일찍이 AD 48년에 흉노제국이 남과 북으로 양분되자, 조정관료인 장궁(臧宮)은 흉노의 약세를 틈타 “고구려,” 오환, 및 선비와 연합하여 흉노를 공격하자고 주장했었다. 1 당시 광무제는 전쟁을 반대하는 자신의 신조를 강하게 피력했다. 49년, 광무제는 푸짐한 선물과 국경무역을 제공해 선비족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명제가 즉위한 다음 해인 58년 이후에 후한 조정이 선비 부족장들에게 정기적으로 갖다 바친 금액은 년간 2억 7000만냥에 달했는데, 그 규모는 같은 기간 동안 남흉노에게 바친 것의 세배에 달하였다.


북위때(남북조)


북위는, 한편으로는 정복한 중국 땅을 중국식 관료제도로 다스려 다른 유목민족에 대해 우위를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족중심의 유목민 전통을 바탕으로 부족의 정예들로 군대를 조직해서, 정복한 한족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시종일관 유지할 뿐 아니라, 쳐들어 올 가능성이 있는 다른 유목민족들에 대해서도 군사적인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모용선비가 시작하고, 탁발선비가 이어 받은 2원적(二元的) 국가조직은 요(遼) 금(金) 청(淸) 같은 정복왕조의 귀감이 됐다. 만주는 거의 모든 정복왕조를 낳고 키운 산실이며 요람이었다

홍원탁 (서울대 교수)

만주의 여러 부족들 중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 해 가장 유목민적이었던 탁발 선비는, 전연(前燕)이 만들어낸 이원 통치 체제의 장점을 살려, 처음으로 북중국 전체를 지배하는 이민족 왕조를 수립했다.1 모용 선비족은 탁발의 북위(386-534)조정 내에 주요 지배귀족의 하나로 살아남았다. 변경지대의 한족들은 어느 때고 초원 혹은 삼림지대 출신의 이민족 부족 중 제일 강하다고 생각되는 편에 붙었다. 탁발 선비의 언어는 아마도 거란어의 직계 조어(祖語)이었을 것이다.2

부족 출신 군대 덕에, 보급이 잘되는 기병대를 보유했던 북위는 초원지대 깊숙히 원정군을 보낼 수 있었다. 거의 모든 부족들은 부대 단위로 조직되어, 할당된 지역에 거주하면서, 국경수비 공동체의 구성원 역할을 하였다.3 부족민과 군사에 관련된 문제는 각 부족 고유의 전통에 따라 처리되었다 정복된 한족 거주지역은 한족 관료들에 의해 통치되었으나, 고위직은 대부분 선비 귀족들이 차지했다. 전통적으로, 한족들의 이상은 능력주의 사회인데 반해, 유목민족들은 세습적 귀족제도를 고수했다. 북중국 귀족가문들은 대부분 한족이 아닌 이민족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정복왕조 중앙정부의 고위직을 대부분 독차지하였다.

중국대륙 북부의 선비족 유적지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들을 보면, 시베리아와 몽골초원 유목민들의 초기 예술적 전통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뿐만 아니라, 당시 선비족들이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위치했던 옛 박트리아와 교류가 있었고, 로마 통치하의 중동과 교역을 했으며, 초기적 불상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인도와도 접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낯익은 사람들은, 섬서성에서 발굴된 (5호16국 시대) 갑옷을 입은 말 모양의 토기를 보고, 고구려 토기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특히 호흐호트(呼和浩特)에서 출토된(맨손으로 빚어 만든) 말과 마부의 토기는 신라 토기로 오인될 정도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모양의 토기에 너무나도 친숙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정복한 중국 땅을 중국식 관료제도로 다스려 다른 유목민족에 대해 우위를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족중심의 유목민 전통을 바탕으로 부족의 정예들로 군대를 조직 해서, 정복한 한족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시종일관 유지할 뿐 아니라, 쳐들어 올 가능성이 있는 다른 유목민족들에 대해서도 군사적인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모용선비가 시작하고, 탁발선비가 이어받은 2원적 국가조직은 요(遼), 금(金), 청(淸) 같은 정복왕조의 귀감이 되었다. 만주는 거의 모든 정복왕조를 낳고 키운 산실이며 요람이었다. Barfield(1989: 105)는 “한(漢)이 멸망하고 첫 번째 만주족 정복국가(탁발북위)가 등장하기까지는 150년이 걸렸고, 당이 망하고 나서는 75년이 걸렸으나, 명(明)이 망할 때는 거의 동시에 만주족 정복왕조가 들어섰다. 한족왕조가 망하고 나서 정복왕조가 들어서기까지의 시간은 점점 단축되었지만, 그 방식은 똑같았다.”고 말한다.






요나라때


거란(요나라)은 송과 적대적인 대치상태를 지속하다가,

결국 1005년에 송나라가 매년 20만 필의 비단과 10만 량의 은을

거란에게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평화조약을 맺었다.

1005년 조약과 1042년에 개정된 조약은 근 백 년간 평화를 지속시켰다.

송나라 조정은 열등한 지위를 수용하고, 계속 “조공”을 바쳤다.

송나라의 인구는 약 8천만에 달했으나, 티벳으로부터 몽골의 초원지대를 거쳐 만주에

이르는 북방 전 지역에는 대략 5백만 명 정도가 살았다

금나라
북송은 금(金)나라에 의해 멸망했고

남송은 몽골제국(원元)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원나라때
몽고족은 제1신분으로서 통치하고 색목인(위구르인, 아랍인등)이 제 2신분이었고 다음은 중원땅에 살았던 한인이(거란, 선비족) 3신분을 차지하고 끝까지 원의 지배에 항쟁했던 남송인이(한족) 4신분으로 특히 차별을 받으며 노예 계층으로 분류했다.. 원은 몽골어를 공식언어로 지정했고, 과거제를 폐지하는 등의 정책을 통해 한인의 정치진출을 막았습니다.

한인들의 역할이 축소된 것은 이미 칭키스칸이 세계제국을 이룩하였기 때문에 아랍인이나 위구르인이 중국에 많이 진출하여 재정과 무역 등의 실무를 맡아서 한 것도 이유로 들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한인을 억압하는 정책을 통해 그들의 반발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청나라때

청조의 對 한인 정책은 협조하면 유화책을 구사하지만, 반항하면 철저하게 도살하는 유혈강경책이었지요, 예컨대 화남과 화북을 잇는 군사적 경제적 거점이었던 揚州城(양주성)을 함락시켰을 때 청군은 끝까지 저항한 한인 8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팔기는 반문명적이고 야만적인 군대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만주족은 중국인구의 0.03%에 불과했습니다. 소수가 다수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본때를 보인 것입니다』

청조가 과거제도를 유별나게 중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거제를 통해 능력과 장래성이 있는 漢人을 관료로 발탁하겠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를 통해 사대부와 지방의 紳士(신사) 계급을 통제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과거 합격자가 관직에 바로 등용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生員, 監生, 貢生, 擧人 등의 학위소지자로서 사회적 특권을 누릴 수 있었고, 상급 시험인 進士試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청조는 이들이 관계에 진출하기 위해 지옥과 같은 多단계의 과거준비에 얽매이게 유도함으로써 체제에 불만을 가질 겨를이 없도록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청대의 과거합격자 110만명 중 관료가 되었던 사람은 2만7000명에 불과했습니다

만주족의 土風(토풍)을 지키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청조는 발상지(본거지)에 사는 만주족이 한족식 집을 짓거나 한족교사를 초빙해 글을 배우는 것조차 엄격하게 금지했습니다. 中原에 들어간 만주족들은 元을 세운 몽골족처럼 한족에게 몰리면 언제라도 말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 고토로 되돌아간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의 얘기입니다만 청조는 대만이나 산동반도 같은 곳은 쉽게 할양했지만, 조선에 대한 종주권은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아 청일전쟁까지 치렀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이 그들의 본거지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었지요』
 
-청사 임계순 교수 -


청나라의 만주족은 그들의 충성심을 확인 시키기 위해 변발과
 
만주복식을 강요했고 이에 반항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처단했음.

< 정사의 실제 기록>

남북조시대의  기마민족인 선비족(鮮卑族)이-<사기> <흉노전>에는

흉노를 호라 하고, 예맥 조선을 동호라 하였고,- 흉노가 동호를 하

북성으로 밀어내게 되는데 동호 ,예맥, 조선은 사기의 흉노열전,

조선열전, 소진열전에서 다르게 이칭 하지만 그 방향과 위치는 같

다. 즉 동호를 고조선으로 기록하고 있다.이후 후대

< 위지 동이전>에는 동호의(고조선) 후손이 선비, 오환이라 하고

예는 부여, 맥은 고구려라고 하여  선비, 오환, 부여, 고구려 등을

다르지 않는 갈래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지와 후한서는 선비 부여 고구려등을 동이 열전에서 함께 분류하고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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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4-02-18 15:45
   
아래 누가 보니 조공 어쩌고 엄청 자랑스러워 하던데 ㅋㅋ(짱개 전매특허인줄 ㅋ)

한족의 정체성 운운하는 한나라 자체고 한 유방이

흉노 묵돌 대선우에 생포되어 수십년간 실질적 속국으로

공주부터 온갖 조공 바치면서 시작한 나라인건 아는지? ㅋㅋ


서토에서 자랑하는 선비족 당나라도 초기에 수나라가 고구려에 4차례 원정으로 대패를 당하면서

국토가 피폐하자 초기에 돌궐이 이를 틈나 남하하면서 당나라 군주 살려고 바들 떨면서

조공바치면서 연명했죠 ㅋ
응답하세요 14-02-18 15:46
   
밟아도 밟아도 짱개가 자꾸 생겨나니..
바퀴벌레가 딱인듯 싶은데...
게이츠 14-02-18 15:48
   
명나라 송나라 빼고는 다 이 민족임 ㅎㅎ;;
굿잡스 14-02-18 15:49
   
실상 실제 조공 쳐바친건 서토인들이고 이 조공으로 연명하다 완전 캐털린게

원, 청이고 원나라시절 한족들은 몽골인들에게 초야권 빼앗기고 서토인 8할이 노예로 지배받던

사고 팔리던 물건이였음 ㅋ . 고려와 원의 사대 어쩌고가 짱개 한족과 뭔 상관있남?? 사대 운운으로

피지배 노예짜장들이 자랑??스러워 하게요ㅋㅋ
굿잡스 14-02-18 15:51
   
그외 허구의 족명 한족이 스스로가 힘으로 굴복 못시키면 이후 나라대 나라로 외교 관계 정립하고

지들 좀 모양새 내서 나라간 공무역한걸 무슨 마치 지들이 실제 아무댓가없이 조공바치든 그런

조공인줄 대단히 착각하는 무식한 어글로가 아래 한명이있군요 ㅋ
공생민진 14-02-18 15:59
   
질문 하나할게요 우리나라가 자력 종주국 칭하던 시기에 관계없는 자료만 장황하게 늘어놓고

종주국 포기하고 조공바치던 원 명 청때 자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나요?

참  원조나 청조때는 한족이 독립적으로 국가라도 가지고있었나보죠? 조공운운하게?

내가봤을땐 무식한건 당신인거 같은데 내가 어디까지나 언급한건 우리나라가 중원왕조에게

조공을 바쳤다는걸 말하는건데 뭔 한족이 어디에 조공을 바치는 관계도없는 소리를 하는지

심지어 한족 왕조인 명때도 종주국 포기하고 신하국한게 고려이고 조선인데요?

왜 청국이 처들어와서 인조가 그굴욕 당했는지 모르시나?

시대 흐름도 파악못하고 끝까지 명나라 신하노릇 자처하다가 그리되었는데요?
     
굿잡스 14-02-18 16:01
   
실상 실제 조공 쳐바친건 서토인들이고 이 조공으로 연명하다 완전 캐털린게

원, 청이고 원나라시절 한족들은 몽골인들에게 초야권 빼앗기고 서토인 8할이 노예로 지배받던

사고 팔리던 물건이였음 ㅋ . 고려와 원의 사대 어쩌고가 짱개 한족과 뭔 상관있남?? 사대 운운으로

피지배 노예짜장들이 자랑??스러워 하게요ㅋㅋ



그외 허구의 족명 한족이 스스로가 힘으로 굴복 못시키면 이후 나라대 나라로 외교 관계 정립하고

지들 좀 모양새 내서 나라간 공무역한걸 무슨 마치 지들이 실제 아무댓가없이 조공바치든 그런

조공인줄 대단히 착각하는 무식한 어글로가 아래 한명이있군요 ㅋ


>>
위에 댓글 두개나 달아 놓았구만 뭔 ㅋㅋ

원 청이 한족 왕조인감?? ㅋㅋ(공부나 좀 더 하고 오길 바람. 최소한 국적불문에

울나라 국사 배운게 없으면

남이 준 내용이라도 제대로 읽고 질문이라는 걸 하길 바람)
          
공생민진 14-02-18 16:05
   
한족왕조가 아니고 대륙왕조 맞잖아요? 그리고 그 왕조에게 주종관계 맺고 조공바친게

역사적 사실이죠 왜 관계도없는 한족이야기꺼내서 물타기하는지 모르겠네

진짜 까놓고 말해서 저는 한족의 조공관계를 이야기하는게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이야기를 하는건데요 바치는 상대가 한족이건 만주족이건 몽고족이건 중요한가요?

그리고 정말 까놓고 말해서 당신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생각하면 만주족 몽고족대부분 한족도 이미 다 중국 국민인데?????

그게바로 중국이 노리는점이겠지만....

자존심살리려고 있지도않은 사실 날조하거나 관계없는일 장황하게늘어놓으면서

사람 눈 흐려놓지 마세요 진짜 한심해보이니까

그리고 너무웃긴게 한족 어쩌구 운운한다면서 명조때 이야기는 한줄도없음 ㅋㅋ

무슨 지들 불리한 이야기는 쏙빼놓고 역사날조하는 일본놈들이랑 너무 똑같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4-02-18 16:08
   
ㅋㅋ 타이틀 제목이나 쳐보고 오길 바람. (이 사람 스토커인감?? ㅋ)

그리고 제발 고대 동북아에서 조공이 뭔 개념인지나 좀 알고 오길 바람. 에구

진짜 한심해서리..
                    
공생민진 14-02-18 16:13
   
그니까 그 잘난 조공 당신 뇌내에선 어덯게 생각하는지 설명좀 해보셔요

어차피 말도안되는 개념일게 뻔하지만 나참 어이가없어서

내가봤을땐 정해져있는 개념을 확대해석해서 유리하게 사용하려는 것 이외로는

이해가 안되네요 ㅋㅋ 조공을 떠나서라도 이미 황제칭호 포기하고 국왕 임명시

칙서를 받았다는거 부터가 마침표 찍은거 아닌가요?? 중국 주변국중에 그취급도 못당하고

흡수당한나라가 거의 부지기수에다가 그상황에서도 주권유지하고 무력행사까지했던 우리

나라의 저력이 대단한거지 무슨 ㅋㅋ 있지도않은 이야기 날조하면서 애씁니다 정말 ㅋㅋ
                    
공생민진 14-02-18 16:38
   
다른글에서 구지 다른사람을 노리는것 이라고 추측가능하게 글써놓고

그딴말 할 자격이나 있나 진짜 비겁자의 전형인듯
공생민진 14-02-18 16:00
   
참 댓글도 못달면 이렇게 새글 달아놓고 큰 글씨체에 관계도없는 이야기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다인가보죠?

아 참 그게 님 전략이었지 이제까지 너무 많이 봐와서요 ㅎㅎ 병법서 많이 읽으신거 같네요.
     
굿잡스 14-02-18 16:02
   
뭘 제대로 읽어나 보고 생각이냐 해보긴 하셔남?.. 한심한..
          
공생민진 14-02-18 16:03
   
하여간 국가간 주종외교관계에

개념도 애매모호한 무역어쩌구 할때부터 알아보긴햿습니다만

계속 앵무새같이 같은 전략만 쓰시네요

ㅎㅎ 한심하다 ㅋㅋ
               
굿잡스 14-02-18 16:06
   
ㅋㅋㅋ

역사 토론에 사료관련 내용은 없고 그냥 무식한 자위글이나 남발하니 ㅋㅋ

당신 무식한 개념이면

조선은 왜 1년에 조공을 4번하자고 떼를 썼고 명나라는 1년에 한번하자고 했을까??

조공이 당신 무식한 논리로 그냥 갖다 바치는 거라면 명이 1년에 1번이 아니라

4번,10번을 하자고 했을 것인데? ㅋㅋ 이걸 설명해 보길 바람 ㅋ
                    
공생민진 14-02-18 16:09
   
애초에 종주국 체면살리자고 조공바치러오면 그 열배 백배로 선물 꾸려서 돌려보낸게 대륙왕조인데 뭐 대단한거 얻어먹자고 10번씩이나 부르겠어요? 조공을 바침으로서 주종관계를 존속시키고 양국간 외교적 연결을 재확인하는 차원 아닌가요?

그리고 그런 개념이면 오히려 세자책봉 왕이계승등 중요한 과정에 한차례도 빠짐없이 사신 보내고 칙서보내서 임명한건 어덯게 생각하시나요? 너무 관심을 많이쓰는거 아닌가요?
                         
굿잡스 14-02-18 16:13
   
개념이면 오히려 세자책봉 왕이계승등 중요한 과정에 한차례도 빠짐없이 사신 보내고 칙서보내서 임명한건 어덯게 생각하시나요>??

ㅋㅋ현 왜국 미국에 나 총리되슈유 하고 소식보내고 답방하니 속국임?? ㅋㅋ

짱개 시진핑주석도 오르기 전에 미국가더만 ㅋㅋ 짱국도 속국임? ㅋㅋ

이건 뭔. 외교가 뭔지 조공이 뭔지  기초 상식조차 없으면서리 ㅋㅋ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가르쳐 줄곳은 저기 돈내고 학교나 학원 가서

제대로 배워보든지 하길 바람 쯧)
                         
공생민진 14-02-18 16:15
   
당신 바보? 왜국 총리됐다고 미국에 알린거랑 이거랑 같나요?

또 날조시작이네 ㅋㅋㅋ 칙서는 분명히 황제명으로 너를 왕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고

현대 대통령 취임때 외국에 알리는것처럼 나 이쪽 대통령됐음 그렇게 아셔 이거랑은 차원이 다른데?

진짜 물타기도 정도껏 하세요 제발 ㅋㅋ
                         
굿잡스 14-02-18 16:20
   
왜국 총리됐다고 미국에 알린거랑 이거랑 같나요?

또 날조시작이네 ㅋㅋㅋ >???

ㅋㅋㅋ 무식이 스스로 무식으로 날조질 쳐하는걸 모르니 ㅋㅋ 에구

명이 조선의 왕위나 세자 책봉에 일방적으로 관여했다면

왕자의 난이고 연산군 광해군 뒤엎는 사건들이 왜 나오남?

하여튼 진짜 무식함

이야기 할때마다 무식이 줄줄 에구...

세자 책봉과 왕위는 조선 스스로의 고유 권한이였고 이후에 스스로 세자나

왕위가 내부에서 결정되면 통보하는 식이였음(그러니 현왜구총리나

시진핑이 미국에 쳐 통보하는 외교행위랑 다르지 않다는 소리이고)

아구 무식한 양반아 그냥 혼자 쳐놀기 바람.(할일 없으면 일기장에

헛소리 남발하든지)



짜장 역사 실태 이야기 쳐하면 캐무식하게 환빠 어쩌고 헛소리나 쳐하는

(그냥 당신 나라 가서 노세요 여기서는 당신 무식한 논리에 호응해 줄 사람

전혀~~ 없으니 ㅋ)

이만 ㅋ
                         
공생민진 14-02-18 16:35
   
애초에 왕자의난 당시에는 명과 사대확립 전인 상태이고 광해군 뒤엎을 시기에는 명도 청과

전쟁중이어서 주변국 정사에 신경을 쓸 여를이 없었는데? 그리고  오히려 인조반정은 명

신하 노릇 계속하자고 양다리 보자고 한 광해군 끌어내린 결과인데 당시 종주국이었던 명나라에서 구태여 반대할 이유가 있나?? 이양반 보자보자하니까

교묘하게 골라서 이야기하네 ㅋㅋ 그리고 명분이 왜 중요한지 모르시죠? 설령 실제로는 달랐다 할지라도 형식상 칙서의 이름으로 양국이 받아들였다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그렇다는 소리에요 오히려 실리적으로 자주외교를 펼쳣던 우리나라가 더 대단한거고 진짜 이인간 웃긴다 ㅋㅋ
                    
굿잡스 14-02-18 16:44
   
무식한 양반아 그럼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은(재위 1494∼1506) 어쩔것임?ㅋ

(이때도 조명이 어쩌고 할려남? ㅋ)

그리고 애초에 가장 기본인 조선 스스로가 세자책봉를 먼저 내부적으로 결정하고

통보 올린게 먼저인지 명나라가 지들 골라준 대로 조선이 왕위에 올랐는지

사료보면 단번에 알 수 있는 사항에 대해 뭔 구구절절

헛소리 찍찍 계속 남발하시남.(이전글에도

그나마 들고온다는게 보니 그냥 짜장식

헛소리나 가져와서리 어쩌고 무식한 티나 줄줄내더니 쯧. 울나라 정식

초딩 국사만 제대로 배워도 나올수 없는 무개념소리나 줄줄 쳐하긴. )
                         
공생민진 14-02-18 17:03
   
먼저 골라주고 안주고를 떠나서 대륙이 책봉 임명을 하고 그것을 조선이 받아들였다는거 자체가 명분확립이 되는건데 그리고 연산군은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으로 선비들을 닥치는대로 잡아죽여서 이미 명나라나 자순대비한테 반정의 명분을 톡톡히 세워주었고 반정후에도
명에서 어찌하지못하고 윤허한다는 칙서만 내리지.
                         
굿잡스 14-02-18 17:41
   
먼저 골라주고 안주고를 떠나서 >?? ㅋㅋㅋㅋ

위에서부터 뭔 본인 편한대로 요리조리 ㅋㅋ 에구.( 짱국 바퀴어쩌고에

열분내는 이유를 알곘음 ㅋ)
응답하세요 14-02-18 16:10
   
아니 무슨 조공이 사대관계로 해석이 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쪽발이들의 논리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륙왕조 대륙왕조 하는거 보니
짱개들 역사인식을 영토를 기준으로 하며 왜곡하는거랑 일맥상통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생민진 14-02-18 16:16
   
그럼 칙서나 책봉시에 관례는 어덯게 생각하시나요 답좀 해주세요 ㅎㅎ

자기한테 유리한쪽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봤을땐 그쪽이더 망할 쪽바리들 역사인식이랑 다를바없어보임

그리고 서토어쩌구 운운하면서 국가를 억지로 민족에 대입시켜서 끌어낸건

오히려 저쪽 ㄱㅈㅅ 와 환빠들인데....
          
응답하세요 14-02-18 16:18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칙서나 책봉은 지금으로 따지면 정치적인거와 관련있는것일뿐입니다.
드라마를 너무 보셧네 ㅋㅋ
.. 대부분이 형식적인거였다구요..

칙서나 책봉으로 왕이 안된 경우 있나 봐 보시죠 ㅋㅋㅋㅋㅋ

님이야말로 짱개역사인식 끌어들이지 마세요 ㅋㅋㅋ
               
공생민진 14-02-18 16:30
   
형식에 따라서도 어떤 형식인가에 따라 다르죠

칙서는 확실히 황제로써 국왕을 임명한다 혹은 세자를 임명한다는것을

골조로 합니다 아무리 실리적으로는 이와다를지라도 명분 그러니까

기록하에서는 그렇게 남지 않습니까...
                    
아싫다뭐야 14-02-18 16:55
   
지앙지에스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왕 14-02-18 16:20
   
- 애초에 종주국 체면살리자고 조공바치러오면 그 열배 백배로 선물 꾸려서 돌려보낸게 대륙왕조인데 뭐 대단한거 얻어먹자고 10번씩이나 부르겠어요? -

이 발언으로 끝난 얘기 같은데요
금비 14-02-18 16:50
   
역사갤러리 가니까 청나라가 어떻게 중국사냐고 물으니..

청의 한족화에 대해서 다시 공부하라고 하더군요

중국은 그렇게 가르치나보네요 ㅋㅋ 모든게 다 중국꺼~~~~~
나와나 14-02-18 18:15
   
조공이 사대관계나 속국 개념이면 명나라 정화의 원정 때 조공한 아프리카 왕조들은 뭐죠? ㅋㅋ

 서양세력에게 조공 요구한 청나라는 뭐고 ㅋㅋ

또 동남아,류큐,일본에게 조공받던 고려,조선도 주종관계 개념인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