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5-2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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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행복한 유럽⑨] 무신론자가 만난 교황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무신론자다. 내게는 신의 존재나 권능을 믿는 일이 몹시 힘이 들고 어렵다. 정확하고 솔직하게 고해하자면 신의 본심을 잘 모르겠다. 이쯤 되면 종교 무지론자 또는 무관심론자에 가깝다. 최소한 불가지론자다. 신의 본질이나 실재의 참모습을 나 같은 정도의 경험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속이 편하다.
그래서 평소 신의 전지전능함과 구원의 복음을 기대하는 성직자, 신도들의 진지한 기분과 절박한 심정을 나로서는 헤아릴 수 없다. 서로 낯설고 불편하다. 특히 체육관처럼 생긴 큰 교회는 타자들의 전당, 외계 같은 피안으로 느껴진다. 크면 클수록 성스럽기는 커녕 가장 세속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종교는 큰 건축물을 위용을 빌려 절대적이며 완벽한 진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설파하려는 듯하다. 그렇게 자꾸 오해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경직된 교조주의를 믿느니 차라리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을 믿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본질적 실재는 신앙의 영역'이라는 임마뉴엘 칸트의 불가지론도 어쩌면 잘 이해되지 않는다. 결국 신앙 또는 종교의 본질적 실재 자체가 불가해하거나 불가지하다.
결국 나로서는 그 흔한 '자기만의 신'도 없는 셈이다. 스스로의 자아나 실존조차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믿는다한들, 믿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불가항력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하거나 답답하지 않다. 두렵거나 외롭지도 않다. 믿는 대로 되지 않는 인간의 한계와 숙명이라는 확고한 경험칙과 인식을 냉정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신을 믿는 이유가, 교회나 성당이나 절에 가는 이유가, 종교와 교회에서 기대하는 효능이 위로와 치유, 평화와 행복감 따위인가. 그렇다면 나는 굳이 성전에 출석해서 설교를 듣거나 의식에 동참하지 않아도 된다. 산책, 숙면, 여행, 독서, 작문, 음악이나 그림 감상 등으로 충분히 개인적으로는, 신앙적으로 위로받고 치유받는다. 평화와 행복감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종교공동체 조직과 제도 안에서보다는 '자기만의 신'으로부터 더 큰 종교의 효능을 얻을 수 있다. 그 이상의 종교의 효능과 필요성은 나로서는 불가지하고 불필요하다. 따라서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종교의 내용은 애매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종교는 오히려 자신만의 자율적인 현실 영역과 힘을 가진 어떤 실체"라는 울리벡의 주장이 어느 종교의 교리보다 더 믿음이 간다. ---------------중략-----------------------이게 다 프란치스코 교황 때문이다. 바티칸 공화국에 입성한 날은 마침 일요일이라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신자들의 행렬이 바티칸광장을 한바퀴 둘러싸고 있었다. 믿음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감히 성당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건달처럼 광장을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바티칸광장에 한켠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서 교황의 모습이 나타났다. 제목도 내용도 알 수 없는 성가가 광장에 가득 울려퍼졌다. 알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이 나의 건들거리는 자세와 옷매무새를 고쳤다. 교황이 있는 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서 있으니 교황을 직접 알현하는 기분이 되었다. 새가슴은 벌렁거리고 묵직해졌다.
순간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교황의 모습과 말씀이 겹쳐졌다. 그래서 더욱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교황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노란 세월호 리본을 왼쪽 가슴에서 한번도 떼지 않았다. 세월호 유족을 비롯한 한국민들의 아픔과 슬픔을 진심으로 함께 해주었다. 믿음을 주었다.
"세월호 유족의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
당시 교황이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 받아 달자 누군가 다가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공격적 질문까지 받았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리본을 끝까지 떼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어느 나라의 국왕보다 대통령보다 더 낮게 임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1세의 진면목을 봤다. 존경하고 신뢰하기로 했다. 신은 믿지 않지만 그가 믿고 전하는 신은 무조건 믿어보기로 했다. 신 같은 인간,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신앙심이 생긴 것이다. 그런 교황을 비록 직접 마주 보지는 못했지만 지난 2월 로마 바티칸시국이라는 같은 시공간을 잠시나마 공유한 기억은 소중하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09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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