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서 누리는 기본적인 권리인 인권은 인간의 평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소한 가져야 하는 존엄에 관한 권리입니다.
인간의 존엄 충족이후 자아실현은 평등이 아니라 개개인의 노력이고 결과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 느끼는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세상은 애시당초부터 평등하지 않습니다. 극지방에서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도부근에서 태어나는 사람고 있고 사계가 뚜렷한 곳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죠.
시작부터 다르고 태생이 다르고 모든게 다 다릅니다.
다만 인권이라는 이름하에 개개인의 자아실현 욕구에 대해서 사회가 먼저 막는것 만큼은 방지하자는게 기회의 평등이죠
우리사회가 걸어갈길은 기회의 평등을 여는 길입니다.
노력하는 인재 열정있는 인재가 있다면 공평하게 시험을 진행하여 배움의 기회를 평등하게 주는것이 이것에 해당합니다. 바로 수학능력시험을 예로 볼 수 있죠.
다만 우리나라의 기회평등 수준은 아직은 아쉬운 수준입니다.
이것은 그동안의 교육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보여준 부분이며 돈이없어서 대학에 못가는 친구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미 빛이 많은 집의 가정의 자녀들은 다시 학자금 대출이라는 빛을 짊어 지고 공부하기는 힘들죠.
그래서 확대가 필요한게 의무교육과 국가장학기금운영입니다.
능력이 인정되고 노력하는 인재를 선별하고 그중 가정형편이 어려운 자녀에게 교육을 무상으로 받게 해주어야합니다.
이게 기회의 평등을 만드는 길입니다.
단, 노력하지 않고 처한 현실에 불평불만만하고 스스로 포기한 자에게까지 이 혜택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대학무상교육은 배움을 절실히 하는 사람에게 주고 가난한자가 돈을 벌고자 한다면 취업과 관련된 교육훈련을 무상으로 시켜주는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거지에게 매일 빵을준다고 그사람의 인생이 바뀌지 않습니다.
거지에게 일하는 방법과 일자리를 제공을 한다면 거지는 사라집니다.
근시안적인 복지정책은 근본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우리사회는 결과인 빵을 주는것 보다 기회인 직업 교육과 일자리 소개와 같은 일을 하면 됩니다.
처음엔 남들보다 적은 월급을 받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났을때 똑같지는 않을겁니다.
당신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말이죠.
남들보다 많은 월급을 받고 시작하는 사람은 그 스스로 부정을 저질러서가 아닙니다. 그가 태어난 환경이 다른 사람보다 좋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성공하는건 아닙니다. 노력하는것은 개인의 문제이니까요.
우리사회의 미래는 10년뒤 사람들의 인생을 좌우하는 척도가 노력과 땀이 여야합니다.
바로그겁니다.