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선생 42주기 추모식. 문 대통령은 존경의 추도사를 보냈다. “돌베개를 베고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았던 선생의 생애는 애국을 향한 대장정이었다.” 장준하의 상징은 『사상계』와 민주화 투쟁이다. 그의 역사 위치는 박정희 정권의 대척점. 그것은 ‘문재인 역사 코드’를 장식한다.
1945년 1월 학병 50여 명은 충칭에 도착했다. 그들은 백범 김구의 환영사에 감격했다. 김원봉 군무부장도 나왔다. 그의 독립투쟁은 장쾌하다. 의열단→조선민족혁명당 창당→조선 의용대 주역이다. 42년 그는 임시정부와 광복군(부사령관)에 나중에 합류했다.
장준하·김준엽은 이범석 장군 부대(광복군 제2지대)에 들어간다.
‘암살’은 김구와 김원봉의 제휴를 그린다. 그것은 허구다. 진실은 대립·갈등이다. 임정 내부는 복잡했다. 김원봉 세력은 좌파다. 장준하는 파쟁에 실망했다. “임정 내 각 정당에서는 우리에 대한 포섭공작을 했다··· 심지어 김원봉 일파에서는 미인계까지 쓰고 나서는 형편이었다.” (『돌베개』)
장준하의 개탄은 분노를 담는다. 일제의 패망 직후 상황에서다. “일군 출신(한국인 장병) 부대로 하여금 임정·광복군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하면서 어부지리(漁夫之利)를 노리는 김원봉의 계산···” 『돌베개』의 이 부분은 얼마큼 사실일까. 김성숙의 기억은 연관된다. “김원봉은 임정을 적극 반대했다. 내가 김원봉하고 굉장히 싸움을 해가지고 민족혁명당을 임정에 가담시켰다.”(『혁명가들의 항일회상』) 장준하의 환멸은 충격이다. ‘문재인 역사 공간’은 혼란스럽다. 그 속의 역사 코드는 파열된다.
김원봉은 1948년 4월 북한으로 넘어갔다. 그것은 친일파 악질 경찰(노덕술의 고문)에 대한 증오 때문일까. 정화암 선생(혁신계 정치인, 건국훈장)의 분석이다. “김원봉은 남한에서 정치적으로 큰 무엇이 없겠고, 지난날 관계했던 대부분은 이북(연안파)에 있고 하니 갔을 거다.”(『혁명가들의 항일회상』)
북한은 조선의용대 역사를 망가뜨렸다. 대한민국은 그들을 기렸다. 김원봉의 항일 동지들은 잊히지 않았다. 석정 윤세주는 의용대 주축이다. 그는 건국훈장(추서 1982년)을 받았다. 박차정(김원봉의 첫 부인)에게도 건국훈장(추서 1995년)이 주어졌다.
김원봉은 다르다. 그의 월북 후는 치명적이다. 그는 김일성 정권의 국가검열상을 지냈다. 6·25 남침 때 전선 지휘는 아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요직이다. 군사 행정을 관장한다. 김원봉에게 전범(戰犯)의 그림자는 그렇게 서려 있다.
문 대통령은 “임정은 대한민국의 뿌리”라고 했다. 김원봉은 임정 노선을 오랜 기간 거부했다. 그것은 김구의 개탄이다. 독립훈장은 국가 정체성이다. 문 대통령은 정체성을 어느 정도 고민할까. 장준하의 울분, 김구의 고통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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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홍범도나 서일을 재평가하면 몰라도 김원봉을 띄워주는 이유를 모르겠음. 북한에 가서 김일성에게 숙청당해서 그런가..일하는 스타일상 권력잡았으면 김일성 못지않았을것 같은 사람인데..김일성도 권력못잡고 만주땅에서 비명횡사했으면 위대한 독립운동가 김일성장군으로 빨리고 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