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에서 생략된 부분은, 아마도 “돈보다”일 겁니다. 일본인들이 ‘민주주의’로 번역했기 때문에 ‘주의’가 됐지만, 사실 democracy는 ‘ism’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주의’는 capitalism, 즉 ‘자본주의’입니다. capitalism을 ‘자본주의’로 번역한 사람은 분명 이 개념이 ‘인본주의’에 대립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제의 ‘인본주의’를 원칙으로 삼지만, 자본주의는 1주 1표제의 주식회사 운영 원리를 기본으로 삼습니다. 만약 선거에도 ‘자본주의’ 원칙을 적용한다면, 투표권도 재산에 따라 차등을 두어야 할 겁니다. 실제로 그런 시대도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영역은 당연히 돈이 지배합니다. 오직 정치에서만, ‘인본주의’에 따른 ‘1인 1표제’가 적용될 뿐입니다.
‘권력’이란, 사람을 굴복시키는 힘입니다. 그 앞에서는 자존심을 꺾고 굽신거려야 하는 대상이 ‘권력’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권력’은 ‘정치 권력’이 아닙니다. 청와대 앞에서 ‘문재앙 퇴진’이라 적힌 피켓을 드는 사람도, 자기 회사 사장이 보는 곳에서 사장을 욕하진 못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살아있는 권력’은 대통령이나 장관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뭐라고 해도 안 들으면 그만이고, 장관이 뭐라고 해도 무시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돈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진정으로 ‘살아있는 권력’은 돈입니다. 돈을 상전으로 섬기고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하는 것이 현대인의 삶입니다.
‘인본주의’에 따라 운영되는 민주주의는 돈이 사람의 주인 노릇하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조금 완화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조차 정치 권력이 ‘사람’ 편에 설 때만 가능합니다. 정치 권력은 진짜 ‘살아있는 권력’의 대표가 될 수도 있고, ‘살아있는 권력들’을 견제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역사보다 훨씬 깁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기업체는 물론 검찰, 언론사, 종교단체 등이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권력 기관’이 되어 사람들의 삶과 의식을 지배했습니다. 이 ‘살아있는 권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민주주의’이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치 권력’입니다. 물론 시민들의 선택에 따라서는, 정치 권력이 ‘살아있는 권력들’과 혼연일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족벌 언론사가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운운하며 칭송했던 사람이 대통령이었던 시절,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 권력은 ‘인본주의’에 따라 구성되는 유일한 권력입니다. 서민의 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이기도 합니다. 정치 권력이 ‘진짜 살아있는 권력들’과 긴장 관계에 있어야, 서민이 사람 대접받을 기회가 조금 더 늘어납니다.
이번의 검찰총장 징계를 두고 ‘살아있는 권력 견제를 막으려는 조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진짜 살아있는 권력’이 뭔지 모르거나, 그 실체를 은폐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에 현혹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관행 위에서 서민들의 피눈물로 사익을 취해 온 ‘진짜 살아있는 권력’에게 노예나 ‘물건’ 취급받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